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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득공주전 (妙得公主傳)
그 옛날 중원에 진(陳)나라가 있어 25대 400여년을 이어갔다. 마지막 황제 문성제(文成帝)가 20대 후반에 즉위하여 이후 20여년을 통치했으나 나이 50이 넘도록 후사가 없었다. 이에 안타까워하며 천신(天神)께 치성(致誠)을 오랫동안 올렸다. 또한 신하들의 권유로 후비(後妃)를 얻어 딸을 낳았다. 이에 문성제가 탄식하기를
“ 하늘이 기어이 진나라를 멸하게 하시려는가. 내 나이 50이 넘도록 후사가 없어 자
손을 보기위해 치성을 올렸건만 절실한 아들을 주시지 않고 딸을 주시니 어찌된 일
인가 ” 하였다.
허나 공주의 이름을 묘득(妙得)이라 짓고 늦게나은 여식이나 총애하였다. 공주가 나이 열 살때부터 서책 읽는 것을 즐겨 한번 읽고 익힘에 막힘이 없어 다들 놀라워했고 특히 문성제가 ‘사내아이로 태어났어야 하는 것을...’하며 수도없이 탄식하였다. 공주의 나이 열네살 때 간신 이도와 진수가 있어 황제에 후사가 없는 것을 이용 이를 해치우고 자신들이 황제가 되려 하였다. 평상시 친분이 있는 숙위대장 백동현에게 거액의 뇌물을 주어 함께 도모하기로 하고 마침내 난을 일으켰다. 이도와 진수는 늙은 황제와 나이어린 후비를 시해하고 따르던 신료 수십여인을 학살하고 가족까지 몰살하였다.
이때 충신 위연은 승상으로 있었는데 열네살 묘득을 목숨을 걸고 구해내었다. 원래 위연이 이도와 진수의 음모를 눈치챘으나 황제의 바쁜 정무탓에 간할 기회를 놓쳤다가 마침내 난이 일어난것에 놀라 공주라도 살리고자 미리 알리고 극적으로 구출을 해낸 것이다. 이도와 진수가 황궁을 장악했을 때 위연은 열네살 묘득을 데리고 이미 황궁을 빠져나와 뒷산을 오르고 있었다.
원래 진나라 황궁이 뒤쪽으로 작은 야산이 있고 야산을 다 내려오면 낮은곳은 성인 무릎까지 깊은곳은 허리까지 차오르는 그리고 10자정도 넓이의 개울이 하나 있었다. 공주가 망설임에 위연이 이때 나이 60을 넘겼으나 거뜬히 그녀를 업고 강을 건넜다. 그리고 황도에서 서남쪽으로 약 300여리를 손을 잡고 함께 달아나 공주와 함께 은거하였다.
위연이 공주와 은신하던 마을을 백설촌(白雪村)이라 하였다. 예부터 겨울이 되면 눈이 하얗게 수북히 쌓이는 곳이라 오래전부터 고을 주민들이 그렇게 부른 것이다. 위연은 신분을 대장장이라 속이고 공주를 자신의 딸이라 하여 신분을 숨기고 살았다. 하루는 위연을 알아보는 이가 있어 놀라 보니 옛 진나라 오호대장중 하나였던 태원(泰原)의 장손(長孫) 태완선이었다. 이도,진수의 난때 태완선의 일가도 모두 몰살되었으나 그만 혼자 극적으로 살아난 것이다. 위연이 놀랍고 반가와하며 자신의 거처에 함께 살게하고 훗날을 의논하기로 했다.
이때 이도,진수는 진나라 황실을 막내리게 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려 하였다. 헌데 애초에 황제로 세우려 한 것이 진수였는데 이도가 약속을 어기고 황제가 되려 하자 진수가 난을 일으켰다. 얼마 안가 이들과 반란을 도모했던 숙위대장 백동현 역시 이도가 약속대로 높은 벼슬을 주지 않는다하여 난을 일으켰다. 이로인해 진나라가 쓰러지고 이도가 새 황제가 된 한동안 황도가 무척이나 난으로 혼란스럽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갔다.
이에 하루는 태완선이 위연을 찾아와 ‘이도가 무도하여 그와 함께 난을 일으킨 옛 동지들조차 등을 돌리고 백성들의 삶은 피페해졌소. 이때가 마땅히 성군(聖君)을 해친 간적(奸賊)을 도모할 절호의 기회이거늘 공께서는 선황의 충신이며 나라의 큰 은혜를 입었거늘 어찌 도모하여 옛 주군의 원수를 갚을 생각을 하지 아니하시오 ?’ 하였다. 이에 위연이 답하기를 ‘이도가 무도하여 백성들 원성이 하늘을 찌르는 것을 내 모르는바 아니고 나 또한 선대때부터 나라의 은혜를 입은 공신의 가문이나 이제 남은 것은 나이어린 공주와 이 늙은 대장장이뿐이오. 무슨수로 천하대사를 도모하겠소 ?’하며 탄식하였다. 이에 태완선이 말하기를
“ 내게 한가지 계책이 있소. 서천땅은 예부터 산세와 지리가 험해 중원의 힘이 닿
지 못하는곳으로 예부터 나라없이 오직 50여 부족이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세력
을 이루고 있소. 허나 철과 소금의 산지로 중원은 예부터 이곳에서 철과 소금을 수
입 나라의 자원으로 쓸수 있었소. 허니 우리가 이곳으로 가 서천을 아우르며 철과
소금을 독점하여 중원을 압박하고, 동오(東吳)와 손을 잡으면 능히 천하를 도모할
수 있을것이오. ” 하니 위연이 그럴듯한 계책이라 여겼다.
날을 정해 공주에게 아뢰고 태완선과 함께 길을 떠나려 하니 고을백성 임홍과 임준이 자신을 따르는 무리 20여인을 데리고 와 “난군중에 부모와 누이동생을 잃고 오직 복수할날만을 기다려왔소. 역적 이도와 진수를 잡아 그 간을 씹어도 시원치 않을정도로 원한이 많으나 힘이 없고 때를 만나지 못해 그저 분루만을 삼키고 있었소이다. 이제 공(公)들께서 천하대사(天下大事)를 도모하신다 하니 따르기를 청하오” 하여 마땅히 합류시켰다.
서천은 중원에서 남서쪽으로 천리도 넘고, 백설촌에서도 7-800리 이상을 더 가야 하는곳이며 무엇보다 길이 험하고 산이 높았다. 다른이들은 다 남자라 걱정이 없었으나 공주 혼자 어린 여자라 산을 넘기 쉽지 않고 강을 건너기도 힘들어 여러차례 손수 위연이 등에 업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위연이 업을때마다 묘득공주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마침내 서천에 당도하니 나라없이 여기저기 흩어진 50여개 부족중 그나마 강성한 세력이 계진과 설란이 이끄는 부족이었다. 이들을 위연이 필설로 설득하니 계진과 설란이 납득이 되어 마침내 소금산과 철광산을 보여주며 함께 중원을 압박할 계책을 도모하였다.
이때 예주(豫州)는 서천에서 동으로 500리, 황도에서도 남으로 500리 정도가 떨어져 있었는데 남동일이란 자가 자사로 있었다. 본래 위연과 친분이 있던자로 이도가 난을 일으켜 황제가 된 뒤엔 눈치만 보고 마땅히 무슨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이에 위연이 편지를 쓰니 놀라 직접 만나기를 청하며 함께할 뜻을 밝혔다. 남동일이 위연과 손잡을 뜻을 밝히자 위연은 몸소 임홍과 임준을 그 무리들과 함께 보내 군사를 조련하도록 했다.
이도는 나라의 이름을 성(成)나라라 하고 수도는 함중(咸中)이라 명하였다. 이도는 본래 황제가 된 뒤에도 진수의 난, 백동현의 난등을 진압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겨우 진압하는데 3년이 걸렸다. 게다가 여러차례 난을 일으키고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인재들이 죽고 이도도 측근들을 다 잃어 마땅한 인사개편도 하지 못하고 다만 세금만 백성들에게 많이 걷고자 독촉하여 나라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황도와 예주 사이에는 명주(明州)라는 동서로 300여리, 남북으로도 200여리가 뻗쳐져 있는 주(州)가 있는데 측근 복사귀를 명주자사로 임명 겨우 방비하는 중이었다.
책사 제갈량을 삼고초려로 긴급 등용하니 제갈량이 말하기를
“ 서천은 본래 산세와 지리가 험해 오래전부터 중원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였고, 온
전한 나라가 없이 자체 지역에서 나오는 소금과 철로 자원을 충당하고 있나이다.
또한 50여개 부족으로 흩어져 있어 마땅한 도리가 잡혀져있지 않으니 우리가 부족
장들에게 많은 재물을 내리고 은밀한 편지로써 서로 이간하게 하며 위연을 믿지
못하게 만들면 위연에게도 복종하지 않아 그곳은 혼란스러워질것입니다. 또 동오는
예부터 큰 강을 사이에 두고 우리와 맞닿아 있어 기름진 평야에 수많은 곡식과 야
채가 많이 나서 그것만으로도 백성들의 사는게 풍족하여 그와같이 자체세력을 오래
전부터 유지해오고 있나이다. 동오는 오직 평온을 바라는 지역이고 다만 유사시를
대비해 조직한 별동대와 수군이 있는 것으로 아니 동오왕(東吳王)에게 주군(主君)의
어린 공주를 보내 혼인동맹을 청하시고 동오의 수군과 별동대에 원군을 청하시오소
서. 서천의 부족장들로 하여금 위연의 무리를 믿지 못하게 만들어 서로 싸우게 하
고 동오의 군사로 예주를 압박하면서 주군의 충신이자 명장인 이태일과 엄상원을
명주로 보내시어 위에서 압박하면 예주는 세 방향에서 압박을 받아 스스로 멸망할
것이옵니다. 예주의 난을 평정할수 있는 계책이 이와같나이다 ” 하였다. 이도가 옳다 여기고 제갈량의 계책을 받기로 했다.
제갈량이 먼저 서천으로 간자들을 보내 ‘위연은 본래 옛 진나라의 충신으로 진나라가 원래 서천 백성들을 미워한데다가 위연도 본래 선대에 장사를 하러 다니다가 서천의 산적들한테 죽임을 당한자라서 서천인들에 대한 원한이 뼈에 사무쳐있다. 따라서 위연이 옛 진나라 황제의 원수를 갚고 새 나라를 세우면 이후 서천 백성들을 몰살시키려 할 것이다’라는 소문을 퍼트리고 또 서천의 각 부족장들도 원래 제갈량이 치밀하게 사전에 그 내력과 성정들을 조사한대로 서로 이간시키는 소문을 퍼트려 이들이 단합하지 못하게 만들려 했다.
한편 이때 동오왕 손정활은 나이 60을 넘긴이로 이도가 직접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고 자신의 본래 애첩으로 지금은 총희(寵姬)가 되어있는 창빈(昌嬪) 양씨의 딸 유진공주를 시집보냈다. 이도의 어린딸을 후비로 맞이하게 된 손정활은 기뻐하며 바램대로 별동대와 수군을 보내 예주를 칠 것을 약조하니 유진은 열아홉살 나이로 동오왕에게 시집을 가니 많은 신료들이 다행이라 여겼으나 오직 창빈 양씨만이 사흘밤 사흘낮을 혼자 슬피 울었다.
한편 이때 서천의 계진과 설란은 위연을 은밀히 만나 대책을 의논하니 ‘원래 진나라는 예전부터 우리 서천이 하나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간자들을 보내 많은 소문을 퍼트려 우리 부족들을 이간하였소. 따라서 우린 중원의 세객들이 보낸 헛소문 따위는 믿지 않소’ 하면서 앞으로도 위연을 계속 도울뜻을 밝혔다. 위연이 말하기를 ‘진나라가 두려워한 것은 오직 서천의 부족들이 단합하여 난을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한 것 뿐이오. 내가 폭군 이도를 쓰러트리고 새 나라를 세우면 오직 서천의 철과 소금만 충분히 공급받고 마땅한 댓가를 지불할뿐, 다른뜻은 품지 않으리라’ 하며 자신의 뜻을 밝히지 계진과 설란도 더욱 위연과 뜻을 함꼐하기로 맹세하였다. 이때 또다른 서천 부족장 하나가 투항해오니 홍섬이라는 자였다. 홍섬이 말하기를 ‘중원의 이도가 보낸 간자들이 나에겐 의형제나 다름없는 부족장들과의 사이를 터무니없는 말로 이간하며 모함하고 있소. 따라서 이도의 간악함을 더 두고볼수 없어 함께 도모하기로 하였나이다’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의 명장 넷을 추천하니 이봉원,조금산,장두령,심명보란 자였다.
한편 손정활은 약속대로 수군과 별동대를 보내 예주의 동남쪽을 쳤고 같은 시기 북쪽에서 이도의 충신 복사귀도 장군 이태일,엄상원과 함꼐 예주를 치니 난군중에 위연의 옛 친구 남동일이 전사하고 임홍과 임준만이 극적으로 탈출해왔다. 위연이 다시금 절망에 빠지니 이때 묘득공주는 위연의 도움을 받으며 처소에서 서책만을 가까이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위연이 계진,설란,홍섬과 앞으로의 일을 도모하는데 찾아와 계책을 말했다.
“ 동오의 손정활이 어린 후비를 맞았으니 만약 후비가 새로운 자손을 보면 마땅히
어린 왕자를 후계자로 삼으려 할것이오. 허나 손정활의 이미 장성한 왕자 손태광,
손태원에게 사신을 보내 어린 계모와 두 왕자 사이를 이간시키면 동오는 혼란에
빠져 다른뜻을 품지 못할것이오. 또 북족에는 도황족이란 이민족이 있어 추운 겨
울엔 먹을것과 처소가 없으면 종종 중원으로 쳐내려와서 진나라를 골치아프게 하
였소. 허나 우리는 사신을 보내 새 나라를 세울시 도황족과 화친하여 겨울에 도황
족이 먹고 잘 수 있는 처소를 마련해줄 것을 약조하고 이도를 치도록 합시다. 그
리고 이도가 본래 신의가 없는자라 원래 함께 난을 일으켰던 진수나 백승주마저도
곧바로 난을 일으켰으니 지금 이도를 따르는 충신들도 새 황제를 쉬이 믿지 못할
것이요. 지금 이도가 자신의 측근이라 생각하는 복사귀를 예주와 명주를 총괄하는
‘총괄자사’에 명하였으니 지금은 한참 공명심에 들떠있을것이오. 허나 우린 이 복사
귀란자의 탐욕스러움을 이용하기로 합시다. 이도가 복사귀를 믿지않아 머지않아 적
당히 역모죄를 뒤집어씌워 죽일것이라 하고 스스로 난을 일으키게 합시다. ”
공주의 계책이 이와같으니 다들 놀라워했다.
위연이 먼저 한 간자를 중원인(中原人)으로 변장시켜 동오의 왕자 손태원,손태광을 만나게 했다. 그리고 ‘그대들 부왕이 이도의 공주를 새 후비로 맞아들였으나 어린 왕비를 어찌 믿겠소 ? 만약 후비가 묘계(妙計)나 음계(淫計)를 꾸며 그대들을 모함하면 그대들은 마땅히 격노한 동오왕의 화를 면치 못할것이오. 따라서 그대들이 먼저 일을 도모하는 것이 나중에 후회함보다 나을것이오’ 하였다. 사실 유진공주는 이도의 총비의 딸이긴 했으나 어릴때부터 성품이 어질어 다른뜻을 품지 않았다. 오히려 때때로 손정활의 장성한 왕자들에게 손수 선물을 내리거나 몸소 서한을 보내기도 해 그들의 환심을 사고자 노력하였다.
간자가 함께간 시녀 하나를 동오궁(東吳宮)의 궁녀로 변장시켜 유진공주의 처소에 들게했다. 그리고는 공주에게 ‘이미 동오왕에게 손태원,손태광 같은 장성한 왕자들이 있어 공주께서 후사를 볼 경우 자신들에게 왕위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우려하고 있나이다. 심지어 듣기로는 차라리 보쌈인을 시켜 공주를 납치할 흉계까지 꾸미고 있다고 하니 공주께선 마땅히 조심하거나 먼저 도모하지 않으면 반드시 화를 입을 것이옵니다.’ 하였다. 공주가 처음에는 초면의 궁녀가 이런말을 하니 믿지 않으며 “내가 본래 동오로 시집왔을 때 다른뜻이 없었고 오직 양국의 화친만을 천신께 기도드렸으며, 또한 비록 나이든 왕에게 시집왔으나 지어미로서의 도리를 다하고자 할 뿐이다. 또한 장성한 왕자들이 있다하나 내가 이미 그들에게 지성으로 대하고 있거늘 어찌 그런일이 있을수 있겠는가. 옛 선현의 글귀에도 ‘내가 남에게 지성을 다하면 남도 나에게 지성을 다할 것’이라 했으니 그런일은 없을 것이다.” 하고 믿지 않았다.
간자가 이번엔 미소년을 하나 사서 여장을 시켜 손태광,손태원 왕자의 처소에서 머지않은곳 욕실에서 매주 수요일 술시가 되면 그곳에서 장시간 목욕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또다른 하인을 왕자의 처소에 들게하여 ‘공주가 아무래도 음계로 왕자들을 모해하려 하는 듯 하더이다. 제 말이 믿기 어려우시면 한번 다음 수요일 술시에 동남방 욕실로 가보시오소서. 그곳에 유진공주가 일주일마다 찾아와 목욕을 하고 있을것이외다. 이미 공주의 처소에 따로 욕실이 있거늘 이 무슨 해괴한 일이리이까. 이는 마땅히 다른 흉계가 있는것이니 조심하고 경계하여 먼저 도모하여야 할 것이외다’ 하니 두 왕자는 반신반의 하였다.
간자는 자신의 하인과 시녀를 시켜 먼저 유진공주를 ‘보쌈’으로 납치하게 했다. 보쌈인은 공주를 왕자들 처소 인근 욕실에 갖다놓았고, 왕자들은 그전에 이미 미소년이 그곳에서 목욕을 하는 것을 먼발치에서 보고 하인의 말대로 ‘과연 유진공주가 흉계를 꾸미고 있구나’ 생각하고는 놀라워했다. 아우 태광이 형 태원에게 “형님, 무엇을 하십니까 ? 저 간악한 계집의 흉계를 보고만 있을것입니까 ?” 하니 형 태원이 응하여 둘이 함께 칼을 들고 욕실로 달려들었다. 이때 아무것도 모른채 보쌈을 당한 공주는 보따리가 풀려져있음을 뒤늦게 알고 풀어헤치고 나왔다. 이미 옷이 풀어헤쳐진채로 나오려 하는데 이때 바로 칼을 들고 욕실안으로 달려드는 두 왕자와 마주쳤다. 공주가 놀라 달아나니 두 왕자가 바로 뒤쫒았고 공주는 바로 손정활이 있는 동오궁으로 달려가 ‘왕자들이 감히 제게 다른뜻을 품고 음란한짓을 하려 드나이다’ 하며 울며 간했다. 이때 손태광 형제는 아버님의 처소까지 칼을들고 달려감은 마땅치 않다하여 이쯤에서 돌아간뒤 대책을 의논하려 했는데 이미 두 형제가 칼을 들고 동오궁으로 달려가는 것을 목격한이가 적지 않아 많은 내관과 궁녀들이 이를 손정활에게 고하였다. 격노한 손정활이 손태광 형제를 해치우려 하자 손태광 형제도 난을 일으켜 마침내 동오에서 부자간의 한바탕 전란이 일어났다. 동오의 사정이 이렇게 복잡해지니 이미 중원의 요구나 원군을 들어줄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이때 위연은 묘득공주의 명을 받아 다시 도황족에게 사신을 보냈다. 이때 도황족 부족장중 염부팔이란 이가 있어 3천여인을 거느리고 있었다. 사신이 먼저 중원의 사정을 염부팔에게 말한뒤 ‘우리 공주(묘득공주)께서 다시 복위하시어 새 나라를 세우시면 그때 중원과 도황족의 세력 중간지대에 별도의 처소와 농사지을 땅을 마련 겨울철에 도황족이 내려와 살수있도록 해주겠다’는 약조를 하고 중원의 이도를 도모할 것을 논했다.
또한 예주,명주 총괄자사 복사귀에게도 은밀히 간자를 보내 과거 진수,백동현등의 일을 들며 이도를 ‘신뢰할수 없는자’라 하였으나 복사귀가 원래 탐욕스럽고 의심도 많은자라 반신반의(半信半疑) 하고 있었다. 마침내 서천에서 묘득공주가 홍섬의 추천으로 장수가 된 이봉원,조금산,장두령,심명보를 시켜 예주와 명주를 치게했고 때를 맞춰 도황족도 중원을 침략하였다. 황도를 중심으로 한 삭주(朔州)가 위기에 빠졌으나 복사귀는 이미 예주,명주의 사정이 복잡해 황도를 구원하지 못했고 동오는 이미 내부의 전란으로 중원의 일까지 신경쓸 처지가 못 되었다. 일단 예주,명주의 일은 복사귀가 가까스로 격퇴하긴 했으나 도황족은 황도와 황궁 대다수를 불살라 이전에 이도,진수가 난을 일으켰을때와 다를바가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도가 마침내 격노해 황제를 돕지 않은 복사귀를 반역자라 하여 처단하려 하였다.
이에 제갈량이 만류하기를 ‘지금 복사귀를 처단하는 것은 서천의 반란세력을 돕는 일밖에 안 됩니다. 동오의 일도 그렇고 아무래도 서천의 반란세력에 지략을 써서 우리 내부에 내분이 일어나도록 하는자가 있는 듯 합니다. 신(臣)이 이를 알아보겠나이다’ 하니 이도가 비록 분하긴 했지만 복사귀 처단은 유보하였다. 한편 이때 황도 세력은 서천에서 반군을 주도하는이가 옛 진나라때 승상인 위연임은 파악하고 있었으나 묘득공주가 그곳에 함께 있을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하였다. 다만 제갈량이 은밀하게 서천으로 간자들을 보내 알아본뒤 이도에게 다시 이와같이 간했다. ‘아무래도 묘득공주가 살아있어 서천에서 위연등을 돕고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지략을 꾸밀만한 마땅한자가 없나이다.’ 허니 이도가 말하기를 ‘나 역시 위연을 모르지 않는다. 그 옛날 문성제시절 함께 황제를 모시던 신하가 아니던가. 헌데 위연은 어디까지나 위에서 시키는대로만 하는 전형적인 관료에 불과할뿐 전투에서 지략이나 외교 혹은 정세파악같은 것을 할만한 능력은 못 되는 자다. 확실히 위연 진영에 지략과 정세파악 능력을 가진자가 함께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나 묘득은 아닐 것이다.’ 라고 말했다. 제갈량이 의아해서 다시 물으니 ‘나도 예전에 묘득공주를 본적이 있지 아니한가. 어릴때부터 서책을 좋아해서 총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어쨌든 계집이 아닌가. 기껏해야 옛 선현들의 경전에나 나오는 도덕군자 담론같은 소리나 즐겨 읽을 아이니 무슨 병서나 전술서 같은 것을 즐겨읽을 아이가 아니지 않는가. 무엇보다 내가 진수와 난을 일으켰을 때 겨우 열네살 어린아이. 그 난리속에 생존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하였다.
원래 이도,진수가 난을 일으켰을 때 문성제에게 단지 50 넘어서 본 늦둥이 묘득공주만 있을뿐 다른 자손이 없었기 때문에 그 부분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애초부터 묘득공주는 ‘나이어린 계집’에 불과하다하여 처단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반란군의 부장(副將)중에 공명심을 드높이고픈 자들이 몇몇 있어 부하들이 다른 어린 궁녀를 처단하고 묘득공주로 오인하여 보고한 것을 그대로 믿고 이도,진수에게 보고하고 말았다. 그러니 그때 이도와 진수는 묘득공주가 죽은것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았다. 또한 묘득공주가 살아있다 하더라도 열네살 나이어린 여자애가 지금 혼자 살아남은들 무엇을 할수 있으랴 하며 크게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지금와서 그 묘득공주가 살아있어 위연과 함께 자신들을 도모하려 한다는 것을 크게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제갈량은 혹시 모르니 다시 서천으로 간자들을 보내 묘득공주가 살아있는지 또 살아있다면 과연 위연을 도와 지략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려 들었다.
이때 서천의 묘득공주는 애초에 자신의 지략이었던 오나라에 내분이 일어나게 하는것과 북쪽의 도황족이 중원을 도모하게 하는 것은 성공하였으나 예주와 명주를 치는 것이 한때는 이봉원,조금산등 4대장의 맹활약으로 두 지역 상당수를 차지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복사귀에게 격퇴당해 패한 것을 애석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와같이 말했다.
“ 역시 복사귀는 생각보다 용맹한자요. 힘으로 빼앗기 어려우니 다시 계책을 발휘
해야겠소. ”
그리고는 서천의 고아소녀 하나를 급히 등용하여 이름을 ‘예진’이라 지어주고 기녀로 특급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예주땅에 잠입시켰다. 한편 복사귀는 한동안 전란이 없고 평온하자 부하들과 기방에 자주 드나들며 술을 즐겼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묘득이 간자로 파견한 기녀 예진이 눈에 들어왔다. 복사귀가 예진에게 홀딱 반해 자신의 처소로 불러들여 밤낮없이 술을 즐기며 그녀와 노닐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예진이 하루는 자신이 ‘회임을 한 것 같노라’ 거짓으로 아뢰었다. 그러자 복사귀가 입이 딱 벌어져 좋아 어쩔줄 모르며 예진을 자신의 정실부인으로 앉히려했다. 허나 이때 복사귀에겐 원래 본부인이 따로있어 집안에 한바탕 분란이 일어났다.
묘득공주가 이 틈을 타 다시 4대장에게 명하여 예주와 명주를 치게했다. 이로소 마침내 예주와 명주가 떨어지고 복사귀는 자결하였다. 예주와 명주를 차지한 묘득공주는 임시로 나라이름을 ‘신진(新陳)’이라 짓고 황도를 압박하였다. 승상에 위연을 임명하고 내정태사에 태완선을 그리고 예주,명주를 차지하는데 으뜸의 공을 세운 이봉원,조금산,장두령,심명보 4대장을 ‘충위장군(忠衛將軍)’에 임명 삭주(* 황도가 소재한 주(州)와의 경계로 병사들을 함께 보내 황도와 대치하도록 했다. 그리고 임홍과 임준은 ‘훈련대장’에 임명 병사들을 조련하도록 했다.
한편 신진을 세운 묘득은 서천에선 철과 소금을 싼값에 받으며 대신 예주와 명주의 특산물인 ‘오색약초’와 ‘오색약초’를 팔아 교역과 교류가 진행되게 하였으며, 이때 동오는 손정활과 손태광,손태원 ‘3부자의 전쟁’이 3부자가 모두 전란중에 사망함으로써 1년여만에 겨우 막을 내렸다. 그리고 손정활의 사촌의 손자인 손진태가 새로 동오왕이 되었는데 새 동오왕은 중원의 이도와 묘득의 신진 두곳과 등거리 외교를 하며 나름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자가 되어 나라의 안정을 취하려 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도의 황도는 사실상 서천과 신진 그리고 동오 세곳이 모두 압박을 해오는 그런 형국이 되었다.
한편 이때 묘득공주의 나이 열아홉이 되니 신료들이 중대한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옛 진나라를 다시 부흥시키는것도 중요하나 공주가 어느덧 나이 열아홉으로 혼기가 꽉 찼으니 혼사를 진행하려 하였다. 공주가 이와같은 신료들의 뜻을 알아차리고 그들을 불러 이와같이 말했다.
“ 내게는 오래전부터 낭군감으로 정해둔 이가 있으니 경들은 신경쓰지 마시오. ”
신료들이 놀라고 의아해 물었다.
“ 그가 누구오이까 ? ”
“ 바로 위연 승상이오. ”
이때 위연의 나이가 67세니 신하들이 모두 놀라 물으니 묘득이 이와같이 답했다. ‘원래 이도,진수의 난때 나는 위연 승상의 등에 업혀 궁을 탈출할수 있었고 이후에도 여러번 승상의 등에 업힌바 되었소. 옛 선현의 글귀에 ‘여인이 한 남자에게 몸을 맡김은 바야흐로 자신을 맡기는것과 같다’고 하였으니 어찌 내 다른 남자를 품을수 있겠소. 위연승상에게 업혔을 때 나는 이미 그의 지어미가 된것과 다름없으니 경들은 더 말하지 마시오‘ 하였다. 위연이 나중에 이 말을 듣고 놀라 말하기를 ‘옛 선현의 글귀를 보면 오히려 ‘위급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마땅히 임시방편을 쓰는것이니 불가피하게 금기를 범했을시엔 귀책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하였습니다. 백성에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가 반드시 옛 선현의 법과 도리대로 되지 않을때가 오히려 더 많으니 이때 쓰는 것을 ‘임시방편’이라 하는것이옵니다. 신이 공주를 난중에 무례히도 등에 업은 것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기 위한 ‘임시방편’이었을 뿐이니 이제와서 공주께서 신의 지어미라 하심은 실로 당치않은 말씀이시옵니다. 또 공주께선 옛 진나라의 높으신 황실의 자손이요 신은 오직 미천한 신하일뿐이니 어찌 신하가 주군을 범하는 하극상(下剋上)을 꾀하리이까. 또한 신의 나이 이미 67세로 나이어린 여인을 배필로 맞음은 더더욱 천부당만부당하니 신을 낭군으로 생각하신다는 말은 속히 거두어주시소오서‘ 하였다. 허니 오히려 묘득이 절실함과 열성을 담아 반박하였다. ’내가 승상을 배필로 맞이하려는 뜻은 이와같소. 첫째 공과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옛 진나라를 다시 세우고자 하였으니 단순한 군신간이 아닌 혈맹과 다름아닌 동지요, 둘째 공은 나를 난군중에 목숨을 다해 살려주었으니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함이며 셋째로 나는 옛 진나라 황실의 자손이나 부황께서 다른 자손이 더 이상 없어 진나라 황실이 끊길 위란에 빠졌고 공은 옛 진나라 충신이면서 진나라를 부흥하고자 할 뜻을 가졌으나 역시 난군중에 가솔을 모두 잃어 홀몸이 되었소. 따라서 진나라를 다시 세우고자 하는 두 동지의 뜻을 합해 진나라를 새로이 이끌어갈 훌륭한 자손을 보기 위함이니 더 이상 다른뜻을 말하지 아니하시오‘ 하고는 위연승상이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이대로 죽어버릴것이라며 처소로 돌아가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신료들이 고민 끝에 다시 공주를 찾아가 다른 젊고 늠름한 장수나 청년을 배필로 추천하였으나 공주가 사주단자를 내던지며 노하여 말하기를 ’위연 승상이 아니면 그 어떤 젊고 건장한 사내도 소용이 없소 !!!‘하였다. 묘득공주가 평소 그녀답지 않은 고집을 보이니 신료들이 모두 놀라워하였고 하는수없이 다시 위연승상을 찾아가 설득하기로 했다. 위연승상이 이미 세 개나 빠진 앞니를 내어보이며 허허 웃으며 탄식하여 말했다.
“ 내 옛 문성제의 충신이었거늘 이제와서 이것을 복이라고 해야하나 화라고 해야하
나. 난군중에 나 역시 가솔들을 모두 잃어 자손이 끊길 지경에 이른 것은 사실이나
전란중에 죽은 두 아들이 저승에서 이 모습을 보면 어찌 받아들일꼬 하였다. ”
마침내 묘득공주의 뜻을 받아들여 혼인의 의사를 밝히니 신진의 수도로 정한 안성(安成)에선 신진이 세워진후 처음이자 가장 큰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묘득공주가 수줍게 웃으며 위연승상에게 절하니 그제서야 위연 승상이 침이 절절 흐를정도로 좋아하며 난감한 가운데서도 어쩔줄을 몰라했다.
한편 지금까지 베일에만 가려져있던 묘득공주가 공개적인 혼인식을 치름으로써 처음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것이니 사실상 묘득공주의 생존사실과 함께 신진(新陳)의 난을 처음부터 주도한이가 누구인지도 밝혀진것이니 황도의 제갈량은 보고를 받고 충격을 받았다.
헌데 이때 엎친데 덮친격으로 또다른 변란이 일어났다. 하북의 유주,기주,청주,병주 그리고 홍주(洪州)등 5개주를 관장하고 있는 ‘하북 대원수 월광(月光)’이란 자가 스스로 그곳을 독자세력화 하고 ‘해나라’란 나라이름을 지어 건국을 천명한 것이다. 원래 월광은 진나라 시절 4대에 걸쳐 삼공을 배출한 명문가 자손으로 문성제가 그 선대의 공을 높이 사 월광에게 하북 5개주를 관장하게 한 것이다. 허나 이도,진수의 난 이후 변란이 계속 끊이지 않자 비단 하북뿐 아니라 대체로 천하에 황도의 명이 제대로 닿지 않는 그런 시절이 되어 그 옛날 열국(列國)시대처럼 사방 각지의 제후며 영걸들이 저마다의 영지를 ‘독자세력화’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월광 역시 더 이상 이도에게 충성할 필요를 못 느꼈는지 스스로 나라를 세우고 하북 5개주를 자신의 독자세력화한것이다
이때 제갈량에겐 사가(私家)에서부터 어울리던 조민상,조일상이란 형제가 있었는데 항상 이 둘을 곁에 데리고 다니니 사람들으 ‘좌 민상, 우 일상’이라 불렀다. 제갈량이 민상,일상 형제를 불러 “묘득공주가 신진을 세우고 서천과 동오도 우리에게 복종하지 않는 가운데 하북에서조차 반란이 일어나 ‘해나라’가 세워지니 그 옛날 열국시대나 하나 다를 것 없는 형국이 되었소. 우선 묘득의 신진이 황도를 압박해오고 있으니 이들을 치는게 급선무인데 마땅한 좋은 계책이 있으면 말해주시오. ”하였다. 이에 먼저 조민상이 일어나 간했다.
“ 지금 당장 우리가 신진을 정벌하긴 무리니 마땅히 ‘이코경식지계’를 쓰소서. ”
“ ‘이코경식지계’가 무엇이오 ? ”
제갈량이 묻자 이엄이 설명했다.
“ 힘이 무척 센 코끼리 두 마리를 서로 싸우게 만들면 두 마리는 쉬이 승부를 내지
못하여 둘 다 죽게되거나 기진하여 더 이상 힘을 쓸수 없게 될것입니다. 이때 두
마리 힘빠진 코끼리를 취함은 쉬우니 마찬가지로 비슷한 세력끼리 서로 싸우게 하
여 둘 다 기진맥진하게 만들자는 계책이옵니다. 현재 서천이나 동오는 원래부터 중
원에 복종하지 않고 독자세력화한지 오래되었고 예주와 명주는 묘득이 ‘신진’을 세
웠고 이제 하북마저 월광대원수가 그곳을 독자세력화 했으니 이제 황도의 명이 통
할수 있는곳은 하북과 동오의 중간지대 장강 이북지역에 있는 동주(東州)와 서주
서주(西州)뿐이옵니다. 허나 동주와 서주 역시 예주,명주를 차지한 신진과 경계선
이 맞닿아있어 사실상 황도인 삭주에서 동주,서주와 연락할 길이 막혔나이다. 다
행히 동주자사 오경과 서주자사 염문은 아직 우리에게 복종하는자이니 이들에게
홋날 높은 관직을 내릴 것을 약속하고 묘득을 치게하소서. 또한 묘득에겐 별도로
명을 내려 동주와 서주를 칠 경우 더 이상 신진과 적대하지 않겠다 하소서. 그렇
게 묘득과 동주,서주가 서로 싸우게 하면 이 둘은 급기야 지쳐 우리가 다시 예주
와 명주, 그리고 동주,서주까지 중원인근의 4개주를 차지할수 있을것입니다. ”
제갈량이 옳다 여기며 기뻐하여 조민상에게 큰 상을 내려 치하하였다. 그리고 계책대로 동주의 오경과 서주의 염문에게 편지를 보내니 이들은 곧 실행할 뜻을 밝혔다. 허나 이도의 밀사를 받은 묘득은 편지를 읽어본뒤 신료들을 불러 이와같이 말했다.
“ 이것은 ‘이코경식지계’다. 두 마리 코끼리를 싸우게 하듯 우리와 동주,서주를 서로
싸우게 하여 지치게 한뒤 4개주를 차지하려는 제갈량의 간계(奸計)다. 내 어찌 이렇
게 얕은꾀에 속아넘어가겠는가. ”
하고는 이와같이 말했다.
“ 동주와 서주는 장강 이남의 동오처럼 양식이 풍부하지도 않고 서천이나 예주,명주
처럼 자원이 풍족하지도 않으나 딱 그 지역 백성들이 먹고살기에 곤란하지 않을 수
준의 양식과 자원만이 있을뿐이다. 이에 짐은 몸소 동주,서주 자사에게 서한을 보
내 예주,명주의 특산물로 동주,서주의 장사꾼들이 장사를 할수 있도록 배려할테니
이와같은 교류를 하겠다고 전하여라. 그렇게 4개주가 함께하면 서로 싸울 이유가
없다. ”고 계책을 밝혔다.
신료들이 옳다 여기고 동주자사 오경과 서주자사 염문에게 서한을 보내니 막상 두 자사도 군사를 일으켜 신진을 정벌하기가 난감했는지 – 하북과 동오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군사를 일으키기가 쉽지 않다. - 묘득의 청을 받기로 했다. 이로서 ‘이코경식지계’가 수포로 돌아가니 제갈량이 두려움에 떨며 물었다.
“ 이코경식지계란 현묘한 계책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이제 어찌하면 좋은가 ? ”
다시 제갈량이 측근을 불러 대책을 상의하니 이번엔 조일상이란 측근이 간했다.
“ ‘이코경식지계’가 실패했으니 이번엔 ‘구코탄랑지계’를 쓰소서. ”제갈량이 물었다.
“ ‘구코탄랑지계’가 무엇인가 ”
“ 이리를 몰아 코끼리를 습격하려 하면 코끼리는 이리가 무서워 반드시 달아날것입
니다. 그럼 원래 코끼리가 있던곳이 빈 공간이 되니 그 공백을 틈타 우리가 그곳을
차지하는 계책입니다. 지금 신진 남쪽에는 오성적인,흑수적이니,동안적이니 하는 여
러 도적떼들이 들끓고 있사옵니다. 이들은 원래 진나라 시절부터 중원의 명이 닿지
않아 오래전부터 독자세력화해온 곳으로 아직 정식 나라를 세우진 못하고 또한 지
리가 척박하여 나라를 세우지도 못하며 약탈만을 일삼는 도적떼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어있습니다. 이에 우리 주군께서 몸소 밀사를 파견하여 그들을 ‘남만인’이라 속인
뒤 신진의 남쪽을 공격하게 하는것입니다. 그럼 묘득공주가 마땅히 그들을 정벌하
러 나설것이니 우리가 그 빈 공간을 틈타 신진이 차지한 예주와 명주를 차지하는
계책입니다. ”
제갈량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 참으로 절묘한 계책이로다. 그대는 마땅히 나의 후계자가 될만하다. ”
기뻐하며 조일상에게 진수성찬 잔치를 베풀어 그의 계책을 치하하며 곧 이행하기로 하였다. 이내 곧 오성적,흑수적등에게 밀사를 파견 묘득을 치도록 했다. 허나 밀사가 마침 신진의 남부 국경지대를 순시중이던 장군 이봉원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이봉원이 곧 편지를 습득 묘득공주에게 보고했다. 묘득이 편지를 받아보고 중신들을 모아 말했다.
“ 남부지대 도적들은 국가나 부족이라고 할수도 없는 애매한 위치에 있는데 이는 그
곳이 나라를 세우기엔 부적합할 정도로 땅이 척박하고 기술이 발전되지 못했기 때
문이오. 또한 서천과 교역을 하기도 쉽지 않아 철제 무기와 농기구를 생산하지도
못해 지금껏 약탈을 일삼으며 세력을 유지해왔소. 내 이들을 교화(敎化)할 계책으로
그들중 쓸만한 인재를 신진의 기술학교에서 공부시켜 농기구와 무기 만드는법을 배
워 그곳에서 남부의 도적들이 스스로 자립하여 자급자족 할수 있도록 하겠소. 그러
면 남부의 부족들이 더 이상 우리를 범할일이 없을것이오. ” 하였다. 마침내 계책대로 하니 남부의 도적들은 더 이상 도적질을 하지않고 스스로 터전을 잡고 소수부족을 일구어 생활하였다.
제갈량이 묘득의 재주에 놀라 탄식하며 말했다.
“ 조민상의 ‘이코경식지계’도 조일상의 ‘구코탄량지계’도 모두 수포로 돌아갔으니 이
제 어찌하면 좋은가 ? ”
이때 어떤 젊은이가 나서며 말했다.
“ 승상께선 무엇을 그리 근심하십니까. 마땅히 ‘삼코일화지계’를 쓰도록 하십시오.
”
놀라서 보니 최근에 제갈량의 측근이 된 조루라는 이였다. 제갈량이 놀랍고도 의아해서 물었다.
“ 삼코일화지계가 무엇인가 ? ”
“ 한 마리의 코끼리로 뿌리깊은 큰 나무를 쓰러트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허나 크
기와 성질이 비슷한 세 마리의 코끼리가 동시에 힘을 합하면 아무리 뿌리깊은 나무
라도 쉬이 쓰러지는것이니 공께선 마땅히 이와같이 하시옵소서. 지금까지 묘득은
이런저런 간계로 주변국을 회유하여 우리가 계집(묘득)을 도모하려는 일을 수포로
돌아가게 했으니 이제 역공작을 하시옵소서. 우선 해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앞으로
화친을 하면 역모의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 하고 묘득의 예주를 치게하고 서량
의 마등은 예부터 진나라에 충성하여 왔으나 지금 우리 나라에도 딱히 적대하지
않고 있소이다. 이는 대체로 대세를 따르는 마등일가의 천성과 무관치 않으니
사신을 보내 역시 앞으로의 화친을 논한뒤 신진의 서쪽을 치게하고 남만에 역
시 사신을 보내어 세력이 비슷한 세 마리 코끼리와 같은 해나래의 월광, 서량의
마등, 그리고 남만의 무리가 동시에 신진을 공격하게 하면 능히 성공할수 있을
것입니다. ” 하였다.
제갈량이 놀랍고도 기뻐 입이 떡 벌어지며 ‘그대의 지모는 마치 하늘이 내린 재주와 같도다’ 하며 조루에게 큰 상과 선물을 후하게 내려 치하한뒤 계책대로 하기로 하였다. 허나 해나라에 사신을 보내니 월광이 이와같이 말했다. ‘이도가 무도하여 우리가 따로 독자세력을 세우기로 한것이오 묘득의 신진과도 아직 아무런 원한지은일이 없는데 우리가 굳이 칠 이유가 없소. 또한 새나라를 세운지 얼마 되지도 않아 무리한 전란을 일으키는것도 이곳 하북의 민심을 다독이는데 그리 적절한 방안이 아니라 생각되오. 따라서 우린 이 계책에 응할수 없소’ 하고 사신을 돌려보냈다. 서량의 마등에게 사신을 보냈는데 말하기를 ‘아시다시피 서량은 땅히 척박하고 산세가 험해 군대를 모으고 실력을 키우기 쉽지않아 예부터 중원에 조공을 바치며 겨우겨우 세력을 유지하여 왔소이다. 이제와 굳이 군사를 일으키기엔 여러 가지로 형편이 좋지 않으니 이도의 뜻에 응하기가 쉽지 않소.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하고 역시 사신을 돌려보냈다. 남만 역시 이런저런 사정을 대며 신진을 치기가 쉽지 않다 말하니 삼코일화지계는 수포로 돌아갔다. 제갈량이 울면서 말했다.
“ 이코경식지계,구코탄량지계가 실패로 돌아가더니 세 번째로 다행히 다시 현자(賢
者)를 만나 삼코일화지계라는 현묘한 계책을 얻어 기뻐하였는데 이마저 실패하였으
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내가 이제 주군을 뵐 면목이 없도다. ”
피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땅에 찧으며 괴로워하였다. 이때 또 한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 제가 마땅한 계책이 있으니 들어주시겠습니까 ? ”
제갈량이 놀라서 보니 역시 최근에 제갈량의 측근이 된 습진이란 자였다. 습진이 말하기를
“ ‘목코지계’란 계책을 한번 써보시면 어떻겠습니까 ? ” 하였다. 제갈량이 의아하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계책이라 어리둥절해서 ‘목코지계가 무엇인가 ?’ 하고 물으니 습진이 답했다.
“ 커다란 ’나무 코끼리 100마리‘를 만든뒤 거기에 특별히 잘 훈련된 병사 100명을
투입하십시오. 그리고 이 코끼리떼를 신진의 수도로 보내 ‘화친을 청하는 진귀한
예물’이라 하신뒤 신진의 묘득이 어리석게도 이 나무코끼리를 받으면 나무코끼리
가 황도안으로 들어섰을 때 마땅히 그 안의 병사들을 모두 뛰쳐나오게 하여 신진
의 수도를 정벌하면 묘득을 죽이고 마땅히 신진을 쓰러트릴수 있을것입니다. 마땅
히 이 계책을 써보시오소서. ” 하였다.
제갈량이 놀라서 다시 입이 떡 벌어지며 ‘이런 놀랍고도 훌륭한 계책이 어느 하늘아래 있다더냐 ? 실로 하늘이 내린 책사로다’ 하고 습진에게 진귀한 보석과 의복을 내리고 그의 가족 모두에게 앞으로 3대에 이를때까지 모든 죄를 사면하는 ‘특별 면죄부’를 내리도록 했다. 그리고 마침내 신진에 사신을 보내 나무코끼리 100마리를 예물로 받아줄 것을 청했다. 이때 묘득이 보고를 받고 성루에 올라 코끼리를 살펴보며 말하기를
“ 이는 목코지계다. 내가 듣기로 그 옛날 서역(西域) 고대의 어느나라에 나무로 만
든 목마에 병사들을 비밀리에 숨겨놓아 적국의 성을 치게한 계책이 있었다 하는데
아마 제갈량의 측근중 어느 간교한 자가 ‘나무로 만든말’은 이미 고대서역에 있던
사례라 대신 ‘나무코끼리’ 계책을 내놓은 듯 하다. 누가 저런 허튼수작에 속겠는가.
여봐라 !!! 무엇을 하느냐 ? 병사들은 어서 나가 저 나무코끼리에 불을 질러라. 나
무코끼리안에는 필시 제갈량이 보낸 비밀부대가 숨어있을것이니 함부로 문을 열거
나 안을 들여보아선 안되느니라. ”
하니 명대로 묘득의 병사들이 백마리의 나무코끼리를 에워싸고 모두 불을 지르니 안에 숨어있던 병사들은 모두 속수무책으로 불에 타죽을 수밖에 없었다. 신진의 군사들은 나무코끼리를 열어보지도 않고 안으로 들어가보려고 하지도 않았으니 코끼리안의 비밀병사들은 모두 속수무책이었다.
“ 목코지계마저 수포로 돌아갔으니 내가 무슨 낯짝으로 또 주군을 뵌단 말인가 !!!
나같이 용렬한 자는 죽어 사라짐만 못하도다 !!! ”
제갈량이 목코지계가 실패했음을 서러워하며 기둥에 수도없이 머리를 찧으며 죽으려 하였으나 서너번 정도 찧으니 너무 아파 더는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만류하던 측근들중 범강이라는 자가 나와 말했다.
“ ‘목코지계’가 실패했으니 이번엔 ‘코불간친지계’를 써보도록 하시오소서. ”
“ ‘코불간친지계’가 무엇인가 ? ”
“ 예부터 사람과 코끼리는 그 성질이 비슷한 것이 가까운 친족끼리는 함부로 범하거
나 도모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신진의 묘득은 옛 진나라의 정통성을 잇는
다면서 진의 승상이었으면서 자신을 구해준 위연이라는 자와 혼인하였으나 묘득은
아직 채 스무살도 되지 않았고 위연은 칠십을 바라보는 노인이니 어찌 운우(雲雨)
의 정을 알겠소이까. 이제 우리 주군께 규(奎)라고 하는 나이 스무살의 적절한 태자
가 계시니 묘득과 우리 태자의 혼인을 제안하시옵소서. 아직 젊은 묘득은 늙은 위
연에게 운우의 정을 느끼지 못해 마땅히 마음이 흔들릴것입니다. ” 하였다.
제갈량이 입이 떡 벌어지며 ‘좋은 계책이다’ 하며 시행코자 하였으나 황충이란 충신이 나서서 반대하였다.
“ 우리 주군께 젊은 태자가 있사오나 현재 자폐에 지체장애 거기에 곱사등인 삼중
고를 앓는 불운한 몸이십니다. 아무리 역도 신진을 도모케하는 계책이고 묘득의 나
이 젊다고 하나 정의로운 계책이 아니옵니다. ”
이와같이 간하나 제갈량은 ‘지금 우리가 찬밥,더운밥을 가릴때던가’ 하며 오히려 노하여 황충을 내치고 범강의 계책대로 ‘코불간친지계’를 시행케 하였다. 마침내 묘득에게 사신을 보내 ‘혼인동맹’을 청하나 묘득이 오히려 듣고 노하기를 “내가 비록 어리고 지아비가 연로하다 하나 이미 한번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마땅히 그 의(義)를 저버림이 온당치 못하며 이미 한번 혼인을 맺은 여인에게 다시 재혼을 권하니 이는 불륜(不倫)을 권함이로다. 또한 내 사사로운 감정으로 지금의 낭군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옛 진나라의 정통성을 잇고자 함께 뜻을 같이 하기로 한것이니 지금와서 남편을 저버리는 것은 함께 진나라를 부흥키로 맹세한 의를 저버림이니 두 번째 불의로다. 또한 내 부왕이신 문성제께서 역적 이도의 난으로 부당하게 나라를 잃고 돌아가셨는데 내 어찌 역도의 자손과 혼인할수 있겠는가. 이는 곧 불효로써 세 번째 불의로다. 나에게 불륜과 불효불의를 권하는 역적 이도와는 마땅히 한 하늘아래 살수 없도다‘ 하면서 오히려 사신을 뜨거운 불로 달군 몽둥이로 성기를 백대를 때린뒤 내쫏아 버렸다. 사신이 불구가 되어 돌아오니 제갈량이 기가막혀 울면서 말하기를 ”’코불근친지계‘마저 실패로 돌아갔으니 내 어찌 주군을 다시뵐수 있단말인가. 나같은 용렬한 자는 살아있음이 죽음만 못하도다. “ 하고는 울면서 스스로 칼로 목을 찌르려 하였으나 차마 아플까봐 칼로 찌르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이때 측근들이 울면서 겨우 제갈량을 뜯어말린뒤 이번엔 장달이라는 측근이 나와 말했다.
” 공께서는 마땅히 ’굴갱대코지계‘를 써볼 것을 생각하시옵소서. “
” ’굴갱대코지계‘가 무엇인가 ? “
” 함정을 파놓고 코끼리가 빠지기를 기다리는 계책올시다. 원래 애초에 우리 주군
과 난을 일으켜 폭군 문성제를 몰아내고 새나라를 세운 진수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 진수마저 나중에 스스로 황제가 되고자 난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진수는 평정
되었으나 진수의 세 아들 진동,진태,진화 3형제가 황도 인근의 한 촌락에 숨어살고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제가 살펴본즉 그 무예가 아비를 닮아 출중하니 공께서 마
땅히 진수 아들 3형제의 옛 죄를 사면하고 신진의 묘득에게 거짓투항 시키십시오.
이후 진가 3형제가 묘득의 신임을 받아 가까이 갈수 있을때쯤 우리가 비밀지령을
내려 묘득을 살해하게 하면 마땅히 도모할수 있을것입니다. “
제갈량이 장달의 말을 다 듣고넌 뛸 듯이 기뻐하며 후한 금은보화와 진수성찬을 차려주고 비단금침 및 호화로운 주택 열채를 손수 지어주어 그의 계책을 치하하였다. 그리고 장달의 말대로 진수의 아들 3형제를 불러 은밀히 계책을 말해준뒤 신진으로 거짓투항케 했다. 묘득이 진태,진화,진동 3형제의 투항소식 보고를 듣고 말하기를
” 원래 진수가 이도와 함께 난을 일으켰다가 이후 이도가 혼자 황제가 된 것이 사실
이나 진수의 아들들이라면 이도뿐만 아니라 옛 진나라에도 그리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헌데 굳이 진나라의 명맥을 잇겠다는 우리 신진에 투항할 이유
가 있을까 ? “
수상히 여겨 측근 임홍,임준 형제를 은밀히 불러 일단 진동,진태,진화 3형제가 살 거처를 마련은 하게 해준뒤 철저히 감시토록 했다. 감시가 심하자 진씨 3형제는 투항한지 백일이 되도록 묘득을 도모하기는커녕 가까이 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답답함에 제갈량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비밀서한을 쓰려 하였는데 진가 3형제의 거처 하인들이 모두 묘득측에서 보낸 하인들이라 이미 서한은 발각나고 말았다. 묘득이 보고를 듣고 노하여
” 역시 이도의 부하 제갈량의 간교한 계책이었도다. 너희 제갈량이란자는 대체 어떠
한 자이길래 번번히 이런 간교한 계교로 나를 범하려 드느냐 ? 도저히 용서할수 없
도다. “ 하며 진가 3형제를 모두 목베고 제갈량에게도 엄중 경고의 서한을 보냈다. 제갈량이 묘득의 편지를 받고 벌벌 떨면서 우니 그때까지 앓던 치통과 두통이 모두 나을 지경이었다. 제갈량이 다시 대성통곡하며 말하기를
” ’이코경식지계‘,’구코탄량지계‘가 모두 실패하더니 ’삼코일화지계‘,’목코지계‘,’코불
간친지계‘에 이어 ’굴갱대코지계‘마저 수포로 돌아갔으니 내가 대체 무슨낯으로 우
리 주군을 뵈랴. 나같은게 살아서 무엇하리. “
하고는 강물에 빠져 죽으려 하였다. 허나 날이 추운때고 강물이 생각보다 깊어 차마 겁을 집어먹고 빠지지 못하였다. 측근들이 제갈량을 만류하며 함께 울었다.
이때 어떤 기이한자가 나타났는데 머리는 삭발을 했고 흰 긴 수염을 길렀으며 검은 도포자락을 하고 있었다. 누구냐고 물으니 스스로를 ’산돌이‘라 하였는데 제갈량앞에 와서 넙죽 옆드려 절한뒤 말하기를
” 황도 동북쪽으로 50여리를 가면 전주천이란곳이 있소. 그 인근에 엣부터 ’신선동
굴‘이라고 해서 예부터 기이한 서기가 뿜어나와서 인근 백성,주민들은 간절히 기원
할 일이 있으면 전주천 근처 신선동굴을 찾아 기원을 하곤 하였소. 생수(生水)로 정
갈히 빚은 꿀떡 100개와 정성스레 부친 ’육전 100조각‘ 그리고 정성스레 빚은 ’중
화명주‘ 100병을 제단에 올린뒤 정갈하게 목욕한뒤 백일기선을 하면 예부터 그곳을
지키던 ’나니선신(仙神)‘이란 여신이 나타나 소원을 들어준다하오. 허니 이같이 해
보시오. “
하였다. 일부 측근들이 요설이고 허황되다 하여 산돌이란 자를 쫒아내려 하였으나 제갈량이 만류한뒤 지푸라기라도 짚는 심정으로 뜻대로 해보기로 하였다. 산돌이가 가르쳐준대로 찾아가보니 측근들이 말해준대로 정말 전주천 근처에 ’신선동굴‘이 있었는데 형상이며 기운이 오묘하였다. 제갈량은 측근 10인에게 정갈하게 목욕하라 권한뒤 이후 동굴안에서 ’나니선신‘을 부르는 기원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제갈량은 혼자 인근에 임시거처를 마련 매일같이 고량주에 육전안주를 부쳐먹었다. 원래 100일기선을 해야하나 ’하루빨리 신진을 도모하여 주군의 근심을 덜어드려야하거늘 언제 백일을 기다리느냐 ?‘ 하고 ’시간‘을 ’날‘로 쳐서 100시간만 기선하도록 하였다. 허나 100시간도 너무 길고 답답하다 하여 ’옛부터 시작이 반이라 했으니 반이면 끝이로다‘ 하여 50시간만 기선하도록 하며 매일같이 ’빨리 나니선신을 부르도록하라‘며 측근들을 다그쳤다.
측근들이 동굴에서 50시간동안 고성염불로 나니선신을 부르며 기원을 하니 나니선신이 어이없으면서도 그 처지가 딱하여 측은지심이 생겼는지 결국 나타나주었다. 나니선신이 묻기를 ’이곳은 날씨가 차고 벌레가 많이 그대들같은 일반 백성들이 지내기 쉽지 않은곳인데 대체 이런곳에서 무엇을 하는가 ?‘ 하니 측근의 우두머리가 울면서 말하기를 ’저희 주인이신 제갈대현께서 여러차례 역적 묘득을 칠 계책을 의논하였으너 여지껏 뜻을 이루지 못해 주군 이도를 뵐 면목이 없사옵니다. 부디 선신께서 지혜를 주소서.‘ 하였다. 나니가 탄식하며 ’인간계의 흥망성쇠와 부흥,패망의 일을 어찌 4차원의 신명계가 관여하겠는가 ? 다만 그대들도 업연과 인과의 이치를 모르지는 않을터 어찌 코취향취의 이치를 생각 못하는가 ? 옛 고서에 이르기를 ‘코끼리 고기를 싼 종이에선 코끼리 냄새가 나고 향을 싼 종이에선 향냄새가 난다’고 하였으니 이는 세상만물이 모두 주변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천지도리를 말함이로다. 지금 신진이 주변의 열후들과 화친하며 합당한 교역과 교류로써 환심을 얻으니 어찌 민심이 묘둑에게 돌아가지 않겠는가. 허나 이도는 오직 열후를 힘으로써만 제압하려 하였으니 민심이 이도에게 오지않고 묘득에게 감이 당연한 이치로다. 그대들은 이 이치를 깨달아 주변 열후들에게 코끼리 냄새가 나지않게하고 향냄새가 나도록 하라. 그럼 열후들이 마땅히 꽃향기가 나는 나라를 쫏을 것이다‘ 말을하고 사라졌다. 측근들이 놀라 보니 이미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바로 제갈량의 임시처소로 찾아가 보고하니 제갈량이 어이없어 반응하기를 ’그것이야말로 도덕군자 담론같은 원론적인 소리가 아닌가. 주변국과 화친하는 것을 누가 할줄몰라서 못하는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이리하는것이지 세상만사가 중생개인의 의지대로만 다 이루어지는것이라면 누가 이 개고생을 하겠는가 ?‘ 격노하였다. 하면서 ’아무래도 그 나니선신인지 뭔지는 사이비 도사가 분명하도다‘ 하며 손수 108근 장팔사모를 들고 나니선신을 베러가려 하였다. 측근들이 놀라 만류하기를 ’나니선신은 신명의 존재요 저희는 미천한 중생일 따름이니 어찌 중생이 신명계를 도모할수 있으리이까. 부디 통촉하시고 선신께서 주신 지혜를 취해보도록 하소서‘ 하고 겨우 제갈량을 만류하였다.
하는수없이 다시 열후들에게 사신을 보내기로 하니 먼저 해나라 월광에게 보내 화친을 청하였다. 허자 월광이 답하기를 “ 이전에 화친의 뜻을 말할때도 이미 충분히 우리뜻을 밝힌바 우린 옛 진나라나 새로 일어난 신진에도 별다른 원한산일이 없고 이도와도 딱히 척을 질 생각이 없나이다. 우린 우리대로 다만 화북의 민심을 안정시켜 백성을 풍요롭게 하고자하는 뜻이 있을뿐이니 그대들은 우리를 조용히 살게 해주시오.” 하고는 사실상 거절의 뜻을 밝힌뒤 사신을 돌려보냈다. 다시 서량의 마등에게 사신을 보내니 마등또한 말하기를 ’우린 물산이 적고 땅이 척박해 다만 이웃국가와 무리한 전쟁을 벌이지 않고 우리의 영토를 온전히 보존하기를 바랄뿐이오. 이도든 묘득이든 굳이 척질생각도 없으나 어느쪽 편을 굳이 들어 후일의 화근을 부르고픈 생각도 없소. 우린 그저 우리식대로 살기를 바라니 그만 돌아가시오.‘ 하였다. 다음엔 동오로 사신을 보냈는데 이때 동오는 손정활-손태광-손태원 3부자의 난이 진압되고 손정활의 종조카인 손진태가 신왕(新王)이 되어 있었다. 동오는 이전에 묘득의 간계에 빠져 반란이 일어났으니 묘득에게 원한이 있을것이라 기대했으나 신왕 손진태가 말하기를 ’지난날의 반란은 동오의 불행한 사건으로 이제 그 일은 잊고자 하오. 이전에 손정활 3부자가 모두 어리석어 묘득의 간계에 빠진 것은 맞으나 우리 동오난 알다시피 땅이 기름지고 물산이 풍부해 우리끼리도 충분히 먹고살수 있는 환경이오. 신진이든 이도든 굳이 원수질일도 없고 굳이 더 깊은 교류나 화친으로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이유도 없으니 그만 돌아가시오.’ 하였다. 이후 북방의 도황족,어황족에게도 사신을 보냈고 남만의 도적떼에게도 사신을 보내 다시금 화친의 뜻을 밝혔으나 마찬가지로 거절의 뜻을 밝힐뿐이었다. 이때 서천에는 국경지대에 큰 비가 내려 홍수와 산사태가 나 길이 끊겨 가지를 못하였다. 결국 주변 열후와의 화친으로 정세를 역전시켜보려하는 계책도 무위로 돌아갔다. 제갈량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 옛 선현 말씀에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곳이 없다’ 하였는데 나는 선신의 계책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였으니 하늘에 죄를 짐이요. 주군의 뜻을 받들어 사방 역도들
을 섬멸할 책무가 있음에도 이를 하나도 이행치 못하였도다. 이는 하늘과 땅과 사
람에게 모두 죄를 진 이치니 나같은게 살아서 무엇하랴 ”
하고는 울면서 궁궐을 뛰쳐나가 인근고을 큰 나무위로 올라가 떨어져 자살하려 하였다. 허나 막상 올라가보니 나무가 너무 높아 겁이나서 벌벌떨며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측근들이 달려와서 울며 만류하였으나 나무가 너무 높아 떨어지지도 내려오지도 못하고 그저 벌벌떨며 울기만 할 뿐이었다. 이때 황궁에서 급히 전령이 달려와 ‘주군께서 찾으신다’ 하니 제갈량이 그제서야 입이 떡 벌어지며
“ 하늘에 지은죄는 빌곳이 없으나 주군께 지은죄는 빌곳이 있도다 !!! ”
하고는 단숨에 나무에서 내려와 말을 달려 황궁으로 달려갔다.
황제가 묘득공주에게 여러번 패한 제갈량을 벌하지 않고 다시금 신임하니 제갈량이 감읍하여 더욱 황제에게 충성할 것을 맹세하였다. 이후 승상부를 개편하여 이전까지 자신을 도운 측근들을 모두 해고하고 대신 새로운 이들을 등용하니 손태광,베이컨,사라사가 그들이었다. 제갈량이 이들과 함께 다시 묘득공주를 정벌할일을 의논하니 손태광이 먼저 계책을 간했다.
“ 승상께선 마땅히 예전 동이에서 전해지는 전설의 예를 따르소서. ”
“ 그게 무슨소린가 ? ”
제갈량이 의아해서 묻자 손태광이 설명했다.
“ 그 옛날 동이에서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백호 한 마리와 천년묵은 코끼리 한마
리가 사람이 되기를 원해 둘이 함께 코코산에 들어갔더나 코코산 산신령이 그들에
게 말하기를 너희가 앞으로 삼겹살과 깻잎,마늘만을 먹으며 코코산 동굴에서 백일
간 빌면 사람이 될수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허나 백호는 40을 채 견디지 못하
고 동굴을 뛰쳐나왔고 코끼리는 백일을 버텨 결국 사람이 되었다고 하니 이는 결국
오래 버티는쪽이 승리한다는 교훈이 담긴 전설이라 할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는 완성과 번성에서 군사들이 묘득의 군사들과 40일째 대치하고 있나이다. 그러나
우리가 100일을 더 버티면 저들이 먼저 군량이 떨어져 지쳐 돌아갈것이니 그때 후
퇴하는 대군을 우리가 들이닥쳐 치면 마땅히 신진의 대군을 무찌르고 그들을 격퇴
할 절호의 기회를 잡을수 있을것입니다. 공께서 부디 이 계책을 채택하도록 하소서
. ” 하니 제갈량이 다시 기뻐하며 손태광에게 많은 금은보화를 선물로 내리고 계책을 따르도록 했다. 마침내 완성과 번성에서 100일을 버티니 지친 신진의 군대가 물러나니 제갈량의 군대가 후퇴하는 신진의 뒤를 치고자 군사를 내보냈다. 헌데 이때 묘득이 다른곳에 군사를 미리 준비시켜왔다가 오히려 텅빈 완성과 번성을 점령해버리니 손태광의 계책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제갈량이 피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 이제 새로 등용한 손태광의 계책마저 수포로 달아갔으니 내가 또 무슨 낯으로 주
군을 뵌단말인가. ” 하였다. 베이컨과 사라사가 제갈량을 부축하니 혼절한지 일주일만에 제갈량이 깨어났다. 이번엔 베이컨이 계책을 내놓았다.
“ 승상께선 마땅히 ‘구코지설지계’를 따르도록 하옵소서. ”
하니 제갈량이 다시 궁금해서 물었다.
“ ‘구코지설지계’가 무었인가 ? ”
“ 그 옛날 하늘나라에서 옥황상제의 어머니가 2천살이 넘어 세상을 떠날때가 되었습
니다. 헌데 옥황상제가 효성이 지극하여 ‘노모께서 천년만 더 사실수 있다면 원이
없겠노라’ 하였습니다. 이때 참새 한 마리가 다가와 간하기를 ‘지상에 코끼리란 영
물이 살고있으 그 코끼리의 간을 취하면 500살을 더 살수 있다고 하니 마땅히 코
끼리의 간을 구해보소서’ 하였습니다. 상제가 참새에게 묻기를 ‘그대가 코끼리의 간
을 구해올수 있겠는가 ?’ 하니 참새가 곧 그리하겠다고 하고 지상으로 내려가 코끼
리를 만나 ‘하늘나라 상제께서 네가 영물(靈物)이라는 소리를 듣고 직접 만나보고자
하신다’ 하니 코끼리가 처음엔 순진하게 속아넘어가 참새를 따라 하늘나라로 갔습
니다. 이에 상제가 ‘어서 코끼리의 배를, 갈라 간을 꺼내보아라. 곧 코끼리의 간을
노모께 바칠 것이다’ 하였습니다. 코끼리가 놀라고 기겁한 가운데에도 임기응변으로
말하기를 ‘원래 저희 코끼리가 영물이라 삼라만상 많은 생령들이 간을달라 보채기
로 저희 코끼리들이 귀찮아 종종 은밀한곳에 간을 고이 묻어 숨겨놓고 살고 있나이
다. 지금이 마침 코끼리가 간을 숨기는 절기라 제가 간을 두고와 지니지 못하였나
다. 마땅히 상제께서 허락하시면 지상의 은밀한곳에 제 간 숨긴곳을 찾아 꺼내와
간을 바치겠나이다’ 하였습니다. 상제가 속아넘어가 참새와 함께 코끼리를 지상으
로 돌려보냈는데 지상으로 돌아온 코끼리는 오히려 참새에게 격분하면서 ‘이 머저
리같은 참새야 !!! 세상천지 어떤 생명체가 간을 빼고 들이고 한단말이냐 ?’ 하면서
‘너의 감언이설에 속은게 분해서 너를 바로 없이하여 잡아먹어야겠다’ 하고 즉석에
서 참새구이를 해먹었나이다. ”
“ 헌데 그게 묘득공주를 해치우는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 ”
“ 구코지설에 담긴뜻은 위기에 처한가운데서도 임기응변으로 살아나는 방도가 있다
는 지혜를 주는것이니 공께서는 마땅히 묘득공주에게 사신을 보내 후한 선물로 위
로하신뒤 그간의 전란으로 괴롭힌 것을 사죄하곘다 하고 황도로 불러 공주를 후히
대접하십시오. 허나 잔치에 차려지는 음식에 독을 타서 묘득에게 먹이면 그것으로
묘득을 해치울수가 있으니, 묘득이만 없으면 신진은 이것으로 끝나는것이니 그것으
로 만사형통할것입니다. 공께서 마땅히 이 계책을 따르소서. ”
하니 제갈량이 다시 기뻐 베이컨에게 후한상을 내리고 그의 계책을 따르기로 했다. 신진의 묘득에게 사신을 보내니 묘득이 처음엔 의심하였으나 사신이 거듭 감언이설로 묘득을 꼬드겨 황도로 찾아오게하였다. 제갈량이 연회장에 후한 잔치상을 마련해놓고 음식을 대접하려하니 묘득은 측근 4대장을 데리고 그곳에 들어섰는데 바로 잔치상을 엎어버리며 ‘너희가 그 옛날 구코지설의 예를 본따 우리를 속이려 드는구나. 여기 있는 것은 연회에 차린 음식이 아닌 우릴 죽이기 위한 독이든 음식일 것이다.’ 하고는 잔치음식 한접시를 손에쥐고는 제갈량에게 가서 ‘이 음식에 만약 독이 없다면 그대가 먼저 직접 먹어보라’ 위협하였다. 제갈량이 벌벌떨면서 결국 ‘신이 미천하여 간신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공주님을 속였나이다. 바로보셨나이다. 실은 오늘의 계책은 바로 공주를 해하기 위한 자리였나이다.’ 울면서 백배 사죄했다. 묘득이 거듭 제갈량을 꾸짖으며 ‘오늘의 일을 내 결코 잊지 않을것이니 한번만 더 우리를 간교한 계책으로 꼬드길 경우 우리가 대군으로 반드시 너희를 정벌할 것이다’ 하고 연회장을 모두 엎어버린뒤 돌아가고 말았다. 묘득이 돌아간뒤 제갈량이 다시 울면서 ‘하늘은 어찌하여 묘득과 제갈량을 동시대에 태어나게 했단 말인가’ 하고는 수치심을 못 이기며 칼로 자신의 목을 찌르려 하였다. 이에 이번엔 사라사가 말리며 간하기를
“ 신이 마지막 계책을 내놓아볼테니 한번 이대로 시행해보소서. ”하였다. 제갈량이 다시 궁금해 칼을 내던진뒤 묻기를 “ 그대에겐 또 어떤 현묘한 계책이 있는가 ? ” 하였다. 사라사가 말하기를
“ 그 옛날 동남방 섬나라에서 내려오는 신비한 전설이 있었는데 하늘나라 왕자가 뭍
의 섬나라에서 살기 원하니 그 어머니가 자신의 스무살 어린 이복동생을 보호자로
하여 왕자를 섬나라로 내려보냈나이다. 섬나라의 한 호수가에서 이모와 노니는데
그만 이모가 호수에 빠졌나이다. 왕자가 우니 산신령이 나타나 ‘웬 아이가 이곳에
서 울고있느냐 ?’ 하였습니다. 이에 왕자가 ‘저희 이모님이 호수에 빠졌으니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 하였습니다. 잠시후 산신령이 한 여인을 호수에서 꺼내왔는데
매우 아리따운 자태를 지니고 있었나이다. 산신령이 왕자에게 말하기를 ‘이 여인이
네 이모님이냐 ?’하니 왕자가 말하기를 ‘아닙니다. 저희 이모님은 그렇게 젊고 아름
다운 여인이 아닙니다’ 하였습니다. 이번엔 두 번쨰 여자를 데려왔는데 투박하고
못생긴 여인이었습니다. 산신령이 다시 묻기를 ‘이 여인이 네 이모님이냐 ?’하니 왕
자가 답하기를 ‘저희 이모님은 그렇게 못생긴분이 아닙니다.’ 하였습니다. 허니 산
신령이 왕자의 처지를 딱히여겨 탄식하기를 ‘네 이모님은 이미 호수에 빠져 돌아가
셔서 내가 살려드릴수가 없구나. 대신 이 두 여인을 모두 상으로 줄터이니 너는 이
두 여인과 이 세상을 다스리도록하라’ 하였습니다. ”
“ 그런 이상한 이야기가 묘득공주를 해치우는 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 ”
“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보소서. 나중에 알고보니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인은 섬나라
의 동,식물등 살아있는 존재들을 관장하는 여신(女神)이었고, 못생기고 투박한 여
인은 살아있지 않으나 영원한 산과 강,들,흙,바위등을 다스리는 존재였습니다. 왕
자가 이 두 여인을 데리고 살아보니 생령을 관장하는 아름대운 여인은 지혜롭고
총명하였으나 덕이 부족하였고 못생기고 투박한 여인은 성품은 온순하고 덕망이
있었으나 어리석고 아둔하여 남편의 애를 태웠습니다. 결국 왕자가 탄식하기를
‘지혜로운 여인에게 덕이 없고, 덕있는 여인은 지혜가 없으니 신은 역시 다 주지
않으시나보다.’ 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지혜와 덕 어느것 하나만 가지고는 제대로
된 성취를 얻을수 없으니 무릇 천하를 얻고자 하는이는 지덕합일(智德合一)의 인
재를 등용할 때 제대로 된 성취가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으니 마땅히 승상께선 이
제라도 지혜와 덕을 고루갖춘 인재를 찾으시어 그와 함께 묘득공주에 대항하시옵소
서. ” 하였다.
제갈량이 이 말을 듣고 황제 이도에게 상소를 올려 ‘지와 덕을 고루갖춘 인재를 등용하기를 소망하나이다’ 하였다. 허나 이도가 상소를 읽고 너무 화가나 상소를 땅에 내던지며 말하기를 ‘되도않는 계책을 내놓는 족족 묘득에게 번번이 패한 주제에 이제와서 무슨 인재를 또 등용해달라는것인가 ? 더는 이야기를 듣고싶지 않도다’ 하고 격노하여 제갈량을 천리먼곳으로 귀양보내고 손태광,베이컨,사라사도 모두 파직시켰다. 그리고 다른 인물들을 새로 등용하여 묘득공주에게 대항하도록 하였다.
이때 묘득은 군신들을 모아 말하기를 ‘제갈량이 사라졌으니 이제야 무도한 이도의 성나라를 정벌할떄가 되었도다. 선대왕 문성제의 원수를 갚을날이 이리 찾아왔도다.’ 하였다. 그리고 동오와 서천 그리고 하북의 해나라, 서량의 마등에게 사신을 보내고 북방의 이민족인 도홍족과 어황족에게도 사신을 보내 각기 3만-5만의 군사로 성나라의 요충지를 치게하고 묘득 역시 몸소 10만대군을 이끌고 총 ‘7로군’으로 마침내 성나라를 총공격하였다. 마침내 이도의 성나라가 묘득의 신진(新陳)에게 떨어지니, 이도,진수가 반란을 일으켜 진나라를 무너뜨린지 20년만의 일이었다.
이때 묘득은 위연과의 사이에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낳았고 막내아들 성철(聖哲)을 태자로 삼아 후사를 잇도록 했다. 또한 동오,서천과는 교류,화친의 관계를 이어가며 서량의 마등과 하북의 해나라는 자치(自治)를 허용하여 굳이 복속치 아니하게 하고 북방의 이민족과도 화친,교류를 이어가도록 하는등 선린,우호정책으로 주변국과의 관계를 이어가도록 하였다.
이도는 성나라의 수도가 떨어지자 스스로 칼로 목을 찔러 자결하였고 그의 장성한 두 아들도 모두 전란중에 죽었다. 성나라는 문성제를 무너뜨리고 진을 멸한지 20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나라가 문을 닫고 말았다. 한편 묘득에게 아홉 번 패한뒤 천리타향으로 귀양가있던 제갈량은 뒤늦게 나라의 패망소식을 듣고 ‘내가 일찍이 현묘한 계책으로 묘득의 대군을 물리쳤더라면 어찌 오늘과 같은 나변이 있을수 있겠는가. 모든게 주군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내 죄로다’ 슬프게 피눈물을 흘리며 ‘나같은 죄인이 어찌 더 살기를 바라겠는가 ?’하면서 스스로를 산채로 불에태워 죽기를 자처하였다. 허나 귀양지의 마을인 10여인을 만나 ‘내가 나라와 옛 주군께 큰 죄를 지어 산채로 불에태워 죽게되기를 바라니 부디 그리해주시오 ?’ 부탁하였으나 마을사람들이 오히려 놀라고 기겁하며 제갈량의 ‘마지막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제갈량이 다시 탄식하며 울며 말하기를 ‘내가 아무래도 인생을 단단히 헛살았나보구나. 어찌 내 마지막 가는길마저 도와주려는 벗님,이웃 하나 없단 말인가 ?’ 하고 스스로 나무장작을 쌓고 기름을 부은뒤 불을 질렀다. 허나 차마 몸은 던지지 않고 자신이 귀양지에서 읽고 쓰던 책과 물품만을 모두 던져넣어 태워버렸다. 자신의 책과 물품을 모두 태워버린뒤에도 아직 자신이 뛰어들 결심은 하지 못하고 혼자 엉엉울고만 있었는데 이때 찾아온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손태광,베이컨,사라사였다. 놀라서 제갈량이 어찌된일인지 물으니 이들이 답하기를 ‘저희 역시 묘득이 일으킨 전란을 피해 임시로 달아났다가 공의 소식이 궁금하여 찾아와봤습니다’ 하고는 제갈량의 자결을 만류하며 이와같이 간했다.
“ 공같은 훌륭한 분이 어찌 하늘이 주신 목숨일 이리 쉽게 버리려 하시오이까. 옛부
터 듣기로 동이(東夷)에는 ‘구산병법(九山兵法)’이란 신비한 병서가 전해진다고 하
니 부디 우리가 그 책을 구해와서 병서를 다시 열심히 공부하여 묘득을 무너뜨리고
주군의 원수를 갚도록 합시다. ” 하였다. 허나 제갈량이 손을 내저으며 말하기를
“ 이곳이 이미 옛 성나라 황도에서 천리나 떨어진곳이고 동이는 황도에서도 동쪽으
로 천리를 더 가야 닿을수 있다고 들었다. 도합 2천리가 넘는데 우리가 언제 그곳
까지 가서 병서를 구해와 공부한단 말인가 ? 또한 예부터 진대륙 북방과 동부에는
수많은 오랑캐와 이민족,산적,요괴떼들이 있어 멀쩡한 생령으로는 쉽게 동이까지
당도하지 못한다고 들었다. 헌데 어찌 우리가 동이까지 가서 그리 쉽게 신비의 병
서를 구해온단 말인가 ? ”
그러자 손태광,베이컨,사라사 3인방이 거듭 제갈량에게 울며 간했다.
“ 공께서는 어찌 한번 해보지도 않고 그리 쉬이 포기하려 하시오이까. 옛말에 이르
기를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 했고 한그릇,한그릇 지성을 다해 흙을 옴기다보면
어느세월엔가는 태산도 옮길수 있다 하였나이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
듯이 동이가 아무리 이천리나 떨어져있다하나 우리가 먼저 천신(天神)께 목욕재계
후 지성으로 기선을 올린뒤 한걸음 한걸음 지성을 다해 기도하며 가다보면 어찌
천년세월 이내에 동이에 닿지 않겠습니까 ? ”
일곱 번을 간하니 그제서야 제갈량의 마음이 움직여 제갈량은 손태광,베이컨,사라사와 함께 ‘구산병법’을 구하러 머나먼 동이까지 기약없는 유랑의 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