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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라고 부르는 종이를 하나님께 드리는 자와 마음을 드리는 자의 차이
잠 16:2
(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사람을 포함한 세상 모든 것에는 존재의 원인
(창조, 번식, 재배, 가공, 제조공정 등)이 꼭 필요하지만
하나님은 원인 없이도 스스로 존재하시는 유일한 신(神, GOD, LORD)으로서
당신께서 지으신 피조물들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불가능한 것이 없으신 분입니다.
(오늘날 하나님 외에 신으로 불리는 것들은 전부 원인이 필요한 피조물이나
타락한 천사, 즉 귀신으로서 명백한 우상입니다.
스스로 존재할 수 없거나 전지전능이 없다면 당연히 신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은 오직 한 분, 성삼위일체 하나님뿐이십니다.)
원인 없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그 분, 유일한 신이신 하나님께선
사람의 외모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출 3:14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삼상 16:7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에 무엇을 중점적으로 보시는지를 알아야
우리가 어느 부분까지 순종하고, 어떻게 사명을 감당해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기초적인 일입니다.
모두가 이해하기 쉽게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자산만 몇 십억이고, 월수입이 수 천 만원인 사람이 생각하기를
‘이번 주 주일헌금은 50만원을 해야지. 십일조도 무려 몇 백 만원이나 할 거고.
아마 나보다 더 많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걸? 상위 몇 프로 안에 들겠지?
내가 하는 거액의 헌금에 대해 광고시간에 담임목사도 꼭 칭찬을 해주면 좋겠고,
성도들도 나를 우러러보겠지.’하면서 헌금을 합니다.
절대 입으로 말하진 않지만 은근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광고 시간에 칭찬을 안 해주면 불편해하거나, 괘씸해하거나, 속상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 헌금은 하나님께 올려드린 예물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하는 과시 목적의 돈 자랑으로서 하나님께선 받지 않으십니다.)
반면 자산은커녕 그럴듯한 한 끼 식사도 하기 힘든 처지에 있는 가난한 사람이
주일헌금으로 1천원을 예물로 올리면서
‘비록 내 상황은 이렇지만 지금의 내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
“하나님, 보잘 것 없지만 부디 저의 마음과 정성을 다한 예물을 기쁘게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작은 예물로 제 마음을 표현할 순 없지만 제가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께서 아십니다.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라면서 하나님께 예물을 올려드렸을 때
이 둘 중에 과연 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예물을 올려드린 것일까요?
이와는 완전히 반대로 부유한 사람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음과 정성을 다한 예물을 올리면
그 금액이 얼마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것이고,
가난한 사람이 “난 먹고 죽을래도 드릴 것이 없다.”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마음으로 마치 거지를 도와주듯 1천원을 헌금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예물은 쳐다보지도 않으실 겁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예물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입니다.
막 12:41-44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자산이 많은 사람은 소유한 재산에 비례해서 많이 내야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다는 수준 낮은 얘기가 아니라
단 1천원을 예물로 올려드려도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지가 중요하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심히 안타깝게도 세상적인 가치관에 물든 수많은 교회들과 성도들은
액수만 바라보면서 많은 헌금을 하는 성도는 우러러보며 칭찬을 하고(장로와 권사로 세우고),
적은 헌금을 하는 성도는 우습게 여기며 소외시키고, 교회에서 나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이
정확한 현실이라는 것을 여러분들도 이미 경험으로서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슬프게도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완전 반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진리를 알고 있는 우리라도 그 작태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루에 기도를 몇 시간 하고,
성경을 몇 장 읽고, 전도를 얼마나 했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처해져있는 상황과 환경과 능력 안에서
어느 정도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서
정성과 최선을 다한 것인지를 스스로 알 것입니다.
예를 들어 건강이 좋지 못해서 하루 1시간을 채 말하기도 힘든 사람이
모든 힘을 다해 2시간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에 사용했다고 가정해봅니다.
그의 마음: ‘내가 비록 건강이 좋지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하루 중에 가장 힘 있는 시간을 하나님께 귀하게 드리고 싶다.‘
이번엔 건강하고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워서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에 2시간을 사용했다고 가정해봅니다.
그의 마음: ‘하루에 이정도면 충분하지. 난 꽤나 바쁜 사람이고,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고, 누구도 만나야 하고... 시간이 곧 돈이니까.
그리고 사람이 일만 하면서 어떻게 사나? 인생을 즐길 시간도 있어야 하고.
그러니까 내 상황에서 2시간이면 남들보다 많이 드린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하루 10분도 하나님께 안 드리는 사람이 더 많을 텐데 2시간이면 대단하지!‘
이 두 사람의 2시간은 같은 2시간이지만 하나님 앞에선 그 가치가 엄연히 다릅니다.
시간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다르다면 하나님 앞에서 가치도 다른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 동일한 장소에서 같이 예배를 드리고 있어도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는 사람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것이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고, 잡념으로 가득하며, 안 드릴 순 없으니까 억지로,
예배에 빠지면 지옥에 가게 될 것 같으니까 빠질 순 없으니,
원래 매주 드리는 것이니까 대충 시간만 보내면 된다는 마음이라면
하나님께선 그 사람의 예배는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예배처럼 드리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한 예배,
죽음 앞에서 마지막으로 부른다는 심정으로 소리 내어 부르는 마지막 찬송 같은 찬양,
불평과 원망과 인색함이 없는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정성껏 준비한 예물,
매일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있는 귀한 기도 시간,
매일 하나님에 대하여 더욱 깊이 알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성경말씀을 묵상하는 시간,
또한 각자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오랜 기간 꾸준히 해오고 있는 사명 등의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각 사람마다 처해진 상황과 환경, 사명, 신분, 정신적 수준, 경제적 수준, 시간적 여유,
영적 성장, 육신적 체력과 건강 등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절대적인 기준과 정해진 공식을 세울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여러분, 들으시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루에 몇 시간 이상
이것을 해야만 하나님의 기준에 합한 자로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런 공식은 세울 수가 없고, 세워서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솔직히 생각하기에 스스로 내릴 수 있는 기준이 각자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 대해 생각하시는 그 기준이 있으실 것이고,
우리도 그것을 인정하며 억지로가 아니라 기쁘게 순종하면 이 부분은 해결됩니다.)
눅 12:48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마 25:14-30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을 하는 중에
충분히 더 할 수 있음에도 이 정도면 됐고,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그만하는 것과
더 하기가 도저히 힘든데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즉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가장 큰 계명을 즐겁게 지키려고 확정했기 때문에
최대한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의 차이는 확연합니다.
이것을 쉽게 말하면 그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는지,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향해 있는지의 차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 중심을 감찰하시는 분이기에
그 누구보다 이것에 관해, 즉 저와 여러분들의 속마음에 관해 잘 알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솔직히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다시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돈이나, 시간이나, 겉으로 보여 지는 외적인 모습에 대한 얘기가 전혀 아니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에 대한 내용임을 재차 강조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 중(시간이든, 노력이든, 예물이든)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있는지,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것들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지,
아니면 솔직히 귀찮게 생각하며, 아까워하면서 인색하게 억지로 적당히 드리고 있거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며 하나님을 가볍게 생각하는 모습으로(소홀히 대하면서)
자신의 것을 먼저 챙기고 남는 것을 드리고 있는 모습인지 솔직하게 생각해보십시다.
창 4:2-10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아담과 하와의 장남인 가인은 농사를 했고, 차남인 아벨은 양을 돌보았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올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하나님께 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 부분을 원어로 보면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은 쳐다보시지도 않았다.’고 해석됩니다.)
몹시 화가 난 가인의 안색은 변했고, 이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라고 말씀해주셨지만
가인은 마음을 지키지 못하였고(죄를 다스리지 못하였고),
결국 동생을 쳐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보시다시피 가인과 아벨의 예물에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둘의 차이는 마음의 차이입니다.
가인의 마음이 ‘이 정도면 훌륭하지.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낫잖아?
적당히 하면 되지 뭐. 번제라니 좀 아깝긴 하네.’하는 인색한 마음이었다면
아벨의 마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가장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려도 도무지 갚을 수 없는 그 엄청난 은혜를 알기에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고 싶다. 그러니 첫 소산,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려서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부디 기쁘게 받아주셨으면 좋겠다.‘하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한 마음이었기에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신 것으로 보입니다.
삼상 2:30 하
(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고전 8:3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하나님은 경홀히 여김을 받을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을
우리가 다시 마음에 깊이 각인하십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들이나 애인 앞에서는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지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는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마음이 없는 예배를 드리고(이것은 예배 태도로 나타나기에
주일학교에서부터 예배 중에 엎드려서 기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취미 또는 갖고 싶은 물건을 구매할 때엔 수 십 만원도 쉽게 쓰면서
하나님께 올리는 예물은 아까워하며 100원 짜리로 헌금하고,
노래방에 가서는 목청이 터져라 정성(?)을 다해 노래를 부른 적이 있으면서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드릴 때에는 들리지도 않는 소리와 부정확한 발음으로 하는 듯 마는 듯 하며,
기분에 따라 하나님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감정에 따라 예배를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며,
욕심을 따라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의 말을 내뱉는 등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고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즉결심판을 받지 않고, 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깨닫지 않은 채 그 경홀한 태도를 계속 유지한다면
어느 날 기회와 은혜의 시간이 다 지나버린 그 날,
그 사람에겐 멸망이 임하게 될 것이고,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롬 2:4-11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우리 피조물들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창조주님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며(존경하고 두려워하며),
그 무엇보다 가장 사랑하면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섬겨야 합니다.
우리의 친아버지이신 하나님은 가장 존귀한 분으로서
찬양과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것이 마땅하고, 당연하고, 옳은 일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지으신 하나님께선 우리를 사랑해주셔서
우리가 사리분별을 못할 때도, 버르장머리 없는 모습이었을 때도,
심지어 죄를 사랑하고, 세상 쾌락을 숭배하고 있던 모습일 때도
우리가 변화될 미래의 모습을 미리 봐주시며(전지전능),
우리에게 계속해서 기회와 은혜를 부어주시면서
우리가 진리를 깨닫길 기다려주고 계셨습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죄로 더럽혀진 우리 대신 ‘죄와 무관하신 예수님’을
우리 죄의 제물로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저와 여러분들이 영원한 사망의 지옥을 피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다시 화평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을 주신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유일한 분이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섭기만 한 분이셨을지라도
우리는 피조물로서 경외하며, 찬양하는 것이 당연했을 것인데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영적 상태의 사람입니다.
만약 그런 분이 계시다면 부디 은혜의 시간 내에
목숨을 걸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매달리시기를 축복합니다.
계 4:11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막 12:28-30
(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사람의 마음은 반드시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을 되짚어보십시다.
과연 우리의 마음은 가인의 마음에 가까운지,
아벨의 마음에 가까운지 스스로 검증해보십시다.
우리가 드리고 있는 예배를 살펴보십시다.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 태도를 살펴보십시다.(우리는 하루 종일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있는 예물을 살펴보십시다.
우리 각 사람에게 맡기신 사명에 대한 순종을 비롯하여 신앙생활 전체를 살펴보십시다.
우리가 현재 어떤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십시다.
나는 아니라고, 나에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 얘기라고 부정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모습으로
우리의 강한 자아를 내려놓고, 비우십시다.
그래야 성령님께서 강권적으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즉시 삶에 적용함으로서
과연 나는 가인에 가까운 자인지, 아벨에 가까운 자인지 솔직하게 점검해봄으로서
하나님의 오래 참아주심을 멸시하여 경홀히 여기다가 결국 멸망하는 육신적인 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피조물로서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마땅히 경외함으로
친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나에게 주어진 것들 중 최고의 것을 드리는 자가 될지 선택하여
앞으로 우리 각 사람에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지혜롭게 생각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어
영광의 그 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칭찬과 인정과 영생을 받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살전 2:4
(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2.11.13.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431장 내 주여 뜻대로
1.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3.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
하나님께 마음의 중심을 드리며
매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항상 아벨의 제사와 예물을 드리기를 소망하며
가인의 자리에 서지 않기를 힘 쓰겠습니다.
그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경외하는
그 마음을 잃지 마시고 끝까지 지키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