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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 호월 시인의 글방。 스크랩 4. 코펜하겐, 덴마크 ? 3 ? 공포의 낭만, 바이킹.
호월 추천 0 조회 152 13.08.23 00:41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4. 코펜하겐, 덴마크 ? 3 ? 공포의 낭만, 바이킹.

 

호텔에서 걸어 나가 멀지 않은 슈퍼에서 로컬 맥주를 샀다.

 

5379, 로컬 맥주

 

5382, 바이킹 맥주, 바이킹하면 달린 투구를 연상하는데 실제로 바이킹 유물에서

이런 투구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상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단다.

 

호텔 앞 광장과 조각

 

5384, 배경에 보이는 유리 건물에 맥주 사온 슈퍼가 있다.

호텔이 시내 중심부에 있어 여러가지로 편했다.

덴마크 비둘기는 한국 비둘기와 교류가 있을까?

 

 

맥주로 목을 추긴 후 걸어서 Round Tower라는 천문대를 보러 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Rundertan 천문대, 높이는 114 피트. 천문대와 교회가 붙어 있다.

중세에는 성직자 중에 천문학자가 많았다.

이 천문대는 1641년에 크리스천 4세에 의해 지어?으며 지금도 천문대의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의 첨성대가 생각났다.

 

5436, Round Tower. 난간으로 둘려 있는 꼭대기에 올라가면 코펜하겐 시가지가

잘 내려다 보인다.

 

5437, 천문대 건물에 붙어 있는 교회의 내부.

위 Round Tower 사진에서 바른쪽에 연이어 있는 건물이다.

 

 

5439, 천문대 오르는 cobblestone ramp(685ft).

계단이 아닌 이유는 귀인들이 말이나 마차로도 오를 수 있게 하려는 의도인가?

 

5441, 라운드 타워에서 내려다 코펜하겐 시가 사방 풍경

 

5443, 라운드 타워에서 내려다 코펜하겐 시가 사방 풍경.

높은 건물이 없는 이유는 다른 건물에 햇빛을 가리지 않기 위함이란다.

5444, 라운드 타워에서 내려다 코펜하겐 시가 사방 풍경.

하늘에 가까이 가려는 교회 첨탑들.

 

5447, 라운드 타워에서 내려다 코펜하겐 시가 사방 풍경,

교회들이 많은 것을 보니 그때도 죄인들이 많았나 보다.

 

 

다음은 국립 박물관(Nationalmuseet)을 보기로 했다.

상당히 큰 국립박물관인데 마침 방문기간에 바이킹 전시가 있어 행운이다

 

 

5460, 국립 박물관 정문. 바이킹 특별 전시 광고가 보인다.

 

5461, 전시장 내부

 

5463, 무기 전시장

 

5465,  각종 공격용 무기

 

5470, 무덤 발굴. 백골과 토기 그릇들. 

 

5476, 도끼. 바이킹의 주 무기.

 

5478, 칼과 옷과 투구

 

5479, 석기 시대의 돌 화살 촉

 

5515, 돌도끼 전시품. 자루는 썩은지 오래고.....

 

Museum이 상당히 크고 전시물도 많아 대충 훑어 보며 한정된 주제에 집착하려고 무기류 전시만 사진 몇장 찍었다.

 

 

 

바이킹(Viking)

 

나에게는 왜 바이킹이 그리도 낭만적으로 다가올까? 내가 혹 바이킹의 피를 조금이라도 물려받은 것은 아닐까?

아니면 노략질과 정복의 거친 본능이 빛을 보지 못한 채로 의식의 맨 밑바닥에 무의식으로 깔려 있는 것일까?

어쨋든 간에 공포의 대상이었던 바이킹은 참 로맨틱하게 다가온다. 사실 카리비안의 해적들도 흥미롭다.

 

바이킹원래는 고국 땅인 스칸디나비와 덴마크에 걸쳐 많이 있는 협강(vik)에서 유래한 말로 ‘협강에서 온 자’

란 뜻이다. 이 무렵에 그들이 각지에 진출한 원인은 점차 군주제가 확립되어 가며 정치적으로 소외 된 소수 부족장들이

부족 원을 이끌고 온난하고 비옥한 신천지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감행한 민족이동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항해술에

익숙했으며 기골이 장대하고 싸움을 잘 했다.

(바이킹(Viking) 전시장에서 카메라가 자동으로 되어 있지 않아 바이킹 전시 사진이 아쉽게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바이킹의 원정 경로

 

 

무자비한 침입·싸움·약탈 등으로 ‘해적 민족’으로서 Europe 각지의 공포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해적행위는

민족이동뿐 아니라 전투·정복·탐험·식민·교역 등 다양한 활동을 초래하였다.

근년에 유적·유물의 발굴과 조사 및 여러 과학적 연구에 의해 파괴적인 바이킹 관()은 상당히 수정되어,

중세 유럽사()의 전 영역에 커다란 영향을 준 장대한 운동으로서 보게 되었다.

 

군주들의 용병이기도 했던 그들 집단은 후에 세력을 인정 받아 땅을 받고, 공국으로 인정 받아 국가로의 면목을 갖추기도 했다.

이들 노르만의 이동은 처음에는 약탈적이었으나 정착하게 되면서 상업에 종사하고, 원주민과 융합 ·동화하여 중세 유럽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덴마크계는 프랑크 ·잉글랜드 향하여, 수장 롤로가 912 샤를 3로부터 센강() 하류의 노르망디 지역을

봉토(封土) 받아 노르망디공국 세웠으며, 1066년에는 노르망디공() 기욤(윌리엄 1)노르만정복으로

영국 노르만왕조 열었다. 노르웨이계는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도착, 일부는 북아메리카까지 진출하였다.

스웨덴계는 러시아 상륙하였는데 러시아에서는 이들을 루스 인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수장 류리크 밑에서 862

노브고로트공국(公國) 건설하고, 일부는 지중해의 시칠리아 에서 왕국을 세웠다.

 

노르웨이계() 바이킹은 일찍부터 스코틀랜드 북방의 셰틀랜드제도·오크니제도 이주하고, 나아가 860년경

북대서양 페로제도 거점으로 아이슬란드를 식민화하였다. 9세기 말에는 여기서부터 그린란드로 건너가서 식민지를

건설하고, 1000년경에는 더욱 남하하여 헤르란드·마르크란드·빈란드 등을 발견하였다는 사실을 그들의 사가(이야기)

전해준다. 그런데 위의 지명은 대략 오늘날의 래브라도·뉴펀들랜드 또는 노바스코샤·뉴잉글랜드의 북부에 해당한다고 추정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바이킹은 콜럼버스 훨씬 이전에 미국을 발견한 것이 된다.

 

 

바이킹과 아메리카 대륙

 .

 

5487, 바이킹 비디오, 나도 대형 스크린 비디오를 보며  그들과 함께 풍랑을 뚫고

새 땅으로 진출했다.

 

5498, 바이킹 무덤에서 발굴된 칼과 유품

 

6596, 바이킹 전시 팸플릿,

건장한 체격을 가진 침략과 약탈자로 당시 공포의 대상이었던

바이킹 모습이 웬지 무척 쓸쓸해 보인.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있는 호텔 앞 광장의 조각품과 거리 풍경

 

5523, 시청 앞 광장 조각과 분수. 서양 용인 듯싶다.

 

5527, 주위 건물과 거리.

 

오후에 유람선이 정박하고 있는 항구로 간다.

 

 5534, 드디어 승선, 오후 5:30분의 출항을 기다린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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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8.23 09:46

    첫댓글 바이킹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소개해 주셨군요. 좋은 자료의 기행문이 될 것 같습니다.

  • 작성자 13.08.23 18:53

    바이킹의 고향에 가니 그들에 대해 공부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이 무법자들이 낭만적으로 다가오니 이상합니다. 하하.

  • 작성자 13.08.25 00:38

    부제가 바이킹이라 많은 분이 흥미로워할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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