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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리고 함께하며
성경본문: 시편 133: 1-3
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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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뉴욕하고도 맨해튼하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다양하며 엄청난 인파가 움직이는 곳이라는 걸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군중 속의 고독이랄까요?
그런 곳에서 느끼는 소외감이나 고독은 더욱 깊은 모양입니다.
2011년 가을, 이곳에 살고 있는 제프 렉스데일(Jef Ragsdale)이란 39세의 남자는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여자 친구와 막 헤어지고 나니 그 외로움은 점점 더 해가기만 합니다.
그 커다란 도시에 가족도 친구도 없는 그는 마침내 망망대해 같은 세상에 구조 신호를 보냅니다.
노란 종이 한 장에 자기 전화번호와 간단한 문장 하나를 적어 맨해튼 곳곳에 붙여 놓았습니다.
‘뭐든 대화하고 싶은 사람은 저에게 전화 하세요. 외로운 제프. (If anyone want to talk about anything call me... Jeff, one lonely guy’) 이게 그가 붙인 종이의 내용입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참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단지 몇 명의 상대라도 얻기 위해서 이렇게 하였는데요...
그에게 실제로 연락을 해 온 사람이 무려 7만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뉴욕에서는 물론이고요. 어떻게 소문이 퍼졌는지 영국이나 캐나다,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나 말레이시아... 심지어는 한국에 사는 사람들도 제프에게 전화를 하였다고 합니다.
‘자신도 외롭다.’는 하소연과 함께 힘내라는 응원의 멧세지도 줄을 이었다고 합니다.
제프의 이야기는 단지 그에게만 국한 된 것은 아니겠지요.
지난 주간에 우리는 작년 2015년에 조사한 인구조사의 결과를 접했는데요... 놀라운 것은 1인 가구 혼자 사는 가구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27%가 조금 넘는다고 합니다.
20년 전인 지난 1995년에만 하더라도 1인가구는 4위였는데요.
조금씩 그 비중이 늘어나더니 마침내 가장 많은 가구의 형태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북적이는 게 싫어서... 혼자만의 삶을 추구하고 싶어서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거라면 좀 다행일지 모르지만... 이건 오늘 우리가 직면한 사회 구조가 빚어 낸 결과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1인 가구의 대부분은 30대와 70대에 편중되고 있다고 하니까요.
혼자 살고 싶어서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경제적인 여건이 여의치 못해서 혼자 살기도 하고... 때론 사랑하는 배우자와 사별을 하여서 혼자 남게 되는 경우도 많은 거죠.
1인 가구의 대두를 알리는 텔레비전 뉴스에는 명절에도 혼자 지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특별히 제작한 도시락을 보여주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좀 특별한 반찬을 더해서 럭셔리하게 만들었다나요?
명절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고 혼자 지내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현대인의 가장 총체적인 사망요인은 사고나 암이 아니라 외로움이다.’라고 말한 학자가 있습니다.
인간은 뼛속까지 사회적인 존재라고 합니다.
혼자서는 도무지 행복할 수 없는 게 인간이라고 합니다.
누군가가 밤잠을 자지 않고 노력을 해서 다른 사람을 앞질러 승진을 하거나 남다른 것을 성취했다고 합시다.
그 때가 그가 정말 기쁜 까닭은 그런 대단한 것을 성취해서나 아니라.그렇게 했을 때에 다른 사람들에게 그를 축하하고 인정해주는 이유가 더 크다고 합니다.
만일. 지구에 내가 혼자 남았다고 했을 때 자랑할 사람도 축하해줄 사람도 없이 책상 위에 놓인 화분과 단둘이 축하 파티를 하게 된다면 그건 기쁨이 아니라 눈물일 수밖에는 없다는 거죠.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의 뇌가 가장 기능을 잘 발휘하는 때는 사람들과 함께 지낼 때라고 합니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수학 문제를 잘 푸는 게 뇌의 주된 용도가 아니라 친구를 잘 사귀고 연애를 잘하는 용도로 뇌가 만들어 졌다는 거죠.
이렇게 본다면 사람은 결국 함께 어울려 지낼 때에 행복하고 엔돌핀도 많이 생기고 무엇인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 내기도 하고 하지 못하던 일을 해내기도 한다는 거죠.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혼자서 잘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들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기도 하고 사람들이 나를 격려하고 축하하고 위로해 줄 때 우리는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도전하고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람이란 창세기의 기자가 말한 것처럼 더불어 함께 살도록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는데요...(창2:18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으니...’)
오늘처럼 1인 가구가 점점 더 늘어나는 현실은 우리가 세상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데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33편의 말씀도 우리에게 우리가 서로 어울려서 함께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지를 말합니다.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v.1) 이렇게 말씀을 시작합니다. 당시엔 1인 가족이란 도무지 생각할 수가 없던 시절입니다.
사를 짓는다든지,가축을 키우는 일엔 사람들의 손이 참 많이 갑니다.
당연히 한 부모 밑에서 아들들은 결혼을 하고나서도 함께 지내는 경우가 참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항상 좋지만은 않았겠지요.
어떤 때는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론 이런 생각도 했겠지요.
‘좀 떨어져 살았으면 좋겠다...’
‘막내가 좀 얄밉게 구는데... 그 녀석 좀 안 보고 살았으면 좋겠어...’
‘형이라고 도움은 안 되고 날마다 날 우습게보고 심부름이나 시키고 있으니... 언제까지 이래야 되나...’
어쩌면 그들은 한 지붕 밑에서 살면서 전혀 마음에 내키지 않는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형제자매가 함께 어울려 지내는 게 얼마나 좋은데 그 좋은 점들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적어도 세 가지 형제자매가 어울리며 함께 해야 할 분명한 이유를 말해줍니다.
v. 2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내림 같고...
기름이란 아주 좋은 것이지요.
더욱이 보배로운 기름이라고 할 때 그것은 더더욱 좋은 것을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기름이란 상처를 치유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합니다.
형제자매들이 잘 어울리고 함께 지내는 일이 그렇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원치 않게 상처를 입는 경우가 참 많은데요.
형제나 자매 같은 가까운 사람들과의 정겹고 따스한 만남은 서로가 가진 상처를 치유하는데 효력이 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형제자매들이 서로 잘 지내기를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번 한가위 명절엔 한 가족 된 이들이 함께 만나게 될 텐데요.
이런 만남의 자리가 오늘 말씀처럼 보배로운 기름이 흘러 넘치는... 서로 어울리고...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서 남 몰래 얻은 상처들이 치유 되고 회복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름이란 또한 자신의 잃어버린 참 모습을 회복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특별한 사람을 세우실 때에 기름을 부어서 세우시곤 했는데요.
오늘 말하는 기름은 다름 아닌 머리 위에 부은 기름이라고 하였습니다.
형제자매 사이의 만남은 서로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는 일이라고 할까요?
복잡하고 조직화된 직장이나 현실 세상에서 우리가 살다보면 우리는 인격을 갖춘 인간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처럼 생각되기도 하고,어떤 때는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목표를 위해서 소모되는 소모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옛날 로마 시대의 영화 속에 나오는 전쟁 장면을 보면 가장 앞에서 창하나 들고 뛰어 가다가 비처럼 쏟아지는 적의 화살 한 방 맞고 그냥 쓰러져 버리는,그렇게 끝나는 게 우리의 신세는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형제나 자매와의 만남은 이런 우리들에게 나는 아주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다...
이런 자기의 잃어버린 가치를 다시 찾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거죠.
우리가 가정에서도 그렇고요 교회에서도 그렇고 어디서든지 상대방의 머리에 보배로운 기름을 부어주는 사람들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한가위 명절이 형제자매가 함께하고 가족들이 모임을 통해서 보배로운 기름이 가정마다 넘치게 되고 그런 아름다운 일에 앞장 서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 산에 내림과 같구나...‘(v.3)
헤르몬 산은 이스라엘의 가장 북쪽에 자리하는 높은 산입니다.
워낙 높아서 그런지요. 눈이 덮여 있는 경우가 참 많고요. 이슬이 많이 내린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이 내리는지 예루살렘성전이 있는 시온산 까지도 이슬이 내린다고 말합니다.
과장된 부분도 있습니다.
헤르몬 산에서 시온산까지 거의 200km정도가 되거든요.
아무리 헤르몬산에 이슬이 많이 맺히기로 시온산까지 내릴까요?
이걸 다시 표현해보면 시온산은 이스라엘 남쪽의 대표적인 산이니까요.
헤르몬산의 이슬이 이스라엘 전체에 내린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식의 표현으로 하자면 ’백두에서 한라까지‘라고 할까요?
이슬이라고 할 때 어떤 기분이 드시는지요?
그것은 그 어떠한 것도 섞이지 않은 신선한 것이고요.삶에 생기를 주는 활력소와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가족들이 어울리는 일, 형제와 자매들이 함께 하는 자리엔 마치 헤르몬 산에서 이슬이 내리듯이 우리가 함께 하는 일은 서로에게 황기를 더해주고 신선한 힘을 주는 일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헤르몬 산의 이슬이 온 이스라엘을 골고루 적셔가듯이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활기를 주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신선한 기운을 느끼게 해 준다는 말씀입니다.
가족이란 서로에게 그런 존재인 것 같습니다.
어떤 때에는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주기도 하고 어렵게 하는 게 가족이기도 하지만,우리는 가족을 생각할 때 힘이 생기기도 하고요. 잃어버렸던 활기를 다시 찾기도 합니다.
한 광고를 보니까요. 어떤 젊은 여성이 직장과 가사를 병행하느라고 무척 피곤하고 게다가 직장 상사에게 일을 잘 못한다고 꾸지람을 듣다보니 무척 의기소침해졌는데요.
그 마음이 확 풀리는 계기가 있습니다.
어린 딸이 엄마를 그려놓고서는 ‘우리 엄마 우주에서 최고...’ 이렇게 썼습니다.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엄마는 갑자기 얼굴이 환해지고 생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가족들에겐 서로에게 이런 매력이 있는 거죠.
우리가 함께 만날 때 신선한 이슬이 흠뻑 내리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v.3) 오늘 말씀의 마지막은 이렇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 또는 가족들이 어울리며 함께 하는 모습은 얼마나 좋은 일인지요.
바로 그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소중한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나아가서 ‘그 복은 곧 영생이다...’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형제와 자매가 어울리며 함께 하는 자리는 마치 영생의 문턱과도 같은 곳이다.“ 이게 하늘나라인지 인간 세상인지 잘 분간할 수 없는 곳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가정을 생각할 때마다 즐겨 부르는 찬송가 559장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 있고
기쁨과 설움도 같이 하니 한간의 초가도 천국이라...’(찬송가 559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2절)
비록 우리가 함께 머무르는 곳이 단칸방과 같은 누추한 곳이라고 하여도 사랑과 나눔으로 함께 하는 가족들이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천국이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지요?
살면서 다가오는 아주 특별한 순간들, 이를테면 결혼을 한다든지 취직을 한다든지 합격을 했을 때 아니면 아주 특별하게 좋은 일을 경험했을 때. 어쩌면 그 중에 하나가 복권에 당첨되었을 때라고도 하겠는데요.
우린 이렇게 평소엔 잘 느낄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 올 때가 행복한 순간이라고 우리는 대부분 말합니다.
정작 행복을 깊이 연구한 학자들의 조언에 따르면 행복은 마치 아이스크림과도 같다고 합니다.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어 놓으면 그 때부터 녹기 시작하죠.
행복이란 게 이렇다고 합니다.
석 달 이상 가는 행복은 거의 없다는 거죠.
지난 <리우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다고 좋아 하던 선수들도 그 순간의 행복이 석 달 이상 지속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 메달이란 환상에서 벗어나서 현실로 돌아오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복권을 맞으면 그 행복은 정말 오래 갈 것 같지만요. 그것도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한 심리학자가 100억 원 이상 복권에 당첨되었던 21명의 사람들을 관찰하며 그 행복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 가를 연구해 보았는데요. 1년이 지나니까 그들의 행복감이 복권에 당첨되지 않은 다른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다는 거죠.
100억 원의 행복도 1년이면 그냥 평범한 일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행복 심리학자들의 충고에 의하면 아무리 커다란 행복도 곧 시들고 없어지는 것이니 우리는 오히려 작은 행복을 자주 느끼는 일이 지혜롭고 인생을 정말 행복하게 사는 일이 된다고 충고합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 이게 우리가 세상에서 느끼는 행복한 순간이라고 <연세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서은국 교수는 말합니다.
물론 여기엔 여러 가지 인간이 가진 본능적이고 심리적인 여러 요소가 함축되어 있는데요.
함께 한다는 것, 먹는다는 것, 이런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이기도 한데요.
과연 어떤 게 참된 행복인가? 이런 저런 연구를 했던 그가 내린 결론은 ‘좋아하는 사람과 음식을 먹는 일’처럼 ‘행복은 일상적이고 아주 평범한 곳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행복이란 이런 면에서 대단한 행운이 내게 주어질 때 찾아오는 게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대하는 자세와 관계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지난 <리우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의 행복도를 심리학자들이 조사한 경우를 보았는데요.
은메달을 딴 사람보다 동메달을 딴 사람들이 더 행복해 한다는 거죠.
은메달리스트들에겐 조금만 더 잘했으면 한 사람만 더 물리쳤으면 금메달인데이런 아쉬움이 있는데요.
동메달을 받은 사람들은 자칫 잘못했으면 4등을 할 뻔 했는데. 그래도 이게 어디냐. 자기가 간발의 차이로 메달리스트가 된 것에 대한 안도감이나 기쁨이 있다는 거죠.
그런 걸보면 행복은 자기의 오늘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메달의 색깔 순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객관적으로 얼마나 가졌냐? 보다 이미 내가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 크고 대단한 일이 내게 일어나길 기다리는 것보다는 이미 나에게 주어진 것을 새롭게 바라보며 소중히 여기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이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라는 결론은 우리에게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바로 그 자리가 더 이상 이 세상이 아닌 영생,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자리라고 하였고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선 작은 초가집에서 산다고 하여도 바로 그런 자리가 천국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지내는 모습!’(v.1)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보면 이렇게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지내는 일 속엔 참 행복하고 좋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 자리가 어디든 상관없이 말이지요.
문제는 같은 부모님을 통해서 태어난 형제자매라고 하여도 시간이 지나고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면서 어울리고 함께 지내는 일이 쉽지는 않다는 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정말 형제자매로서 어울리며 함께 할 수 있을까요?
신명기 25장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형제들이 함께 살다가,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아들이 없이 죽었을 때에, 그 죽은 사람의 아내는 딴 집안의 남자와 결혼하지 못합니다. 남편의 형제 한 사람이 그 여자에게로 가서,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 그의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신명기25:5)
요즘 우리의 전통이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든 대목입니다.
유대인들에겐 대를 잇는 일이 참 중요하게 여겨져서 이런 규례가 정해졌다고 하겠는데요.
만일 어떤 남자가 결혼을 했지만, 아들을 낳지 못해서 부인을 남겨두고 죽었다면 남아 있는 부인은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지 못하고 남편의 형제들 중에서 한 사람에게 시집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아들을 낳게 되면 그 아들이 죽은 형제의 이름을 이어받고 그의 대를 잇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형제가 아닐까요?
형제란 서로에게 이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하나님은 여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살다보면 형제들 사이에도 티걱 태걱 할 수 있고 얼굴을 붉히는 순간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너와 나는 형제이고 설혹 우리들 중에 누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남아 있는 형제들이 그 대를 이어주기까지 하는 게 형제라고.
하나님은 형제가 뭔지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십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형제나 남겨둔 아내까지도 거두어주고 그의 대를 잇는 일가지 남아 있는 형제의 몫이라면 사는 동안에 형제가 무슨 곤란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형제가 된다는 것은 어떤 어려움도 함께 나누려하는 것,심지어는 죽음이 다가오면 그것도 함께 하려 하는 게 형제자매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에겐 이게 반드시 해야만 하는 규정은 아니었습니다.
이어지는 신명기 25장의 말씀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만일 형제들이 세상을 떠난 형제가 남겨 둔 아내를 거두는 일을 거절한다면... 마을의 장로들이 그렇게 하도록 권면을 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버려진 아내는 마을의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거절하는 형제의 신발을 벗기고는 그의 얼굴에 침을 뱉습니다. 그리고는 ‘제 형제의 가문 세우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이렇게 된다.’(신25:9) 고 말합니다. 그날부터 그 가문은 이웃에게 ‘신 벗긴 자의 집안’이라고 남게 됩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신을 벗겨서 맨발이 된다든지, 그 얼굴에 침을 뱉는 다는 것은 실로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수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신 벗긴 자의 집안’으로 각인 될 때 아마 그 가족들은 어디를 가든지 손가락질을 당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격적인 대접을 받을 수는 없겠지요.
형제란 서로를 세워주는 사람들이며 형제자매들이 서로를 돌보고 어울리며 함께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로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번 주간에 우린 다시 <팔월 한가위 명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모처럼 일상을 멈추고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지내게 되는 시간을 앞에 두고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지내는 일에 대해서 생각하고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실 것을 부탁을 드립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게 그렇게 대단하고 큰일을 통해서만 오는 게 아니라는 것... 좋은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을 때... 그게 행복이라면... 이번 명절이 우리에겐 그런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모여서 음식을 장만할 때도 그렇고 한 식탁에 앉아서 음식을 먹을 때에도. 우린 한 가족이며 한 형제요 자매라는 기쁨을 다시 찾는 시간을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그곳은 마치 보배로운 기름이 넘쳐흐르는 곳이라고 하겠습니다.
풀이 죽어 있던 우리들이 다시 자기를 찾고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상처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치유되기도 합니다.
그곳은 또한 아침 이슬이 흠뻑 내리는 곳이라고도 하겠습니다.
형제자매가 어울리며 함께 지내다보면 어느새 우린 다시 세상을 힘차게 살 수 있는 활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곳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영생의 기쁨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행복이 여기에 있습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
아름다운 형제 연합을 이루라.
성경 본문 : 시편 133:1~3(1절) / 찬송 : 278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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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 묵상하며 : 아름다운 형제 연합을 이루라(133:1-3)
본 시편은 언약 공동체의 대동단결을 감사하며 격려하기 위해서 쓰인 다윗의 시입니다. 분열과 혼란이 많은 이 세상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는 비결이 무엇이며, 이런 공동체를 이루어야 할 이유를 배울 수 있습니다.
연합하여 함께 살아야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시인은 선하고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보고 감격스러워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기에 흡족한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공동체의 모습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에서 드러났습니다. 여기서 형제는 언약 백성들의 공동체나 신앙공동체를 의미하는데, 이들이 연합하여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마다 세 차례 예루살렘에서 절기를 지키면서 연합하고 공동생활을 하였는데, 서로 아낌없이 나누고 격려하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이 공동체 안에 들어오면, 놀라운 위로를 받고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공동체가 있다는 것은 복스러운 것입니다. 사람은 좋은 공동체에서 배움과 교제와 나눔을 통해 자신의 가치와 비전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나 신앙공동체는 연합하여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알려지기를 꺼려해서 예배만 드리고 살며시 돌아가는 성도님들이 적지 않습니다. 공동체는 서로 서로를 지켜주고 서로가 복된 삶을 살아가는 모체가 되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 여러 가지 부족한 것이 있어도 연합의 덕을 세우고 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데 협력하시길 바랍니다.
복되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선하고 아름다운 공동체에 주어지는 복을 두 가지 비유로 말해줍니다. '머리에 보배로운 기름이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라는 비유는 대제사장의 수염에 흐르는 향유를 비유한 것인데, 거룩하고 아름다운 축복을 상징하는 것이며,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는 비유는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풍요로운 복을 의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복을 명해주셨는데, 그것은 영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종적인 복은 영생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 공동체 안에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은 개개인에게도 복을 주시지만, 공동체 가운데 더 풍성한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복을 끊임없이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교회 공동체는 공동체 안의 연약한 지체들이나 교회 밖의 이웃들을 돌아보고 격려하는 일을 힘써야 합니다. 우리 속한 모든 공동체가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고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더 힘들고 어려운 곳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일용할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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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 협력이 주는 큰 유익.
한 연구 기관에서 성공한 남자와 여자의 배후에 어떤 아내와 남편이 있는가를 조사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공통점이 10가지가 나오는데 그 중에 으뜸이 바로 칭찬과 지지였다는 것이다.
"너무 염려 마세요." "여보, 나는 당신을 믿어요." "밀어붙이세요."
가장 가까이 있기에 약점을 많이 아는 남편과 아내가 비난과 무시가 아니라 격려와 지지를 해준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보다도 더 힘이 솟구칠 것이다.
* 미국 디트로이시에 있는 전등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젊은 기사가 있었다. 그는 날마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나면 언제나 자기 집 뒤뜰에 있는 낡은 창고에서 새로운 기계를 만들기 위해 밤을 새우곤 했다. 농부인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이런 행동을 '미친 짓'으로 여겼다.
동네 사람들도 젊은 기사가 쓸데없는 일로 허송세월하고 있다고 조롱까지 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남편의 일을 믿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당신의 꿈은 언젠가 이루어지고 말거예요."
그녀는 추운 겨울밤에도 손을 불어가면서 일을 하는 남편을 위해 등불을 비춰주기도 했다. 남편은 그녀를 '나의 신도'라고 놀리기까지 하곤 했다. 그러기를 3년여,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은 생전 처음 듣는 시끄러운 엔진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창밖을 내다보니 그 젊은 기사가 발 없는 말, 즉 자동차를 타고 거리를 달려가고 있었다. 그것은 말이 끌지 않아도 되는 네 바퀴만으로 굴러가는 수레였다. 마침내 그의 집념어린 연구가 결실을 맺는 것이었다. 이 사나이는 바로 자동차 왕 헨리 포드였다.
그는 훗날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내 아내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없소."
가장 가까이 있기에 약점을 많이 아는 남편과 아내가 비난이나 무시가 아니라 격려와 지지를 해준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보다도 더 힘이 솟구칠 것이다.
부부나 가족이나 친구나 지인들이 아무도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고 비난한다면 그 사람은 낙심하고 창의력을 상실하게 된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의 비난은 한없는 절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가까운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를 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서로의 지지와 격려, 그리고 협력이 자녀와, 남편과 아내 그리고 친구와 지인들을 아름답고 용기 있으며 지혜로운 사람을 만든다는 사실을 날마다 매순간마다 인지 할 필요가 있다.
성경 전도서에 "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 하느니라"고 했다.
옛날 열 명의 아들을 둔 아버지가 싸우기만 하는 아들들에게 막대기 하나씩을 주면서 부러트려보라고 하였다. 그 말을 하자마자 쉽게 막대기를 부러트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막대기 열 개를 묶어서 다시 부러트려 보라고 하자 아무도 부러트리지 못하였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너희도 이 막대기처럼 서로 힘을 합치고 도우면 무슨 일이든지 못할게 없다."는 훈계를 따라서 그 후 열 명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훈계를 교훈 삼아 서로 도우며 큰일을 이루었다고 한다.
한 가정이 성공하고 행복하려면 가족들이 한 마음 한 뜻을 가지고 협력을 해야 한다. 육상 릴레이 바톤 받기 경기도 네 명이 하나가 되어야 우승 할 수 있게 된다. 이 원리는 단체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마다 개성과 성품이 달라 쉽지 않지만, 각기 다른 모양의 자갈이 모래와 함께 섞인 뒤에 시멘트를 혼합하면 하나의 건물이 올려 지듯이 누군가는 화합과 조화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협력을 일구어서 시멘트 같이 하나로 묶어내는 지혜로운 평화의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만추의 단풍이 각각 색깔이 달라도 조화를 이루니 아름답고, 일곱 가지 무지개 빛이 다르지만 어우러지니 환상의 모양이 되며 노래 각 파트의 음과 악기 소리가 제각각 이지만 연주자에 의해서 황홀한 하모니가 연출되듯이 언제, 어디서나 합력을 이끌어내어 유익을 만드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일은 '서로서로 그러나 내가 먼저'라는 사명의식이 구성원 모두에게 요구 되는 것이다.
이 시대에 진정한 최고의 실력자와 능력자는 평화의 도구로서 협력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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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며 적용하며
1. 언약 공동체 안에 있는 형제자매가 선하고 아름다운 이유가 무엇입니까(1절)?
2. 언약 공동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두 가지 비유와 축복이 무엇입니까(2, 3절)?
3.당신은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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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하며 간구하며
하나님 아버지,
소중한 형제자매를 주셨는데, 사랑할 줄 모르고 연합할 줄 모르는 죄악을 용서해주시길 원합니다.
이기심, 무관심, 얕잡아보는 교만을 버리고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공동체가 아름다운 연합을 이루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