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팔백쉰아홉 번째
남한테 신세 질 일 없다
어떤 이가 그랬습니다. “나는 남한테 신세 질 일도 없고 신세 지겠다는 사람 반가워하지도 않아. 그저 내 능력껏 살면 되는 거야.” 그런데 술자리가 파하고 술집을 나서는데 그는 계산대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선배가 그랬습니다. 신세 지지도 않고 베풀 줄도 모르는 사람하고는 정을 나누지 말아라. 그래요. 살면서 서로 돕기도 하고 도움받기도 하며 사는 게 인지상정이지요. 그래서 인류 역사를 우리네 삶의 바닥에 늘 자리 잡고 있는 ‘부채(Debt)’와 ‘죄책감’의 역사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법률학적으로는 범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고, 경제학적으로는 빌린 돈을 갚아야 하며, 심리학적으로는 타인에게 준 상처에 대해 보상하며 산다는 겁니다. 이것들은 ‘정의(Justice)’라는 엄격한 저울 위에 놓여 있고, 저울의 수평이 깨지는 순간 평화는 깨지고 갈등이 시작됩니다. 일상생활에서 갈등은 마치 식탁 앞에서 아이들의 반찬 투정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투정이 잦으면 얻어먹지 못하지요. 어떤 책에서 ‘하나님은 당신이 이웃을 바라보는 눈으로 당신을 보신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을 기억하는 이유는 이 말이 네게 던지는 송곳 같은 날카로움 때문입니다. 남에게 함부로 도끼눈을 해서도 안 된다는 말이니 말입니다. 젊었을 때 애들 투정하듯 참지 못하고 속내를 곧잘 내비쳤기에 갈등이 잦았습니다. 가는 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드디어 어느 날 곪아 터졌지요. 그때 비로소 어른들 말에 “참을 인忍이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라는 말뜻을 알았습니다.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교훈을 잊고 살았던 겁니다. 공감할 줄 모르는 삶은 삭막할 뿐이라는 사실도 배웠습니다. 남한테 신세 질 일 없다는 사람, 삭막한 사람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