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여성수필의 정체성 연구
여성의식의 특성
가. 여성의 숙명성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여성수필가에게 모성이란 개인의 경험을 통해 습득된 것이기도 하지만 이에 앞서 본능적으로 내재한 것이라는, 오래된 믿음의 뿌리는 실로 거대하다. 더구나 식민지, 전쟁, 분단 등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이 있는 우리에게 모성은 사회구성원을 하나로 결집시켜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모성은 상실한 국가를 대신하는 민족의 메타포였으며, 훼손된 국가와 개인을 감싸 안는 대모신이기도 하다. 이런 모성의 의미 확장은 근대 민족 국가 기획에서 여성이 통합, 배제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즉 모성의 의미가 적극적으로 생산․향유되는 방식에 의해서만 여성은 근대 민족 국가로 통합되었으며, 바로 그 때문에 여성은 주변화되거나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부재를 대신하는 강인한 어머니는 일제 강점 시기 소설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모성이다. 이때 모성의 역할은 항상 임시 방편적이다. 독립국가, 조국, 민족을 남성으로 설정하고, 주권을 상실한 패배한 조국을 여성으로 나타내는 한, 모성은 찬미되지만 그 역할은 수동적이고 주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성이 국민, 국가와 결합하는 과정을 살펴 볼 때, 민족의 재생산, 민족적․인종적 정체성의 경계(혼혈문제), 민족의 이념적 재생산과 전통문화의 담지자 역할 등의 모든 방식은 모성적 영역에 속한다. 결국 여성은 모성을 통해서 국가와 관련성을 갖는다.
이를 감안한다면 식민지 근대라는 특수한 경험을 거치며 현대 국가를 연 시기에 당대 모성이 발현되는 지점을 살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앞서 언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모성이 민족의 메타포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문학이라는 특수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개인의 경험, 여성적 정체성과 갈등하며 교합하는 모성적 공간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수필가 오승희 「기다림에 사는 여인」이 이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딸을 셋을 둔 L여사는 구라파를 횡단하는 유조선 선장인 남편을 오늘도 기다리며 살고 있다. 꽃꽂이 작품이 만족스러워 누구에겐가 보이고 싶을 땐 유명을 달리한 남편이 더욱 그립다는 R여사, 공부하러 외국으로 유학간 딸과 군대에 간 아들을 기다리며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는 R여사, 결혼한 지 5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어 애태우며, 자식을 기다리는 S여인, 홀로 삼 남매를 기르며 자식이 성장하여 성공할 날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H여인 등 내 주위엔 기다림에 사는 여인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들은 봄이 오면 가을을 기다리게 되고 여름이 오면 겨울을 기다리는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가듯이 기다림은 한과 눈물과 한숨을 동반한다. 그러나 기다림은 여인을 병들지 않게 하는 꿈과 희망과 기대감을 내포하고 있기에 기다림에 사는 여인은 결코 불행한 여인이 아닌 것이다. 그러기에 여자의 일생은 ‘기다림’이라고도 한다. 이 땅에 태어난 여인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기다림에 사는 숙명을 지닌 여인인 것을 어찌 탓할 수 있으랴. (굵게 강조 : 인용자)
- 오승희, 「기다림에 사는 여인」 중에서 -
위 인용 수필 속에는 자신의 여성적 운명을 모성의 원천이며, 생명의 씨앗으로 인식하며, 주어진 삶의 현실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여자의 인생이니, 기다림의 아픔은 곧 희망이며 꿈을 간직한 것이니, 우리는 결코 불행한 여자들이 아니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들어있다. 둘째 단락의 ‘여자의 일생은 기다림이라고 한다’라는 문구나, ‘기다림에 사는 숙명을 지닌 여인인 것을 어찌 탓하랴’ 등의 진술에서 볼 때, 페미니스트 관점의 여성 정체성은 매우 소극적이다. ‘여성의 본성은 기다림에 있고, 남성의 역할은 일에 있다’라는 의식은 그 메시지를 내면화하여 오히려 여성 스스로 보수적 성역할을 유지 강화시킨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이렇게 소극적인 여성성은 여성성의 다양한 국면을 사상하고 ‘모성’만을 부각시키는 담론 속에서만 존재해왔다. 소극적 여성성은 그 태생부터 조선의 유교적 가부장제와 일제하의 근대적 지식이 기이하게 결합하면서 만들어졌다. 여성의 교육은 자녀 양육이나 아내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것에 한정되면서 양처현모론이 등장했다. 이에 따라 본질적이고 초월적인 모성애와 함께 자신이 습득한 근대적 지식을 활용해 합리적으로 자녀를 양육할 것을 강조해 왔다. 이와 더불어 식민지 경험은 민족적 모성과 제국주의적 모성을 요구하기도 했고, 절대적 궁핍함은 모성의 빈곤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근대 국가 수립에서 비롯되는 여성의 타자화와 식민지 현실로 인한 민족의 타자화가 교차하는 지점에 모성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메마르고 병들어 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때이다. 물질문명의 고도성장은 사람들을 타산적이고 실리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존재로 바꾸어 놓았다. 사랑도 봉사도 희생도 몸과 마음을 바쳐서가 아닌 경제적인 물질적인 공리적인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인간적인 사랑과 고뇌에서도 주판을 놓으려 한다. 여성들의 마음조차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모성을 지닌 여성이 될 수 없는, 사치와 낭비와 허영의 노예로 떨어지는 여인이 되어가고 있다. 철도 모르고 피어나는 화원의 꽃처럼 조작적인 향기와 모습으로 자신을 꾸미려 한다. 부루진을 입고 고고춤을 추는 어머니, 계에 넋이 나간 어머니, 부동산 투기에 재미 보는 어머니, 그들 가정의 자녀들은 그래서 고아와 다름이 없다. 특수한 직장 여성처럼 화장을 하고, 유행에 허덕이는 여대생들, 만약 그런 학생들이 있다면 그녀들은 장차 어떤 모성이 될 수 있을까? 우리의 전통문화는 그런 여성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위대한 여성, 아름다운 여성이란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하고 생각하고 남을 위하여 살다 간 여성들이다. 이름 없이 살다 간 여성들이라도 결코 자신의 본분을 알아 지키고 겸허한 마음으로 봉사하고 남을 아낌없이 사랑하다간 여성들이라면 그들은 진실로 아름다운 생애를 살다간 여성들이리라. (굵게 강조 : 인용자)
- 변해명, 「생각의 이삭들」 중에서 -
여성수필가 변해명 역시 1975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등단하여 89년 현대수필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80년대 대표적인 여성수필가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한국의 토착적인 미 발굴과 인간 내면의 갈등을 예리하게 묘사하여 문단에 주목을 받아왔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무의식의 깊이에 가라앉아 있는 온갖 원초적인 삶의 상처들을 위한 안온한 병상으로 평가받아왔다. 위의 예문에서 볼 수 있듯이 변해명은 ‘여성은 언제나 누이요, 신부요, 어머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자신의 본문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가다. 이런 인식은 「달맞이꽃」이란 작품에서도 드러나는데, ‘나는 달맞이꽃에서 여인을 본다. 여인의 가슴에 고이는 고독과 사랑과 인종을 본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리움과 기다림에 잠을 못 이루며 조용히 참아 견디는 아픔을 주술처럼 좇아가는 나를 보는 것이다’라는 진술을 통해 모성적 원리와 기다림과 인고를 여성의 운명으로 인식하고 있다.
많은 여성 수필들이 모성공간의 복잡한 양상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자아를 다양한 방식으로 수렴하고 있다. 자아란 창조주가 인간에게 준 '자유의지를 움직이는 것'이다. 인간이 이 자유 의지를 갖지 않고 차라리 창조주의 뜻대로 움직였다면 고민이나 인간이 지닌 복잡한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창조주는 인간을 사랑해서 우리에게 이 자유의지를 주었다. 자아의 발견이란 남이 나에게서 얻는 이미지를 아는 것이 아니며, 나 자신이 나에게 느끼는 이미지를 찾는 것도 아니다. 자기도 모르는 본연의 이미지를 찾아내는 것이 곧 자아의 발견이다. 이것이 진정한 나요, 모든 정신 작용의 지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