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1장 1-2절
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2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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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와 ‘누구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지만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와 ‘누군가’가 있습니다. 아무도 덤벼들지 않을 때 누군가는 덤벼듭니다. ‘아하’와 ‘허어’가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아하로 탄성하시고 불순종하면 허어로 탄식하십니다.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싶지만 요지가 있습니다. 순종은 아무나 하지 않지만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나가 바로 아모스입니다. 오늘부터 아모스를 묵상합니다. 먼저 개론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1-2절은 그 시작입니다. 아모스는 최초로 문서화된 예언서입니다. 보통 구약성경은 구전으로 내려오다가 문서화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처음부터 문서로 작성된 것입니다. 아모스는 누구나 예언자가 될 수 있다는 표징입니다. 그의 직업은 목자입니다. 직업이 종교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드고아 출신이라 말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8키로 떨어진 작은 마을입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남 유다 사람입니다. 1절에서 “유다 왕 웃시야 시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특이하게 북 이스라엘에서 예언사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1절에서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때는 북 이스라엘의 전성기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타락한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나라가 안정되고 물질이 풍부하면 순서상 타락이 따라옵니다. 여로보암 2세는 기원전 790년부터 750년까지 40년간 집권합니다. 그때 아모스는 북 이스라엘의 타락을 경고합니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아모스는 원래 예언자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모스의 예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지만,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사역은 두 집단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는 제사장이고 하나는 예언자입니다. 이 둘은 서로 경쟁상대가 됩니다. 누가 더 가감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을까요? 예언자입니다. 이유는 기득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아버지의 직분을 아들이 세습합니다. 세습한 제사장은 현상 유지와 기득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으냐 보다 무엇이 이익이냐를 따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다릅니다. 갑자기 부름을 받습니다. 기득권이 없습니다. 지킬 것도 없습니다. 제사장의 관심이 현상 유지라면 예언자의 관심은 변화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현상 유지보다 변화에 관심을 가집니다. 하던 대로 하자는 의견보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에 관심 가집니다. 안전하게 살기보다 온전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온전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현재 신학대학교의 신대원 학생 중 65%가 목회자 자녀라고 합니다. 상당한 숫자입니다. 그만큼 평신도의 자녀들과 은혜받은 청년들이 줄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는 이미 현상 유지에 들어갔다는 의미입니다. 교회 안에서 사는 사람이 목회자가 되면 장단점이 있습니다. 장점은 이해의 폭이 넓고 프로페셔널 하게 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자기 정화능력이 떨어집니다. 현상 유지에 급급하기 때문입니다.
아모스는 드고아 출신입니다. 그 작은 마을에서 상당한 학식과 견문을 갖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드고아는 교육도시라는 뜻입니다. 꼭 순천과 같습니다. 오래된 말이지만 순천을 교육도시라 말합니다. 교회와 가정에 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 교회와 그 가정의 영향력은 성도, 다음세대, 우리 자녀들에게 크게 미칩니다. 교회의 어른들이 어떻게 믿느냐, 가정의 부모가 어떻게 신앙하느냐는 절대적입니다. 드고아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모스가 나온 것은 어쩌다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드고아는 영적인 마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나 쓰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준비되면 쓰십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보아야 합니다. 나는 준비된 사람인가, 우리 교회의 영적 기류는 어떠한가, 우리 가정은 말씀이 충만한가를 보십시오. 제사장만 쓰임받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부르십니다. 언제 불러도 손색없는 주님의 사람이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