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소설 [일루전;ILLUSION]
제1부 폭동 전후(28)
3. 커뮤니스트 음악 선생(7)
양수가 가톨릭 계통의 사립 여중학교 음악교사로 부임한 것은 4월 초였다.
부임하던 날 그는 거기서 뜻밖의 선생을 만났다.
개학식을 하고 수업 없이 학생들은 하교시켰으면서 교직원들은 퇴근하지 못하고 정상 근무하고 있었다. 하기야 신학기 수업과 학급 경영을 위한 준비를 해야 했으니까 한가할 수는 없었다.
양수는 안내 받은 음악실에서 교실 사면을 두루 살피고 있었다.
그랜드 오르간이라는 커다란 풍금과 피아노가 놓여 있어서 제법 잘 갖춘 음악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칠판도 악보 칠판이 따로 있었다.
그리고는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한 손으로 두드리면서 혹시 조율이 필요한지 귀를 기울여 보고 있었다.
그러는데 교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 위로 머리를 솟구쳐서 교실 문을 내다보았다. 젊은 여선생이 문의 창 안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교무실에서 낯익은 교사였다. 바로 교무실의 자기 자리로 지정 받은 데스크에서 가까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들어오시이소.”
그가 말했다. 그러자 그 여선생은 말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뒷손으로 다시 닫고 피아노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양수도 얼른 인사를 받느라고 몸을 굽혔다가 폈다.
“저어 저는 국어를 맡고 있는 전매리입니다.”
“아, 예에- 그런데?”
그는 교무실에서 자신을 공식적으로 소개하는 인사를 했으니까 새삼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되리라 싶었나보다.
“저 곽 선생님과 한 동네 살고 있거든예.”
“한 동네라면?”
“원대동 와야마찌예”
“와야마찌?”
“아 그 불하 받은 일본집 동네 말입니더.”
“아아, 그 왜놈동네에. 그렇지요. 선생님도 거기 사십니까?”
“맞습니더. 선생님이 사시는 집에서 가깝심더.”
“저 전? 전 선생님이시라고……?”
“예, 전매립니더. …… 곽 선생님은 그 신문사에 댕기는 분 집에 사시잖십니까?”
“맞습니다. 맞습니다. 아하, 그러니까 한 이부제(이웃에) 사는 분을 여기서 만났구만요.”
라고 말하면서 가까이 있는 학생용 의자 하나를 끌어다가 놓았다.
“여기 좀 앉으시이소.”
그리고는 전매리라고 밝힌 그 여 선생과 둘이 마주 앉았다.
“반갑십니다. 전매리 선생님. 낯선 곳에서 고향 사람 만난 것 같십니다.”
양수는 그렇게 말하면서 반가워했다.
“저도 깜짝 놀랐어예. 아침에 교무실에서 인사하실 때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거든예.”
전매리는 양수가 부임한 그 여학교 미혼 국어 선생이었다. 그는 성문교회의 그전 당회장 목사였던 전다위 목사의 딸이다.
전다위 목사는 일제 강점기에 성문교회 당회장이었으나 그 당시 일제의 강요로 신사 참배한 허물로 인하여 광복이 되자 교인들 앞에 회개 자복하고 자청하여 목사직을 사임했다.
그의 후임은 전 목사 밑에서 조사로 있던 홍신명 목사가 계승했다.
그것은 신사 참배의 흠결에도 불구하고 전다위에 대한 애정이 교인들 절대 다수였기 때문에 그의 은퇴와 낙향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홍신명 조사를 임시 당회장으로 하고 전다위 목사를 노목사로 모시기로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홍신명 조사가 교단의 노회로부터 목사로 안수를 받게 되면 공동의회를 거쳐서 위임 절차를 밟기로 한 처지에 있었다. 홍신명은 조사였지만 담임을 맡으면서 교회 안에서는 그를 목사로 불렀다. 그것은 전다위 목사가 그렇게 부르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2월 8일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