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 교회는 선지자가 있다 하더라”고 하면 “그래? 그 교회 이상한 교회 아니야?”하고 자연스럽게 의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런 의문의 근거로 성경 누가복음 16장 16절을 제시합니다.
눅 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이 구절을 율법과 선지자는 침례 요한의 때까지이고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는 더 이상 선지자가 필요 없으며 어떤 교회에 선지자가 있다고 하면 그 교회는 분명히 이단이거나 이상한 교회일 거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의문은 “율법과 선지자”라는 용어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율법과 선지자라는 표현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율법과 선지자는 율법 자체와 선지자 자체를 언급하기보다는 대부분 율법은 모세 오경을 선지자는 선지자들이 기록한 글인 선지자의 글들을 의미합니다. 신약 성경에 7회가 나오는데 그 가운데 몇 구절을 소개합니다.
마 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행 24: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다시 말해서 신약 성경은 구약성경을 지칭할 때 “율법과 선지자” 혹은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이라고 표현합니다. 만일 누가복음 16장 16절에 말하는 선지자가 선지자 자체를 언급하는 것이라면 그 성경 구절은 즉시 다른 성경 절과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침례 요한과 예수님 이후 초대교회와 신약시대에도 많은 선지자가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행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행 15: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행 21: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행 21: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초기 교회는 여전히 선지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바울은 특별히 살전 5:20에서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언의 은사는 선지자의 은사입니다. 그러니 신약시대나 그 이후에 선지자의 존재는 이상한 교회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며 오히려 예언의 은사는 사도가 적극적으로 권장한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전 14: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라고 한 말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동일한 내용을 기록한 마태의 기록에서 같은 내용의 평행구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 11:13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정확하지 않습니까? 율법과 선지자의 기능이나 존재가 요한의 때까지라고 한 것이 아니라 선지자와 율법 곧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그 예언이 마침내 요한의 때에 와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메시아의 출현으로 구약성경에서 수많은 상징과 표상들이 가리키던 그 원형인 그리스도의 등장으로 그 예언들이 성취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씀을 오해하고 신약시대에는 마치 선지자들이 있으면 안 되는 것으로 착각한 나머지 선지자가 있으면 이상한 교회로 의문을 가지는 것은 성경을 몰라도 한참 잘 모르는 것입니다. 다만 그 선지자가 참 선지자냐 아니면 거짓 선지자냐 하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 말입니다. 오늘 또 오해하나 풀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