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은 주님을 만나는 날
이 날은 하늘을 경험하는 날
이 날은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권세를 받는 날
이 날은 천국을 맛보는 날
그 풍성한 축복을 누리는 감격의 날 되세요.
이 안식일에는 김명호 목사님의 말씀에서 옮겨왔습니다.
귀한 감동의 말씀 누리심,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권세를 누리는 날
어린 양의 신부의 혼인예복이 준비되는 복된 날 되세요.
시온산에 선 14만 4천인은 입에 거짓이 없고 흠이 없고 정절이 있고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또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 그랬어요. 근데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간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간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계 14:1-4)
예수님께서 인도하는 대로 불구덩이로 가면 불구덩이들도 따라가고, 가시밭길로 가면 가시밭길로도 따라가고 예수님께서 인도하는 대로 어디든지 다 따라간다. 그 말 맞죠. 그런데 여기는 누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간다고 그랬어요. 어린 양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간다고 그랬어요. 어린양이 언제 필요해요.
죄 지었을 때 속죄하기 위하여 그래서 요한계시록에는 어린 양이 여러 번 나옵니다. 어린양이라는 말이 나와요. 어린양이라는 말이 신약성경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데가 어딘지 아시죠.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구약성경에서 어린 양이 제일 먼저 나오는 곳은 어디일까요?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창 22:7)
구약은 묻고 신약은 답합니다.
드디어 인류의 죄를 대속할 어린양이 나오는데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신약이 답하는 것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구약시대에 사람이 죄를 지으면 어린 양을 끌고 성소에 가야합니다. 그래야 속죄가 일어나지요.
그런데 사람이 끌고 가지만, 의미상으로는 누가 사람을 데리고 가요 아이고 내가 죄지었는데 지금 성소에 속죄하러 가면서 빈손으로 덜렁덜렁 갈 수 있어요. 꼭 뭘 가져가야 돼요. 희생 재물을 가지고 가야 돼요. 그러니까 실제 의미상으로는 누가 나를 끌고 데리고 가요. 어린 양이 나를 데리고 가요 그 어린양을 가지고 내가 어린양 뒤를 따라가면 그곳에 무엇이 있어요. 속죄가 있죠. 희생이 있죠. 용서가 있고, 회복이 있죠.
14만 4천인의 특성 중에 어린 양이 어디를 하든지 어린양만 따라 다니면은 그곳에 뭐가 있어요. 용서가 있고 속죄가 있어요. 그래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봉사를 나타내는 겁니다.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히 8:4)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다면 뭐가 안 돼요? 제사장이 되지 아니 하셨을 것이라고 그랬어요. 제사장이 없으면 무슨 봉사가 안돼요. 속죄봉사도 안 돼요. 그러니까 반드시 속죄봉사를 위해서는 누가 필요해요. 이 성소봉사 가운데 제사장이 필요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셨으면은 뭣이 안 돼요. 제사장이 안돼요. 그리고 뭐가 이루어질 수 없어요. 속죄가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속죄가 이루어질 수 없으면 의의가 의롭다는 선포가 돼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제사장으로서 속죄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디로 가셔야 돼요.
그래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지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요 16:10)
내가 누구에게로 가니?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하며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기 아버지께로 승천하셔야 돼요.
예수님께서 승천을 하셔서 하늘에서 무슨 봉사하신다는 거예요? 제사장으로서 속죄 봉사를 하시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시는 일로 우리는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는 말을 맞을까요 틀릴까요?
예수께서 십자가의 피 흘려 돌아가시는 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속죄함을 받았다. 고것만 얘기하면은 x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7)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일이 없으면 뭐가 헛것이에요? 우리의 믿음이 헛것이고. 그다음에 여전히 우리가 어디 있고요? 죄 가운데 있어요.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으로 끝났다면 우리는 뭐를 받지 못했어요? 속죄함을 받지 못했어요.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의 죄가 사유함을 받았다고 하는 확실한 증거가 뭣으로 나타난 거예요. 예수 그리스의 부활로 나타난 거예요. 그러니깐 사도행전은 쭉 읽어보면 십자가 얘기 보다가 예수님의 부활 얘기가 훨씬 많습니다. 저는 사도행전을 예수부활 증거 행전이라고 그래요.
부활 안 하시면 우리의 속죄도 이루어지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죄를 정복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이 뭐도 못해요. 제사장으로 봉사도 못해요. 저 예수님 부활하셔야지 어디로 갈 수 있어요. 승천할 수 있어요.
구약의 모든 성소제도들은 모형과 그림자요. 실제인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봉사를 알려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히 8:1)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히 9:24)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히 10:4-5)
그래서 승천을 하셔서 제사장으로 봉사하시는 일을 통해 우리들이 그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를 뭐라고 선언하시는 거예요. “의롭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뭣이라고 선언해요. “의롭다” 우리가 레위기 4장 20절 이하에 쭉 읽어 나가보면 제사장이 속죄한 즉 사함을 얻으리라 그가 속죄한 즉 사함을 얻으리라 이런 말들이 10번 이상 나옵니다.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받으리라”(레 4:20)
그냥 피 흘려서 갖다가 이렇게 피 뿌리고 그런 정도만 가지고도 사함을 얻는 게 아니고 반드시 뭣이라고 선언을 해줘야 돼요.
사함을 얻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보혈을 가지고 아 속죄 봉사를 하실 때에 외롭다라고 선언하시는 분은 누구라 그랬어요.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롬 3:30)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3-34)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그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이유가 뭔가 하면 죽으실 뿐 아니라 하늘에 올라 가신 자는 예수 그리스도시니 그 는 우리를 위하여 항상 간구하시는 분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깐 예수님께서는 제사장 직무를 행해서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보혈과 부활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얘기를 하면서 그 증거로 뭘 하실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주셨어요.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전 1:2)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것은 무엇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고 그랬어요. 피뿌림을 받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 그랬어요. 피뿌림을 받기 위하여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제사장으로 봉사하시면서 그에게 나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시는 거예요. 피를 뿌리세요. 피를 상징적이죠.
그 흘리신 피가 우리 각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함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부름받은 것입니다.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 12:24)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다면 뭐가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라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선 승천을 하셨고 그래서 우리 눈에 안 보이는데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것은 무엇이 확실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예요.
속죄가 이루어지고 그에게 피 뿌림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의롭다”고 선포받는 그 일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거예요.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계 19:8)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 뭡니까? 성품 변환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거 그것도 해야 되죠. 하지 말라는 얘기 아니에요.
어떻게 성도들의 옷이 희게 될까요? 우리의 선행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4)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가 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는 거예요.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계 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문들을 통하여 생명 나무에 나아가는 권세를 얻는다고 그랬거든요. 생명나무가 언제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길이 막혔어요.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4)
이 것을 생명나무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딱 막았다고 생각하시는 하시는 분이 계신데,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길이 해받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키신 거예요. 그래서 언제 그 길이 열려요?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계 22:14)얻어요. 그때 막힌 길이 열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과 제가 그때 다 어디로 가겠어요.
생명나무에 나아갑니다. 생명나무에 나가가려면 두루마기를 빨아야 합니다. 어디에다가요? 어린 양의 피에, 어린양의 피에 우리는 날마다 옷을 빨아야 돼요. 어쩌면 순간마다 빨아야 될런지도 몰라요. 우리는 어린양의 피를 뒤집어쓰면서 살아야 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야 될 거예요. 그러면 우리 주께서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선언을 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성문을 향하여 유리 바다를 행진할 때에 천사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예수께서 당신의 힘차고 영광스러운 팔을 드시어서 진주문을 잡으시고 번쩍이는 돌쩌귀에 걸려 있는 그 문을 뒤로 밀어 제치셨다. 그러고는 우리를 향하여 “너희들은 나의 피에 너희 두루마기를 빨았고, 나의 진리를 위하여 굳게 서서 견디었으니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모두 다 안으로 행진해 들어갔으며 그 때 우리는 그 도성에 들어갈 당당한 권리가 있는 것처럼 느꼈다.”(초기, 16-17)
우리의 날마다 생활 가운데서 우리는 피 뿌림을 받는 경험으로 이것이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생활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보혈의 권세로 생명나무에 들어갈 권세를 누리시는 복된 생애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https://youtu.be/_QMM4c65TXw
https://youtu.be/tNdJQsQ8M9k
https://youtu.be/DQhYpXOXdF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