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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평론 - 정론직필을 찾아서
 
 
 
카페 게시글
북한사회의 실상 스크랩 외조부의 `끔찍한 악행` 제가 대신 사죄드립니다
정론직필 추천 11 조회 1,746 14.03.27 20:49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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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4.03.27 20:50

    첫댓글 오마이뉴스 신은미 기자의 기사네요.
    ----------

    그러나 일부 의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법안이 잘 돼야 인민공화국이 되지 않고 자손만대에 자유국가를 물려줄 수 있다"라며 어떤 의원이 법안을 밀어붙였다. 내가 본 영상물은 그 국회의원의 사진을 내보냈는데, 순간 나는 기겁하고 말았다. 그 국회의원이 바로 내 외할아버지 박순석 의원이었기 때문이다.
    영상물은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고초를 겪었는지 보여줬다.
    멈추지 않고.

  • 14.03.27 21:39

    그게 어찌 신은미씨의 외할아버지만의 잘못은 아니겠죠.그 외조부도 미국과 다른 친일파들,이승만의 하수인으로 봐야겠죠.사망 당시의 후회하는 듯한 말이 그렇다고 느낍니다.혹은 당시 분단 정치 상황에 무지하여 잘못된 신념에서 일수도 있고,

  • 작성자 14.03.27 22:07

    한국에서 강연을 할 때마다 여지없이 찾아 오시는 분들이 계시다. 바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살이를 하신 분들이다. 내가 처음 이분들을 만났을 때 나는 '왜 이분들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할까' 의아해했다. "혹시 이분들은 진짜 '빨갱이'들이고, 북한을 들락날락하는 내게 '동지애'를 느껴서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걸까"라고 말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분들은 공산주의나 북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한 분은 대표적인 조작사건 중 하나인 '아람회' 사건으로 온갖 고초를 겪으신 분이다. 그분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 작성자 14.03.27 22:10

    몸을 부들부들 떨며 본능적으로 유인물을 주머니에 넣고서 회합도 참석치 않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유인물 맨 마지막에 적힌, '이 유인물을 주우신 분은 신문이나 방송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으니 주변에 알려 달라'는 간절한 글귀를 모른 채 지워 버릴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400여 장을 새로 인쇄해 동창(후일 고문 조작된 '아람회원')들과 당시 계엄하의 삼엄함을 뚫고 서울·대전 등 여러 지역의 지인들과 시민들에게 암암리 배포하게 됐던 겁니다.

    이 일과 함께 그로부터 약 1년 뒤 1981년 5월 친구 김난수(당시 육군대위)의 딸 아람이의 백일잔치에 모였던 것을 꼬투리 잡아 국가보안법 위반을 일삼은 '아람회'가 고문 조작에 의해

  • 작성자 14.03.27 22:10

    @정론직필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소위 반국가단체 및 이적단체가 된 것이죠.

    공안당국은 저희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을 하려고 저희를 북한과 연계시켰어요. 심지어는 온갖 고문을 가하며 북한 노래를 불러보라는 거예요. 근데 제가 북한 노래를 알 턱이 있습니까?"

  • 작성자 14.03.27 22:14

    곳곳에 냉혈하리 만큼 차가운 시선들 그리고 '빨갱이 가족'이라는 무시무시한 족쇄가 이들 어린 남매를 피멍 들게 했다. 그 힘겨움의 무게에 짓밟힌 이분의 순하고 착한 두 동생들은 병으로 일찍이 세상을 등지게 됐다. 이런 비극 속에는 이들과 함께 동시대를 걸어온 냉소적인 이웃 사람들, 사회, 국가가 있었다. 바로 우리의 야만적인 '무지'가, 우리의 잔인한 '무관심'이 이들의 삶을 파멸시킨 것이다.

    이분의 이야기는 비단 억울하게 돌아가신 그분의 어머니와 한살배기 동생 그리고 할머니의 원한 맺힌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 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탯줄처럼 연결된, 서글픈 우리 민족의 삶 그 자체를 송두리째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 작성자 14.03.27 22:15

    서슬 퍼런 원한과 절망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슬픔과 그리움이 이분의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용서를 통한 힘겨운 치유의 고통도 절절히 느껴진다.

    이분 또한 모든 비극의 근원이 분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면 이런 일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 작성자 14.03.27 22:19

    "그리고 우리는 북에 자주 다니니까 북에 대해 잘 알지 않습니까. 그런데 남쪽에서는 북에 대해 나쁜 것만 보여주는데 신 선생님께서 아주 공정하게 객관적으로 참 잘 쓰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그저 본대로, 느낀 대로, 있는 그대로 일기 쓰듯 썼습니다."

  • 14.03.27 22:26

    자신 조상의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할수있다는것은

    정말 대단한 용기입니다.

    당장 직계가족들간의 서먹함은 어떻하고요.

    혹여나 집안분쟁으로 번지지나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면에서 신은미씨 점점더 존경스러워지는군요...^^:

  • 14.03.28 06:54

    신은미의 외할아버지가 그렇군요.
    그 당시 기독교세력은 일제를 패망시킨 미국에 대해서 큰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스스로 친미주의자가 되었죠.
    지난번 85세 백령도 켈로부대(구월산부대등 우익빨치산 지원)의 고문관 85세 할아버지의 죄고백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해 가능하죠.

    신은미의 남편이 통일교인 것으로 보아...통일교로 믿어지는데
    통일교라는게 미국에서도 닉슨을 지원하면서 키신저, 체니, 럼스펠트 닉손나이트와 밀접하고
    워싱턴타임즈를 인수하여 레이건-부시의 정책을 공개적으로지원하죠.

    핵위기가 발발하자 문선명이 92년말에 북을 방문한 것은
    북을 녹여내기 위해 중간자를 파견한 것이죠.

  • 14.03.28 07:20


    신은미 개인의 민족적인 애정은 높이 평가하는게 맞겠죠.
    그와 동시에 이러한 행위들은 북미전략관점의 하부 이벤트로
    세밀히 기획된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죠.

    참고로 48년초에 백령도에 켈로부대(공식창설은 49.6월)와
    고문관들이 주둔하는데 이들이 구월산부대, 호림부대 등의
    우익빨치산부대를 지원하고 49.5월 미군 철수 뒤에도 계속 주둔하죠.
    철수 1달 전부터 옹진반도전투가 격화되고 황해도 게릴라전이 벌어지는데 이를
    주도한게 바로 이들 백령도주둔
    켈로부대 미군 고문관들이죠.
    이들이 4년전에 쓴 글을 보면,
    이 KLO부대를 이루었던 한국인2세등 비정규전 부대원들 생존자가
    미국에 3000명 정도가 존재합니다.


  • 14.03.28 07:23


    미국은 이러한 적극적인 콜라보의 세밀히 관리하고 있고,
    이들의 인맥을 통해서 해방후 한국 사회를 주도하고 있죠.

    전향주사 조직이 반북에 나서면서 탈북자 2000명을 데려왔는데
    김상헌이는 북기독교 월남자이며 국제기구 앰네스티 은퇴자는
    1000명을 탈북시키죠. 미국은 방대한 숭미콜라보를 당연히 세밀히 관리하고 있고,
    신은미씨 경우는 그러한 관리 정보철에서 뽑아,
    기획한 북미 강화 합의 이해을 위한
    이벤트라고 봐야겠죠.ㅣ

    85세 고문관과 신은미 할아버지 죄악고백은
    동질의 이벤트라고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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