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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이 한 잔과 물고기 열세 마리
돌아오는 길 내내 짜이 한 잔과 물고기 열세 마리가 온통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짜이와 물고기를 받은 것이 아니라 난민들의 상한 심령을 받았다. 그것은 내전(內戰)의 벼랑으로 내몰린 그들로서 어찌할 수 없는 아리고 쓰린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였고 나와 한국 크리스천을 향하는 애타는 호소였다.
차삐는 금번 방문 일정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한 캠프로 시아하에서 남동쪽으로 삼백 여리 정도 떨어져 있으며 미얀마 국경과는 십 여리 밖에 되지 않는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고산지대 국경마을이다.
마지막 방문지인 차삐캠프에서 작은 물고기 열세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무리한 스케줄을 따라 고된 일정을 마친 부담감에서 벗어나 차가 있는 방향으로 가는데 난민회 부회장인 다이싸오 씨가 주춤거리며 다가왔다. 그리고 대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가방을 말없이 건네주었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한국에서 오는 후원자에게 자기 난민들을 기억하고 양식을 보내준 한국 교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고기를 잡아 말렸다고 하였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고 마치 주님이 “내가 너의 수고를 안다.”는 위로의 말로 들렸다. 그리고 이어서 “네가 내 자녀들의 고통을 아느냐?”라고 묻는 주님의 음성으로 가슴에 파고 들었다. 연기에 그을려 말린 물고기가 마치 그들의 상한 심령, 내전으로 패대기 처진 난민처럼 보였다. 물고기를 받아들고 ‘주님! 그동안 제가 힘들다고,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냐며 불평을 터뜨린 것을 용서해주옵소서. 난민들은 죽음에 이르도록 아프고 힘든데 제가 그들보다 더 힘들다고 생각하며 엄살을 부렸습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라고 고백하였다.
파도에 밀려서 모래밭에 패대기 처진 물고기처럼 기진한 난민들이 여기저기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들의 원함을 피부로 느끼면서 채워줄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이 답답하였다. 내 한 끼 식사에 불과한 초라한 보리떡과 물고기 몇 마리로 어떻게 칠천 여 명의 무리를 날마다 배불리 먹일 수 있겠는가?
순간 벳새다언덕이 눈앞에 펼쳐졌다. 주님께서 소년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아들고 축사하셨다. 그리고 오천 명이 넘는 무리들이 배부르게 먹고 열두 광주리를 남겼다. 그렇다! 대잔치는 주민께서 주재하고 우리들은 참여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축사하시면 해결이 된다. 후원금 액수가 준다고 실망하지 말자. 금액이 적다고 낙심하지 말자. 부족하다고 불평하지 말자.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주님께 맡기고 주시는 대로 섬기면 된다. 주시는 대로 나누면 된다. 주님께서 축사하시면 된다! 물고기 열세 마리를 주님께 드리자. 나의 일은 상한 심령, 배고픈 슬픔, 짓밟힌 행복, 불안과 공포를 주님께 아뢰는 것이다. 나는 해결사가 아니다. 난민들을 대신하여 과부처럼 끈질기게 기도하자. 금번 대림절에 희망이 사라진 난민들의 삶의 자리에 주님께서 친히 오셔서 축사하실 것이다.
2021년 2월 1일, 군부 쿠데타로 인하여 미얀마에서 내전이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고산족들, 소수 부족민들은 반독재, 반군부, 반정부 운동에 가담하였고 대부분의 공무원들, 교사들, 경찰관들이 사임을 하고 피난행렬에 나섰다. 인도 미조람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친주(Chin State)의 친족들이 과거에 ‘마라족의 땅’이라고 불렸던 시아하 일대에 몰려들어 난민캠프를 형성하였다. 5년 째 계속되는 내전으로 말미암아 난민들의 숫자가 줄어들지 않고 늘어났다. 현재 미조람주에 피난한 친족 난민은 3만6천여 명, 마니푸르주에 피난한 난민은 7천여 명, 나갈랜드로 피난한 난민은 4천여 명이다.
다른 주의 상황은 잘 모르지만 미조람주에 사는 대부분의 난민들은 처음에는 고산지대에 사는 인도 주민들의 마을 안에 터를 잡았다. 그러나 2022년 인도 정부의 지시로 난민들은 마을에서 나와 마을 변두리나 더 멀리 떨어진 밀림에 캠프촌을 다시 세웠다.
피난 나온 첫해에 난민들은 피난 시 가지고 나온 돈과 동족인 마라족 인도 주민들과 인도교회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적응하였다. 마을 회관이나 교회 건물 안에서 공동생활 하였던 그들이 NGO 단체들의 도움으로 대나무로 집을 지었고 가족끼리 살게 되었다. 그러나 인도 정부의 반대로 공터가 있어도 밭을 일굴 수 없었고, 강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 없었으며 닭이나 개와 염소, 돼지 등을 키우는 것이 금지되었다. 또한 외출도 엄한 통제를 받았다.
2022년, 난민들은 이년이 되는 해에 산을 개간하여 작은 밭을 일굴 수 있게 되었으나 생산된 작물 판매는 허용이 되지 않았다. 닭 또한 사육이 허락되었으나 계란이나 닭을 시장에 가지고 가서 팔 수 없었다. 강이나 시내에서 어로작업이 허가되었으나 잡은 물고기 판매는 금지되었다. 그런 와중에 인도정부의 선심으로 난민들이 도로 건설이나 기타 작업에 일일 노동자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노임은 인도 노동자들이 절반으로 남성은 500루피(8500원) 여성은 400루피였다.
그렇다고 이런 날품팔이도 늘 있는 것이 아니다. 1달에 10여일 정도에 불과하였고 그나마도 우기에는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6월까지는 인도교회와 인도 내 동족인 마라족들이 조금씩 도와주고 NGO단체들이 가끔씩 다녀가서 가까스로 생계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우기가 되면서부터 도움의 손길들이 점점 사라졌고 연말에는 도움의 손길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2023년, 내전이 곧 끝나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이 사라졌고 난민들은 끼니의 문제로 부대끼며 울부짖기 시작하였다. 당시 사무엘이 내게 보내는 메시지는 도움을 호소하는 난민들의 이야기로 가득하였다. 난민들은 굶주리지 않기 위해 밭을 일구고 병아리를 키우고 물고기를 잡고 산에 가서 채취하는 일에 몰두하였다. 그리고 순번대로 도로 건설작업이나 기타 보수작업에 가서 날품팔이를 하였다.
3년째 밀림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아동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며 아기 예수로 오는 주님을 만나게 하고 싶었다. 뾰족한 방법이 없었으나 기도하며 성탄기념잔치를 구상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귀한 헌금으로 제1회 난민아동들을 위한 성탄기념잔치를 열었다.
2024년, 난민들은 시민방위군이 정부군과 전투에서 연전연승하고 있다는 소식에 돌아갈 준비로 마음이 들떴다. 일부 난민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정부군의 반격으로 친주 여러 타운이 폭격을 당하여 더 많은 난민들이 피난을 나왔다. 그리고 승리를 앞둔 시민방위군 끼리 계파 싸움이 벌어져 난민들은 더 깊은 좌절감과 절망에 빠졌다.
나 또한 난민들 못지않게 절망감에 빠졌다. 전쟁이 속히 끝나길 기도하건만 종전의 소식은 오지 않고 시민방위군이 다양한 루트로 세계 여러 단체로부터 무기를 공급받고 있고 독재정부 또한 여러 나라로부터 무기를 지원받고 있으므로 전쟁이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소식이 왔다. 10년 정도 지나야 전쟁이 어떻게 될지 알 것 같다는 말에 가슴이 화톳불처럼 타올랐다. 속히 전쟁이 끝나서 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더 이상 난민생계비를 모금하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나에게 10년이라는 말은 폭탄이었다.
개개인의 삶을 아랑곳 하지 않고 평화와 정의의 이름으로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아기는 밀림에서 소년이 되고 소년은 동화 같은 꿈 한 번 꾸지 못하고 청년이 되고 청년은 낭만적인 연애 한 번 하지 못하고 결혼할 것이고 노인은 고향의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눈물 속에서 세상을 떠날 것이다.
내전의 실상과 난민들의 상황을 알고자 작년에 난민캠프를 방문하였다.
난민촌마다 대나무로 지어진 작은 교회와 학교가 있었고 사람들은 곧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사람들은 시민방위군이 승리하여 친주가 독립된 나라가 되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나 난민 지도자들은 아무 것도 예측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겉으로는 내전이지만 실상은 국제전이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때 까지 굶지 않도록 양식을 보내달라고 호소하였다. 아이들은 맛있는 것과 재미있는 놀이와 꿈과 희망에 굶주려 있었다. 아이들에게 믿음과 희망을과 기쁨을 주는 성탄축하잔치를 열었다.
2025년, 난민들의 상황이 조금씩 바뀌었다. 시민방위군이 점령한 지역의 난민들이 앞을 다투어 돌아갔다. 그러나 정부군이 폭탄을 투하한 지역의 주민들이 난민이 되어 나왔다. 우리가 돌보던 난민이 9천여 명에 이르렀는데 난민 수가 7천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좋은 조짐이었다.
그러나 난민 숫자가 그 이하로 줄지 않았다. 어쨌든 친주만이라도 시민방위군이 다 점령하여 난민들이 행복한 귀향을 하길 바라며 두 번째로 난민캠프를 방문하였다.
여섯 개 캠프 대표들의 인사는 한결 같았다.
2022년 우기가 시작되기 전에 NGO단체의 방문도 끝났고 인도교회와 동족인 마라족의 형제들의 자비와 보살핌도 끝이 났다. 그러나 아무런 연고가 없는 한국 교회가 5년 동안 자신들을 돌보아 준 것에 대하여 하나님과 한국교회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는 것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노인들의 눈빛이 너무 간절하고 절박하였다. 어머니들의 눈빛은 절박하다 못해 내 심장에 파편처럼 박히는 것 같았다. 눈물을 머금은 눈을 바라보기 힘들어 마주보지 못하고 눈길을 피하였다. 앞날에 대한 불안으로 떨고 있는 난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순간이었다. 나는 주님의 심정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복되십니다. 하나님께서 고난 받는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므로 복되십니다. 여러분들은 고나 받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 보호 속에 있습니다. 필요한 것들을 다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아프고 슬픈 마음 속 이야기를 다 말씀드리십시오. 절망과 분노도 아뢰십시오. 꿈과 희망도 아뢰십시오. 하나님께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적합한 때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밥을 달라고 울부짖으므로 하나님께서 한국에 사는 저와 한국교회를 들어서 여러분들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산 것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까지 여러분들을 먹이실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시고 기도하면서 감사하십시오. 오늘 가지고 있는 양식을 이웃들과 나누십시오. 그러면 하늘 아버지께서 다 갚아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들!
제가 2021년 여러분들에 대한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그냥 지나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딱 한 번만 후원하기로 하고 모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위하여 계속 기도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힘들고 지쳐서 그만두려고 할 때 마다 주님께서 친히 공급해주셔서 오늘날 까지 여러분들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를 여기 까지 불러서 여러분들을 만나게 하였습니다.
여러분들!
지금 제가 여기 있는 것 자체가 여러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억울하고 비참하고 암담한 심정을 하나님께 아뢰며 내전(內戰)의 광야를 잘 견디십시오. 믿음으로 잘 이겨내신 분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처럼 춤추며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함께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체험합시다. 함께 하나님의 일하심을 봅시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하나님이 우리 희망입니다. 결코 좌절하지 말고 평화와 종전을 위해 기도합시다. 불의하고 악한 전쟁의 고통을 체험한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평화의 도구로 세워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몸과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깁시다. 불평과 원망으로 캠프의 생활을 더 큰 지옥으로 만들지 않도록 서로 격려합시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시간이 후손들에게 큰 축복이 되도록 감사하며 잘 견딥시다.”
좌중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하고 아멘과 탄식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하였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인 아이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희망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어린 아이를 불러 세웠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밥을 많이 먹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내 귀가 의심이 되었지만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밥 먹는 것”, “굶주리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충격이었다. 얼마나 배고프면, 허기졌으면, 굶주렸으면 “밥!”이라고 대답할까 싶어 아이들을 붙잡고 울고 싶었다. 전쟁으로 어린이들을 굶주리게 만드는 못난 어른들! 탐욕과 권력욕을 애국과 애족으로 포장하여 아이들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악한 어른들을 대신하여 용서를 빌었다. 나는 전쟁 중에도 순수한 영혼의 아이들이 꿈을 꾸며 상상의 세계에서, 동화의 나라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 것으로 생각하고 질문을 던졌는데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아이들이 당면한 현실은 꿈을 꾸기에 너무 가혹하였다.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없는 악한 세상! 악한 세상을 뒤엎을 주님이 오시길 간절히 빌었다. 그리고 같은 질문을 청년들과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칠팔십의 어르신들에게 던졌다. 대답이 다양해졌다.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까지 굶주리지 않는 것”,
“아플 때 치료를 받고 약을 먹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책과 노트와 연필이 공급되는 것”이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기본이 되는 일이 난민들에게는 절체절명의 희망사항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저몄다. 우리가 기본으로 누리고 있는 것이 그들에게 아득한 꿈이다! 물질중독에 걸린 우리의 포만이 죄의식으로 다가왔다. 주마등처럼 많은 생각들이 지나가고 있을 때 난민 대표가 나와서 ‘우리 난민들의 요청’이라며 메시지를 읽었다. 내전으로 말미암아 극한 상황에 처한 난민의 고통과 한이 나를 천만 근의 무게로 내리눌렀다.
그들의 희망사항의 핵심은 ‘종전이 되어 자기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까지 양식을 지원해 줄 것’, ‘학생들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교사들의 월급을 지원해주고 교재를 제공해줄 것’, ‘1년에 한 번이라도 의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줄 것’, 이었다. 라키캠프의 대표는 캠프가 있는 마을 인도 주민들의 요구로 이사를 가야하는데 돈이 없어서 가지 못하니 이사경비를 지원해 달라는 것을 덧붙였다.
난민들의 부모인양 그들의 요구를 다 줄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러나 한두 개 난민캠프라면 몰라도 삼십여 개의 캠프를 다 지원하기에는 내 몸을 팔고 남은 시간을 다 쏟아 부어도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요구를 듣고 냉담하게 침묵할 수가 없어서 거꾸로 호소하였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의 요구가 탐욕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기본 조건입니다. 당연히 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 것도 아닌 가난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받아서 여러분들과 나눌 수 있을 뿐입니다. 고난에 빠진 여러분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할 권리와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자녀인 여러분들을 굶주리도록 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인도교회와 동족인 마라족들과 NGO단체를 동원해서 여러분들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아버지이십니다. 그 분께 희망을 두고 간구합시다.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맛나와 메추라기를 구합시다. 우리의 기도로 하나님의 기적이 계속 일어나게 만듭시다. 제가 여기 있는 것도 여러분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기도는 주문이 아닙니다. 사람을 움직입니다. 세상을 바꿉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지금 당장에 악한 원수 마귀의 전쟁은 우리 손으로 당장 끝내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룁시다. 고통을 아룁시다. 평화를 구합시다. 서로 도우며 사탄의 전쟁을 이깁시다. 서로 나누며 우리의 고난을 축복으로 만듭시다.”
호소를 마친 내 몸은 눈물주머니가 되었다. 아이들을 바라보아도 눈물이 나고 어른들을 바라봐도 눈물이 나고 하늘을 봐도 눈물이 나고 땅을 바라봐도 눈물이 났다.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어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있었다.
모임이 파하고 아침을 거르고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던 아이들과 어른들이 줄을 서서 짜이를 받고 있었다. 물동이보다 더 큰 커다란 양은 솥단지에 끓인 짜이가 바닥이 나고 있었다. 그래도 탁자 위에 한 컵이라도 남아 있을까 싶어서 발걸음을 떼는 순간 한 어르신이 짜이를 내밀었다. 거친 손이 갈고리처럼 휘었고 나를 바라보는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초라한 노인이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굶주림으로 허덕이고 있는 우리 조상들로 보였다. 가난한 60년대 우리 시골마을의 구걸하는 할아버지였다. 70년대 살길 찾아 공장으로 몰려간 우리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로 세상을 떠도는 초라한 나였으며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아버지 하나님이었다. 눈물을 삼키느라 짜이를 마시지 못하는데 그는 슬픈 눈빛으로 인사하고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아! 아! 그는 주님이고 나이며 우리 아버지이고 형제였다.
짜이는 짜이가 아니었다. 전쟁에 부대끼는 그의 상한 마음이었으며 하나님의 상한 심령이었다. 전쟁 속에서 숨 쉬고 있는 그의 감사였으며 하나님의 감사였다. 전쟁 속에서 새 날을 기다리는 그의 희망이었으며 하나님의 희망이었다. 나는 짜이 한 잔에 빠져 두 손을 다 들었다.
그 동안 구호활동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숱하게 목격하였다. 그 누구보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감격과 감동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갈등 또한 컸다. 난민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최소한의 것을 보내려고 하는 간절한 마음에도 모금을 할 때 마다 위축되는 마음, 거지같은 기분, 구걸하는 비참한 심정,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면의 갈등, 사람들의 냉담과 조소로 시험에 빠지는 일로 자주 스트레스를 받고 때로는 죄의식에 빠졌다. 또한 난민구호 때문에 발목을 잡혀서 할 일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주 시험에 들었다.
실제로 우리가 후원금을 보내지 않으면 난민들의 삶이 더 힘들어지므로 무단으로 후원을 멈출 수는 없고 해서 금년 내내 난민캠프가 자립할 수 있도록 ‘자립 프로젝트’를 만들기로 작심하였다. 내심 ‘염소 프로젝트’나 ‘돼지 프로젝트’를 만들어 주고 구호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캠프를 방문한 첫날, 난민캠프에서 염소, 돼지, 소 사육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얼마나 당황하였는지 자립의 “자”자도 꺼내지 못하였다.
하나님께 “5년이면 충분합니다. 앞으로 난민들 스스로 자립을 모색해야 합니다.” 라고 말하던 내가 인도 정부의 불허라는 말에 기가 팍 죽었다. 난민들이 아무리 하고자 해도 땅의 주인들이 허가해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서러운 난민살이 아닌가! 그리하여 내 생각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짜이 한 잔과 물고기 열세 마리는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으신 메시지다. 초라한 나를 사용하여서 별 볼 일 없는 작은 것으로 크고 놀라운 기적을 베풀 것이라는 메시지다.
난민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고 우리 친구들이며 나 자신이며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지식과 경험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난민으로 오시는 하나님! 난민으로 오신 하나님 앞에서 내 영혼이 오체투지를 한다.
알파요 오메가인 하나님께서 나라와 민족의 경계, 역사와 이념의 경계, 성속의 경계를 넘어서라고 한다. 사람을 구분하지마라고 한다. 한국과 미얀마, 후원자와 수혜자, 주는 자와 받는 자를 가르지 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내가 할 일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 살 수 있을 때까지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들이 고향으로 떠날 때 까지 먹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짜이 한 잔과 물고기 열세마리를 주신 것은 그것으로 나에게 맡겨주신 칠천여 명의 난민들을 친히 먹이시겠다는 뜻이다. 어린이 한 명의 하루 양식도 되지 못하는 것으로 칠천여 무리를 먹이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과 뜻을 믿는다. 기적의 통로로 나의 몸과 마음과 시간을 드리며 난민들을 위하여 행하실 하나님의 기적을 기다린다.
보라! 하나님의 은총이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 세상을 치유하신다.
보라! 전쟁으로 굶주린 난민들을 친히 먹이신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난민아동들의 성탄기념잔치를 위하여 모금을 시작하였다.
아이들에게 보낼 성탄 선물비용이 채워질 때까지 손가락 끝이 닳도록 카톡을 보낼 것이다.
카톡에 감사와 축복하는 마음을 담아서 보낼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될 것이다.
아직도 뜨거운 가슴으로 나누며 섬기는 성도들의 사랑을 보게 될 것이다.
2025년 12월 14일 일요일 자시 완성하고
12월 16일 화요일 축시 수정해서 올리다.
우담초라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