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6:1-5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하는 이유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아문에 모여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말하기를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우리는 해마다 교회에서 고난주간에 고난에 대한 설교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고난주간의 설교를 듣는 성도들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기 전에 고난을 기억하는 것으로 다른 의미를 찾지 못하고 지내고 있으며, 자신이 고난 받는 것에 대하여는 끔찍하게 여기며, 아예 먼 이야기처럼 생각하며 종교 생활을 합니다.
저도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나 아무런 이유도 모르는 채 어려서부터 항상 이 주간에 부모님 따라서 강제로 금식을 해야만 했고, 뭔지는 모르지만 침을하게 그리고 그냥 슬퍼하곤 했습니다.
점점 자라면서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신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찾아보면서 묵상하게 됐습니다.
마태복음 26장부터 28장까지는 예수님의 세상에서의 마지막 때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때 주님의 수난사와 부활의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살펴보면, 주님이 하나님나라로 돌아가시기 전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고 죽을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기와 함께 했던 제자들에게 자신이 아버지에게로 돌아 가실것과 그리고 십자가에 곧 죽게 될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그를 잡으려고 할 때 아직 내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피해 다니셨는데, 이제는 사역을 완성하고 돌아가실 때가 되었다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행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하는 일에 대하여 믿는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말씀으로, 잠16:9절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입니다.
이 말씀처럼 본문에 주님도 하나님의 때를 맞춰서 자신의 세상 삶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맞춰 사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저들에게 팔리고 잡혀 고난을 스스로 받아들이면서 십자가에 달리는 모든 일에 순종의 삶을 결경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우리 믿는 자들이 따라야 할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세상 삶인 것입니다.
주님이 최후 만찬을 하실 때 [막 14:18]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주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자신을 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마 26:23절에서는,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확실하게 말을 해주는데도 제자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뜻대로 행하시기 위해 그들의 눈과 귀를 가리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한은 더 정확하게 [요13:26] 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어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라고 하시면서,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셨지만 제자들은 [요 13: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이가 없고” 아무도 알지 못하고 그 말의 뜻을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을 해주어도 귀가 가리우면 이렇게 다른 것으로 해석해서 듣게 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렇게 역사하고 섭리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 역시 세상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내가 오해할 짓을 안 했는데 상대방이 오해하므로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황당한 일을 겪기도 하는데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알려주신 것을 통해서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 주의 뜻을 따르기 위해 일을 할 때, 참음과 인내를 통해 주님의 고난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믿음의 자녀들이 주님의 받으신 고난에 함께 동참하여야 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지혜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제자들의 눈을 가리우는 이유는 철저하게도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기 위해서입니다.
눈과 귀를 가리우지 않으면 인간의 계획대로 되어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틀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간 구원의 사역은 절대 실패할 수 없기에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 막을 것을 막고 보일 것은 보이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에게 원망하며 탄원하자 하나님이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답을 주신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보면,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앞장섭니다. 그리고 그는 그 일로 인하여 그곳에서 죽게 됩니다.
[행1:18](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그리고 가룟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간다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요13: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눅22:3]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예수를 판 가룟 유다에 대해서 결정적으로 하신 주님의 말씀은 [요 6:70]“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그를 마귀라고 주님은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그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서 마귀가 된 것입니다.
이제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도 쓰시는데, 이는 우리 교회 안에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 악한 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 중에 이런 가시를 통해서 나를 돌아보고, 가시를 통해서 우리가 훈련받아야 함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구 중에는 가롯유다 와는 다른 바울과 같은 자도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에 바울은 사실 주님이 바꾸어 주시기 이전의 과거에는 우리보다 더 나쁜 자였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들어서 쓰신 것입니다.
[행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하나님께서는 유다도 바울도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주간을 맞이해서 우리가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미리 말씀 하시며 때가 되어 스스로 고난 받으실 것을 아시면서 확실하게 가르쳐 주시는 가르침에서 우리 믿는 자 모두는 하나님에게 구원을 필요로 하는 자들의 구원을 위해 고난을 받아야 하며, 이용당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인 가롯유다가 사단에게 이용당하는 도구를 보고, 주님이 받으시는 십자가의 고난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원이 필요로 하는 자들을 위해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음을 깨닫고 나 스스로 그의 합당한 고난을 받아들이면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보면 주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의 과정에서 복음을 전하고 구원받을 대상자들의 향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저런 일로 인하여 당하게 되는 모든 고난이 주어질 때 피하려고 하지 말고, 저들의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섭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믿음으로 감사함으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고난 절기인 고난주간에는 주님의 고난을 믿음의 눈으로 보면서 주님이 스스로 그 고난을 받으신 것을 깨달아야 하며, 그 깨달은 믿음 위에 한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 고난에 우리 모두 동참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은 힘들고 어렵겠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인내와 기다림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 하심을 기도로 찾으며 지혜롭게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것은 한가지 오직 주님처럼 자신을 고난에 넘겨주면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을 그것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실제로 그 일(영혼 구원) 때문에 주님처럼 고난을 받고 살았으며, 구원받은 자 모두도 사도바울이 걸어간 그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고 슬프게도 교회를 다니면서 구원의 은총을 입었음에도 우리 교인들의 삶의 목적과 방향을 살펴볼 때, 세상을 물질을 더 많이 얻기 위해 주님과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가며 이기적인 생활을 하며, 그래서 기독교 절교인 고난주간은 교회에 절기 행사로 보내면서, 그렇게 사는 것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여기며 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심과 고난받으심은 우리가 그런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님을 깨닫고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구원받아 사는 자들의 삶이란 복음에 빚을 진 자로 우리의 삶의 방향을 주님에게 두고, 구원을 필요로 하는 자들의 구원을 위해 나를 그 일로 당하게 되는 고난에 동참 하는데 고난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 고난주간에 우리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스스로 내어 주신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도 한 영혼을 구원케 하다가 고난받는 고난주일이 되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깨달음의 은혜가 임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