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아침 이슬』
저- 문삼석(세돌) 동시집 (한글, 프랑스어)
출- 재정사
번: 문세돌 선생님의 시가 이슬처럼 영롱하고 순수하다.- 문영훈
※ <바람과 빈병> 옛적 교과서에 실렸던 유명 시라 내 맘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 시를 쓰신 문삼석 선생님께서 시집을 보내오셨습니다. 재정사라는 출판사에서 시집을 내어, 그것도 영어가 아닌, 불어(프랑스어)로 번역하여
전혀 일면식도 없는 귀머거리, 눈봉사에게 공짜로 보내주시다니.
4189-3901!
마음을 담아보냈습니다.
"선생님, 아침이슬 출간을 축하드리며 이번에도 <바람과 빈병>처럼 제 맘에 박혀
울림의 진통을 겪고 삽니다. 건강 챙기셔서 오래도록 후진에게 울림 키워주소서,
박경선 올림"
한 마디 정에도 그냥 있지 않으시고 답신을 보내오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아침이슬>
세상은 하나다
둥근 하나다.
이슬아, 네 눈은
그렇게 말하고
세상은 참이다.
맑은 참이다.
이슬아, 네 눈은
그렇게 보이고
풀잎 손
고운 손엔
이슬이
살고
이슬 눈
맑은 눈엔
풀잎이
살고
※ 선생님의 맑은 영혼이 사는 샘물에서 잦아 올린 시가 읽는 독자들 마음에도 그 맑은 샘물이 담기게 합니다. ‘아, 이런 시가 힐링의 시라는 거구나!’
<홍도>
바다가 돛단배를 /밀어내고 있었다.
돛단배가 멀리멀리/ 밀려가고 있었다.
멀리서 구경꾼처럼/ 섬이 보고 있었다.
돛단배가 혼자서/ 가고 있었다
멀리서 등대가/ 보고 있었다.
어쩐지 가슴이 뛰는/ 그런 순간이었다.
아무도 없는데/기다리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혼자 앉아 있었다.
누군지, 모르는 나도/ 기다리고 싶었다.
※ 선생님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 분입니다. 눈으로 보며 마음속에 고즈녁히 담아 혼자 궁글리고 궁글리며 즙이 되어 무르익으면 그 향기를 시에 퍼 담아 공으로 나눠주는 분이십니다.
<산골물>
엄마 마음처럼/ 그렇게/
깊은 데서/ 훌러나옵니다.
엄마 마음처럼/ 그렇게/
쉬지 않고/ 훌러나옵니다.
밝은/ 빛이/ 그/ 마음을/ 밝혀요.
예쁜/ 꽃이/ 그/ 마음을/ 붉혀요.
※ 시인 선생님은 엄마 마음처럼이라 하지만, 독자는 시를 쓴 선생님의 인격 형성에 모태가 된 어머니의 마음을 느낍니다. 밝은 빛, 예쁜 꽃으로 붉게 익혀, 그 인격의 품격에 젖게 하는… 이것이 엄마의 마음일까요?
<그냥>
엄만 내가 왜 좋아/ 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 그냥
※ 이 또한, 엄마의 마음이요. 자식의 마음이겠지요?
<산길>
아무리/ 높아도/ 산길은 말없이/ 올라가고
아무리/ 멀어/ 산길은 저 혼자/ 걸어가고
산길이 들꽃을/ 불러내고/
들꽃은 길 가득/ 향기를 채우고
들꽃이 바람을/ 불러내고/
바람은 길 따라/ 향기를 나르고
※ 선생님이 고즈녘한 산길을 홀로 걸으며 만나는 동무들도 부럽습니다. 들꽃이 따라 오며 향기를 피우고. 바람은 그 향기를 나르며 따라오는 걸 볼 수 있는, 자연과의 교감에 스며드는 선생님의 부드러운 촉감! 아, 그 스며듬의 부드러운 촉감을 지니셨으니 그것이 바로 유명시인의 자산이겠지요? 흠모로 감탄, 감동에 젖습니다.
<별>
어두운 밤/ 더/ 맑게/ 뜨고
외로운 밤/ 더/ 멀리/ 뜨고
※ 저도 수없이 밤 별을 봐왔지만, 몽고에까지 가서 별을 봐왔지만, 저는 왜 어둔 밤 더 맑게 뜨고. 외로운 밤 더 멀리 뜨는 그 별의 마음을 더듬어볼 수 없었을까요?
선생님이 일러주시네요. '생각의 평수, 마음의 평수부터 늘리는 수양이 한참 필요하네요.'
<가을에 보이고 들리는 건>
귀를 막고 한참만
바라보자, 가만히
가을이 빨갛게 익어 버렸다.
들판에서
길가에서
가지 끝에서
가을이 자꾸만 빠지고 있다.
꼭지에서
넝쿨에서
울타리에서
가을이 제멋대로 굴러다닌다.
마당에서
마루에서
방바닥에서
눈을 감고 한참만
들어보자 가만히
가을이 저벅저벅 걸어 다닌다
조밭에서
풀밭에서
수수밭에서
가을이 온종일 비질을 한다
대밭에서
솔밭에서
싸리밭에서
가을이 탁탁탁 튀김을 한다
뜨락에서
부엌에서
화로 속에서
※ '바람과 빈병'시에서 느꼈던 공감처럼 시인 선생님이 눈 전등으로 밝혀 보여주시는 '가을' 앞에 꿇어 앉아 고백합니다. 선생님, 저는 70평생 동안, 하 많은 것들을 봐왔지만 '들판, 길가, 가지끝, 꼭지, 넝쿨, 마당, 마루, 방바닥, 조밭, 풀밭, 대밭, 솔밭, 뜨락, 부엌, 화로' 들이 일러주고 보여주는 가을의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눈 봉사, 귀머거리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이 가을! 선생님이 운율에 실어 보여주시는 가을 속에 주저앉아, 수양하는 마음으로 정화되는 은총에 젖고 있습니다.
<눈 덮인 아침>
눈 덮인
아침은
세상만큼이나 넓어진
마당 위에서 눈을 뜬다
바람이 기어오르는 지붕
그 환한 지붕 위로
산이
눈빛 이마를 드러내고
숫눈길 지나간
아이들의 작은 발자국 속엔
사금파리 같은 웃음소리가
반짝반짝 숨쉬고 있다.
※ 읽어도 읽어도, 제가 못 본 것들을 보게 해주시는 선생님!
노벨 문학상보다 더 빛나는 상을 올리고 싶습니다. (23쪽. 2024.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