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생존하는 길
창1:3을 보자.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이르시되”의 히브리어는 아마르(אָמַר 말하다)다. 그러나 성경에는 “말하다”라는 단어가 또 있는데 그것은 다바르(דָבַר)다.
“다바르”가 최초로 등장하는 곳은 창8:15이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 구절의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아마르”와 “다바르”가 동시에 등장한다. 이는 필시 두 단어의 용법이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말씀하여”에는 “다바르”를 사용했고, “이르시되”에는 “아마르”를 사용했다. 그런데 출애굽기 이후부터는 “다바르”가 보다 광범위한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요한의 탁월한 안목이 요1:1에 나타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여기서 “말씀”은 히브리어로 “다바르”다. 히브리어는 고대 상형문자에서 유래되었으므로 דָבַר(다바르)를 상형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둘째와 셋째 문자 בר(바르)는 “아들”이란 뜻이다. ד(달렡)은 “門”을 뜻하므로 다바르(말씀)란 “아들에게로 가는 門”이란 뜻이 된다.
민수기의 히브리어 제목은 “베미드바르(בְּמִדְבַּר)로 “광야에서”라는 뜻이다. 상형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광야에 아들에게로 가는 문이 있다”가 된다.
광야는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곳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그런 광야에서도 사람이 사는 길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아들에게로 가는 문(다바르: 말씀)”을 통과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