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이야기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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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들여 세운 학교를 7년 만에 국가에 넘겼다…진주 한약방 주인 김장하가 재산을 남기는 방식
100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학교를 세운 뒤, 운영이 안정되자 아무 조건 없이 국가에 넘겼다.
학교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도 않았고, 이사장 자리를 붙잡지도 않았다. 자녀에게 운영권을 물려주는 일도 없었다.
이 선택을 한 사람은 재벌 총수도, 대기업 창업주도 아니었다.
경남 진주에서 평생 한약방을 운영한 한약업사 김장하였다.
학교를 세웠지만 주인이 되려 하지 않았다
김장하는 1984년 진주에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했다.
당시 학교법인이 보유한 토지와 건물 등의 가치는 1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이 모은 재산으로 세운 학교였지만, 그는 이를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자산으로 보지 않았다.
학교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1991년, 김장하는 명신고를 국가에 넘겼다.
사립학교였던 명신고는 이후 공립학교가 됐다.
학교를 세운 사람이 운영권까지 내려놓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사장으로 남아 학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고, 가족에게 재단을 물려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장하가 원한 것은 학교를 소유하는 일이 아니었다.
집안 형편과 관계없이 학생들이 오랫동안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남기는 것이 더 중요했다.
가난 때문에 멈춘 공부가 평생 마음에 남았다
김장하는 넉넉한 집안에서 자라지 않았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형편 때문에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고, 한약방에서 일을 배우며 생계를 시작했다.
자격을 얻은 뒤 1963년 사천에서 남성당한약방을 열었다. 1973년에는 진주로 자리를 옮겼고, 2022년까지 같은 이름의 한약방을 지켰다.
좋은 약재를 사용하면서도 약값을 지나치게 높게 받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환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한약방은 안정적으로 운영됐고, 김장하는 상당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한약방에서 번 돈을 온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얻은 재산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몸이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지불한 돈인 만큼, 자신만을 위해 쓰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약방 수입은 다시 사람을 돕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기준이었다.
등록금을 대신 내주고도 이름을 알리지 않았다
김장하는 젊은 시절부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도왔다.
등록금을 대신 내주고 생활비를 보태면서도, 장학생들에게 자신을 찾아와 인사하거나 감사 표시를 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오랜 기간 그의 도움을 받은 학생은 알려진 인원만 1천 명이 넘는다.
학생들을 향한 지원에는 자신의 경험이 깊게 작용했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 공부를 멈춰야 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가난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놓쳤지만, 다음 세대까지 같은 이유로 학교를 포기하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장학금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 몇 명을 돕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그는 학교를 직접 세우는 쪽을 택했다.
한약방 수입은 학교와 피난처가 됐다
김장하의 지원은 교육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역 언론과 문화예술 활동을 후원했고, 진주 지역의 형평운동 정신을 알리는 사업에도 참여했다.
여성 인권과 가정폭력 문제가 지금보다 훨씬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웠던 시기에는 피해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보호시설 ‘내일을여는집’ 설립도 도왔다.
지원 대상을 고르는 기준은 단순했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인지,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업인지보다 도움이 없으면 기회를 잃거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람인지가 더 중요했다.
한약방에서 번 돈은 학생의 등록금이 됐고, 학교 건물이 됐다. 가정폭력을 피해 나온 여성과 아이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며, 지역 시민사회를 지탱하는 비용으로도 쓰였다.
재단을 정리하며 남은 34억 원도 대학에 맡겼다
김장하는 2021년 자신이 이끌던 남성문화재단을 해산했다.
재단 운영을 마무리하면서 남아 있던 재산 약 34억 5천만 원도 개인이나 가족에게 돌리지 않았다.
현금 6억 5천만 원과 약 28억 원 상당의 주식을 경상국립대학교에 기탁했다.
기탁금은 진주학을 비롯한 지역 연구와 문화진흥 사업에 사용하도록 했다.
자신이 더 이상 직접 활동하지 않더라도, 그동안 해온 지역 사업은 계속 이어지게 만든 것이다.
재단을 만들 때도 공익을 위해 시작했고, 재단을 끝낼 때도 남은 재산이 다시 공공의 역할을 하도록 정리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끝까지 붙잡지 않았다
김장하의 기부가 주목받는 이유는 액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큰돈을 한 번 내놓은 뒤 선행을 마무리하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줬고, 더 많은 학생이 배울 수 있도록 학교를 세웠다. 학교가 안정되자 국가에 넘겼다.
문화재단을 운영했고, 재단의 역할을 마칠 때에는 남은 재산을 대학에 맡겼다.
자신의 돈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끝까지 자신의 소유로 붙잡아 두지 않았다.
학교를 세운 뒤 학교의 주인이 되려 하지 않았고, 재단을 만든 뒤 재산을 가족에게 남기지도 않았다.
그에게 돈은 쌓아두고 소유자를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었다.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 사람을 키우고, 사라질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이어주는 재료에 가까웠다.
평생 돈을 벌었지만 남겨둔 재산은 달랐다
김장하는 평생 한약방을 운영하며 돈을 벌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자신의 몫으로 붙잡아 둔 것은 많지 않았다.
대신 그 돈은 공립학교가 됐고, 1천 명이 넘는 학생의 학비가 됐다. 폭력을 피해 나온 여성과 아이들의 피난처가 됐으며, 지역 연구와 문화사업을 이어가는 자금으로 남았다.
100억 원이 넘는 학교도, 재단에 있던 34억 원도 결국 그의 이름 아래 머물지 않았다.
김장하가 남긴 것은 재산의 규모보다 돈을 다루는 방식에 가까웠다.
아픈 사람들에게서 번 돈은 다시 사람을 살리는 데 써야 하고, 가난 때문에 빼앗긴 기회는 다음 세대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첫댓글 참으로 대단하고 본받아야 할 귀감입니다.
말로 다 표현할수없는 대단함이 고개를 숙이게 합니다.
그 학교를 졸업하고 영향을 받은분들이 꽃을 피워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본받아야 할 귀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