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사인현경(佛說幻士仁賢經) 해제
1. 개요
이 경의 별칭은 『인현환사경(仁賢幻士經)』이다. 부처님께서 대환술사(大幻術士) 인현(仁賢)을 제도하시고 환(幻)과 같은 법문과 보살의 도법(道法)을 설한 경이다 .
2. 성립과 한역
이 경은 서진(西晋)시대에 축법호(竺法護, Dharmarakṣa)이 번역하였다.
3. 주석서와 이역본
이역본으로 『대보적경』의 제21 수환사발타라기회(授幻師跋陀羅記會)가 있다.
4. 구성과 내용
1권으로 되어있는 이 경은 부처님이 인현(仁賢)이라는 환술사(幻術士)를 교화시켜서 제도한 인연이야기이다. 부처님이 왕사성의 영취산에 머물 때, 왕사성에는 환술사로서 이름을 떨치던 인현이 부처님의 높은 명성을 질투하여 환술로써 부처님을 제압하고자 했다. 그러나 4천왕과 제석천이 함께 대궁전을 지어서 부처님을 청하자, 인현이 환술로써 마련한 강당은 매우 보잘것없이 되고 말았다. 인현은 그제야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알고 부처님에게 설법을 청하였다. 그러자 부처님은 인현에게, 세상 모든 것은 마치 환술로 이루어진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설법하였다. 마침내 인현이 그 설법을 듣고 나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불법에 귀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불설환사인현경(佛說幻士仁賢經)
佛說幻士仁賢經
서진(西晋) 월지국(月氏國) 축법호(竺法護) 한역
변각성 번역
西晉月氏國三藏竺法護譯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 영취산에서 큰 비구 1,250인과 보살 5천인과 함께 계셨는데, 그 보살들은 다 신통을 지녔으며 모든 큰 성인들은 다 총지를 얻었고 변재는 걸림이 없었다.
一時,佛在王舍城靈鳥山,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菩薩五千俱,皆神通菩薩,一切大聖悉得摠持辯才無㝵。
그들의 이름은 사자(獅子)보살․사자의(獅子意) 보살․성락(誠樂)보살․도어(道御)보살․대어(大御)보살․광수(光首)보살․광정(光淨)보살․적의(寂意)보살․인면(人明)보살․개화인(開化人)보살․상응(常應)보살․자씨(慈氏)보살․문수사리(文殊師利) 등 60인의 현자와 일체 5천 보살로서 다 우두머리였으며, 범왕(梵王) 제석(帝釋)과 4천왕천의 모든 왕과 용왕신(龍王神)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였다.
其名曰:師子菩薩、師子意菩薩、誠樂菩薩、道御菩薩、大御菩薩、光首菩薩、光淨菩薩、寂意菩薩、人明菩薩、開化人菩薩、常應菩薩、慈氏菩薩、文殊師利六十賢者,一切五千菩薩,皆此上首者也。梵王帝釋、四王諸天、龍王神無央數。
그때 국왕․대신․장자․거사와 모든 신하와 관속들은 의복․음식․의약․침구 등으로 세존(世尊)께 공양하였는데 세존의 이름은 두루 멀리 들리었으니, 즉 여래(如來)․지진(至眞)․등정각(等正覺)․명행성위(明行成爲)․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士)․도법어(道法御)․천인사(天人師)․불세존(佛世尊)으로서 모든 신통과 슬기로 보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于時,國王大臣、長者居士、群臣僚屬,供奉世尊衣被、飮食、醫藥、牀臥之具。世尊名稱普聞遠至,是爲:如來、至眞、等正覺、明行成爲、善逝、世閒解、無上士、道法御、天人師、佛、世尊。諸神通慧普見所睹無餘。
여래께서는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18불공법(不共法)을 갖추셨고 대자를 버리지 않고 대비를 폐하지 않으시어 혜안과 불안을 구족하고 변화가 무진하셨다. 신족의 변화와 설본(說本)의 변화와 교수(敎授)의 변화가 무진하여 마음만 내면 3천대천세계의 성과 강과 수미산과 용신의 천궁과 철위산천과 도랑․구덩이 수목과 나라․도시․촌락들로 하여금 한 털구멍에 있게 하되 겁에서 다시 한 겁을 지냈다.
如來十力、四無所畏、十八法不共,不捨大慈、不廢大哀,慧眼、佛眼具足,變化無極,神足變化、說本變化、教授變化得無極。發意之頃,能使三千大千世界州城河海、須彌衆山、龍神天宮、鐵圍山川、溝坑樹木、國邑墟聚,在一毛孔,從劫復過一劫。
그때 왕사성 안에 발타(颰陀) 번역하여 인현(仁賢)이라 함라는 환사(幻士)가 있었다. 그는 경전에 밝고 술(術)을 알며 환기(幻技)를 통달하며 만드는 것이 교묘하여 많이들 좋아 하였으며 마음대로 재주를 부려 이름이 멀리 퍼졌었다. 그 마갈타국의 다른 환사들은 다 미치지 못하여 어디로 가나 그가 제일이었다. 진리를 본 청정한 남녀로서 법인(法忍)을 얻은 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인민들은 모두 쏠리어 그의 하는 말에 모두 미혹하고, 그 미증유의 법을 따랐으며, 이 환술로 온갖 이익을 얻었다.
是時,王舍大城中,有一幻士名曰颰陁晉言仁賢,明經解術曉了幻伎,所作巧黠多所喜悅,所興如意名聞于遠,其摩竭國諸餘幻者皆所不及,所至到處最上第一。除諸見諦淸淨士女得法忍者,一切人民莫不傾側。如所言者無不迷惑,隨未曾有法,而以此幻邪行之術,得衆利養。
환사 인현은 부처님의 명칭이 여래․지진․등정각으로 널리 퍼진 것을 듣고는 혼자 생각했다.
‘나는 마갈타의 인민과 모든 고을과 성 안 사람들은 다 교화하였으며 모두 내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나 오직 사문 구담만은 교화하지 못했고 또 그 제자들도 시험해 보지 못했다. 나는 과연 시험해 그를 현혹시킬 수 있을까? 만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마갈타 인민들은 다 같은 마음으로 와서 나를 받들 것이다.’
幻士仁賢聞佛世尊名稱普徽如來、至眞、等正覺,聞已自念:‘我身轉化摩竭人民及諸州城,莫不受教,唯未化沙門瞿曇,亦未曾試及諸弟子。我寧可試知可惑不?假能惑者,摩竭人民皆共同心來供事我。’
그리하여 인현은 본래의 공덕을 반연하고 부처님의 위신을 받들어 왕사성을 나와 영취산에 이르러 부처님을 보았다. 그 광명은 해와 달보다 백천억 곱절이나 더하여 밝고 깨끗해 때가 없으며 광명이 멀리 비치고 상투의 빛은 마치 마니 같으며 빛나기는 청정한 연꽃 같고 범(梵)의 8부(部)를 초월한 음성으로 설법하여 널리 제도하였다.
於是仁賢,緣本功德、承佛威神,出王舍城至靈鳥山。見佛世尊光踰日月百千億倍,明淨無垢光炎遠照,髻相之燿灼若摩尼,曄如蓮華淸淨,超梵八部音說法廣度。
부처님의 색신의 구족하고 장엄한 것을 보고는 몹시 기뻐하면서 가만히 생각했다.
‘나는 부처님이 신통의 슬기로 두루 자세히 보는가 시험해 보리라.’
見佛色身具足嚴妙,意甚踊躍心自念言:‘我欲試佛諸通之慧審普見不?’
그는 곧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부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생각했다.
‘나는 부처님을 초청해 보자. 만일 내 뜻을 알면 내청을 받지 않을 것이요 만일 모르면 틀림없이 받을 것이다.’
便行趣佛,稽首作禮,用試佛故,緣此請佛:“設知我意當不受請,若不知者必受無疑。”
부처님께서는 그 뜻을 아시고 인현과 왕사성의 모든 인민을 가엾이 여겨 그들을 제도하기 위해 잠자코 그 청을 받되 비구들과 함께 가기로 하셨다.
佛知其意,愍傷仁賢及王舍城一切人民,欲度之故,默然受請幷比丘衆。
그때 인현은 생각했다.
‘사문 구담은 신통의 슬기도 없고 또한 두루 보지도 못하며 보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 시험하리라.’
그리하여 인현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부처님을 세 번 돌고는 물러났다.
時仁賢念:‘沙門瞿曇無諸通慧亦不普見,以不見故今當曉試。’是時,仁賢稽首作禮,繞佛三帀而退。
현자 대목건련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저 환사 인현은 간사한 마음을 먹고 부처님과 비구들을 청하는데 왜 그것을 받으십니까?”
賢者大目揵連白佛言:“幻士仁賢內懷誑詐請佛及僧,云何受之?”
부처님께서는 목건련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우선 잠자코 있으라. 여래는 일체 중생의 오랜 동안의 미혹을 잘 아시고 그 때문에 평등한 행으로 그들을 교화해 세우는 것이다. 천상 인간에 아무도 더러운 속임으로 나를 미혹하게 할 자는 없다. 여래는 음욕분노․우치의 어지러움을 끊음으로써 다른 더러움이 없고 모든 결박을 멸했으며 80의 번뇌를 떠나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었다. 그러므로 3계에 나를 혹하게 할 자가 없거늘 보잘 것 없는 환사가 어찌 짝할 수 있겠는가?
佛告目連:“汝且安默,如來深究一切群民長夜迷惑,因化立之以平等行,天上世閒無能施穢欺惑佛者。如來以斷婬、怒、癡、亂,無餘瑕垢滅諸縛著,離八十垢得不起法忍,以故三界無能惑者,一小幻士何所能諧?
여래는 일체 법이 환(幻)임을 밝게 알아 스스로 최상의 정각을 이루고, 모든 인간 세계 및 그 본원(本源)을 부리고 교묘한 환의 허물을 다 부리기 때문에 인현은 끝내 부처님의 환술과 같을 수가 없어서 백배․천배․무수 억 배로 핑계하거나 비유할 수 없느니라.”
如來解暢一切法幻,自致最正覺,使諸人界及其本原,皆使巧妙幻過,仁賢終不能與佛幻術等,百倍千倍無數億倍,不可假託以爲比喩。”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환사 인현이 과연 요술로 3천대천세계를 장엄하여 깨끗하게 할 수 있겠는가?”
목건련은 답하였다.
“이 요술은 할 수 없습니다.”
佛告目連:“於意云何?幻士仁賢寧能莊嚴化三千大千世界令淨好不?”對曰:“唯然,此幻不能。”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여래는 마음을 내자마자 3천대천세계를 장엄하여 한 털구멍에 넣을 수 있지마는 부처님의 환술은 끝내 혹하게 할 수 없다.
佛言:“如來發意之頃,能使三千大千世界,嚴淨入一毛孔,佛之幻術終不惑。
가사 10방의 불국에 수람과 단절이라는 바람이 3천대천세계를 부수었다가 다시 본래대로 돌리고 추측과 주지라는 바람이 세간을 돌리며 파율사나라는 바람이 33천을 돌아다니고 최파라는 바람이 수미산을 무너뜨리며 구나라는 바람이 큰 불을 일으켜 이 겁화(劫火)를 일으켜 천지를 태우며 치화라는 바람이 3천대천세계를 일시에 태우고 요쇄라는 바람이 큰 비를 내리며 고갈이라는 바람이 수재의 변을 제거한다 하자.”
正使十方佛國,有風名隨嵐及斷截風,飄壞三千大千世界,還復如故;有風名追逐風、住止風,旋轉世閒;有風名曰波栗屠那,迴行三十二天;有風名曰摧破崩壞須彌;有風名曰拘那,起大火上至三十二天;有風名曰常來,起劫燒天地;有風名曰熾火,使三千大千世界一時俱然;有風名曰澆灑,起大雨;有風名曰枯竭,除盡水災之變。”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이런 바람 이름을 대강 말했지마는 이런 바람이 겁에서 겁을 지나 끝날 때가 없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과연 어떤 사람이 허공에서 이런 바람 속에 앉아 4기(器)의 행을 지으면서 이 모든 바람을 한 겨자 속에 넣되 그 겨자가 걸림도 없고 부서지지도 않아서 모든 천인들로 하여금 다 안온하고 즐거워하면서 놀라지 않게 하겠는가? 여래의 환법은 이보다 나아 끝이 없나니 일각지(一覺地)에 반연하는 제자의 미칠 바가 아니니라.”
佛告目連:“今我粗說是諸風名,從劫過劫無有竟時。云何目連?寧有人能止虛空,坐諸風之中作四器行,使此諸風入一芥子,其於芥子無所罣㝵亦無毀害,令諸天人安隱娛樂而不驚怖?如來幻法而復過是無有極也,非弟子、緣一覺地之所能及。”
이에 목건련은 회중 앞에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예, 세존님, 저희들은 좋은 이익을 얻었습니다. 왜냐 하면 세존님의 위신은 외외하오며 이런 존귀함은 그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於時,目連在衆會前,稽首作禮白佛言:“唯然,世尊!我等爲得善利。所以者何?世尊威神巍巍如是大尊無極。”
여래의 이 변화를 들은 인민들은 기뻐하면서 좋은 이익을 얻고 최상의 보리심을 내며 일시에 기뻐하여 그 공덕이 무량하였다.
其人民聞佛如來此變化者,歡喜踊躍逮得善利,便發無上正眞道意,一時欣然功德無量。
이에 환사 인현은 왕사성에 들어가 제 집으로 돌아갔다. 그 날 밤에 성내의 물구덩이 더러운 곳에 요술을 부려 큰 강당을 짓고는 비단 꽃 일산을 달고 당기 번기를 일으키고 현지는 평정한데 수목이 무성하며 병과 보배 그릇과 향로․제기 등에 온갖 꽃과 향을 흩었다.
於是幻士仁賢入王舍城還歸到家,卽其日夜,於城內穢惡流聚最不淨處,化於其中作大講堂,懸繒華蓋而起幢幡,現地平正,樹木茂盛,甁罃、珍器、香爐、鐙錠散衆華香。
강당 곁에는 8천 그루의 보배나무를 심어 가지와 잎과 꽃의 열매가 여러 빛깔로 향기로우며 낱낱나무 밑에는 여러 비구들을 위해 사자좌를 펴고 강당 중앙에는 특히 여래님을 위해 사자좌를 만들었는데 온갖 보배로 발이 되고 장식이 무량하며 높이는 4장 9척이요 그 자리 4면에는 네 그루의 보배나무를 세우고 온갖 맛의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공양하는 사람은 5백 명인데 단정하고 깨끗한 보배로 몸을 장식하였다.
於講堂傍殖八千寶樹,枝、葉、華、實衆色馚馥,一一樹下爲諸比丘敷師子座。於講堂中央,特爲如來設師子座,衆寶爲足挍飾無量,高四丈九尺。於座四面化四寶樹,作百味之饌若干種食,其爲供者合五百人,端正皎潔寶瓔珞身。
환사 인현이 이렇게 만들었을 때, 4천왕이 그 환사가 요술로 지은 강당으로 가서 인현에게 말하였다.
“매우 훌륭합니다. 인자(仁者)님, 곧 여래님을 이 강당에 청해 공양하십시오. 그리고 과연 내게 그 모자람을 돕기에 허락하겠습니까? 나는 궁실(宮室)을 지어 여래님께 바치고 싶습니다.”
幻士仁賢化作是已,時四天王往詣幻士所化作講堂,謂仁賢言:“甚善仁者!乃請如來於此講堂而供養佛,寧可聽我次助所乏,欲造宮室以奉如來。”
이에 인현은 더욱 기뻐하여 미증유를 얻어
“천왕님,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였다. 4천왕은 곧 변화로 궁실을 세우니 극히 아름답고 묘해 인현이 세운 것은 압도당해 나타나지 않았다.
於是仁賢益用踊躍得未曾有,報:“聽。天王!宜知是時。”四天王卽化作立宮室極妙姝好,仁賢所建厭蔽不現。
그때 제석천은 3만 2천의 부인과 함께 인현의 강당에 가서 그에게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참으로 좋은 이익을 얻었습니다. 곧 여래님을 이 강당에 청해 공양하십시오. 과연 내게 그 모자람을 돕기를 허락하시겠습니까? 궁실을 지어 여래님께 바치고 싶습니다.”
時,天帝釋與三萬二千夫人,俱到幻士講堂,謂仁賢言:“善哉快乎!眞得善利,乃請如來於化飾講堂以供養佛,寧可聽吾給助所乏,欲造宮殿以奉如來?”
이에 인현은 더욱 기뻐하여 미증유를 얻고 가만히 의심하면서도
“제석천님,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였다.
於是仁賢!倍復踊躍得未曾有,私自疑怪?報:“聽。帝釋!宜知是時。”
제석천은 곧 변화로 큰 전관(展舘)을 지었는데 도리천의 최승궁(最勝宮)보다 더 훌륭하였다. 그리고 변화로 보배나무를 심었는데 저 아르다운 이질구나무보다 훌륭하여, 인현과 4천왕의 강당과 궁실의 여러 아름다운 나무들을 압도하였다.
天帝卽化作大殿館,踰於忉利最勝之宮,化殖寶樹,超乎已質拘者之樹姝好,厭蔽仁賢、四王所立講堂、宮室、所挍諸樹。
인현은 가만히 생각했다.
‘세존님은 비범하시다. 이런 신묘한 존귀한 하늘과 천자들이 큰 공양을 일으켜 여래님께 봉사한다. 나는 지금 차라리 내가 세운 강당을 없애 버릴까? 아주 잘못이다. 어찌 차마 이것을 저 어르신께 올릴 수 있겠는가?’
仁賢則自念言:‘世尊非凡,乃有如是神妙尊天及諸天子,興大供養奉事如來,今我寧可沒滅我之所建,大爲迷謬,豈忍以此擧向上尊乎?’
그리하여 인현은 그것을 없애려 하였으나 없어지지 않았으므로 온갖 술을 다 써 보았다. 그러나 없앨 수 가 없었다. 그리하여 요술로 만든 음식과 강당과 장엄한 사자좌들은 영원히 진실하여 변화시킬 수 없었다.
於是仁賢欲沒所幻而不能滅,遍作諸術亦不可滅,幻食供助講堂嚴飾師子之座,永爲眞實而不可變。
인현은 놀라고 괴상히 여겨 가만히 생각했다.
‘옛날에는 요술을 부려 나타나라 하면 곧 나타나고 사라지라 하면 곧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은 여래님을 위해 변화로 만든 공양을 변개시킬 수 없구나.’
仁賢驚怪,心自念言:‘往昔所言,幻現則現、欲沒卽沒,今爲如來變作化供而不能改?’
이에 제석천은 인현의 생각을 알고 곧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부처님을 위해 요술로 만든 장엄한 공양 거리를 고치지 못하거든 본래로 두십시오. 그 때문에 여래님을 뵈옵고 기뻐하여 항상 안온하고 열반의 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於是天帝知仁賢所念,便告言:“如卿爲佛化作嚴淨供具,不能變復使如本,故其見如來發歡喜心,常得安隱至泥洹道。”
그때 인현은 매우 기뻐하면서 이른 아침에 가서 부처님께 사뢰었다.
“공양 때가 되었습니다. 왕림하십시오.”
爾時,仁賢踊悅怡懌,晨旦白佛:“飯時已到,願可自屈?”
이에 세존님은 가사를 입고 바리때를 가지고 보살과 비구 권속들에게 둘러싸이어, 인현의 장엄한 강당으로 가셨다. 부처님께서는 곧 신통을 부려, 인현이 알고 만든 사자좌에 앉으시자, 4천왕도 그가 만든 궁실의 사자좌에 앉으신 여래님을 보았다.
於是世尊!著衣持鉢,與諸菩薩及比丘僧眷屬圍繞,往詣仁賢莊挍講堂。佛時變化,使仁賢知坐所爲立師子之座,四天王亦見如來坐所造宮師子之座。
제석천은 가만히 생각했다.
‘여래님은 내가 신통으로 만든 장엄한 자리에 앉으셨다.’
帝釋自念:‘如來坐我所化莊嚴之座。’
그때 왕사성의 모든 법을 믿지 않는 무리와 삿된 외도들은 교만한 마음과 성내는 마음을 버리고 모두 장엄한 강당으로 가서
“오늘은 구담이 나타내는 감응을 다 같이 보자.”
고 하였다.
時,王舍城諸不信法衆邪異道,棄自貢高及瞋怒心,一切共詣莊嚴講堂:“今日共觀瞿曇所現感應。”
그리고 도법이 청정한 남녀들도 다 기뻐하며 강당으로 가서
“오늘 우리는 여래․지진․등정각님을 뵈옵고 그 사자후를 들으며 그 신통을 보리라”
고 하였다.
其邊道法淸淨士女,悉共喜踊往詣講堂:“今日我等當見如來、至眞、等正覺,聽師子吼,睹其變化。”
이에 인연은 교만을 버리고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는 부처님께 사죄하였다.
“여래님, 저의 죄는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여래님을 어지럽히기 위해 요술로 이 음식을 만들어 공양하고 모시는 것이며 저 사자좌도 다 요술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뉘우치고 이 화현(化現)을 없애려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거룩한 뜻으로 가엾이 여기고 용서하시어 이 모든 시설을 변개시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於是仁賢蠲除自大,稽首佛足,白世尊言:“唯願如來原我罪過,本愚所作欲亂如來,化作此食、助供侍使,師子諸座亦皆化作。心中念悔,欲得滅沒所可化現。佛爲聖尊矜恕爲意,諸所施造令不復變。”
이에 부처님께서는 인현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인민과 그 소유는 다 환화(幻化)와 같고 앉아 있는 모든 비구도 환화와 같으며 내 몸도 슬기의 변화요 이 3천대천세계도 또 환화와 같아서, 이것은 다 인연으로 말미암아 각각 모여 있는 것이다.”
於是佛告仁賢:“一切人民及其所有皆如幻化,諸坐比丘亦如幻化,如我之身亦是慧幻,此三千大千世界則復爲化,因緣罪福一切諸法亦如幻化,皆由因緣各在合會。”
그리고 곧 변화로 된 음식을 가지고 나누어 주셨다.
이에 인현 환사와 범왕․제석․4천왕과 공양을 돕는 모든 사람은 변화된 음식을 들고 세존님과 비구들에게 공양하였다.
便持所化飯食之具分布施設。於是幻士仁賢、梵王、帝釋、四天王、諸助供者,擎化食供養世尊及比丘衆。
이에 현자 대가섭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於是賢者大迦葉說偈言:
지금 만든 자리와
또 거기 앉은 사람
뜻이 고요하고 평등하나니
훌륭하여라, 무상(無上)에 보시하네.
如今所設座,
及其處上者,
定意爲平等,
善哉施無上。
사리불이 게송을 외쳤다.
舍利弗頌曰:
지금 공양하는 마음과
그것을 받는 이의 뜻
이렇게 늘 평등히 깨닫나니
이것은 빠르고 다한 신시(信施)이다.
如今供具心,
及其受者意,
如是常等覺,
是疾畢信施
수보리가 게송을 외웠다.
須菩提頌曰:
이 보시는 보시 됨 없고
받는 이도 받는 것 없다.
그 누구나 이렇게 행하면
이것을 다한 신시라 한다.
是施無所施,
受者無所受,
其有應是行,
是爲畢信施。
아난이 게송을 외웠다.
阿難頌曰:
이 보시를 존승(尊乘)이라 하고
먹는 사람도 마음이 없다.
몸과 마음이 집착 없나니
이를 세상의 중우(衆祐)라 한다.
是施爲尊乘,
食者無有心,
其身意無著,
是爲世衆祐!
광영보살이 말하였다.
於是光英菩薩曰:
비유하면 저 환사
인현이 이 변화를 나타내는 것과 같이
모든 세상이 또한 이와 같으니
어리석은 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譬如彼幻士,
仁賢現此化,
一切世亦然,
愚者不及解。
광조보살이 말하였다.
光造菩薩曰:
비유하면 나무 밑에 앉은 이들
다 허깨비로 된 것처럼
모든 허깨비도 또한 공이어서
다 평등해 차이가 없다.
譬如坐樹下,
悉以幻化作,
所有幻亦空,
適等無差異。
사자보살이 말하였다.
師子菩薩曰:
사자 외침이 들리지 않을 때
작은 짐승들 숲속에서 울다가
사자가 마침 부르짖으면
10방으로 달아나 다 숨는다.
不聞師子吼,
小獸樹閒鳴,
師子適震吼,
馳走竄十方。
인현 그대는 원한이 있어
요술로 사람을 미혹시키지만
여래님이 나타내는 신통은
어떤 악마도 당하지 못하네.
仁賢卿有恨,
以幻惑人民,
如來所現幻,
衆魔不能當。
사자의 보살이 말하였다.
師子意菩薩曰:
이 음식은 요술로 된 것
공양하는 이도 또 허깨비다.
먹는 이도 다 허깨비거니
훌륭하다, 무상(無上)에 바치네.
是飯食化作,
供助者亦幻,
食飯者皆化,
善哉祠無上。
자씨보살이 말하였다.
慈氏菩薩曰:
기름 제호의 불을 붙이면
그 밝음은 더욱 성하다.
인현의 요술은 이와 같은데
부처님 신통은 널리 나타나네.
油醍醐澆火,
其明益熾盛,
仁賢幻如是,
佛幻爲普現。
연수동자가 말하였다.
軟首童子曰:
비유하면 본래 이 곳이
모두 허깨비로 지어진 것처럼
인현이 일으키는 요술은
여러 사람을 속여 호린다.
譬如本此處,
一切皆化造,
仁賢所興幻,
欺誑惑衆人。
일체의 법이 이와 같아서
본래 모두 다 평등하건만
그러한 줄을 깨닫지 못하고
우치로 생사 속을 헤매네.
一切法如是,
本爲悉平等,
不覺了當來,
愚癡行生死。
이에 세존은 인현을 교화하기 위하여 그 강당 동쪽에 신통으로 궁전을 짓고 거기 장자를 있게 하여 인현에게 말하였다.
“지금 무엇 하오?”
인현은 말하였다.
“나는 사문 구담님과 그 비구승을 공양하고 있소.”
장자는 말하였다.
“그런 말 하지 마시오. 지금 세존님은 비구들과 함께 아사세왕의 궁전에서 공양하고 계시오.”
그때 인현은 부처님의 위신을 받들어 부처님과 비구들이 왕궁에서 공양하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於是世尊欲勸化幻士仁賢,則於講堂之東化造殿舍,長者處其中,謂仁賢曰:“今何所作?”答曰:“我供養沙門瞿曇及比丘僧。”長者答:“幻士!勿說是言,今者世尊在王阿闍世宮而食,及比丘衆。”時仁賢承佛威神,見佛及僧在王宮食。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다시 변화로 장자를 만들어 강당에 들어가 인현에게 물었다.
“지금 무엇하고 있소?”
인현은 답하였다.
“지금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공양하고 있소.”
장자는 말하였다.
“그런 말 하지 마시오. 지금 부처님과 비구들은 외도들에게 걸식하고 계시오.”
때에 인현은 부처님의 위신을 받들어 부처님과 대중이 외도들에게서 걸식하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時,佛復化作長者來入講堂,問仁賢曰:“今何所作?”答曰:“今供佛及僧。”長者答曰:“勿說是言,今佛及僧遊於異道分衛。”時仁賢承佛威神,見佛之衆於異道分衛。
다시 장자는 인현에게 가서 물었다.
“지금 무엇 하고 있소?”
인현은 말하였다.
“부처님과 대중에게 공양하고 있소.”
장자는 말하였다.
“그런 말 하지 마시오. 부처님께서는 지금 기역의왕(耆域醫王)의 후원에서 4부 대중을 위해 설법하고 계시오.”
인현은 부처님의 위신을 받들어, 부처님께서 기역의 후원에서 설법하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復有長者到仁賢所曰:“今何所作?”答曰:“供佛及衆。”長者答曰:“勿說是言,今世尊在耆域醫王後園,爲四部衆講說經。”道仁賢承佛威神,見佛在耆域後園,爲四部衆講法。
때에 제석천이 인현에게 말하였다.
“지금 무얼 하고 있소?”
인현은 답하였다.
“나는 부처님과 대중에게 공양하고 있소.”
제석이 말하였다.
“그런 말 하지 마시오. 지금 여래님은 도리천의 주야 나무 밑에서 천인들을 위해 설법하고 계시오.”
인현은 부처님의 위신을 받들어, 부처님께서 도리천에서 천인들을 위해 설법하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時天帝釋謂仁賢曰:“今何所作?”答曰:“我供佛及衆。”帝釋答曰:“勿說是言,今者如來在忉利天晝夜樹下爲諸天人講法。”仁賢承佛威神,見佛在忉利天爲天人說法。
그리고 환사 인현은 그 여러 나무 위를 보았다. 즉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에 다 보배자리가 있고 여래님은 상호를 구족하고 대중에게 둘러싸이어 변화로 된 사자좌 위에 계셨다. 4천왕과 제석․범왕도 그 사자좌에 앉아 계시는 여래님을 보았으며 왕사성의 여러 거리와 골목과 집에서도 다 여래님을 보았는데, 그 모든 여래님 앞에서 인현이 죄를 뉘우쳐 스스로를 발로 차는 것을 보았다.
幻士仁賢見諸樹上,枝、葉、花、實皆有寶,座如來相好具足,僧衆圍繞,在諸化師子座上。四天王、帝釋梵王,而化師子座皆見坐如來;幷王舍城諸街、里、巷、館、宇,皆見如來遍諸佛世尊前,皆見仁賢悔過自韙。
그런데 그때 인현이 보는 것은 다만 여래님 뿐이요, 다른 것은 보지 못했다. 인현은 기뻐하여 곧 선심을 내었고 기뻐함으로써 불의(佛意)삼매를 얻었다가 그 삼매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께 게송으로 물었다.
時,仁賢目之所睹,不復見餘但見如來,幻士喜踊卽生善心,用歡喜故得佛意三昧,從定意起,叉手於佛前,以頌問佛曰:
나는 지금 보나니
부처님께서는 신족으로
생각하자마자
여러 부처로 화하네.
今我睹見,
如來神足,
發意之頃,
化若干佛。
그 수는 백 천인데
이 한계 다시 지나
강의 모래 같나니
부처님도 그러하네.
其數百千,
復過是限,
若江河沙,
諸佛如是。
나는 본래 자칭하되
환술을 널리 배워
이 염부제에서는
같을 이 없다 했네.
我本自謂,
廣學幻術,
於閻浮利,
無與等者。
오늘에야 보오니
부처님의 신족은
계교나 비유로도
견줄 수 없네.
今日觀見,
佛之神足,
計挍譬喩,
不可爲比。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
다른 것은 안 보이고
두루 보나니 모든 부처님의
상호의 그 장엄뿐이네.
今我目睹,
不復見餘,
普見諸佛,
相好莊嚴。
그러므로 나는 지금
법왕님께 여쭙나니
이 부처님 얼마인가
말씀하여 주소서.
是故今我,
欲問法王,
何許是佛,
唯願尊說。
어떤 분께 봉사해야
제일의 공양 되며
어떤 분께 보시해야
그 공덕 가장 큰가.
奉事何佛,
爲第一供,
施何所佛,
功德最大。
어떤 것이 청정하여
보시 받은 세존인가.
원컨대 말씀하시어
모두 고루 보게 하소서.
何所淸淨,
受施衆祐,
願爲說是,
平等普見。
나는 지금 자수(自首)하나니
내가 범한 모든 허물
내 몸으로 부처님
세웅도사(世雄導師) 시험했네.
我今首過,
一切所犯,
身所試佛,
世雄導師。
그 높은 어른님께
공경하지 않았나니
이것은 자기(自棄)로서
소원을 못 얻었네.
其於尊人,
不行恭敬,
是爲自棄,
不得所願。
하늘들은 들었거니와
또한 저 제석천과
여기 모인 이 대중들
모두에게 다 알리네.
諸天已聞,
及與帝釋,
於是衆會,
一切普達。
그 때문에 나는 지금
보살의 마음 내고
저 일체 중생들을
다 해탈하게 하리.
我今爲發,
菩薩之心,
用一切故,
今悉度脫。
나는 지금 일체 중생
그 모두들 초청하여
배부르게 감로 먹고
안온케 하려 하네.
今我爲請,
一切衆生,
皆使飽滿,
甘露安隱。
어리석은 잠든 자들
빨리 깨닫게 하고
기특한 저 지혜의
등불을 얻게 하리.
令睡瞑者,
疾得覺悟,
逮得奇特,
智慧燈明。
누가 능히 신통 부려
이와 같이 나타내어
그의 하는 말을 듣고
안정 유연하게 하리.
誰能化變,
如是所現,
聞其所言,
安定柔軟。
그 슬기 걸림 없고
도의 행이 최상이며
그는 마음 안 내나니
도의 뜻이 가장 높네.
其慧無㝵,
導行最上,
彼不生心,
道意最尊。
원컨대 나를 위해
미묘한 도행 말씀하소서.
어느 어른 받들어야
불도를 빨리 얻으리.
願爲我說,
微妙道行,
爲奉何尊,
疾逮佛道 云何如是。
어쩌면 이와 같이
구족한 행 다 갖추어
그 어떤 제자로도
미치지 못하게 되라.
爲具足行,
一切弟子,
所不能及。
행함이 없는 그 행과
덕이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그 정의를
자세히 들을 수 있으리.
無行之行,
德爲何類,
正義云何,
而諦聽聞。
어떤 것이 즐거움과
예절과 경행(經行)이며
어떻게 생김에서
의심이 없으리까.
何謂所樂,
禮節經行,
云何而發,
所生無疑。
어떻게 정진하고
듣기 싫음 안내며
어떻게 견고한
그 들음을 얻을까.
云何精進,
聞受無厭,
何時逮得,
堅固聽聞。
그 법의 가르침을
어떻게 강설하며
어떤 것을 빛나는 법
사람을 다 비춘다 하는가.
云如之何,
講說法教,
何謂光耀,
法皆照人。
어떻게 도를 베풀고
인자한 행 얻으며
다름이 없는 마음에
어떻게 설 수 있을까.
云何施道,
而得慈行,
云何得立,
無異之心。
절이란 무엇이며
도처에 다 있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가 견고하리.
何謂祠祀,
所在充備,
於衆人民,
爲堅固慈。
어떻게 선지식을
항상 받들어 배우며
어떻게 나쁜 벗을
멀리 떠나야 하리.
云何善師,
當奉習效,
云何惡友,
而當遠離。
어떻게 하면 나아가
세존님을 뵈옵고
이미 만나 뵙고는
어떻게 공양할까.
云何得往,
見佛世尊,
已得見値,
云何供養。
어떤 공부하여야
상존(上尊)이 되며
어떻게 배워
지혜 얻을까.
當學何學,
得爲上尊,
云何精學,
而得智慧。
어떻게 하면
계율이 청정하며
어떻게 하면
삼매를 얻을까.
云何於戒,
而爲淸淨,
云何逮得,
三昧定意。
무엇을 시설하여
장엄한 행 이루고
법이 아닌 길을
어떻게 버릴까.
何所施設,
成嚴淨行,
云何捨離,
非法之義。
어떻게 하면 도에서
그 뜻을 항복받고
악마의 욕심과
결박을 벗어날까.
云何於道,
而伏其意,
示現降魔,
欲塵繫縛。
어떻게 듣고 받아
경의 뜻을 생각하며
그 마음이 중생들을
버리지 않을까.
云何聽受,
思惟經義,
其心不捨,
一切衆生。
어떻게 하면
일체 중생 교화하며
견고히 덕 받들고
행하는 곳 없을까.
云何教化,
人物群黎,
堅固奉德,
無所行處。
어떻게 하면 사람에 대해
평등한 행과
좋은 방편과 사랑하는 마음과
그 자취를 버리지 않을까.
云何於人,
而不捨行,
善權慈心,
仁愛之迹。
어떻게 하면
신통을 구족하며
무엇을 의지라 하고
도의 마음의 특존(特尊)이라 하는가.
云何神通,
而得具足,
何謂意志,
道心尊特。
어떻게 하면 일체의
그 소원을 이루고
총지의 법인을
분별할 수 있을까.
云何一切,
得成所願,
逮得分別,
摠持法忍。
변재가 청정하고
심오한 뜻에서
물러나지 않으며
제일의를 잘 알까.
辯才淸淨,
行不退轉,
深奧之意,
解義第一。
어떻게 하면 여기서
바라밀다를 얻고
이미 도를 깨닫고는
미묘하게 환히 알까.
云何於是,
得極過度,
已得道證,
微妙曉了。
일체를 다 아는 것
이것이 불도인데
거기 굳게 머물러
퇴전하지 않을까.
一切皆知,
是佛道行,
於道堅住,
而不動轉。
원컨대 말씀하소서.
가장 묘한 이치와
모든 신통의 슬기와
바다와 같은 밝은 지혜를.
唯願說是,
上妙之義,
諸通之慧,
明智如海。
세존님은 가엾이 여겨
나를 위해 말씀하소서.
나는 생각하고 깨달아
견고히 받들어 행하리.
世尊愍傷,
願爲我說,
我思逮得,
堅固奉行。
이에 부처님께서는 환사 인현을 위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於是佛爲幻士仁賢說偈曰:
그 누가 일체의
법의 교화를 알면
그는 곧 억 백 천의
부처를 교화하라.
其能解知,
一切法化,
彼則能化,
億百千佛。
그 교화는 능히
억 천의 불국에 이르러
가는 곳마다
억의 중생 제도하리.
亦能化至,
億千佛國,
所至到處,
度億群生。
그대 인현은
형색 없음으로써
형색을 나타내어
다함없는 수를 본다.
如卿仁賢,
以無形色,
能示現色,
睹無央數。
그것은 일어남 없고
사라짐도 없으며
오는 것도 볼 수 없고
가는 곳도 또한 없다.
彼無有起,
亦無有滅,
不見有來,
亦無去處。
이와 같이 인현아
그 부처와 정사(正士)가
부처 몸과 비구를
변화로 나타내지만
그것은 오는 곳 없고
있는 곳도 못 보며
지혜로 생각할 수 없나니
이것이 부처님 신족이니라.
如是仁賢,
其佛正士,
化現佛身,
及比丘僧,
無所從來,
不見住處,
智不思議,
是佛神足。
비유하면 요술과 같나니
그 인연은 하나로서
코끼리와 말과 수레와
걸어 다니는 사람 나타나지만
앉아 있는 이도 없고
오는 사람도 없어서
이것은 뒤바뀐 일이건만
사람들은 진실이라 한다.
譬如所幻,
因緣等一,
現有象馬,
車步行人,
無有坐者,
亦無所至,
是顚倒事,
人謂爲正。
부처님도 이와 같아서
색신도 없고
형상도 없으면서
안 가는 곳이 없다.
諸佛如是,
無有色身,
亦無形像,
不行無處。
제 몸을 보는 사람
그 있는 곳 찾다가
못 깨달음 깨달으면
온갖 생각 제거한다.
自見身者,
求索處所,
寤不覺者,
除去衆想。
부처님께서는 색모(色貌) 없고
상호를 떠났으며
종성을 일으키지 않고
볼 수 없는 것 본다.
佛無色貌,
離於相好,
不起種姓,
觀不可見。
음성도 없고
말도 없으며
심의식 없고
모든 생각 떠났다.
無有音聲,
及以言說,
無心意識,
離所思念。
부처님의 깨달음
실로 왔다 하지만
3세가 모두 비어
일어나는 생각 없다.
如佛所覺,
實爲以來,
三世悉空,
想無所起。
항상 생각 내지 않고
본래 깨끗함을 보고
그에게는 법이 없고
그 덕은 다 길(吉)하다.
常不生想,
已見本淨,
彼無有法,
其德皆吉。
부처님이 내는 것은
본래 깨끗함 무수하나
그에게는 4대(大) 없고
또한 음개(陰盖)도 없다.
佛之所生,
本淨無數,
無有四大,
亦無蔭蓋。
그의 머무름은
움직임도 집착도 없어
밝게 알 수가 없다.
지혜의 눈으로
내가 깨닫는 것은
부처를 보기 위해서이다.
彼之所住,
不動無著,
不能曉了,
智慧之眼,
如我所覺,
爲得見佛。
그 사람은 일찌기
세존을 못 보았다.
보아도 봄이 없음
도사를 보기 위해서이니
비유하면 손을 들어
허공을 더듬음 같다.
其人未曾,
得見世尊,
見無所見,
爲睹導師,
譬如擧手,
探捉虛空。
그대 인현이 보는
모든 부처님
다 한 이치로서
평등한 정(定)이니라.
如卿仁賢,
所見諸佛,
悉爲一義,
當平等定。
나도 또한 그와 같고
다른 부처님도 다름이 없어
일체 바른 슬기는
그 상이 평등하다.
我亦如是,
餘佛無異,
一切正慧,
其相平等。
그 계율 청정하고
삼매가 평등하며
선정과 지혜와
해탈도 평등하다.
其戒淸淨,
三昧平等,
定意智慧,
解脫平等。
이른 슬기 등에서
지견을 초월하는
일체의 모든 힘이
부처님의 명덕(明德)이다.
於是慧等,
度知見事,
一切諸力,
佛之名德。
공의 이치 평등하고
도행(道行)의 자취와
일체의 모든 법은
머무름에 걸림 없다.
空義平等,
及道行迹,
一切諸法,
所住無㝵。
일체는 요술과 같아
본래 깨끗하고 해탈이어서
성취할 것이 없고
일으키는 장엄이다.
一切如幻,
本淨解脫,
無所成就,
所起嚴淨。
인현은 알아야 하네.
한 부처님께 공양함이
10방의 부처님께
공양함이 되는 것을.
여기서 이와 같이
법이 평등하므로
여러 가지 구하여도
끝내 얻지 못하리라.
仁賢當知,
供一佛已,
爲已奉事,
十方諸佛,
於此如是,
法平等故,
求索若干,
終不可得。
일체를 깨끗이 하는
사람들의 신시(信施)와
일체의 보시들은
다 큰 열매를 얻는다.
一切能淨,
人之信施,
一切所施,
皆大德果。
일체가 청정하고
법이 다 평등하며
부처는 여럿 없고
또한 차특(差特)도 없다.
一切淸淨,
起法平等,
佛無若干,
亦無差特。
일체가 모두
진실로 부처거니
뒤바뀐 행 있으면
부처님을 못 보리라.
一切皆悉,
審爲是佛,
有顚倒行,
則不見佛。
지금 이 모든 부처
나타내는 형상은
그 모두 평등하여
있는 곳 없느니라.
今是諸佛,
所示形像,
一切皆盡,
平等無處。
그대 인현과 같이
부처를 본다 하지만
비유하면 그대가
요술로 만든 것 같다.
如卿仁賢,
念所見佛,
譬若如仁,
所造化作。
비유하면 5음(陰)을 보라.
그 또한 이와 같나니
저 모든 번뇌와
우치로 집착한다.
喩觀五陰,
亦當如是,
凡著諸蓋,
及與愚癡。
그러나 그것은 생(生)이 없고
실(實)이 있지 않으며
있는 곳이 없으며
또한 세워질 것도 없다.
其是無生,
不實無有,
於此無處,
亦無所立。
이것은 볼 수 없고
또한 색도 없나니
자세히 이것 보면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다.
是不可見,
亦無有色,
諦觀是已,
不得久住。
5음(陰)도 그러하여
이에 요술 같건만
중생들은 다투어
제 신상(身相)을 탐한다.
五陰自然,
於是如幻,
衆生諍訟,
自貪身相。
상이 없는 상으로서
나타날 수 있는 상인데
불도를 바로 깨달으면
멀고도 다시 멀다.
無相之相,
所可現相,
正覺佛道,
遠如復遠。
허망한 법에
온갖 생각 일으키므로
온갖 인연으로
무형의 나무 낸다.
虛妄之法,
起衆想處,
生衆因緣,
無形之樹。
온갖 일들과
갖가지 뜻 내나니
모든 수상(受想) 끊으면
이것들은 본래 없다.
造發衆事,
若干種意,
斷諸受想,
是爲本無。
누구나 그 인연과
그 지어짐을 알면
그는 곧 법을 알아
욕심을 떠나리라.
其知因緣,
及所作爲,
彼卽了法,
逮得離欲。
욕심의 법 떠나면
곧 진여를 알고
곧 도를 보게 되어
그 눈이 청정하리.
離欲法已,
卽識知如,
卽得見道,
其眼淸淨。
부처님께서 이 게송을 외우시자 환사 인현은 유순법인(柔順法認)을 얻고 5천인은 미증유(未曾有)를 얻어 모두 최상의 보리심을 내었으며 2백 천인은 번뇌를 멀리 떠나 법눈이 깨끗해졌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변화의 공양을 드신 뒤에 인현의 신시의 공덕을 증대시키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佛說此偈時,幻士仁賢得柔順法忍;五千人未曾發心,皆發無上正眞道意;二百天人遠塵離垢諸法眼淨。於是佛食化飯已,欲增益仁賢信施之德,便說偈言:
이런 보시의 생각 않은 과보는
받은 사람이 깨끗해지고
일체 보시 건리로
인현의 공덕은 원만하리라.
如是不想報,
所與者得淨,
一切施等具,
仁賢德滿足。
현자 대목건련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원컨대 세존님은 이 허깨비 강당이 이대로 있어 밤낮 이래 동안 사라지지 않게 하소서.”
賢者大目揵連白佛言:“唯願世尊!令化講堂得住晝夜七日,使不滅沒。”
부처님께서는 곧 위신의 힘으로 그 허깨비 강당이 밤낮 이레 동안 서 있어 사라자지 않고 장엄이 본래와 같게 하셨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구들과 보살 하늘․용․귀신․건달바 등과 함께 부처님 처소로 가시어 설법을 듣고 계셨다.
佛卽以威神,令化講堂晝夜七日住立不滅,莊嚴如故。時,佛從坐起,與比丘及諸菩薩、天、龍、鬼、揵沓和,往詣佛所聽受經法。
이에 인현은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하여 그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을 세 번 돌고는 합장하고 서서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님, 보살은 몇 가지 도행으로 주처(住處)를 삼아 도량에 이를 바른 이치를 깨닫습니까?”
이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나는 너를 위해 보살의 도량을 해설하리라.”
이에 인현은 비구들과 함께 분부대로 듣고 있었다.
於是仁賢往到佛所,稽首禮足繞佛三帀,卻叉手住白佛言:“唯世尊!菩薩有幾道行所可住處,得至道場曉了正義?”於是佛告仁賢:“諦聽,善思念之!吾當爲汝解說菩薩道場”於是仁賢!與諸大衆受教而聽。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보살은 네 가지 일로 도에 머물러 도량에 이르게 된다. 첫째는 마음이 항상 신통의 슬기를 익히고, 둘째는 모든 사람을 버리지 않으며, 셋째는 공덕을 구하여 싫증이 없고, 넷째는 모든 법을 보호하여 항상 정진하는 것이나 이것이 네 가지로서 도량에 이르느니라.
佛言:“菩薩有四事住於道,得至道場:一曰、心常習諸通慧;二曰、不捨一切人;三曰、求功德無有厭;四曰、護諸法常行精進;是爲四,得至道場。
또 네 가지 청정한 행으로 도량에 이르게 된다. 첫째는 지키는 계율이 청정하고, 둘째는 뜻과 성품이 청정하며, 셋째는 슬기가 청정하고, 넷째는 소생이 청정한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淸淨,行,得至道場:一曰、護戒淸淨;二曰、意性淸淨;三曰、慧淸淨;四曰、所生淸淨;是爲四。
또 네 가지 법이 있어서 제자 연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첫째는 그 행이 4선(禪)을 지나고, 둘째는 그 마음이 많은 곳에 둘며, 셋째는 중생을 크게 슬퍼하고, 넷째는 변재의 음성이 여러 가지인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法,弟子、緣覺所不能及:一曰、其行過於四禪;二曰、其心多所入;三曰、行大哀於衆生;四曰、辯才之音若干種;是爲四。
또 네 가지 위의의 행이 있다. 첫째는 한가히 있기를 좋아해 시끄러움을 머리 떠나고, 둘째는 그 행에 머물러 중생을 어여삐 생각하며, 셋째는 아첨하는 삿된 행이 없어 아무데도 가지 않고, 넷째는 도행을 구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威儀行:一曰、樂於閑居遠離衆鬧;二曰、往於彼行慈念衆生;三曰、無諛諂邪行,無所至到;四曰、求於道行;是爲四。
또 네 가지가 있어 물음이 걸림이 없어 끊을 수 없는 것이다. 첫째는 신명을 아까지 않고, 둘째는 마음이 항상 기쁘며, 셋째는 교만을 버리고, 넷째는 항상 법을 봉행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所問無㝵無能斷截:一曰、不惜身命;二曰、心常歡悅;三曰、棄貢高;四曰、常奉行法;是爲四。
또 네 가지가 있어 소행이 구족하다. 첫째는 항상 때를 알고, 둘째는 남의 기뻐함을 따라 가르치며, 셋째는 항상 부끄러워할 줄 알고, 넷째는 족함을 아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所行具足:一曰、常知時節;二曰、隨人所喜而現教;三曰、常知羞慚;四曰、知止足;是爲四。
또 네 가지가 있어 뜻과 행이 평등하다. 첫째는 남의 응함을 따라 삼가 가르치고, 둘째는 원하는 큰 지혜를 응하는 대로 가르치며, 셋째는 남의 장난을 말하지 않고, 넷째는 단점을 말하는 이를 보고도 자비로 대하여 원한을 맺지 않음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意行平等:一曰、隨人所應而恭敬教授;二曰、所願大智慧所應教授;三曰、不說他人長短;四曰、見說短者慈心向之,不懷結怨;是爲四。
또 네 가지로 이름과 덕을 구족하여 모두가 듣고 안다. 첫째는 스스로도 깊은 슬기를 배우고 또 남을 가르쳐 주고, 둘째는 누가 와서 물으면 다 가르쳐 의심을 풀어 주며, 셋째는 바른 법을 항상 보호하고, 넷째는 부처님의 뜻과 힘은 다할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名德具足莫不聞知:一曰、自學深慧幷施教他人;二曰、有來問事悉遣彼疑;三曰、常護正法;四曰、佛之意力而不可盡;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많이 들어서 견고하고 충실해진다. 첫째는 법을 들으면 바로 이해하고, 둘째는 들은 법을 들은 뒤에는 즐거워 집에 있기를 원하지 않고, 셋째는 법을 들은 뒤에는 다른 이들을 위해 널리 열어 설하고, 넷째는 법을 들은 뒤에는 현성의 해설을 일으키고 불도의 법을 향하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博聞堅强:一曰、聞法則解所歸;二曰、所聞法樂不貪家懷居;三曰、聞已廣宣咸爲人說;四曰、已聞起賢聖解說,向佛道法;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경법을 강설하니 덕류행(德流行)이라고 한다. 첫째는 먼저 여러 일에 힘을 쓴 뒤에 몸을 지키기 위한 음식을 받으며, 둘째는 이양을 얻으니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자리에 눕고, 약을 먹고, 마력을 항복받는다. 셋째는 밤낮으로 법을 즐기고 모든 하늘에게 보호받게 된다. 넷째는 타인을 가볍게 여기거나 희롱하지 않나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講說經法名德流行:一曰、先辦衆事後受以衛之食;二曰、得利養、衣被、飯食、牀臥、醫藥、降伏魔力;三曰、晝夜樂法爲諸天所護;四曰、不輕嬈他人;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눈부시게 빛나며 몸이 자재를 얻나니, 첫째는 욕망이 적고, 둘째는 만족함을 알며, 셋째는 미묘하고 유연하며, 넷째는 몸이 저절로 법을 받드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光輝衆會身得自在:一曰、少於所欲;二曰、知止足;三曰、微妙柔軟;四曰、身自奉法;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밝은 지혜의 이익을 얻고 법을 설함에 다름이 없으니, 첫째는 생사의 두려움을 없애고, 둘째는 세상에서 공양 받는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셋째는 항상 타인을 보호하고, 넷째는 항상 도에 머물기를 원하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得明慧利說法無異:一曰、拔濟生死之懼;二曰、不希求世供養之利;三曰、常護他人;四曰、常住道願;是爲四。
또 네 가지 일로 반복하여 과보의 선악을 안다. 첫째는 사람을 교화해 도심을 내게 하고, 둘째는 성취한 공을 잃지 않으며, 셋째는 스스로 공경하여 미래의 부처님을 맞이하기를 생각하고, 넷째는 항상 정사(正士) 법사에게 나아가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法,有反復知報善惡:一曰、勸化人使發道意;二曰、不失所成立之功;三曰、自敬念迎當來慈;四曰、常詣正士、法師;是爲四。
또 네 가지 일로 자비를 파괴하지 않는다. 첫째는 인내의 힘을 구족하고, 둘째는 남의 권속을 유혹하지 않으며, 셋째는 큰 슬픔을 버리지 않고, 넷째는 죄와 복의 인연을 모두 벗어나 도에 뜻을 두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이니라.
復有四事不壞慈:一曰、具足忍力;二曰、不誘嬈他人眷屬;三曰、不捨大哀;四曰、求脫罪福因緣,志在于道;是爲四。
또 네 가지 일로 사랑의 행을 익힌다. 첫째는 항상 남과 화합하고, 둘째는 성품과 행이 유순하며, 셋째는 그 행이 원만하고, 넷째는 차츰 도에 가까이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習於慈行;一曰、常合和人;二曰、性行柔順;三曰、其行具足;四曰、所有稍稍近道;是爲四。
또 네 가지 일로 그가 악사(惡師)임을 안다. 첫째는 남에게 조그만 도를 가르치고, 둘째는 남을 시켜 보살심을 파괴하며, 셋째는 명문을 구하게 하여 좋지 못한 법을 더욱 늘리고, 넷째는 공덕의 선법을 멀리 떠나게 하나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知是惡師:一曰、教人爲小道;二曰、教人壞菩薩意;三曰、教求名聞,增益不善之法;四曰、教遠離功德善法;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모든 부처님과 만나게 된다. 첫째는 그 마음이 한결같고, 둘째는 항상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말하며, 셋째는 청정한 계율을 받들고, 넷째는 성품이 본래의 원을 버리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與世尊諸佛共會:一曰、常一其心;二曰、常說諸佛世尊功德;三曰、奉淸淨之戒;四曰、志性不捨本願;是爲四。
또 네 가지 법이 있어 그 덕행을 칭찬하고 보살과 부처님을 공양하되 게으르지 않는다. 첫째는 공양 받는 부처님께서는 가장 높은 중우(衆祐)요, 둘째는 나를 보는 이는 내 행을 본받으며, 셋째는 여래님을 보고는 도의 뜻이 견고해지고 넷째는 32종의 대인상과 그 공덕의 근본을 보는 이로 하여금 좋은 방편을 이루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法,稱其德行,供養菩薩及如來尊,不以懈倦:一曰、所供養佛最尊衆祐;二曰、其有見我亦當效行;三曰、見如來道意得堅固;四曰、得見三十二大人之相其功德本,使成善權;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경의 뜻을 관찰하고 보살의 계행을 배워 지존(至尊)에 이른다. 첫째는 악도(惡道)를 다스리고, 둘째는 항상 선의 도를 세우며, 셋째는 여래님을 공경하고, 넷째는 소원을 구족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觀經義學菩薩戒行得至尊上:一曰、過度惡道;二曰、常勸立善道;三曰、恭敬如來;四曰、具足所願;是爲四。
또 네 가지 배움이 있다. 첫째는 도의 마음을 버리지 않고, 둘째는 일체에 평등하며, 셋째는 바라밀을 구하고, 넷째는 무수한 불법을 보호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學:一曰、不捨道意;二曰、等於一切;三曰、求度無極;四曰、護無數諸佛法使不斷絕;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청정한 계율을 행한다. 첫째는 작은 일을 봉행하고, 둘째는 공의 행을 알며, 셋째는 그릇된 견해와 의심을 범하지 않고, 넷째는 망설이는 마음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行淸淨戒:一曰、奉行少事;二曰、解了空行;三曰、不犯邪見狐疑;四曰、無猶豫心;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의 삼매 종성(種性)이 있다. 첫째는 지방의 말을 익히지 않고 둘째는 마음이 청정하여 집착이 없으며, 셋째는 공덕의 뿌리를 이루고, 넷째는 차츰 불도에 가까이 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三昧種性:一曰、不習土地語言;二曰、心淸淨無著;三曰、成功德本;四曰、稍近佛道;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청백한 행에 응한다. 첫째는 모든 선의 근본을 일으키고, 둘째는 그 마음이 고요하여 집착이 없으며, 셋째는 소견이 그 해탈의 문을 따르고, 넷째는 도의 뜻에 고요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應淸白行;一曰、興諸善本;二曰、其心宴寂,行無所著;三曰、所見隨其脫門;四曰、寂定於道義;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더러운 마음을 버린다. 첫째는 생사를 두려워하여 항상 그 행을 오로지하고, 둘째는 해탈하는 공덕의 근본을 구하려 하며, 셋째는 안온한 것을 짓는 곳이 없고, 넷째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棄瑕穢心:一曰、恐畏生死常專其行;二曰、欲求解脫功德之本;三曰、於安隱無所造立;四曰、心無所起;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그 마음을 항복받는다. 첫째는 한 사람만을 취해서라도 미래 억 백 번을 생사에 머물고, 둘째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알고 그 번뇌를 끊기 위해 그 본원을 따라 설법하며, 셋째는 모든 불선법을 버리고 온갖 선을 봉행하며 도량에 앉아 악마의 군사를 항복받고 최상의 보리를 얻고, 넷째는 소리를 내어 3천대천세계에 알리고 설법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降伏其心:一曰、以一人之故,當來億百千數遊在生死;二曰、知一切人心所念,爲斷塵勞隨其本願而爲說法;三曰、悉棄捐諸不善法,奉行衆善坐於道場降伏魔兵,逮得無上正眞之道;四曰、聲告三千大千世界爲其說法;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악마의 원수를 항복받는다. 첫째는 환법(幻法)의 청정한 행을 관찰하고, 둘째는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으며, 셋째는 슬기 없는 모든 일을 끊고, 넷째는 이미 생사를 떠나 바른 행을 닦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降伏魔怨:一曰、觀視幻法淸淨之行;二曰、逮得不起法忍;三曰、截斷諸無慧之事;四曰、已離生死奉修正行;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경의 뜻을 생각한다. 첫째는 인연으로 법이 일어나고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고, 둘째는 깊은 법을 일으켜 세우되 사람이 없으며, 셋째는 공의 법을 관하여 일으킴이 없고, 넷째는 자연히 생각이 없어 다 고요한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思惟經義:一曰、因緣法起不爲無緣;二曰、興立深法而無有人;三曰、觀視空法而無所起;四曰、自然無想悉爲處寂;是爲四。
또 네 가지 법이 있어 마음에 보살의 법을 버리지 않는다. 첫째는 본래의 원을 버리지 않고 둘째는 고뇌를 참으며, 셋째는 신명을 아끼지 않고, 넷째는 4은(恩)의 행을 버리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心不捨菩薩法:一曰、不捨本願;二曰、忍於苦惱;三曰、不惜身命;四曰、不捨四恩行;是爲四。
또 네 가지 법이 있어 사람을 교화한다. 첫째는 의식(衣食)의 보시를 설법해야 하고, 둘째는 자주 권해 견고하게 하며, 셋째는 안온한 업에 자재하고, 넷째는 남의 선의 근본을 세우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法開化人:一曰、衣食布施應爲說法;二曰、數數勸使堅固;三曰、自在安隱之業;四曰、立他人善本;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법을 분명히 받아 봉행한다. 첫째는 선의 근본이 비록 조그마하더라도 업신여기지 않고, 둘째는 안온한 행을 항상 봉행하며, 셋째는 보시하고 뜻을 길들여 선을 닦아 구족하고, 넷째는 경의 이치를 받들어 일체를 안온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安諦受法而攝奉行:一曰、善本雖少心不輕念;二曰、常奉行安隱行;三曰、布施、調意修善具足;四曰、奉承經義使一切歸趣安隱;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도행(道行)에 들어간다. 첫째는 신통을 얻고, 둘째는 바른 슬기를 성취하며, 셋째는 큰 도심에 있으면서 무량에 깊이 들어가고, 넷째는 모든 지음이 다만 공행(空行)을 익힐 뿐이요 해탈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得入道行:一曰、逮得神通;二曰、成就正慧;三曰、在大道心深入無量;四曰、一切所造但習空行不著解脫;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인자한 마음을 닦는다. 첫째는 허깨비처럼 변화하는 사람을 구하고 둘째는 항상 사람을 깨우치고 인도하여 법을 가지게 하며, 셋째는 허깨비 같은 사람을 해탈시키는 것이요, 넷째는 무위(無爲)를 얻게 하나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奉修慈心:一曰、救護幻化之人;二曰、常開導人使持法;三曰、度脫幻者;四曰、使得無爲;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슬퍼하는 마음 닦는다. 첫째는 악도(惡道)를 위해 친우가 되어서는 도에 들게 하려고 슬픔을 일으키고, 둘째는 죄악을 떠나게 하여 선을 닦게 하며, 셋째는 작은 도를 구하는 자로 하여금 대승에 분발하게 하고, 넷째는 슬퍼하는 자가 있으면 일체 중생을 위하여 그를 거두어 주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奉修哀心:一曰、爲惡道故而作親友,使得入道而爲興哀;二曰、使離惡罪教令修善;三曰、教求小道者勸發大乘;四曰、設行哀者,爲一切衆生而攝此哀;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좋은 방편을 행한다. 첫째는 일체의 마음이 도를 향해 앞에 있고, 둘째는 번뇌의 마음도 버리지 않거늘 하물며 좋은 방편의 마음이겠으며, 셋째는 모든 사람과 온갖 그릇된 견해가 다 법기(法器)가 된다고 보고, 넷째는 모든 법이 다 불법이 된다고 보고는 자연히 최상의 정각을 얻고 온갖 삼매를 생각하고 행하여 좋은 해탈을 얻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行善權方便:一曰、一切心向道意在前;二曰、不捨塵勞心,況善權方便心;三曰、觀一切人及衆邪見,悉爲法器;四曰、見一切法悉爲佛法,自然得最正覺,念行諸三昧逮得善解脫;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신통의 행을 얻는다. 첫째는 항상 그 몸과 본래 깨끗한 뜻을 가뜬하게 하고, 둘째는 마음을 자연히 하여 허깨비와 같으며, 셋째는 지음이 오직 법을 세움에 나아가고, 넷째는 일심을 고요히 하여 어지러움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逮神通行:一曰、常輕其身及本淨意;二曰、輕心自然如幻;三曰、所作唯造立法;四曰、寂然一心而無憒亂;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법구(法句)를 분별한다. 첫째는 생각이 슬기의 뜻을 이루어 장식하지 않고, 둘째는 오직 법을 취하기를 구하고 사람을 취하지 않으며, 멸할 것이 없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셋째는 모두가 다함이 없고 다할 수 없음을 알고, 넷째는 말해진 문자에 집착도 얽매임도 없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得分別法句:一曰、念成慧義不爲嚴飾;二曰、唯求取法而不取人,不起無所滅;三曰、知一切無盡不可盡;四曰、所說於文字無著無縛;是爲四。
또 네 가지가 있어 총지(摠持)를 얻는다. 첫째는 널리 듣기를 싫어하지 않아 항상 법사를 공경하고, 둘째는 항상 정진을 행하여 남에게 설법하며, 셋째는 모든 법구를 깨달아 그 뜻을 잃지 않고, 넷째는 또 여래의 법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逮得摠持:一曰、不厭博聞,常敬法師;二曰、常行精進爲人說經;三曰、曉近一切法句而不失義;四曰、又使入如來之法;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법인(法忍)을 얻는다. 첫째는 제도 되지 않은 이를 제도하고, 둘째는 해탈하지 못한 자를 해탈시키며, 셋째는 모든 법을 즐기고, 넷째는 선한 행을 끊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逮得法忍:一曰、度不度者;二曰、解未脫者;三曰、一切樂法;四曰、不斷善行;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변재를 얻는다. 첫째는 다른 법사의 설법을 듣고는 그 단점을 구하지 않고, 둘째는 법의 뜻을 듣고도 뽐내지 않으며, 셋째는 스스로 칭찬하지 않고, 넷째는 지혜가 적고 배우지 못한 이를 보아도 업신여기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逮得辯才:一曰、見他法師所說,不求其短;二曰、聽採法義,不以貢高;三曰、不自稱譽;四曰、見少智未學不以輕易;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퇴전하지 않는다. 첫째는 음욕과 분노와 우치에서 물러나지 않고, 둘째는 중생의 행에서 물러나지 않으며, 셋째는 모든 불선법에서 물러나지 않고, 넷째는 최상의 정각을 아는 데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行不退轉:一曰、不退於婬怒癡;二曰、於衆生之行不退轉;三曰、於一切不善法而不退轉;四曰、解最正覺而不退轉;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깊은 뜻을 안다. 첫째는 12인연을 알고, 둘째는 스스로 불도를 알아 바를 깨달으며, 셋째는 모든 법은 한 이치인데 그 이치는 다 공한 것이요, 넷째는 불도를 다 아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解深義:一曰、曉十二因緣;二曰、自然解得佛道爲正諦覺;三曰、一切法一義其義悉空;四曰、悉解佛道;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불도를 이루게 된다. 첫째는 계율과 인욕이 청정하고, 둘째는 악도를 깨끗이 제거하며, 셋째는 질박하여 아첨이 없고, 넷째는 좋은 방편대로 하여 그 본행(本行)을 따르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復有四事,得成所願:一曰、戒忍淸淨;二曰、淨除惡道;三曰、質朴無有諛諂;四曰、如善權方便隨其本行;是爲四。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모든 바라밀을 이루어 법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첫째는 한 바라밀로 모든 바라밀에 다 들어가고, 둘째는 좋은 방편으로 모든 사람을 다 일체에 들게 하되 사람도 없으며, 셋째는 모든 법을 보되 다 한 법으로 삼아 모든 욕심에서 떠나고, 넷째는 모든 부처를 보되 다 한 부처로 삼나니, 법신인 까닭에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그리하여 모든 바라밀을 이루어 법에서 물러나지 않느니라.”
復有四事,得成諸度無極不退轉法:一曰、以一波羅蜜悉入諸度無極;二曰、善權使一切人皆入,一切人亦無有;三曰、見一切法悉爲一法,離諸所欲;四曰、見一切佛悉爲一佛,以法身故;是爲四,得成諸度無極不退轉法。
부처님께서 이 네 가지 일의 글귀를 말씀하셨을 때 환사 인현은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고 기뻐 뛰어서, 땅에서 4장(丈) 9척의 허공에 있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환사 인현의 마음속을 아시고 곧 미소하셨다.
佛說四事句時,幻士仁賢得不起法忍,歡喜踊躍在虛空,去地四丈九尺。時,佛見幻士仁賢心所念便笑。
현자 아난이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면서 여쭈었다.
賢者阿難以偈讚佛而問曰:
여러 특수한 무량한 위엄
슬기로운 일은 해 달보다 밝나니
3세가 다 그 이름 듣고
덕을 일컬어 바라밀이라 하네.
差特無量威,
慧事踰日月,
三世悉聞名,
德稱度無極。
아시는 3달(達)을 깨닫고
부처님께서는 자재를 얻으셨나니
지금 부처님께서는 왜 웃으십니까.
원하옵나니 말씀해 주소서.
所知了三達,
佛以逮自在,
今佛何故笑,
唯願爲解說。
저 모든 중생들
섰거나 혹은 세워졌거나
사람들 마음을 보셨으면서
어르신은 거기 집착 않으시네.
一切衆生類,
住立若所立,
已見諸人心,
人尊無所著。
상․중․하 그 누구나
이와 같이 다 깨끗하네.
지금 부처님 웃으셨나니
원하옵건대 말씀해 주소서.
其於下中上,
如是爲悉淨,
今佛所笑者,
唯願解說之。
모든 하늘은 그 소리 듣고
진타(眞陀)의 사람도 그러하오며
제석과 아수라
건달바와 마후라가
범천도 또 그러한데
그 소리 고요하고 깨끗해
저 모두가 가진 음성들
마침내 부처님과 짝할 수 없네.
諸天聞其聲,
眞陁人亦然,
帝釋阿須倫,
乾陁摩睺勒,
梵天亦如是,
其聲寂淸淨,
彼諸所有音,
終不與佛等。
저 달이 내는 광명
또 해와 마니주와
또 제석천의 광명
모든 광명과 또 범천의
그 광명은 다 가리어
모두 다 다시 안 나타나네.
月所出光明,
及日摩尼珠,
其帝釋光明,
一切光及梵,
其明悉蔽歇,
爲盡不復現。
부처님께서 광명을 내실 때에는
모든 국토를 다 비추시네.
모든 깊은 법 다 아셨거니
모두가 고요해 다 공이라.
거기에는 나도 없고
또한 그 수명도 없네.
佛出光明時,
悉照諸佛國,
已解諸深法,
靜然爲空寂,
其無有吾我,
亦無有壽命。
그것은 또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아
이 두 가지 일이 다 없네.
세존님은 세상을 다 복되게 하고
노니시는 것 달빛 같나니
여기에 대해 마음을 내고
뜻을 세워서 묘한 도를 따르네.
不有亦不無,
悉損是二事,
尊皆令世吉,
所遊如月光,
於此唯發心,
立意遵妙道。
지금 그 누가 불도에서
안정하고 정법에 살기에
그 때문에 사람 몸 받아
불보(佛寶)님께 귀명합니까?
今誰於佛道,
安定住正法,
所以得受身,
歸命佛寶尊。
장하십니다. 원하옵나니
지금 웃으신 뜻 말씀하소서.
부처님의 말씀하신 뜻 깨끗하나니
저 제자들 위하심이요.
불존님은 안온 위하여
그 광명의 해가 두루 비추네.
善哉唯願說,
今日所笑意,
佛說義淸淨,
爲諸弟子故,
佛尊爲安隱,
其光普日照。
저 모든 이학(異學)들을 위해
벽지불의 뜻을 말씀하시고
혹은 부처를 구하거나 아주 묘한
법을 뜻한 이에게 말씀하소서.
爲異學故說,
辟支諸佛義,
若爲求佛者,
志尊上妙法。
이 천중천(天中天)에서
총지 따위에 의심 없나니
원하옵건대 말씀하소서
그 따라 불도를 얻으리이다.
摠持等無疑,
於是天中天,
唯願爲解說,
所應得佛道。
이 빛은 부처님의 광명의 불꽃
청정하여 더러움을 다 없애고
돌아와 부처님 몸을 돌고는
정수리에 사라져 나타나지 않네.
此色佛光炎,
淸淨滅垢穢,
還來繞佛身,
頂上沒不現。
그때 부처님께서는 현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환사 인현이 어공에 솟아올라 있음을 보느냐?”
아난이 답하였다.
“이미 보았습니다. 세존님.”
爾時,佛告賢者阿難:“寧見幻士仁賢乎踊在虛空?”對曰:“已見世尊!”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저 족성자(族姓子) 인현은 9만 2천 겁 뒤에 부처가 되어 이름을 엄정왕(嚴淨王) 여래․지진․등정각․명행 즉 선서․세간해․무상사․도법어(道法御)․천인사라 하고 호를 불세존이라 하며 그 세계 이름을 대정(大淨)이라 하고 그 겁의 이름을 환화(幻化)라 할 것이다.
佛言:“阿難!族姓子仁賢!卻後九萬二千劫當得作佛,名嚴淨王如來、至眞、等正覺、明行成爲、善逝、世閒解、無上士、道法御、天人師,號佛、世尊。世界名曰大淨,劫曰幻化。
그 엄정왕 여래의 대정 세계는 인민 들이 많은데 안온하고 쾌락하며 5곡이 풍성하고 그 땅은 평평하고 넓어 언덕이 없으며 해와 달이 밝게 비치고 수목으로 장엄하며 온갖 향이 구족하고 번기와 당기를 항상 달았으며 그 인민들은 소원대로 다 부처님을 뵈옵고 그 소유는 다 자연일 것이다.
其嚴淨王如來大淨世界,人民衆多,安隱快樂,五穀豐賤,其土平博,無有丘墟,日月光照,種種樹木皆以莊嚴,衆香具足常懸幢幡。其國人民如意所願,皆見佛土嚴淨,所有自然。
비유하면 둘째 도리천 위의 7보 궁전과 같아서 그 나라 인민들은 다 국토의 편안함을 볼 것이요, 그 불국에 나는 사람은 다 최상의 원을 구하고 대승을 뜻할 것이다.
譬如第二忉利天上七寶宮殿。其國人民皆見國土安雅,生彼佛國者皆求上願志於大乘。
엄정왕 여래는 만년 동안 세상에 살다가 열반한 뒤에는 그 법이 억년 동안 세상에 행할 것이다. 그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에 문칭(聞稱)이라는 보살이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기별을 주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멸도한 뒤에 이 문칭 보살이 부처가 될 것이니 그 이름을 보달(普達) 여래․지진․등정각․명행성위․선서․세간해․무상사․도법어․천인사․불세존이라 할 것이다’하리라.”
嚴淨王如來住世萬歲,般泥洹後行法住億歲。臨佛滅度,有菩薩名曰聞稱,佛授其決:‘我滅度後,是聞稱菩薩當得作佛,名曰普達如來、至眞、等正覺、明行成爲、善逝、世閒解、無上士、道法御、天人師,號佛、世尊。’”
그때 족성자 인현은 허공에서 내려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사뢰기를
“부처님께서는 내 스승이시며 선도로 인도하십니다. 세존님, 나는 무수 억 백천인과 함께 등정각님과 비구승에게 귀명하옵니다. 만일 여래님께서 본래 없으시면 모든 부처님도 다름없이 본래 없을 것입니다. 그 여(如)란 파괴됨이 없고 여란 움직임이 없으며 여란 생각이 없고 여란 일어남이 없으며 여란 행이 없고 여란 둘이 없는 것입니다. 여래가 본래 없음도 그와 같습니다. 나는 이로 인해 성취하였습니다.”고 하였다.
時,族姓子仁賢從虛空下,稽首佛足,白佛言:“佛是我師,導御善道。唯世尊!我與無數億百千人,歸命等正覺及法、比丘僧。若如來本無,諸佛本無無異,其如者無壞,如者無動、如者無想念、如者無所起、如者無行、如者無二,如來本無亦復如是!我因是成就。”
이에 현자 아난이 족성자 인현에게 물었다.
“여래님의 법에서 무엇을 얻었기에 여래가 본래 없다 하는가? 지금 그대는 본래 없는 일에서 멀리 떠났는가?”
於是賢者阿難問族姓子仁賢:“於如來法爲何所得,乃說如來本無?今卿遠離於本無事?”
인현은 답하였다.
“모든 법을 다 버려야 여래의 법이 일어납니다. 아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래님은 본래 없음을 다 깨닫고 등정각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래가 본래 없고 파괴할 자도 없음을 나도 얻었고 모든 사람들도 본래 없음을 얻었습니다. 현자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래의 법에 들어 있습니까? 예, 아난님, 법은 둘이 없습니다. 생각이 있는 자는 그 알음알이가 여럿입니다. 왜냐하면 온갖 생각을 버려야 부처님의 슬기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答曰:“一切法皆棄離,爾乃興如來法。於阿難意云何?如來皆了本無致等正覺,以故如來本無無壞者,我亦得之,一切人亦逮本無。唯賢者意云何?如來法爲有二乎?唯阿難!法無二無二,有想者其識若干,所以者何?捐捨衆想乃成佛慧。”
그때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예, 세존님, 족성자 인현이 과연 장차 본래의 요술을 가지고 모든 천인들을 미혹시키지 않겠습니까?”
爾時,阿難白佛言:“唯世尊!族姓子仁賢寧當復持本所幻化,迷惑諸天人不耶?”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에 인현은 법의 지혜의 요술에 들어갔다. 왜냐하면 밝은 지혜의 변재를 쓰기 때문이다.”
佛告阿難:“於是仁賢入法智慧之幻。所以者何?用明智辯才故也。”
그리고 세존님은 족성자 인현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과연 능히 허깨비로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들을 미혹시킬 수 있는가?”
時,世尊告族姓子仁賢:“卿寧能化或諸天世人?”
그는 대답했다.
“예, 세존님, 세존님이 미혹시키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무아(無我)를 아는 것이 곧 대행(大行)입니다. 사람이 있음을 수명이 없다 하고 사람이 없음을 사람이 있다 합니다. 여래는 글자도 없고 도량에 있지도 않거늘 어떤 법에 감이 있고 감이 없습니까? 그러한데 거래(去來)와 교법이 있다 하며 열반이 없는데 열반의 법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세존님은 평등한 행을 말씀하시어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을 현혹시키십니다. 그것은 여래님 공덕의 평등을 말씀하기 위해서입니다.”
對曰:“唯然!如佛所惑化,我亦如是。所以者何?解無我者是爲大行,號有人名無壽命,無有人而言有人,如來無字亦不處道場。何所法中有去沒去,而說法有去來?教法無般泥洹而現泥洹法?是故世尊說平等行,便能化惑諸天世人,爲說如來功德平等。”
그때 부처님께서는 족성자 인현을 찬탄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인현아, 그대 말과 같다. 큰 환혹을 위해 음성 없는 법을 말씀하신 것이다.”
時,佛讚族姓子仁賢:“善哉善哉,仁賢!如卿所說,爲大化惑說無音聲法。”
그때 인현은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기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 환사의 수염과 머리를 깎아 사문이 되게 하라.”
時仁賢從佛求出家。佛告彌勒菩薩:“汝下幻士鬢髮,令作沙門。”
미륵은 분부를 받들고 곧 인현으로 하여금 출가할 뜻을 이루게 하고는 돌아와 부처님께 사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님, 이이는 보살의 형색(形色)도 아니요 사문도 아닙니다. 왜냐 하면 그 보살은 신통의 슬기를 이루고 3계에 있으면서 중생을 교화하나니 이것을 보살의 출가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5천 사람은 최상의 정진(正眞)의 보리심을 내고 2백 비구는 번뇌가 다하고 의심이 풀리었다.
彌勒受教,卽使仁賢爲出家。志已還白佛言:“唯然世尊!是非菩薩形貌色像,亦非沙門。所以者何?其有菩薩成諸通慧,處於三界教化群生,是爲菩薩出家也。”說是語時,五千人發無上正眞道意,二百比丘漏盡意解。
그때 현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이 경을 무엇이라 이름하며 어떻게 봉행해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경 이름을 『수환사인현결(授幻士仁賢決)』이라 하고 또 『초입지불도(稍入至佛道)』라고도 하느니라.”
爾時賢者阿難白佛言:“當何名斯經,以何奉行之?”佛告阿難:“是經名『授幻士仁賢決』,又名『稍入至佛道』。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아난아, 만일 어떤 보살이 부처를 보려 하면 일체를 위하기 때문에 이 경을 수직하고 독송하여 그 뜻을 비우고 남을 위해 설명해야 한다. 왜냐하면, 보살이 이 경에서 도를 구하는 것을 대승평등 경법이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경 이름을 『초입도의(稍入道義)』라 하는 것이다.”
佛言:“阿難!其有菩薩欲得見佛,爲一切故,當受是經持諷誦讀,當曠其志爲他人說。所以者何?其於是法菩薩求道,是爲大乘平等經法,以故是經名曰『稍入道義』。”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 경을 너에게 부탁한다.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외우며 이 경을 가져라. 만일 듣고 봉행하면 모든 악이 도로 달아날 것이니, 그 사람은 5백 부처님을 본 뒤에 불도를 얻을 것이다.”
佛告阿難:“我以是經囑累汝,心念口諷,執持經卷,若聞奉行,衆惡反趣,當知其人曾見五百佛然後得佛道。”
그때 족성자 인현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이 경을 받는 사람은 다 공덕을 심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존님, 나도 본래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이 경을 듣는 사람은 다 본래 선의 근본이요 좋은 방편이기 때문이니, 내 마음도 그와 같습니다.”
時,族姓子仁賢白佛言:“其受是經,皆本功德。唯然世尊!我本亦學。所以者何?聞是經者,皆前善本善權,我心如是!”
부처님께서 이 경을 다 말씀하시자 족성자 인현과 비구현자 아난과 일체 대중으로서 모든 하늘․용․귀신․아수라․세간의 인민들은 이 경을 듣고는 기뻐하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갔다.
佛說經已,族姓子仁賢、比丘賢者阿難,一切衆會,諸天、龍、神、阿須倫、世閒人民,聞經歡喜,稽首而退。
佛說幻士仁賢經
戊戌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불설환사인현경』 1권(ABC, K0034 v6, p.1153a01-p.1161b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