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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소중한 것은 왜 공짜인가?
사람은 누구나 빈손으로 세상에 온다.
누구도 태어나기 위해 값을 치르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울음소리와 함께 세상에 도착했고, 누군가의 품 안에서 숨을 배우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인간의 첫 시작에는 계약서도 없고 계산서도 없다. 생명은 애초부터 거래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 많은 것을 돈으로 사고 판다.
음식과 집, 자동차와 옷, 지식과 기술까지 대부분의 것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 사람들은 종종 가격이 높은 것을 더 귀하게 여기고, 값이 없는 것은 하찮게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것들은 대부분 공짜라는 사실이다.
햇빛은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비춘다.
공기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폐를 구별하지 않는다.
물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흐른다.
그리고 사랑, 위로, 웃음, 눈물, 희망 같은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가치들 역시 돈으로 살 수 없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다.
만약 인간이 숨을 쉬기 위해 매 순간 돈을 내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루라도 돈이 없는 사람은 생명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햇빛이 특정한 사람에게만 허락되었다면 세상은 오래 전에 절망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단 한 번도 인간에게 청구서를 보내지 않았다.
태양은 묵묵히 떠오르고, 바람은 아무 조건없이 불어오며, 강물은 쉼 없이 흐른다.
왜 가장 중요한 것들은 공짜일까?
그 이유는 어쩌면 생명 자체가 ‘소유’보다 ‘은혜’ 위에 세워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를 만들어낸 적이 없다.
우리는 우주의 거대한 질서 속에서 잠시 생명을 선물 받은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삶의 가장 근원적인 요소들은 경쟁과 독점의 대상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함께 누려야 할 공통의 선물로 주어진 것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나누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 햇빛은 혼자만 차지할 수 없다.
공기는 움켜쥘 수 없다.
물은 흐를 때 생명을 살린다.
사랑 역시 독점하는 순간 병들기 시작한다.
인간은 종종 돈이 많아질수록 더 안전하고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다.
물론 돈은 삶에 꼭 필요한 도구다.
가난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현실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간의 영혼을 가장 깊이 살리는 것들은 돈의 영역 바깥에 있다.
어느 겨울날 누군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절망 속에서 등을 두드려주는 손길, 오래된 친구와의 웃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바라보는 노을같은 것들은 가격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종종 너무 늦게 깨닫는다.
평생 비싼 것을 얻기 위해 달려왔지만, 정작 자신을 살게 했던 것은 늘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침 햇살 한 줄기.
갈증을 적시는 물 한 잔.
마음껏 들이 마실 수 있는 숨.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이 단순한 것들이 사실은 기적이었다는 것을 인간은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깨닫는다.
병실 창가에 누워 있는 사람은 안다.
자유롭게 걷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숨이 가빠본 사람은 안다.
평범하게 숨 쉬는 하루가 얼마나 위대한 선물인지를!
인간은 너무 익숙한 것의 가치를 쉽게 잊는다.
공짜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짜라는 것은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소중해서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해 보라! 아이가 돈을 내고 사랑을 받는가?
아니다. 어머니는 이유를 계산하지 않고 품어준다.
자연 역시 거대한 어머니처럼 인간을 품고 있다.
인간은 그 안에서 숨 쉬고, 자라고, 살아간다.
우리는 사실 거대한 선물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지혜 또한 그렇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깨달음들은 의외로 아주 단순한 곳에서 온다.
새벽 산책길의 고요함, 나무 한 그루의 침묵, 실패 뒤에 찾아오는 성찰, 늙은 부모의 뒷모습, 어린아이의 맑은 웃음 속에서 인간은 삶의 본질을 배운다.
진정한 지혜는 비싼 강의실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시간과 경험은 언제나 인간에게 조용히 가르침을 건네고 있다.
문제는 인간이 너무 바빠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데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많이 가지라고 말한다. 더 빨리 성공하라고, 더 높이 올라가라고 재촉한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인간이 붙들고 싶어 하는 것은 대개 아주 소박한 것들이다.
햇빛 한 줄기에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바람 한 점에도 살아 있음을 느끼며, 물 한 모금에도 생명의 신비를 깨닫는 사람!
어쩌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저녁의 음악편지
(2026.07.27.월.)
어느새 산과 들이 초록으로 가득한
7월도 벌써 끝자락입니다.
세월이든 사람이든 떠나 보낸다는게
늘 아쉽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이요,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십시오
♬라라라...SG워너비
https://m.youtube.com/watch?v=3y2fhWIu41w
### 축구는 발로 추는 춤이다
월드컵 우승국의 계보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모두 라틴 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은 나라들이다.
축구는 우연히 강해진 것이 아니라 문화가 빚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라틴인들은 어려서부터 몸으로 세상을 배운다.
스페인의 플라멩코는 발끝으로 리듬을 쪼개고, 아르헨티나의 탱고는 상대의 중심을 읽으며 움직인다.
브라질의 삼바와 쿠바의 살사는 온몸이 따로 놀면서도 하나의 박자를 만들어낸다.
그래서일까.
그들에게 축구는 운동이 아니라 춤의 연장선이다.
리오넬 메시는 공을 차는 선수가 아니라 공과 함께 춤을 추는 선수다.
수비수 셋이 달려들어도 한 박자 늦게, 반 박자 빠르게 움직인다.
상대는 메시의 발보다 리듬에 속는다.
공을 빼앗기보다 균형을 먼저 잃는다.
스페인의 10대 천재 라민 야말도 다르지 않다.
좁은 공간에서 보여주는 발놀림은 플라멩코 무용수의 스텝을 연상시킨다.
수비수는 분명 오른쪽으로 갈 것이라 생각하는데 공은 이미 왼쪽을 지나가 있다.
축구장에는 속도보다 박자가 더 무섭다는 사실을 야말은 매 경기 증명한다.
반면 한국은 어떨까.
어릴 적부터 춤추는 아이에게 "얌전히 있어라."는 말을 더 많이 한다.
운동장보다 학원이, 음악보다 문제집이 먼저다.
그러니 발은 리듬보다 정답 찾기에 익숙해진다.
축구를 잘하려면 먼저 드리블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몸을 자유롭게 쓰는 즐거움부터 가르쳐야 하는지도 모른다.
라틴 축구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단어는 '열정'이다.
그들은 감정을 감추지 않는다.
기쁘면 껴안고, 억울하면 항의하고, 지면 눈물을 흘린다.
이 다혈질은 때로는 경고와 퇴장을 부르지만, 마지막 5분을 버티게 만드는 힘도 된다.
메시는 두 차례 월드컵에서 페널티킥을 놓치고도 끝내 팀을 결승까지 이끌었다.
강한 선수는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 후에도 리듬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축구는 흔히 전술의 스포츠라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승을 만드는 것은 전술판 위의 화살표보다 몸에 밴 리듬이다.
감독은 포메이션을 만들 수는 있어도, 박자를 만들어 줄 수는 없다.
요즘 축구 중계를 보면 해설보다 전술 그래픽이 더 많이 등장한다.
선수보다 숫자가 많고, 패스맵은 미술 작품처럼 화려하다.
하지만 정작 골은 컴퓨터가 넣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 승부를 가르는 것은 계산기가 아니라 발끝의 즉흥성이다.
결국 축구는 발로 계산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발로 시를 쓰는 예술이다.
2026년 월드컵 결승전은 스페인과 아르헨티나 가운데 한 나라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겠지만, 진정한 승자는 라틴 문화가 수백 년 동안 길러온 리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축구는 공을 차는 경기가 아니다.
잔디 위에서 가장 아름답게 춤추는 나라를 뽑는 축제다.
-茶江-
🤜백년 후 나의 殘考(잔고)🤛
내가 죽고 백 년이
흐르면 어떻게 될까?
(엄상익변호사 겸 컬럼니스트)
백년이 넘은 조상
할머니 할아버지의
무덤을 정리했다.
남의 땅 산자락에 남아
있는 봉분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폐가되기 때문이다.
백 년 전 죽은 조상
할머니 할아버지는
누구였을까.
가족도 친구도 그 시절
같이 살던 사람들도
모두 죽었다.
손자 손녀도 죽었다.
그 손녀의 아들이 나다.
조상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남은 것은 흙 속에 묻혀
있던 작은 뼈 조각
몇 개뿐이었다.
죽은 조상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과연 이 세상에
살았던 적이 있었을까.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겠지.
그분들은 이제 누구의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다.
나는 조상의 화장한
유골을 그분들이 살던
고향의 양지바른
산 위에 뿌려드렸다.
내가 죽고 나서 백 년이
흐르면 어떻게 될까?
나의 가족이나 친구,
알던 사람들 모두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 살려고 마련한
바닷가의 집도 누군가
다른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다.
나의 재산도 또 다른 누군가의
소유가 될 것이다.
세월을 함께한 책장과 몇 개의
가구들도 모두 폐기물이 되고
나를 옮겨주던 고마운 차도
고철 덩어리가 될 것이다.
나는 바로 죽은 후에는 얼마 동안
가족과 몇몇의 기억 속에 남았다가
그 후로는 사진으로 있다가
무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의 후손들은
기억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삼사년 전쯤인가 나의 초상화가
지하실 문 앞의 구석에 다른 헌
액자들과 함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걸 봤다.
의뢰인이었던 화가가 그려준
것이다.
내가 죽은 후에는 거추장스러운
물건이 될 것이다.
아파트에서 혼자 살다 죽은
노인들의 물품들이 쓰레기장에 나온다고 한다.
고급 책상과 가구들이 버려지기도
하고 벽에 걸려있던 가족사진들이
액자 속에서 세상을 내다보면서
서글픈 미소를 짓기도 한다.
인간이란 내남없이 세상에 와서
수고하고 번민하다 죽음이라는
무대 저편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그 기억조차 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내 삶의 잔고가 얼마나
되는지를 생각해 본다.
피와 살이 있고 생명이 붙어있는
이 나머지 시간이 내게는
정말 소중한 보물이다.
나는 지난 칠십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 왔을까.
소년 시절 경주마같이 트랙을
달려야 하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나는 눈가리개가 씌워져 있었다.
세상은 학교로 인간을 상등품과
하등품으로 구별했다.
그게 뭔지도 모르고 품질인증을
받기 위한 열망이 마음을 꽉 채웠었다.
그냥 낙오가 무서웠다.
대학시절 그런 경주트랙에서
벗어나 초원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차별이 많은 지옥 같은
세상에서 그런 초원은 관념이고
추상일 위험성도 있었다.
그 초원으로 가는 중간에는
날개없는 내가 떨어질 바닥없는
깊은 절벽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가장인 나는 가족의 입에 밥을
넣어 주어야할 성스러운 의무가 있었다.
새 둥지 속의 털도 나지 않은
빨간 새끼들은 엄마 새가 힘들게 잡아온 벌레 한 마리를 먼저
달라고 입들을 한껏 벌린다.
나는 엄마 새의 벌레 같은 돈을
잡으려고 세상을 돌아다녔다.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 속으로 옮기는 일이
내게는 공부보다
열 배 백배는 힘들었다.
돈을 주는 사람 앞에서 마음이
약해지고 주눅이 들었다.
내가 정직한 땀을 흘려 받는
대가인데도 눈치를 봤다.
돈은 내 영혼까지 지배하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장년의 산맥을 넘고 이제
노년의 산 정상 부근에 오른
것 같다.
눈을 뒤집어쓴 겨울나무같이
머리와 눈썹에 하얗게 눈이 내려와 있다.
삶에서 처음으로 자유롭고
여유 있는 시간을 맞이한 것 같다.
이제야 세상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학교도 직업도 돈도 더 이상 의미가
없는 평등한 세상으로 건너왔다.
황혼 무렵이면 바닷가 산책을 한다.
푸른 바다 저쪽 수평선 아래로 떨어
지는 태양은 붉다 못해 타오른다.
황혼과 밤사이의 짧은 시간이지만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고 싶다.
오늘은 내가 죽고 백년 후의
세상을 한번 떠올려 보았다.
진작 그런 긴 안목으로 생각을
했었더라면 부질없는 많은 걱정을
하지 않고 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저녁노을 빛으로
남는다.~^.^!😃😇😄
https://m.youtube.com/watch?v=Uo-C8Y9bXdM&pp=iggCQAE%3D
"그렇게 살고 있을꺼야"
다들 사연마저 없는 이가 있을까
저마다 가슴 속에
사연 하나씩은 심고 살겠지
때로는 울 수 없어서 가슴만 젖고
때로는 숨고 싶어 가슴만 태우는
그런 속 앓이 하나쯤
가슴 한 켠에 품고 살겠지
산다는 게 녹녹치 않아
쉽게 쉽게 살 수도 없고
속상하고, 억울하고,
허망해서 애탈 때가 한 두번 아닐테지
그렇게 살다보면 세월은
어느새 서리내리고
문득 어느날
"회심곡"이 맘에 와 닿는 날
그날은 저무는 저녁놀조차
예사롭지가 않을꺼야
살다 살다 그렇게 혼자 지쳐서
술 한잔 놓고 넋두리만 웅얼거릴 때
사연들은 더 깊이 깊이 속으로만 숨고
살면서 사연없이 사는 이가
누구 있을려구
누구든
저마다 말못할 사연 하나쯤
깊은 속에 묻어두고 웅웅거리며
그렇게들 아마 살고 있을꺼야
어디 나만 그렇겠어
다들 그렇겠지.

첫댓글 보문산인님
공짜
햇빛은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비춘다
공기는 누구나
물은 흐른다
사랑 위로 웃음 눈물 희망같은 깊은 가치를 돈으로 살수 없다
햇빛 한줄기에도 마음이 따뜨해지고 바람 한점에도 살아 있음을 느끼며 물한모금에도 생명의 신비를 깨닫는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입니다
발춤
월드컵 우승국의 계보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라틴 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은 나라들이다
축구는 잔디 위에서 아름답게 춤추는 나라를 뽑는 축제다
백년
내가 죽고 나서 백년이 흐르면 어떻게 될까
진작 그런 긴 안목으로 생각을 했었더라면 부질없는 많은 걱정을 하지 않고 잘살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저녁노을 빛으로 남는다
사랑반 눈물반
인천갈매기님의 노래
사랑반 눈물반 잘봤습니다
보문산인님
늘감사드립니다
이사장님!
계속되는
폭염에
지치지마시고
화이팅
화요일되세요.
감사합니다!
보문산인님
오늘도 멎진 글 잘봤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반눈물반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이 가득한 하루 보내셔요
https://youtu.be/Uo-C8Y9bXdM?si=fXtY5WTk-tHBK7WZ
PLAY
인천갈매기님!
극한 폭염
잘
피해다니시며
즐거운
화요일되세요.
감사합니다!
보문산인님
오늘은
묵상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시간보내세요
초아님!
시원한
화요일
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