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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려타곤(懶驢 坤) 34-5
"방장 스님, 안녕하셨어요?"
합장하면서 인사하고 있는 소구를 바라보는 소림사의 주지 정명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너만 아니면 안녕할 텐데, 너 때문에 안녕하지 못 하구나."
정명이 말을 하고 있는 사이 방장실 앞으로 소구의 무기인 극악봉이 오고 있었다. 다섯이나 되는 무승(武僧)들이 매달려서 끙끙거리면서 가지고 있는 검은 쇠몽둥이를 바라보고, 소구는 얼른 그쪽으로 달려가서 극악봉을 집어들었다.
"헥 헥, 아이고 무거워."
"무슨 놈의 봉이 이리도 무겁담."
겨우 무거운 봉에서 해방된 다섯의 젊은 중들은 털썩 바닥에 주저앉으면서 한마디씩을 내뱉었다.
"제가 이걸 들고 온다는 것을 깜빡 했네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는 소구였지만, 소림사의 주방에서 일하는 다섯의 무승들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그런 소구를 바라보았다. 그들에게는 다섯이 들고도 쩔쩔맬 정도로 무거운 봉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있는 소구가 괴물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무작정 주방으로 쳐들어와 밥 달라고 소란을 피우던 사대금강 중의 하나인 방철이 와서 데려가지 않았다면, 주방의 승려들은 식사 준비를 제때에 끝낼 수 없었을 것이다. 저녁 공양이 끝난 후에 주방의 문 앞을 둥글고 있는 검은 쇠몽둥이를 치우려다 허리가 삐끗한 사람만 세 명이었다.
소림사의 방장실에 들어와 앉아 있는 세 사람은 불안한 얼굴로 잔뜩 화가 난 표정의 주지승 정명을 바라보았다. 한 명의 노승에게는 사형이 되고, 또 두 사람의 젊은이에게는 사숙이 되는 정명이었다.
"어디 가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 모두 털어놔라."
정명의 입에서 한 마디가 튀어나오고 세 사람은 십년 동안 소림사를 떠나서 어떻게 지냈는지 털어놓기 시작했다.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 정각과 양평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의 정명의 말은 간단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동영까지 헛짓하러 갔다 왔다는 말이로군. 십년 동안 건진 것이라고는 평이의 칼 한자루가 전부고---. 소구야 이제 네 이야기도 좀 들어보자."
가만히 정각과 양평이 티격태격하며 하는 이야기를 듣던 정명은 그렇게 두 사람의 말을 끊어버리고 고개를 돌려 소구에게 물었다.
"저는 혼천문의 구정문 사부에게 끌려갔었어요."
소구의 입에서 담담한 한 마디가 흘러나오고, 방장실의 세 사람은 놀라서 동시에 소리쳤다.
"혼천문!"
"절대쌍천!"
"무적의 무공!"
각기 다른 말을 내뱉었지만 결국은 하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소구야, 그럼 네 병은 다 나았겠구나?"
바로 다음 순간 무엇을 깨달았는지 정각이 황급히 질문했다.
"네, 이제 저는 병이 없습니다. 아마 누구보다도 오래 살게 될 겁니다."
"그럼 혼천문의 모든 무공을 터득하고 소림사로 온 것이냐?"
정각이 다시 물었고, 소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구 사부가 쉬고 싶다고 하면서요---, 밖으로 내 보내 주던데요?"
"아니 넌 혼천문의 무공을 완성했냐는 말이다?!"
정각이 갑갑하다는 듯 엉뚱한 소리를 하는 소구를 향해 다시 한번 소리치고, 소구는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쉬고 싶다고 하면서 그냥 나가래요. 절 이길만한 고수가 적어도 열 이상은 있을 거라는 말을 하셨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는 소구였다. 은근히 사제(師弟)의 기연을 부러워하고 있던 양평의 입에서 심술궂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보나마나 뻔해, 배우다 말고 쫓겨났을 거야."
양평의 말을 들으면서 정각과 정명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둘은 허탈한 얼굴이 되어 다시 소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럼 너에게는 절대라는 말이 붙을 수가 없겠구나."
사부인 정각 대사의 말에 더욱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소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굴러온 복을 걷어차다니---, 그분이 다시 돌아오라는 말씀이 없으셨느냐?"
소구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고 두 명의 늙은 노승은 한숨을 토해내었다.
"되었다. 물러가거라."
정명이 말하고 바로 양평이 물었다.
"저도 가도 되지요?"
"둘 다 꼴 보기 싫으니 어서 물러가라."
소림방장 정명은 속이 뒤집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사제인 정각을 돌아보았다.
"장문 사형, 저도 이만 물러날까 합니다."
그런 사형의 모습에서 정각은 위험을 느끼고 그렇게 말했지만, 정명은 고개를 흔들었다.
"정각 사제는 나와 할 이야기가 많으니 남아 있게."
그렇게 말한 다음 고개를 돌린 정명은 문 앞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은 두 사람 양평과 소구를 향해 말했다.
"둘은 피곤할 테니 어서 가서 쉬거라."
"예."
"예."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방장인 정명 대사의 분위기를 느끼고, 두 사람은 짧게 대답한 후 바로 방장실에서 도망쳤다.
'제자라는 녀석들이---, 사부가 위기에 처했는데 그냥 도망쳐 버리다니--.'
문 밖으로 뒤돌 안 돌아보고 뛰어가는 두 명의 제자를 보면서 정각이 그렇게 속으로 불평을 하고 있을 때, 활활 불타오르는 눈을 한 정명이 정각을 노려보고 있었다.
방장실에서 멀어져 가는 사형제 양평과 소구의 귀로 방장 대사의 성난 고함이 들려왔다.
"네가 내 사제 맞니? 골치 아픈 일은 다 나한테 떠넘기고 저는 제자 데리고 놀다가 와?!"
양평과 소구의 걸음은 그 고함을 들으면서 더욱 빨라졌다. 아무래도 방장실 근처에 있다가 불똥이 자신들에게까지 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둘의 마음에도 생겨난 탓이었다.
사찰의 잠자리는 결코 편안할 수가 없었다. 사찰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승려들이 모여 있는 곳이고, 그들의 삶은 자고 있거나 깨어 있거나 수행을 계속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딱딱한 잠자리일 망정, 이불이 있고 담요가 있는 깨끗한 방안에서 잠을 청하게 된 소구는 행복했다.
피곤했던지 옆자리에 누운 사형 양평은 바로 골아 떨어져서 코까지 골아가며 깊이 잠들고, 소구는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바뀌었다. 내가 그곳을 탈출하는 시간이 앞당겨졌고, 소화촌 사람들이 죽지 않았다. 게다가 북해로 가서 얼음 동상이 될 정각 사부와 양평 사형 또한 북해로 가지 않았고--, 집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때처럼 부모님이 모두 죽어 있는 것은 아니겠지?"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던 일들이 소구의 머리 속에는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였지만, 기억하던 일들은 벌어지지 않고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고, 또 바뀌고 있었다.
'세상은 각자의 꿈이 치열하게 싸우는 전쟁터--, 미래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실천하는 자의 것. 내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기서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난 신중하게 판단해야 되. 다시 시작된 삶이라는 전쟁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려면---.'
잠자리에 누워서 잠을 청하는 소구의 머리 속에 상념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은 맑기만 한 소구는 다음의 일을 생각하느라 잠을 못 이루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붙일 수가 있었지만, 소구가 눈을 감기가 무섭게 새벽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다음에는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깨우는 스님들의 행차가 시작되고--. 염불 소리가 소림사 경내의 모든 건물 앞에서 울려 퍼지고, 잠들어 있던 사람은 모두가 깨어나야만 했고 소구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결국 또 하루를 꼬박 세워버리게 된 소구는 잔뜩 졸린 눈을 하고 연신 하품을 하면서 앞을 바라보았다. 예전처럼 사형 양평은 빗자루를 한 손에 쥐고 연무장(硏武場)을 쓸고 있었고, 소구의 손에도 빗자루가 쥐어진 상태였다. 해도 안 떠서 어둑어둑한 연무장을 조용히 쓸고 있는 사형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소구는 꾸벅 꾸뻑 졸기 시작했다.
양평은 보면 볼수록 심술을 돋구게 하는 사제 방소구를 돌아보았다. 사형은 열심히 빗질을 하고 있는데, 사제는 빗자루에 기대어 선 채로 졸고 있는 광경이 보기 좋을 리 만무했다.
양평의 얼굴 위로 사악한 미소가 떠오르고, 빗자루를 머리 위로 치켜 튼 양평은 소구의 등 뒤로 살금살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대로 빗자루를 사제의 머리통을 내리친 양평은 어이없는 얼굴로 저만치 떨어져서 여전히 졸고 있는 사제 방소구를 바라보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어라?"
양평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다시 한번 사제를 바라보았다. 황당했다. 몸에서 땅에 닿아 있는 부분은 발가락 하나에 불과했고, 몸은 비스듬히 기울어진 상태라 당연히 땅바닥에 쓰러져야 했지만 그 자세 그대로 여전히 졸고 있는 사제 방소구였다.
양평은 정말로 화가 났다.
"이놈이, 날 약올리나--?"
다음 순간 양평은 소구를 향해 미친 듯이 빗자루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맞아! 맞아라!"
미친 듯이 소리치며 광분하는 양평의 손에 들린 빗자루는 어느새 금빛이 감돌고 있었다. 내공이 실린 금빛을 뿜어내는 빗자루가 소구의 몸을 스치고 바닥을 치면서, 연무장은 점점 폐허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해가 훤하게 밝아 올 무렵에는 연무장 곳곳에 움푹움푹 패인 구덩이가 잔뜩 생겨났다.
"헉 헉, 지겨운 놈."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양평은 한 마디를 내뱉으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더 이상 움직일 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저만치 떨어져서 여전히 졸고 있는 사제를 바라보던 양평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획 뒤로 돌렸다. 화가 잔뜩 난 얼굴을 한 스님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네 이놈! 이게 무슨 짓이냐?!"
요란한 폭음 소리에 놀라 연무장으로 달려 온 정명 대사가 고함을 내지르고, 양평은 지은 죄가 있는지라 고개를 푹 수그렸다. 소구는 여전히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운 자세로 졸고 있고----.
돌아오자마자 말썽을 일으킨 사형제인 양평과 방소구는 결국 그날로 소림사에서 쫓겨 나야했다.
정각은 쓴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두 제자를 바라보았다.
"이놈들아 싸우지 마라. 무려 십년만에 만난 녀석들이---."
"사부님, 전 아무 짓 안 했어요. 사형이 연무장을 부순 거예요."
"네 녀석이 졸고 있었으니까 그 일이 생긴 거잖아!"
"어허! 싸우지 말라니까?!"
정각은 또 말다툼을 벌이려는 제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마주보고 으르렁거리던 양평과 소구는 서로에게서 시선을 돌려, 사부인 정각 대사를 바라보았다.
"소구는 어차피 집으로 가야 할 사람이었고, 양평이 너는 방장 사형의 진노가 가라앉는 데로 개봉으로 연락을 보낼 테니 그때까지 소구의 집에 머물고 있도록 해라."
"싫어요! 제가 왜 사제의 집에 머물러 있어야 되요?!"
"저도 싫어요! 왜 사형이 저와 함께 가야 하냐구요?!"
"이놈들이!"
정각은 소매를 걷어 붙히면서 소리쳤다. 찔끔해진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사부의 눈치를 살피고---, 정각은 한숨을 흘리면서 그런 두 제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 세상이 얼마나 혼란한지 평이 너는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사천에는 장헌충이라는 자가 대서왕(大西王)이라 자칭하고 나라에 반역하는 무리를 이끌고 있고, 호북에는 이자성이라는 자가 신순왕(信順王)이라 자칭하고 그곳을 지배하고 있다. 그뿐이냐? 만리장성 밖에 여진인들이 세운 청(淸)이라는 나라가 국경을 넘보고 있고, 우리의 속국이었던 조선(朝鮮)은 이미 청에 넘어간지 오래다. 그밖에도 곳곳에서 비적들이 날뛰고 반란의 무리들이 준동하고 있어서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단 말이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열변을 토해내는 정각 대사와 달리 그 말을 듣고 있는 두 사람 양평과 방소구는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그래서요?"
"그게 저희와 무슨 상관이래요?"
두 제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에 정각은 허탈한 한숨을 흘려내었다. 자신의 두 제자 중 첫째인 양평은 이미 십년 전에도 무림의 후기지수 중 제일인자의 자리에 올라 있었고, 지금은 더 강해진 상태였다. 둘째인 소구 또한 전설의 문파인 혼천문의 무공을 배운 상태였다. 천하에 둘을 상대로 싸워 이길만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런 한심한 놈들! 세상일이 무공이 세다고 다 해결되는 것 인줄 아느냐?! 길을 가다 보면 어려운 일이 생길 것이고, 지금처럼 둘이 싸우는 것이 편하겠느냐 아니면 서로 협력해서 일을 풀어 가는 것이 편하겠느냐?! 힘만으로는 세상을 살 수 없단 말이다!"
정각 대사의 입에서 날카로운 호통이 터지고 양평과 소구는 서로를 째려보다 정각 대사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면서 말했다.
"사부님, 사형과 같이 가면 되죠?"
"사제와 같이 가도록 하지요."
제자들의 대답을 듣고 나서 노기를 가라앉힌 정각 대사는 마지막으로 양평을 향해 말했다.
"사제 간수 잘해라. 어디서 잊어먹지 말고---. 넌 소림사 말고는 머물 곳도 없지 않느냐?"
"명심하겠습니다. 사부님."
"그럼 둘 다 이제 그만 떠나거라. 화가 난 장문 사형을 달래러 난 이만 들어가 보겠다."
그렇게 정각 대사와 헤어진 양평과 소구는 함께 길을 떠나고, 산문 안으로 들어서는 정각 대사의 귀로 제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형, 얌전히 흔들어 깨우면 되지. 왜 연무장은 망가뜨려서---."
"네 녀석이 그렇게 해서 깨어날 녀석이니? 너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떠나야 하잖아?"
"그게 왜 내 탓이야? 나야 말로 사형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소림사에서 쫓겨났잖아? 한 며칠 쉬었다가 집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티격태격하면서 걸음을 옮기고 있는 제자들의 등을 바라보다 뒤돌아선 정각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사형제 간이니, 세상이 아무리 혼란하다 해도 둘이 무사히 개봉에 갈 수 있겠지?"
정각은 세상이 흉흉해진 상태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소림사로 돌아온 상태였지만, 제자들이 무사히 개봉에 도착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방장실을 향해 바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제자들을 다시 불러들이려면 성난 방장 사형을 조금이라도 빨리 달래야 했다.
첫댓글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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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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