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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동안 생명을 즐겨라 (전도서 3:11-14)
병석에 계신 연로하신 성도님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저와 말씀도 하시며 정을 나누었는데 그 이후 두 주 만에 숨지셨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염을 하는데 이미 몸은 차가웠고 피부는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눈을 감고 있는 시신을 여러 천으로 꽁꽁 묶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눈이 제일 먼저 썩고 내장이 빠른 속도로 부패한다고 합니다. 죽으면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고 대화를 나눌 수도 없으며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죽으면 숨을 쉴 수 없고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도 없습니다.
인간은 죽음으로서 끝이며 영원히 사라집니다.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짧고 허무한지요. 이 쪽 벽 끝에서 저쪽 벽 끝까지 대각선으로 선을 긋고 지구의 나이처럼 이 선의 길이를 45억년이라 치면 우리가 사는 80년 기간은 점을 찍기도 모자랍니다.
긴 세월에 비해 80년 인생은 참으로 짧습니다. 성경은 짧은 인생에 대하여 잠시 피었다가 사라지는 들의 꽃과 같고 날아가는 화살과 같다고 했습니다. 화살이 시위를 떠나 이쪽에서 저쪽으로 휙하고 지나가듯 우리의 생명도 한순간에 지나갑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생명, 한번 지나가면 영원히 사라지고 마는 것이 생명입니다.
I. 살아있는 동안 생명을 누리되 고통도 즐겨라
시집간 딸과 엄마가 자주 싸워요. 싸울 것이 뭐가 그리 많은지 아무튼 자주 싸웠는데 어느 날 부턴가 엄마가 시름시름 앓더니 딸의 품안에 돌아가셨어요. 딸은 엄마를 끌어안고 엉엉 울면서 말합니다. “엄마, 얼른 눈 떠라. 얼른 일어나서 나와 싸워야지 왜 말이 없어, 일어나!”하면서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싸우더라도 살아있는 것이 낫습니다. 고통을 겪더라도 살아있는 것이 낫습니다. 웬지 아세요?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 없거든요. 생명이 끝나면 아무 소용없거든요. 살아있어야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있고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대화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어야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고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고 미래의 꿈을 꿀 수 있으며 살아있어야 하나님 은혜에 감격할 수 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고 좋은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으며 행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지금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여기 이렇게 살아있어요. 지금 그 귀중한 생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 정말 놀라운 기적이며 축복이며 특권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3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 알았도다. 전도서 저자는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달았어요. 언제 즐기며 누릴 수 있느냐 생명을 가진 지금 만이 그렇게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축복이요 특권이며 기적입니다.
암에 걸려 죽어가는 청년이 의사에게 마지막으로 동해의 맑은 바다를 보고 설악산의 공기를 마시고 싶다했습니다. 의사는 위험하니 가지말라 했어요. 하지만 환자는 “어차피 죽을 몸인데 소원대로 해 주세요.” 간청하여 허락을 받아 산소호흡기를 씌우고 가족과 함께 구급차에 올라 동해로 향했습니다.
숨이 넘어갈듯 말듯 하자 차가 빨리 달릴 수가 없습니다. 가다쉬다를 반복하며 강릉의 동해안 바닷가에 도착하여 차 문을 열고 들것에 실려 밖으로 나왔어요. 청년은 누운채로 맑은 하늘을 보고 푸른 바다를 보며 감격하여 눈물을 주루룩 흘렸습니다. 조심스레 차를 설악산으로 옮겼어요.
설악산 깊숙이 들어와서 설악산의 높은 산과 숲과 큰 나무를 보자 또 감격의 눈물을 주루룩 흘렸습니다. 다시는 못볼 광경을 마지막으로 보게 되니 감격이 되어 눈물이 났나 봅니다. 한 15분 정도 머물렀나요. 바로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데 숨이 가빠지더니 결국 구급차 안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젊은이는 푸른 바다, 푸른 산, 맑은 하늘을 살아있는 동안만 볼 수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살아있는 것이야 말로 감동 그 자체입니다.
우리도 살아있는 동안만 사랑하는 사람을 보거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만 맛있는 것을 먹고 미래를 꿈 꿀 수 있습니다.살아있어야 좋은 일도 할 수 있으며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것이 중요하고 살아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울 뿐입니다.
얼마 전 새벽예배를 마치고 운동을 하니 온 몸이 땀으로 젖었고 목이 탔습니다. 시원한 냉수 한잔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는데 속까지 시원한 것이 물맛이 꿀맛이었습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연로하신 어른을 생각하며 “하나님 제가 살아서 이렇게 시원한 물맛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이더라구요.
제게 생명이 없다면 아무 맛도 알 수 없지요. 살아 있기에 맛볼 수 있고 살아있기에 운동도 물맛도 즐기고 있는 거지요. 군대 가서 두 다리를 절단하고 돌아온 젊은이가 죽어버리겠다며 난리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충격이 컸겠지요. 불구로 살려니 억울하고 분하고 불편하고 고통스럽겠지요.
그래서 받아들이기 힘들고 인생을 즐길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나 고통이나 슬픔도 넓은 의미에서 생명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아있기에 아픔을 겪는 겁니다. 불구의 몸이라도 살아있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몇 년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서강대교수 고 장영희씨는 특별한 분이었습니다.
그녀는 태어나면서 일급 소아마비로 두 다리와 오른 손이 마비되어 쓸 수 없었어요. 늘 두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고 글도 제대로 쓸 수가 없어 오른 손에 보조대를 대고 공부해야 했어요. 삶을 비관 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였어요.
열심히 공부하여 서강대학을 졸업하고 미국가서 공부하여 천신만고 끝에 영문학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하지만 장애인박사라 받아주는 데가 없어 10년간 수모와 아픔을 겪었어요. 그래도 참고 견뎠어요. 마침내 서강대학교에서 꿈꾸던 교수가 되어 활동하였는데 2001년에 유방암이 생겼어요.
장교수는 암을 받아들이며 암과 싸웠어요. 그런데 3년 뒤엔 척추 암이 생기자 또 그 암과 싸웠어요. 그런데 얼마 뒤에 간암이 생겼어요. 온 몸에 암이 퍼진 거에요. 놀라운 사실은 장교수는 모든 암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소아마비와 전신에 퍼진 암과 싸우며 피골이 상접해지는데도 놀랍게도 그녀는 특유의 밝고 활발한 모습을 잃지 않았습니다.
삶이 고통스러운데도 사랑, 희망, 열정을 잃지 않았으며 항상 웃고 항상 따뜻한 마음, 밝고 소망에 찬 모습을 유지했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 밝고 행복해보이냐고 묻자 장교수는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했어요. “소아마비와 암 그로 인한 고통과 슬픔이 아무리 크다 해도 내가 현재 소유한 이 생명의 기쁨보다 크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이 감격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수도 바꿀 수가 없어요.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놀랍고 감사할 뿐이에요.” 그녀는 자신의 아픔보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래서 감격하며 기뻐하고 있었어요. 그래요. 지금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기적이요 축복이요 특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결혼 생활이 힘들 때가 있지요.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만 겪는 겁니다. 결혼생활을 즐기세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새 없이 이어지는 직장생활로 고달프지요. 살아 있는 동안만 겪는 것이니 직장생활도 즐기세요. 때론 앞길이 풀리지 않아서 죽고 싶지요. 그런 답답함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만 겪는 것이니 답답함도 실망도 고통도 즐기세요.
피해 갈 수 없으면 무거운 짐도 마음의 고통도 받아들이시고 즐기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마음 먹으면 견딜수 있고 견딜만 합니다.우리의 생명은 짧습니다. 금방 사라집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러운지요. 이 감격, 이 특권을 누리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허락한 모든 생명, 즐기시며 감사하며 살길 원하십니다.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살아있는 동안 견디고 또 이겨내길 원하십니다. 이 믿음으로 현실의 삶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고통조차도 받아들이며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 살아있는 동안 생명을 즐기는 길은 고통도 받아들이는 것이라 했어요. 생명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은 남의 유익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12절을 보세요.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도다. 생명을 즐기는 또 다른 요소는 남을 위하여 착한 일을 행하는 겁니다.
어느 신문기자가 그런 글을 썼어요. 돈은 모으는데에 있지 아니하고 쓰는 데에 가치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 말입니다. 그 많은 돈을 다 쓰지도 못하고 죽을텐데 그것을 숨겨 논다하여 행복하지 않습니다. 돈을 써야 행복합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아무리 돈을 많이 모아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착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미국부부가 자식을 낳지 않고 양자양녀 17명을 입양하여 그들을 다 내 자식처럼 키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시아인, 흑인, 그 가운데는 장애 아이들도 많았어요. 왜 이렇게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불쌍한 아이들이 우리들로 인하여 조금이라도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합니다. 한번 살다가는 인생인데 살아 있는 동안 착한 일을 하기로 작정했어요. 참 아름다운 삶입니다.
미국의 사상가요 시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성공적인 삶이란, 나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행복해지게 만드는 것이다 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가치있는 말입니다. 비록 우리가 한번 뿐인 생명을 살지만 그 생명으로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다면 인생을 가치있게 즐기는 것이지요.
고린도전서 10: 3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 한번 뿐인 삶인데 남에게 해를 끼치고 남의 행복을 빼앗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겁니다. 그리고 33절에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했어요. 남의 유익을 위하여 살아갈 때 생명을 가장 잘 누리는 사람입니다.
여름성경학교에 많은 분들이 수고해 주셨어요. 자기 물질, 자기 시간, 자기 노력을 다 기울여 성경학교에서 어린 생명들을 가르치고 돕습니다. 이렇게 수고하는 동안 어린 생명들이 복음을 접합니다. 믿음이 자랍니다. 생명을 얻습니다. 어린 생명들에게 참 착한 일을 하는 겁니다. 선한 일을 하고 나면 오히려 몸은 피곤합니다. 그래도 기쁘고 행복합니다. 왜냐면 착한 일이니까요.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만 이렇게 착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죽고 나면 하고 싶어도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착한 일 중에 가장 귀한 일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복음 전도입니다. 한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 그것은 일생 일대에 가장 훌륭한 착한 일입니다. 주변에 하나님을 모르고 영생의 길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착한 일에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감당하길 원하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착한 일에 관심을 쏟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I. 살아있는 동안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생명을 즐기려면 고통스러운 일도 받아들이는 것이며 남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그것은 나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1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짐승은 영원한 삶도 없고 영원한 삶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만은 하늘나라의 영원한 삶을 소망하며 삽니다. 그 마음을 누가 주셨느냐 하나님이 주셨다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14절 하반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을 기대해야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명으로 살도록 말씀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외로워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없습니다. 자기 욕심만을 채우려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다는 사명이 없습니다. 세월을 낭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삶의 목적인 사명이 없습니다. 사명을 잃었거나 사명을 버렸거나 사명을 망각한 채 살아갑니다.
평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일생을 살았던 바울, 그의 생애를 보면 몇가지 특징이 있어요. 그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어요. 로마서 14:8을 보세요. 그의 목적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산다. 삶의 목적이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그의 삶은 이렇게 목적이 분명했어요. 두 번째 그의 삶의 방식은 오직 주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0: 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자기 쾌락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돈을 모으지 않았습니다. 자손들에게 뭔가를 물려주려고 물질을 쌓지 않았습니다.
세속적인 것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의 목적이 이렇게 하나님을 위하여 분명히 세워진 이유가 있어요. 14:8 하반절에 보면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우리가 주의 것이기에 주를 위하여 사는 겁니다. 보세요.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셨어요.
예수 믿고 사명을 발견한 후 자기 별장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린 안수집사님을 보았습니다. 예수 믿고 뒤늦게 사명 깨달았다며 죽을때까지 전도에 미쳐 산 초신자를 보았습니다. 예수믿고 주를 위하여 살겠다며 늘 교회에 와서 청소하고 화단을 관리하다가 하나님 품안에 안긴 사람을 보았습니다.
예수믿고 내 사명은 교회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라며 새벽기도회를 평생 하다가 주님의 품안에 안긴 권사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믿고 내 사명은 목회자를 돌보는 것이라며 목회자 가정을 극진히 사랑하다가 하나님 품안에 안긴 장로님을 보았습니다. 예수 믿고 내 사명은 이것이다 하며 그 사명을 좇아사는 사람들을 수 없이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갈 사람들입니다. 그곳에서 영생을 누릴 사람들입니다. 그곳에 가기 전에 사명을 좇아 살면서 하늘의 상급을 쌓으시길 바랍니다. 히브리서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자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셨어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상 주시는 자이심을 믿고 쓰임받길 원하십니다. 이 믿음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이 믿음으로 사명을 따라 사시며 사명에 죽고 사명에 살고 사명이 모든 것이 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글 : 박 영재 목사
첫댓글
글이 좋아서 잠도 안자고 끝까지 다 읽고 글을 올립니다.
이 글을 읽으며 두 손을 꽉 잡고 고개 숙여 뜨거운 눈물로
한나처럼 심령으로 기도했습니다. 정말 회개하게 하는 글입니다.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다시한번
마음속으로 다짐해봅니다. 이 글 내용대로 살아보겠노라고...
우리가 살아 숨쉬며 살고 있는 이 삶을 더 살기위해서
몸부림쳤지만 더 살지 못하고 끝내 이 세상을 작별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살아 숨쉬는 동안에
착한 일 많이 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길고 추운 겨울이..일상이.. 육아가 지치고 힘들다고 불평했던 내 자신을 돌아봅니다.
많이 힘들었군요. 주님의 위로와 평강으로 넘치시기를...
우리가 지금 살아있으니 이 글에서처럼 사랑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고, 음성도 들을 수 있고, 대화도 할 수 있네요.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고,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자연도 보네요. 행복하세요. 그리고 영육간 강건하세요.
많이 크게 웃으시고 좋은일 가득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