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이 있은 지 5일이 지났다. 하지만 지상과의 연락은 아직도 두절된 상태이다. 예상보다도 피해의 상태가 심각한 것 같다. 언제까지 이 지긋지긋한 기다림을 계속해야 할지 걱정이다. 팀원들의 불안이 점점 거세 지고 있다. 지금 상황으론 실험의 진행이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모든 신경이 지진에 맞추어져 실험이 손에 들어오지 않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대책회의 결과, 5일을 더 기다려 소식이 없을 경우 존 대위가 피터 소령이 가지고 있는 일인용 비상 탈출키를 이용하여 지상으로 나가 보기로 결정되었다. 과연 앞으로 5일 안에 연락이 올 것이 가.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나를 괴롭힌다. 이미 결과를 알고 보는 영화처럼 끝을 알면서도 그것이 그리될까 두려운 그런 묘한 기분이다. 나는 두렵다."
Ben20320613.midas
"연락은 오지 않았다. 계획대로 존 대위는 단독으로 지상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우리에게는 희망이자 도박 같은 일이다. 만에 하나 그가 돌아오지 못할 경우 우리들은 폐쇄 연구로 걸려있는 락(Lock) 때문에 5개월 뒤인 11월 7일 오전 12시까지 태양을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럴 리 없겠지만 연락이 그때까지도 두절되거나 혹은 중간에 기타 사고가 생길 경우 우리는 노아 안에 갇히는 꼴이 되어 버린다. 이건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을 얘기한 것이며 나를 포함한 모든 팀원들은 존에게 모든 귀추를 주목하고 무사귀환을 바라고 있다. 데미안이 존이 엘리베이터에 오르기 전에 슈퍼슈프림 피자를 주문했다. 부디 빠른 시간 내에 피자를 맛보고 싶다."
Ben20320623.midas
"존이 세상 밖으로 나간지 10일째 되는 날이다. 연락은 물론 피자는 주문되지 않았다. 몇몇 팀원들은 절망에 빠졌고 몇몇은 우울증과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고 있다. 닥터 프랭클린은 어떻게든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팀원들의 상태는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는 추세다. 나 역시 신경성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지진이 일어 난지 20일째, 전화는 물론 TV, 라디오, 인터넷과 미군으로 연결되는 다이렉트 폰 역시 불통이다. 어떻게 된 것인가? 왜 연락이 없는 것인가? 지진이 일어난 후에 우리 프로젝트를 알고 있는 극소수의 상부요원들이 모두 죽었단 말인가? 존은 왜 돌아오지 않는 것인가? 세상이 망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나의 두려움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Ben20320703.midas
"지리 하게도 길게 느껴졌던 또 다른 10일이 지나갔다. 지진 30일째, 세상과의 연락은 없었다. 존 역시 행방이 불투명하다. 피터 소령 등은 존 대위가 사망하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가슴 아픈 일이기는 하나 현재로선 아무 것도 단정할 수 없다. 그렇다 아무 것도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의 우리에겐 가장 큰 적이다. 진실과 허구, 옳고 그름의 확실성이 없다는 것, 흐리고 티미한 것 그것은 인간을 불안하게 하고 목표를 상실하게 만들어 결국 미치게 하는 것이다. 나 아니 우리는 불안으로 인해 서서히 미쳐가고 있다. 이건 두려움이 아닌 공포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에서 지워져 버린 듯 한. 못내 떨쳐버릴 수 없는 공포이다. 나의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뉘우쳤다. 이렇게 무력한 인간이 신이 되기를 그토록 희망했다는 걸. 제발, 신께 기도한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어처구니없는 상상에 불과하기를..."
Ben20320826.midas
"지진 발생 후 벌써 2달째.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연구원 중에 한 명이었던 제임스 메튜 박사가 오늘 아침 그의 방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사인은 자살이다. 자신의 운동화 끈으로 목을 매단 것이다. 유서도 없었다. 대학시절 인체 해부 때 이후로 처음 대하는 시체였다. 시체를 보는 순간 여자아이처럼 떨려왔다. 나의 미래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끔직한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불행한 것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피터 소령과 데미안이 시체를 4층 리빙 유닛의 한 벌집 속으로 옮겼다. 밖에서는 아직도 아무런 소식도 연락도 피자도 없었다. 다시는 4층에 발을 드리지 않을 것이다."
Ben20320924.midas
"제임스의 자살 이후, 팀원들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팀원간의 신경질이 눈에 뛰게 증가했고 다투는 일이 비일비제 해졌다.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감시했다. 프랭클린 역시 이런 광적인 분위기를 거의 포기해 버린 듯 보였다. 나는 팀의 치프로서 더 이상 무슨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을 내렸고 즉각 실천에 옮겼다. 회의를 열어 팀원들에게 살아가야 할 희망을 제시해 주었다. 지진 이후로 중단되었던 실험을 제게 하자는 거였다. 하지만 나의 주장은 현실에 부대껴 처참히 일그러졌다.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그들에겐 확인되지 못한 불안요소를 가지고 있고 그 시한폭탄을 가지고 있는 한 그들의 눈에는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으리라. 그래서 난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그것은 락이 풀리는 11월 7일까지 어떻게든 조금만 참아 보자는 것이었다. 앞으로 한달 남짓한 시간이다. 이번에는 팀원들이 미끼를 물었다. 그들의 눈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고 생각 된건 나의 착각 이였을까? 아직도 불안하기는 하지만 새로운 목표로 해서 불안을 삭히고 있는 것 같다. 조금만 참아보는 것이다. 조금만..."
Ben20321107.midas
"비극이다.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것도 모르겠다. 광분을 참으며 기다려온 한달 이였는데... 지진, 그건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다. 세상은 처참하게 변해있었다. 눈에 보이는 건 대지 위를 농락하는 붉은 먼지와 검은 재 덩어리들뿐이었다. 희망의 꿈을 안고 밖으로 나갔던 우리들은 단 5분 도체 버티지 못하고 노아로 되돌아 왔다. 팀원들의 실망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충격과 경악 그리고 끝없는 어둠 이였다. 아... 지구는 어떻게 되어버린 것인가. 세상에 살아남은 이는 우리뿐이란 말인가? 우리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가? 무섭고 겁난다. 끔직한 악몽이다. 미칠 것만 같다. 우리가 그를 버리기 전에 신은 우리를 버렸다."
Ben20321111.midas
"밖을 나갔다 온지 3일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일 사이에 팀원 이였던 테일러와 미타나미 박사가 자살을 했다. 15명이던 인원은 11명으로 줄었다. 시체는 다시 4층 리빙 유닛으로 옮겨졌다. 4층은 이제 공동묘지라 불리 운다. 밖을 보고 온 후로 데미안과 스튜어트 그리고 그린버그 박사가 알 수 없는 병에 결려 알아 누었다. 프랭클린 역시 속수무책인 지금 까지 밝혀진바 없는 폐병이다. 심하게 피를 토하고 있다. 11명에서 8명으로 줄어들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난 더 이상 슬픔도 아픔도 느끼지 못한다. 그저 참담히 미쳐갈 뿐이다."
파일이 멈추었는데도 론 등은 벤의 공포가 전념 된 듯이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어두운 전율 속을 헤매고 있었다. 지금 까지 자신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두려움과 떨림 이였다. 내가 만약 저 상황 이였다면,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포기와 좌절의 기로에 놓인 사람처럼 헤어나올 수 없는, 깊고도 깊은 검은 구렁텅이 바로 그 것이었다.
"캡틴"
진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론의 정신을 부른다. 자신들이 세이비어들에 의해 선택된 것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 일인지, 진이 말했던 이런 환경에서 명을 이어가느니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른 체 폭발과 함께 사라져 버렸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얘기와 그때 사라져 버린 소중한 사람들, 가족, 친구, 이웃들의 생각으로 뒤 덮여 있던 론의 머리 속에 한 가닥의 햇살처럼 메아리쳐 들려오는 소리에 퍼득 정신을 차린다.
"아! 네. 넘어갑시다. 겜마의 일기에 따르면 14년 정도에 뒤에 대기안정이 되었고 그때 과학자들은 지구를 살릴 수 있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로 인해 지구가 되살아나고 겜마 역시 태어날 수 있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2046년으로 뛰어 넘어가 봅시다."
론은 혀끝이 씁쓰러워 지는 불쾌한 기분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파랗게 질려버린 얼굴의 리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떨리는 손을 들어 2046년으로 향했다.
Ben20461225.midas
"지구가 재로 뒤덮인 게 벌써 14년 전이다. 내가 어떻게 미치거나 병들지 않고 그 긴 시간동안을 살아 남았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다. 불과 몇 시간 전의 시간이 마치 백지처럼 하얗게 느껴지기만 한다. 무(無), 모든 것을 포기한 무소유, 무정신, 무체의 경지. 말이 거창하지만 내가 말하는 무의 경지라는 것은 불교나 기타 다른 종교와 철학에서 말하는 무와는 거리가 먼, 나만의 생존의 법칙이다. 우습게도 인간이 미치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어떠한 것에 열광적으로 미쳐야만 한다. 피터와 찰스는 오늘 역시 운동으로 하루를 보냈고 루트게르와 알렉스는 매인 컴퓨터 룸에 깔려있는 엄청난 불량의 도서와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소비한다. 그리고 난,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안과 공포의 잠재의식을 없애기 위해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버리기고 과거 동양인들이 하던 참선의 수양을 머리 속에 그리면서 방안에 들어앉아 끝없는 명상의 시간을 보냈다. 다시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동료 중에 하나가 미쳐 다른 누군가를 죽였던 그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해서 나는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 적어도 오늘까지는. 하지만 너무도 긴 시간 이였고 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버렸다 생각했어도 난, 나라는 존재 자체를 이겨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크리스마스인 오늘, 죽기로 결심했다. 일행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은 체 난 마지막으로 붉은 먼지와 재로 가득차 있을 망정 하늘과 땅을 보고 싶었다. 태양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실험실에 비치되어 있는 가스 마스크를 쓰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거대한 문이 열리고 문을 나섰다. 그리고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태양을 보았다. 하지만 난 차마 마스크를 벗어버릴 수 없었다. 그곳에는 푸른 하늘과 붉디붉은 태양이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지는 아직도 먼지와 황사로 뒤 덮여 있었지만 하늘만큼은 눈이 부시도록 푸르렀다. 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 할 때쯤 난 붉은 신의 계시를 받았다. 둥글고 뜨거우며 만물을 자라나게 하는 영생의 힘을 지닌 그 신이 내게 말했다. 아니 부르짖었다. 이 황야를 이 저주받은 대지를 다시 개척하라고. 다시 일구고 또 일구어서 녹색 지구의 색깔을 되찾으라고.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우리가 살아 남은 이유를... 난 즉시 그 개시를 실천에 옮겼다. 동료들을 모아 다시 지상으로 나왔고 우리 다섯은 그 자리에서 그 개시를 프로젝트 청(靑)이라 이름 짖고 삶이 다할 때까지 프로젝트의 완성을 위해 단합할 것을 맹세했다. 지금 찰스는 밖에서 체취 해온 토양의 성분을 분석하고 있고 나머지 3명은 靑의 성공을 위한 단계적인 계획을 새우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활기와 열의가 넘치고 있다. 14년만에 난 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고 있다."
Ben20461226.midas
"토양 분석 결과 다량의 금속성분과 다옥시브 그리고 미세하지만 방사능이 합류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비통할 만한 수치이지만 이것이 시작이다. 우리는 우선 토지의 개량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루트게르의 아이디어를 받아 드려 금속성분을 유기물로 분해시켜 줄 수 있는 박테리아를 만들기로 합이 했다. 비료나 기타 토양을 기름지게 하는 유기체를 만들어 낸다 하더라도 그것을 퍼트리는데는 엄청난 인력이 필요할 것이다. 때문에 공기 중에서도 얼마든지 퍼질 수 있는 금속부식용 박테리아 개발에 성공한다면 그 효과는 말로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란 논리였다. 14년만에 다시 마이다스가 가동되었다. 나와 찰스 그리고 루트게르는 마이다스에 매달려 박테리아 연구에 박차를 가했고, 피터는 靑 계획을 온 지구에 퍼트릴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다며 알렉스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새로운 희망이 우리를 절망의 늪에서 일으켰다. 너무도 즐겁고 기뻐서 가슴이 막히는 것 같다. 신께 감사드린다. 내가 살아있음을."
Ben20470214.midas
"드디어 인체에 무해하면서도 금속성분과 방사능까지 먹어치우는 박테리아가 완성되었다. 우리는 이것이 만들어진 오늘의 이름을 새겨 발렌타인이라 이름 지었다. 피터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나가 푸른색의 발렌타인 가루를 지상 위에 살포했다. 연구를 위해 특정 지역을 마크했고 이제 결과만을 기다릴 차래 이다. 하지만 연구진은 계속해서 두 가지의 다음 계획에 착수했다. 한가지는 분해된 유기물을 다시 한번 유기체로 변화시켜줄 촉매물 그리고 유기물과 유기체를 에너지로 하여 강한 생명력으로 자라날 수 있는 씨앗이 그것 이였다. 재미있는 것은 촉매물에 지정된 대상이다. 우리는 수만 년 전부터 지구의 어두운 곳에서 자라온, 어쩌면 지금도 어디엔 가에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바퀴벌레를 주인공으로 발탁했다. 오래 전 연구 중에 이 곤충에 관한 것이 있어서 쉽게 성공하리라 예상된다. 단지 적응력이 우수하고 번식 능력이 강하며 유기물에 대한 식욕이 몇십 배나 많은 그런 우수한 바퀴를 생산 할 생각이다. 성공한다면 바퀴가 지구를 비옥하게 만드는데 1등 공신이 되는 셈이다. 밖은 지금 산성비가 내리고 있다. 대 재앙이 지구의 날씨를 완전히 변화시킨 모양이다. 하지만 잦은 비와 뜨거운 기후는 식물들과 곤충들 그리고 박테리아가 성장함에 더 없는 환경을 제시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발렌타인에게 축복을..."
Ben20470316.midas
"발렌타인은 대성공이였다. 박테리아들은 굶주린 이리떼처럼 순식간에 토양을 먹어 치웠다. 발렌타인을 살포한 지역의 붉은 토지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갈색의 유기성분들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너무 기뻐서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연구도 순조로와 바퀴벌레들은 이미 완성 단계에 있고 씨앗의 진척도 역시 높은 편이다. 지금 무엇보다도 우리를 설레 이게 하는 것은 피터는 엄청난 아이디어이다. 그것은 노아 안에 극비리에 설치되어있는 군사용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에 핵탄두를 제거하고 그 안에 발렌타인을 장착하여 미 대륙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 중남미 그리고 아프리카 지역까지 쏘아 보내자는 의견 이였다. 우리는 환희로 전율했다. 탄두가 제거되고 씨앗연구가 성공되는 데로 발사할 계획이다. 어서 시간이여 오라."
Ben20470407.midas
"지상에 올라가 보니(아직 마스크는 착용하고 있다.) 2주전에 방출한 바퀴벌레들이 주위에 우글거렸다. 나와 찰스는 꽃밭의 아이들처럼 그 주위를 신나게 뛰어 놀았다. 지구 역사상 바퀴벌레 밭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 가 싶었다. 좀 침착해 진 우리는 2일전에 심었던 그린(Green)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위치로 향했다. 각 열대 식물들 중에서 뛰어난 양성 인자만을 모으고 잡초에나 있을 법한 강인한 생명력을 지였으며 보통 생물의 5배의 환경적응력과 8배에 가까운 성장력, 길고 널찍한 이파리로 왕성한 광합성을 시작하여 공기를 만들고 순환시켜 살아있는 공기 청정기 역할을 톡톡히 해낼 지구의 희망이자 靑의 소망, '그린'(Green). 싹이 나아 있었다. 아기 손바닥처럼 작은 잎사귀를 하늘로 향해 뻗은 초록빛의 보석. 우리는 서로 얼싸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참으려 해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지구의 새로운 싹이, 미래를 이어갈 불씨가 드디어 피어난 것이다. 이제 우리의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현실이며 역사이고 시작이다. 2047년 4월 7일, 지구가 다시 숨쉬기 시작했다."
Ben20470628.midas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우선 오대주에 하나씩 발사 됐다. 각 미사일에는 삼등분으로 나뉘어 발렌타인과 그린 씨앗들 그리고 다량의 바퀴벌레가 탄착 되어 있다. 불을 뿜으며 날아가는 탄도미사일을 바라보고 있자니 한가지의 물건이 용도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쓰일 수 있게 되는지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 옛 중국의 베이징 지역에 첫 번째 미사일이 성공적으로 투하되었다. 관성유도 방식으로 정확하게 태평양 상공을 날아간 미사일 탄착물들은 지상 3백 km 지점에서 분리된 후, 가로·세로 2천 km × 5백 km 이라는 광활한 면적 위로 흩어졌다. 박테리아인 발렌타인은 물론, 가벼워서 공기의 저항을 받지 않는 그린 그리고 특수 설계된 스티로폼 박스 안에 들어있는 바퀴들 역시 계획 되로 아시아의 대지 위에 뿌리 내렸다. 그들은 왕성한 번식력으로 중국을 메우고 한국과 일본열도까지 퍼져 나갈 것이다. 두 번째 미사일은 독일의 베를린 상공에, 세 번째와 네 번째는 각각 멕시코와 호주 시드니 상공에,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미사일이 아프리카 가나 상공 위에서 분리되며 미사일 프로젝트의 성공을 알렸다. 우리는 자축 파티를 가졌다. 물리도록 먹어왔던 캔 음식들을 뒷전으로 하고 간부용 창고에서 가져온 보드카와 위스키, 냉동 살코기 햄과 스위스산 치즈로 배를 채웠다. 모두가 보기 좋게 취했다. 노아의 밖에는 근 3개월 사이에 4m 가까이 커버린 울창한 그린들이 자랑스럽고 당당한 모습으로 버티고 서있다. 앞으로 몇 년 후 지구의 모든 부분이 이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건배한다. 치얼스!!(Cheers)"
새로운 희망(New Hope)
그렇게 시작된 靑의 계획은 단계적인 진행을 거처 5년 후에는 지구의 거의 모든 부분을 녹색으로 채색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노아의 박사들은 그 정도에서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연구에 몰두하여 그린 2(Green 2), 와 그린 3(Green 3) 등의 변이체들과 기존에 지구상에 존재하던 식물들의 유전자를 그대로 이식 받은 씨앗들까지 만들어 미사일로 쏘아 올렸다. 그뿐만이 아닌 곤충 분야에도 일익을 보여 여러 가지 특징을 지닌 개미들과 식물들의 수정을 도울 벌 등과 같은 비행성 곤충들까지 만들어 냈으며 강과 바다에는 수중 풀들과 플랑크톤, 새우, 조개 등을 재배했다. 10년이 지나자 보이는 곳 모두가 나무와 풀, 변종으로 생겨난 꽃들로 채워졌으며 보다 깊숙한 곳으로 생명을 퍼트리기 위해 작은 새들을 만들고 그 새들을 관리하기 위해 맹금류를 탄생시켰다. 자연적인 먹이사슬이 생기게 되고 자연의 위대한 힘은 그들을 발전시키고 또 다른 생명체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빙하기를 거친 대지처럼 세상은 조금씩 변해 같고 땅위의 사물들은 늘어만 갔다. 태초의 신보다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인간들이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Ben20570815.midas
"靑의 계획이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우리가 성공적으로 지구의 앞마당을 초록 물결로 수놓은 것이다. 이산화탄소와 기타 공해 가스 비율 3백 50 PPM. 더 이상 가스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지구의 공기는 깨끗해졌다. 처음 마스크를 벗고 숨을 드리 마실 때의 그, 허파 속까지 요동치게 하던 벅찬 감격을 난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것이다. 지구는 완벽하게 복원되었다. 이제 우리의 마지막 계획, 靑의 마지막 단계인 인(人)을 창조시킬 때가 왔다. 신의 여섯 번째 날이 도래한 것이다. 우리가 재건한 이 지구 위에 아담과 이브들을 만들어 새로운 인류의 역사를 이어 가자는 靑 최후의 사명, 인(人). 나를 비롯한 노아의 생존자들은 이제 평균 연령이 62살을 넘는 노인이 되었다. 게다가 노아 속 밀폐된 환경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노화가 빨리 찾아와 심하진 않지만 여러 가지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의사인 알렉스가 가장 심하게 앍고 있다. 이런 희박한 삶이 다하기 전에 우리들은 마지막 계획을 향한 실험을 재기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아 안에는 세계의 거의 모든 동물의 혈액이 채취되어 있음에도 인간의 혈액은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우선 동물들의 DNA 합성에 주력하고 후에 인간 DNA를 연구할 양으로, 폐쇄 연구가 끝날 쯤에 펜타곤으로부터 지원 받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난 우리 다섯의 DNA를 추출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리들 중 가장 좋은 골격과 신체를 가진 피터의 DNA에다 루트게르의 뛰어난 머리회전과 창의력, 찰스의 놀라운 기억력과 집중력, 알랙스의 기품과 매력 그리고 나의 리더쉽 등의 유전자를 두루 갖춘 우리들의 자식, 새 지구의 주인을 만들려 한다. 조금 전 멤버들의 혈액에서 각각의 기능을 담당하는 DNA를 찾아냈고 마이다스 안에서 결합시켰다. 염색체의 과정을 지나 핵의 모습을 찾은 우리의 희망은 조금 씩 세포 분열을 시작하여 인간의 형상으로 탈바꿈 할 것이다. 인큐베이터의 진행 속도를 3배로 해서 3개월 후면 우리들의 아이가 태어나게 된다. 물론 그 과정까지 투명 플라스틱을 통해 상세히 관찰하겠지만, 하하하. 출산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 지금은 아이의 얼굴을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들어가서 팀원들과 함께 아이의 이름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겠다."
Ben20580916.midas
"두 번의 실패 끝에 아이가 태어났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사내 아이 이다. 신체는 피터의 DNA를 이어 받았을 망정 얼굴의 윤곽은 나를 가장 닮았다. 우리는 많은 고민 끝에 아이의 이름을 세 번째 연구의 성공 그리고 여자와 남자를 뛰어넘는 새로운 재 삼자(三者)의 인간이란 뜻으로 겜마(Gamma)라 정했다. 원래 그리스어로 3을 의미하는 감마(Gamma)를 발음의 용이성 때문에 겜마라 하기로 했다. 우리는 너무 늙고 아이를 키운 경험이 없어서 마이더스 안에 프로그램을 입력, 겜마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인큐베이터 안에서 키우게 된다.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아이는 원활한 영양공급과 영재교육으로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끝나는 5년 후에 인큐베이터가 열리고 두 발을 땅에 디디게 되리라. 우리는 걸음마를 시작하는 모습을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하며 보통 가정의 부모처럼 기뻐하겠지. 이제 더 이상의 미련도 야망도 없다. 남은 여생을 겜마의 교육에 치중하여 그가 올바르게 자라나 세상과 조화이루며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치 안기로 했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나거라 내 아들아."
밝혀지는 진실
"그는 이렇게 태어난 거군요. 아님 만들어 졌다고 해야하나?"
진의 미간의 골을 잔뜩 패이게 하며 오래된 침묵을 떨쳐버렸다.
"첫째 날 빛과 어둠, 하늘과 땅을 만들고 둘째 날 공기와 궁창을(물층) 셋째 날 대륙과 바다 그리고 식물을 만드셨고 넷째 날 태양과 달, 별을, 다섯째 날 새와 물고기, 그리고 여섯 번째 마지막날 동물과 인간을 만드셨던 바이블에 적혀 있는 천지창조의 발자국을 인간은 그대로 따라갔던 겁니다."
스와르는 미사를 시작하는 신부 같은 무겁게 깔린 어조로 말했다.
"쉽게 말해서 겜마는 벤이라는 자의 아들이나 다름없었군요."
마이클이 배를 쓰다듬으며 상황을 간추린다.
"간단히 말하면 그렇지만 저는 아들과 아버지라는 것 이상의 보다 특별한 관계였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스와르씨의 말씀처럼 아담과 신의 관계와 같은 무언가 자신의 계시를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든 창조자와 창조물이란 느낌의..."
확신이 서지 않은 듯 론이 말끝을 흐리자 리나가 그 틈을 이용해 이야기한다.
"겜마는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에요. 보통 부모님의 사랑 속에 자연스레 세상에 눈을 뜨게된 그런 사람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만큼 기대와 요구, 그에 따른 부담과 욕구가 많았을 겁니다. 무엇보다 어려서부터 홀로 느꼈을 외로움, 그리움... 그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이상의 것을 느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의 상상을 크게 벗어난."
"괴물이란 말인가?"
스와르의 음성이 차가운 메아리가 되어 퍼져 나갔다. 리나는 그의 눈을 지그시 쳐다보며 부정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요."
어색한 침묵이 감돌기 시작할 때 커크가 어렵게 입을 땐다.
"우린 아직도 많은 부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서 나머지 파일들을 열어 보기로 합시다."
Ben20700722.midas
한 단란한 가족의 앨범을 들여다보는 심정이었다. 양수 속을 유유히 헤엄치며 박사들에게 손을 흔들고 마이다스와 연결된 공기 튜브로 호흡하며 울고 웃고 인큐베이터 벽면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교육을 받는 어린 겜마의 모습은 보통 아이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가 성장함에 따라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5살이 되어 인큐베이터를 나왔고 그때부터는 박사들이 돌아가며 그를 교육시켰다. 겜마는 아버지라는 말 대신에 박사들의 이름을 사용했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학과 과학, 언어와 역사 거의 모든 분야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그의 천재적 지능은 8살에 백과사전을 독파하고 5가지의 외국어에 능통 하는 등 상상을 초월했다.
"오늘 겜마의 12번째 생일 잔치를 하였다. 난 그에게 공룡 도감을 선물했다. 겜마가 동물을 그 중에서도 뱀이나 악어와 같은 파충류들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겜마는 무척 기뻐했다. 피터는 자신이 직접 조각한 콜롬비아호 모양의 우주선을 선물했고 찰스는 영국 역사책을 선물하였으며 루트게르는 독일인답게 철학 책을 선물했다. 알랙스는 아파서 파티에 참석치 못했다. 겜마는 모두의 선물에 감사를 표했고 맛은 엉망 이였지만 내가 만든 생일 케이크도 맛있게 먹어 주었다. 나를 비롯한 늙은이들 사이에서 환하게 웃어주는 겜마가 한편으론 고맙고도 한편으론 미안했다. 그래서 오늘 겜마의 짝을 만들어 주기로 결정했다.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겜마에 대한 기대만으로 그의 성장기적 심리와 욕구에 대해서 너무나 무관심했던 것 같다. 필시 그는 늙은이들 사이에서 외롭고 따분했을 것이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왜 지금껏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나 싶었다. 연구는 내일부터 시작이다."
Ben20720502.midas
"신께서 이브를 창조하실 때 잠든 아담의 갈비뼈를 빼내시고 뼈 속에 생의 숨결을 불어넣으시어 에덴의 땅에 서게 하셨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갈비뼈는 있으나 생의 숨결은 갖추지 못하여 수 차례의 실험에도 불구하고 연구는 실패로 끝났다. 남녀가 고르게 가지고 있는 23개의 염색체, 그 중 두 개체가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22개 그리고 각각의 여자에 XX와 남자에 XY. 그 X 와 Y 의 차이를 넘지 못하고 우리는 포기해야만 했다. 우리는 무에서 무를 창조할 수는 있어도 유는 창조할 수 없으며 유에서 유는 만들어도 무는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결국 난 새로이 깨달았다. 지금 까지 우리가 창조라 행하며 이루었던 모든 것들이 단순한 착각이 이었음을. 우리는 신의 손바닥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체 그가 이미 만들어둔 생(生)이란 도면 안에서 그가 그려놓은 점과 점들의 사이에 또 다른 선을 그었을 뿐이라는 것을. 참담했다. 인간의 무능함이 한탄 스러웠다. 한 방울의 피, 한 올의 머리카락, 분자 단위의 DNA 한 가닥, 그만 큼의 차이로 우리는 평생을 투자하고 얻으려 노력했던 그 것에 백기를 흔들어야만 했다. 겜마의 얼굴엔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차마 그의 낮을 쳐다 볼 수조차 없었다. 난 지금 까지 무엇을 해왔던 것인가. 그 수많았던 실험 속에 무엇을 얻으려 했단 말인가. 그 경미한, 하지만 너무도 절대적인 벽을 확인하고자 함 이였던가. 이제 내게 남은 건 자신에 대한 무능함과 실망, 한숨 그리고 자식에 대한 미안함뿐이다."
같은 시각 카타콤베
중키에 연갈색 피부를 지니고 몸을 뒤엎는 하얀 옷과 망토를 걸친 한 남자가 엘리베이터, 연구원 휴게실, 회의실, 창고, 혈액 샘플실, 인큐베이터 룸을 지나 자신이 원하던 거대 달걀 모양의 기계 앞에 선다. 방안의 센서가 남자가 뿜어내는 열을 감지하자 순간 조명들이 켜지면서 어두운 방의 공기를 빛으로 덮어 버린다. 기계에선 미세한 동력가동 음이 새어나오기 시작하고 기계의 피부에 이식되어 있는 갖가지 모양의 소켓들이 그만의 의미가 담긴 빛을 강하게 발신한다. 남자는 기계의 중심부로 움직여 가슴속에 숨겨 두었던 두꺼운 종이 다발을 꺼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종이에 쓰여 있는 순서대로 컨트롤 보드에 달려있는 스위치들을 누르기 시작한다. 그가 누르기를 마치자 기계는 한층 더 밝은 빛들을 발하며 디지털 여성의 음성으로 물어온다.
"How to make a gold?"(황금은 어떻게 만듭니까?)
남자는 귀밑까지 찢어지는 소리 없는 웃음을 지은 뒤 신중한 목소리로 허공에 답한다.
"By touch of the Midas."(마이다스의 손길로.)
2초, 정적의 순간이 스쳐가자 기계의 매트릭스는 '윙 ∼ 잉' 풀 가동 모드로 전환되며 1000년간의 잠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워밍업을 시작하는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Password accepted, system on." (암호가 승인되었습니다. 시스템 가동합니다.)
그 순간 남자의 미소짓는 얼굴은 방의 조명과 기계에서 발산하는 빛으로 인해 처참하게 일그러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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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등이 파일의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을 눈치 첸 건 모니터 안의 주인이던 70대의 노인이 낫선 10대의 앳된 소년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였다. 멜라닌 색소가 빠진 듯한 다듬어지지 않은 회색 머리카락과 옅은 해안선을 그리게 하는 눈동자, 갸름한 얼굴에 백옥처럼 흰 피부. 요정같이 오목조목하게 생긴 코와 입이 어딘가 모르게 리나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이제는 거의 덤덤하게 파일의 노인을 대하던 일행들의 눈이 한순간에 모아진다. 그가 바로 겜마였던 것이다. 아기 때 이후로 성장한 모습으론 처음으로 접하는 레피탄의 신, 새 지구 주인들의 아버지, 깨어진 안경과 일기장의 주인, 겜마. 피부와 머리의 흰 빛깔 때문에 소년은 성인이나 성자처럼 눈부셔 보였다. 그의 푸른 시선이 화면을 투과해 론들을 향한다 그리고 산호 빛 입술을 움직였다.
"안녕. 내 이름은 겜마야."
아직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소년의 맑은 음성이 컴퓨터 룸의 공기 속에 울린다.
"내 나이는 16살. 이미 나의 아버지인 벤 박사의 파일들을 보았다면 알고 있겠지만 난 이곳 노아의 카타콤베,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이다스 안에서 태어났어. 내 취미는 독서하기와 달리기, 그린 라비에서 식물 가꾸기 그리고 마이다스로 조그만 동식물들 만들기. 지금까지 책에서 보았던 푸들 강아지와 금붕어, 앵무새 등을 만들고 딸기와 방울토마토 등을 재배했다. 아버지들이 다 죽은 후로 난 아주 만족스러운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어."
그의 마지막 문장이 론의 머리 속을 심하게 후려쳤다.
"잠깐 멈춰요."
리나가 즉시 그의 말을 이행한다.
"전번 파일이 2072년 5월 2일, 그렇다면 근 2년 반이 지난 후에 녹음된 파일이란 소린데. 비록 벤 등의 나이가 노인 층 이였다고는 해도 그사이에 모두 죽었다는 건..."
론의 납득 가지 않는다는 지적에 스와르가 동의한다.
"옳은 지적이요. 한사람도 아니고 다섯 명이 한꺼번에 사라졌다는 것과 겜마의 마지막 표현 그 후로 만족스런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 라고 한건."
"그가, 겨우 16살 밖에 안된 소년이 박사들을 죽였다는 건가요?"
라밍의 놀란 목소리가 스와르의 말을 잘랐다.
"이건 어디까지나 추론이요. 박사들이 자살하였을 가능성도 있고 실지로 겜마가 죽였을 수도 있죠. 하지만 과거의 일은 알기 힘들고 특히나 이런 유일 무이한 상황하에서는 어떠한 일도 가능한 거지요. 나도 그가 심히 의심스럽소 겜마는 박사들에게 엄청난 제재와 억압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받아 왔을 것이기 때문이요. 그것도 리나가 말한 데로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그 때문에 그의 머리에 이상이 생겼을 수도 있소 하지만 그런 확실하지 않은 이유만으로 그를 의심할 수는 없는 겁니다. 유죄는 어디까지나 확실한 근거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독단에 빠지기가 쉽소. 불충분한 자료로 성급한 가설을 세우지 말라 라는 말도 있지 안습니까. 아직 몇 게의 파일이 남아 있으니 그것들을 열어본 후에 차차 종합해 보기로 합시다."
스와르가 놀리 정연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라밍과 기타 팀원들은 자신들의 의구심에 장애를 받으면 서도 다시 침착하게 모니터에 비친 16살 소년의 얼굴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들의 눈엔 의혹과 두려움의 빛이 역력했다. 이제 성인처럼 보이던 아름다운 소년은 사라지고 그 이면에 감추어 졌으리라 생각되는 광적인 살인마의 모습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을 향해 미소지어 주거나, 싫은 것을 억지로 좋은 척 거짓 행위를 하거나, 그들의 무능을 속으로 되씹지 않아도 되. 나만의 자유, 선택, 인생. 파스칼의 말처럼 난 드디어 홀로 생각하는 갈대가 된 거야. 홀로 생활한지도 벌써 1년이 다되어 가. 솔직히 이제는 조금 심심하기도 해. 애완동물들이 있긴 하지만 지능이 너무 낮아서 재미도 없어. 책들도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가 힘들어. 그래서 일기를 쓰기로 했어. 지금 이 파일이 내 일기야. 벤은 마이다스 연구 기록으로 사용했을지 모르지만 난 일기장으로 사용한다. 앞으로 누가 이 내용을 읽으리라 생각진 않아. 하지만 인간은 기록의 역사잖아? 나도 내 자신을 기록하겠어. 난 요즘 마이다스를 연구 중이야. 보다 지능이 높은 애완 동물을 만드려고해. 새로운 동물들을 만들어 좀더 재미있게 지내고 싶어서 그럼 다음에 또."
파일은 소년의 말대로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사람처럼 간단한 인사말과 자신의 소개로 짧게 끝났고 리나의 자이로 마우스는 계속해서 다음 파일들을 클릭 했다. 파일들의 내용은 소년에서 청소년으로 성장해 가는 겜마의 개인적인 일들이 차지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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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난 그린 로비에서 꽃과 과일, 체소류를 가꿨어. 그러다가 피곤을 느껴 라비 바닥에서 누워 잠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식물 인큐베이터 투명 파이프 사이로 페인트로 칠해진 파란 하늘이 보였고 그 사이 사이로 그곳 식물들의 태양구실을 하고 있는 벌레 알처럼 생긴 대형 백열 전등들이 나를 비추고 있었어. 잠이 덜 깬 눈으로 그려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치 하늘이 움직이는 듯 느껴졌어. 몽환적인 잔상들이 어지러이 일어나면서 하늘에선 새들이 날아다니고 구름들이 피어나고 사라졌어. 전등에서 파생되는 인조 태양열이 나의 뺨에 부디혀 따스하게 흡수됐고 난 눈을 감고 깊이 깊이 그 평화를 음미하려 노력했어. 그때 난 눈을 뜬 거야. 맑은 날의 번개처럼 갑자기. 이건 현실이 아니라고, 이건 거짓이고 만들어 진 것이라고, 난 존재하며 진실이라는 것. 이 좁디좁은 노아 안이 세상의 전부가 안이라는 것. 그렇기에 내가 있을 곳은 이곳이 아니라는 걸. 난 그 순간 알게된 거야. 그래서 결심했어. 난 내일 이곳을 떠난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일기가 될지도 몰라. 상관없어. 난 나갈 거야. 박사들은 위험하다며 한번도 나를 밖으로 대리고 나가지 않았지만, 더 이상 나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살아오면서 지금 보다 더 큰 확신은 느껴보지 못했어. 내일 나의 역사가 뒤바뀌리라는 강한 예감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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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겜마는 세상에 발을 내 디뎠다. 그가 세상을 보고 느꼈을 심정은 말로다 헤아릴 수 없으리라. 다소 성숙해진 모습의 겜마의 파일이 이어진 것은 다시 반년이 지난 후였다.
"오랜만이군. 책 속에 나오던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이 이런 것일까? 단순히 편안하다는 표현 이상의 느낌. 아무튼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밖의 세상은 너무도 넓고 푸르렀어. 이런 세상에 큰 이바지를 한 벤 등의 박사들에게 감사의 예를 표하고 싶다. 이제 나의 차례가 왔다. 내가 세상을 발전시킬 때가 온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박사들의 희망을 들어주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상관없다. 난 나의 능력을 최대한 사용하여 이 무지한 땅을 개척해 나가겠다. 그를 위해 마이다스를 가동시키고 첫 번째 목표로 각종 초식 동물들을 만들 계획이다. 조금씩 커다란 동물들로 이어가서 끝에 신 지구인을 만들고 그들을 가르치고 보살펴 지구를 눈뜨게 하리라. 그리고 언젠가는 대지 위에 뛰어 노는 모든 사물들이 나의 손길로 이루어지고 그 들이 나를 아버지라 부를 그런 날이 오리라. 내가 진정한 신으로 추앙 받을 그날이..."
"처음부터 삐뚤어진 놈이었군."
진이 거칠게 말하며 손마디에서 소리가 나도록 주먹의 쥐어 보였다.
"그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인간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감을 가지고 있어요. 그가 말한 신 지구인에는 애초에 인간이 들어 있지 않은 거지요. 그는 유일한 존재. 신이 되고 싶었던 거예요."
리나가 몸을 떨며 말했다.
"겜마는 처음부터 너무 잘난 아이였습니다. 보았다 시피 그는 10살 정도의 나이에 일류 박사들의 수준을 넘어 버린 겁니다. 그런 그가 인간을 우습게 여기고 신이 되려 한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커크가 말을 마치자 스와르는 예상치 못했다는 눈을 그에게 보낸다.
"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나도 커크와 같은 생각입니다. 인간은 복잡한 듯 하지만 지극히 단순한 경향도 가지도 있지요. 힘이 있으면 그것으로 높은 자리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법. 최고의 힘인 지식과 창조의 힘까지 갖추고 있던 겜마에게는 신이라는 자리도 그리 높게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스와르는 겸연쩍어 하는 커크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말했다.
"좀더 핵심을 파고들어 심리학적 측면에서 설명하자면 처음부터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았던 불확실한 가족관계를 가지고 있던 겜마에게는 박사들, 아버지의 권위, 지배의 힘 따위의 제재가 금지된 자유에 대한 욕망으로 표출되고 그 욕망이 비워진 어머니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소년은 자신을 아버지들과 동일시하려 박사들의 말에 수긍하고 교육에 전념하며 자신의 현실을 극복하려 했고 급기야 그가 억압을 이겨내고 박사들을 넘어 섰을 때 그의 무의식적 욕망은 신이라는 새로운 활로를 찾아 떠난 겁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라밍이 머리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오이디푸스에 나르시시즘이라면 좀더 분명한 설명이 될 거요."
스와르가 관심 어린 목소리로 여의사의 말을 정정해 주며 팔짱을 끼운다.
"무의식적 욕망, 신..."
론은 혼자 중얼거리며 정지된 화면을 바라본다. 신을 꿈꾸는 아이. 어떤 의미에선 이미 신이기도 한 소년, 지구에 숨을 불어넣은 이, 생의 마술사, 마이다스의 손, 최후의 인간, 최초의 인간, 제 삼자, 감마, 요정, 성인, 살인 용의자, 그리고 원점의 겜마. 그는 누구인가? 론의 자아는 겜마에 대한 물음표로 가득 찼고 그의 이성은 해답을 찾기 위해 또 다른 파일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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겜마의 왕성한 활약상으로 대지 위는 살아 숨쉬고있는 생명체들로 포장되어 갔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거의 모든 동물들이 되살아났고 보다 지능적이고 활동적으로 번식해 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자리 잡아 갈 때쯤 지금까지의 기능 향상성 복제의 수준을 넘어선 형태 향상 변화에 대한 실험에 들어간다. 처음으로 선택한 것은 역시 전체적 구조가 단순한 곤충류. 바퀴벌레의 몸통에 단단한 키토산 성분의 투구벌레 껍질, 개미의 지능과 페로몬을 사용하고 매미의 튼튼한 날개 그리고 집게벌레의 집게를 지닌 최초의 복합적 합성체 '카카드'. 바퀴를 의미하는 '카카로치'를 줄인 말이었다. 카카드는 성공작인 동시에 실패작이었다. 겜마가 원하는 각 개체의 능력과 형태를 지내게 되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크기가 엄청나게 커졌다. 무게가 12kg, 길이 50cm 가 넘었고 지능은 너무 낮아 주인도 몰라보고 덤벼들었다. 겜마는 카타콤베에서 카카드를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세상에 내보냈고 카카드는 은빛 날개를 펼치고 우거진 숲의 하늘위로 사라졌다. 이것이 후에 개미처럼 조직적이고 단체적인 힘으로 레피탄들을 위협하는, 숙적인 카카드 족의 시초였음을 겜마 역시 알지 못했다. 카카드의 부분적 성공에 힘을 얻은 겜마는 곤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파충류로 연구의 방향을 바꾼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수염고래와 코끼리의 거대한 골격에 악어의 탈을 쓴 다이노 크록이였다. 하지만 이번 실험 역시 부작용으로 크기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커졌고 겜마는 즉각 거대 악어를 밖으로 내몰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번에는 크기에 주력하여 침팬지의 두뇌, 목도리 도마뱀의 얼굴에 타조의 몸, 하지만 피부는 이구아나의 가죽을 입힌 리드라를 만들었다. 리드라는 완벽에 가까운 성공작 이였다. 우선 지능이 놓아 겜마의 말에 따르고 온순하여 애완동물처럼 기를 수도 있었다. 합성에 완벽성을 보이자, 겜마는 지능에 힘을 쏟아 자신의 즉 인간의 DNA를 개구리와 합성 시켰다. 그 산물이 바로 프로그 맨, IQ 41 이라는 경의 적인 수치를 같은 생각하는 인간형 개구리였다. 합성과 크기, 지능까지 성공해 내자 겜마는 자신의 꿈이던 새로운 지구 주인의 실험에 착수한다. 그의 최고의 걸작, 인간의 바톤을 받아 지구의 역사를 이어갈 새로운 종족, 레피탄이 드디어 눈을 뜬것이다.
"2077년 11월 11일, 2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박사들이 보았다면 흉측하다 여겼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더없이 아름답고 고귀해 보인다. 태어난 지 3시간도 지나지 않아 걸음마를 시작한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난 그들에게 아담과 이브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이들 종족의 이름을 생각 끝에 레피탄이라 하기로 했다. 파충류를 뜻하는 렙타일(Reptile)과 거인을 뜻하는 타이탄(Titan)을 합쳐서 거대한 파충류란 의미에서 지어낸 이름이다. 짓고 나니 참으로 괜찮은 이름이란 생각이 든다. 후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란 이런 것일까? 앞으로 그들을 키우며 가르칠 생각에 난 행복하다."
겜마는 그의 말처럼 레피탄들의 교육에 모든 것을 바쳤다. 사냥하는 법, 말하는 법, 집을 짓는 법, 자손을 번창시키고, 가축을 키우고 농사를 짖는 법까지 모든 것을 전수해 주었다. 그런 와중에 시간은 흘러 마지막 파일에 모습을 비춘 건 그가 30대로 접어든 후였다. 마치 로빈슨 크로스의 실지 모습이 그러했을 것이라 여기게 되는 지저분하고 덥수룩한 수염과 머리, 검게 그을린 피부와 적외선의 영향으로 생겨났을 잔주름들, 꺾어진 코에 누런 이빨이 그가 걸친 넝마 자루 같은 가죽옷과 맞물려 요정 같은 이미지는 간대 없고 토인이나 원시인 풍의 거부감을 자아냈다. 하지만 진흙 속의 진주처럼 번쩍거리고 있는 그의 눈만은 지금까지의 모습들 중, 가장 강한 카리스마를 내 뿜어 그의 존재 감을 깊고 무겁게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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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이군. 난 아주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 거의 백지에 가까운 레피탄들을 키우며 교육시키는 일은 생각만큼 만만히 볼일이 아니었지만 난 지금의 생활이 아주 만족스러워. 하나하나 열심히 배워나가며 자손을 번창시키는 레피탄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환상적이고 아름답지. 이제 그들은 내가 그들의 기다란 성대에 맞게 만들어준 라판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벽돌을 만들어 고딕 양식의 건물도 지을 수 있어, 가축을 기르고, 곡식을 재배하며 번식도 활발히 이루어 이젠 70 마리 정도로 하나의 작은 마을 형태를 갖추었지. 단 한가지 걸림돌이라면 카카드 족들의 계속해서 무리 지어 공격해 온다는 것, 하지만 아직까지는 큰 문제없이 그들을 막아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내가 돌아온 이유를 말해 주지. 보다 시피 난 조금씩 늙어가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야. 그렇게 된다면 아직 부족단위인 레피탄들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를 초라하게 될 게 불 보듯 뻔해. 또한 나를 아버지라 따르는 그들의 정신적 지주를 일게 된다. 분열이 일어 날 것이다. 그것을 막고자 나는 이 자리에 다시 섰다. 처음에 난, 지금 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는 레피탄 중에 하나를 정해 족장의 권위를 주려 했다. 하지만 과거 인간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비슷한 능력끼리의 계급구조에선 언젠가 낮은 계급의 높은 능력의 소유자가 구조 자체를 깨트리고 높은 계급에 도전하는 예가 항상 있어왔기에 고민 끝에 포기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것이다. 난 레피탄의 족장 아니 왕족을 만들려 한다. 보통의 레피탄의 능력을 훨씬 뛰어 넘어 절대적 권위를 가지는 레피탄의 왕이자 지주인 '칸'. 그렇다. 난 대 중국 황하의 벌판에서 시작하여 이슬람을 차지하고 유럽 볼가강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거대한 대제국을 건설한 몽골제국의 왕, 칭기즈칸 그리고 그의 아들 오고타이칸 그들의 정신과 힘을 기리고자 왕족의 이름을 칸이라 정했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그는 분명 나의 분신이 되어 레피탄을 이끌고 지도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름을 영원히 간직하게 될 것이다. 나의 동상을 만들고 그 앞에서 무릎 꿇어 기도할 것이다. 모든 이의 아버지이고 모든 것의 창조자인 나에게. 하하하하."
겜마의 기분 나쁘도록 음산한 웃음소리를 끝으로 마지막 파일이 멈추어 선다. 화면에선 아직도 정지된 동작의 토인이 입을 벌리고 웃고 있다.
"갈 때까지 같구만."
터프 한 목소리의 진이 이를 간다.
"음... 파일은 여기서 끝나는 군요. 그런데 칸은 도대체 뭐지요?"
마이클이 밀어왔던 숙제를 끝낸 아이처럼 가볍게 말했다.
"글쎄요. 그의 표현으론 보통 레피탄들관 다른 왕족이라는데 우리들이 지금 까지 보지 못한 무엇인 것 같군요."
론이 브라운에 비쳐지고 있는 얼굴을 바라보며 답한다.
"제가 저번에 란들과 말해봤는데 레피탄들에겐 겜마성지 말고도 몇 개의 다른 도시들이 존재한다고 했었습니다. 그곳 어딘가에 왕족으로 있는 게 아닐 까요?"
리나가 자신의 손에 끼워져 있던 자이로 마우스를 원위치 시키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다른 도시라고요?"
마이클이 놀라 물었다.
"예. 칼벵인가? 발캉이라던가? 엄청난 크기에 레피탄들의 수도 역할을 하는 곳이 있고 그 이 외에도 몇몇 크고 작은 도시들이 있다고 했어요. 아! 로베르토도 겜마성지가 레피탄들의 성지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했잖아요. 성지가 있다는 건 성지를 숭시하는 다른 마을이나 도시가 있다는 걸 의미 할거예요."
스와르가 끄덕이며 리나의 말을 보탠다.
"맞는 말이요. 레피탄들이 겜마성지에만 존재한다면 성지라 부를 필요조차 없을 테지요. 분명 다른 마을들이 존재한다는 의미가 될 겁니다. 우리는 아직 까지 레피탄들의 아주 단면적인 모습 밖에는 보지 못했다는 말이 됩니다. 아무리 원시적으로 보여도 레피탄들이 10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스와르가 말을 멈추자 막 리나를 검은 가죽의자에서 일으켜 세운 라밍이 입을 연다.
"겜마의 파일에는 칸의 성공 여부가 나와있지 않잖아요. 게다가 일기장에도 그에 대한 말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요. 아마 실패한 건지도 모르잖아요?"
"그건 또 모르는 얘기요. 일기가 시작된 건 2082년이니까.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 수도..."
스와르는 확실하지 않은 자신의 문구에 어깨를 으쓱 해 보이는 제스처로 끝맺는다.
"잠깐!!"
로베르토라는 이름을 속으로 되 내이던 진이 외친 건 스와르의 어깻짓이 끝난 직후였다.
"지금 로베르토 그 자식은 어디에 있지요?"
어리둥절한 시선들이 그녀를 향해 날아오자 그녀는 재빨리 이어 말했다.
"로베르토가 만약 우리보다 먼저 이런 사실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지금 그가 어디에 있겠냐고 요."
어리둥절한 시선들이 날카롭게 다듬어 진다.
"설마 로베르토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라밍이 경악한다.
"카타콤베?! 처음부터 로베르토는 마이다스를 목표로 이곳에 온게 아니었을 까요?"
론이 말하며 스와르를 쳐다본다.
"그렇다면 지금 까지 우리들에게 무언가 숨기는 듯한 인상을 주던 것이 바로."
지금껏 눈치 체지 못한 자책과 깨달음이 담긴 표정의 스와르와 론의 눈이 마주친다.
"로베르토는 이미 레피탄들에게 신으로 대우받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마이다스의 힘을 차지하게 된다면 다시 말해 창조의 능력까지 지니게 된다면..."
"진정한 신이 되는 거지요. 겜마의 뒤를 있는."
"그가 그런 엉뚱한 생각을 갖고 있다면 시간이 없소, 당장 그를 저지 해야만하오. 지금 당장!!"
마이다스 룸
홀로그램 지도에선 나타나지 않은 엘리베이터를 이용 카타콤베에 다다른 일행은 마이다스가 위치한 곳을 찾아 급히 걸음을 옮겼다. 잡동사니가 어지러이 널려있는 연구원 휴게실, 회의실, 창고를 지나 영하 -8도로 벽면 가득 수만은 냉동 캡슐을 갖추고 있는 혈액 샘플실, 투명 원통형에 척추 모양의 뼈마디와 인간아기, 여러 가지 합성에 실패한 동물들과 대형곤충류들이 자연사 박물관의 전시용품처럼 들어차 있는 인큐베이터 룸을 거쳐 목표로 했던 마이다스 룸에 도착했다. 진이 문 가운데로 위치하고 양옆에 론과 커크가 자리한다. 진이 턱을 움직이자 리나가 문 오른편의 스위치를 작동시켜 문을 연다. '쉬 ∼ 잉' 문이 양쪽 좌우방향으로 사라졌다.
"로베르토!!"
기계의 앞에서 무언가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던 흰옷의 남자가 놀란 얼굴이 되어 뒤를 돌아본다. 그의 붉은 눈에는 불쾌감과 적의로 가득 매워져 있었다. 하지만 점 짓 아무렇지 않은 듯 표정을 지우며 최대한 자연스러운 어투로 말한다.
"오셨습니까. 진 대령."
"너 이 자식!"
진이 악에 받혀 백의의 남자에게 달려들려 하자 그녀의 양편에 서있던 두 남자가 그녀의 팔을 붓 잡는다. 진은 붙들린 팔을 비틀어 흔들면서 로베르토를 향해 소리쳤다.
"이 자식아. 넌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지. 도대체 무슨 꿍꿍 인지는 모르지만 널 군 재판에 회부하겠어, 넌 끝이라고. 내가 가만 안 나둘 거야!"
만약 로베르토가 이상 행동을 할 시에 진을 중심으로 로베르토를 맞잡을 계획 이였던 론과 커크는 진이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흥분하는 바람에 계획과는 반대의 인물을 붙잡게 되어 참으로 난감했다. 보다 못해 리나와 라밍이 말리고 나선다.
"진정해요 진. 지금은 흥분할 때가 아니란 말이에요."
두 여자가 말리자 진의 기세가 수그러든다. 이때를 틈타 론이 팔을 풀고 앞으로 걸어간다.
"로베르토 솔직히 말씀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당신은 마이다스에 관해 이미 알고 있었던 겁니까? 그리고 알고 있었다면 왜 우리에겐 비밀로 했으며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겁니까?"
단호하고도 위엄이 서려있다. 갑자기 로베르토의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진동한다. 웃음의 창조주는 자신의 품에서 서류뭉치처럼 생긴 종이 다발을 꺼내 일행에게 내민다.
"이게 무엇인지 아시오? 이것이 바로 마이다스의 매뉴얼, 어떠한 생명도 탄생시킬 수 있는 생의 마법서요. 이건 일기장과 함께 상자 안에 들어 있었지. 바로 그 자물쇠의 방에. 당신들은 나의 바램대로 척척 움직여 주었어. 노아의 숨겨진 암호를 해독해 주었으니까. 솔직히 난 절대로 당신들의 도움 없이 노아 안에 발을 드리지 못했을 거요. 그 부분은 정말 고맙게 생각을 하고 있소. 내가 마이다스를 차지하게 만들어 준 것에 대해. 아니 신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표현이 더 나을 것 같지만."
여전히 지저분한 미소를 흘리고 있는 로베르토가 매뉴얼을 품속에 되 집어 넣는다.
"이 정신나간 자식!!"
진이 다시 악쓰기 시작한다. 론이 커크에게 눈으로 진을 당부하며 차분한 음성으로 말한다.
"그래서 당신은 정말 레피탄들의 신이 되겠다는 거요?"
로베르토는 고개를 설래, 설래 가로 저으며 광기 가득한 음색으로 말한다.
"*오캄의 면도날처럼 진리는 단순한 것이요 캡틴. 창조의 힘을 가진 자가 바로 신이요." (* : 14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도사)
론이 짧고 차갑게 말했다.
"미쳤군."
"하하하, 맞는 말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내가 신이 된 것은 변함이 없소."
갑자기 리나가 론 옆으로 뛰어나오며 외친다.
"로베르토,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는 인간일 뿐이에요. 마이다스 역시 기계일 뿐 신의 관(官)이 아니란 말이에요. 우리 이러지 말고 좋게 이야기 해봐요. 제발 로베르토."
로베르토는 짧은 한숨을 내쉰 뒤 입을 땐다.
"왜 인간이 신이 될 수 없다 여기시오?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정된 삶 때문에? 그건 다 가식이고 자기 비관이요. 만일 우리를 만들었던 신위에 그 신을 만든 신들이 존재한다면. 당신은 누구를 믿겠소?"
대답이 업자 이야기는 계속된다.
"당연히 우리를 만든 신일 뿐이요. 왜? 우리를 만들었으니까. 그 신을 만든 신은 개나 믿으라 하시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우리를 만들어준 신, 하나 뿐이요. 그렇다면 레피탄들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 거요? 그들이 그리스도나 부처를 숭배할 것 같소? 천만에 말씀. 그들의 신은 바로 그들을 만든 인간, 겜마 뿐인 겁니다. 그리고 그의 권능을 이어갈 하늘에서 겜마가 내려보낸 나 로베르토가 바로 신이 되는 거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독단이 어디에 있단 말이요!"
스와르가 바늘 끝 같은 시선으로 쏘아보며 소리쳤다. 코웃음을 치며 자신이 신이라 주장하는 자가 말한다.
"이 마이다스를 손에 넣은 이상 난 아무 것도 두려 울게 없소. 누가 신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오. 그걸 믿는 자가 어떻게 받아 드리느냐가 문제일 뿐. 레피탄들은 나를 신으로 여기고 있고 겜마가 그러했듯이 난 영원히 그들 속에 존재하게 되는 거요."
"우리가 돌아가면, 세이비어과 함께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을 것 같소?"
론이 '두고'라는 말에 힘주어 말하며 어금니를 악문다.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소 만. 이미 너무 늦었소 캡틴."
말과 함께 등에 품고있던 플라스마 권총을 꺼내 론을 겨눈다.
"아무도 세이비어를 다시 보진 못할 거요 물론 나 역시 신을 포기할 마음 따위는 없으니까."
적지 않게 당황한 론의 몸이 권총 앞에 얼어버린다.
"우리 모두를 죽일 생각이요?"
"노 코멘트."
한쪽 눈을 깜박이며 잔인한 미소를 짖는다.
"후회하게 될 거요 로베르토."
"글쎄 그건 두고 볼일이지."
커크는 경직된 자세로 주먹을 꽉 쥐고 있고 라밍은 벽에 몸을 의지한 체 약한 심호흡을 하고있으며 마이클은 자신의 허리 살을 터지도록 잡아 당겨됐다. 갑작스런 권총의 출연에 자신의 의사를 읽어버린 일행들 사이로 진의 몸이 미끄러진다. 스와르, 리나를 지나 론의 뒤를 가로질러 제비처럼 나아간다. 로베르토는 위험을 감지하고 권총을 앞으로 내민다. 하지만 목표물이 론의 뒤를 가로지르는 바람에 시야에 틈이 생기고 사격에 박자를 놓치고 만다.
'탕!!'
플라스마 건의 총알은 진의 왼쪽 어깨를 꾀 뚫고 나가 라밍이 기대고 있던 벽면 옆에 꽂히며 소량의 콘크리트 파우다를 내뿜는다. 순간 진의 다리는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정확하게 날아가 권총을 감싸고 있던 손을 강타했다. 권총이 부메랑 같은 스핀 동작을 선보이며 모니터가 달려있는 데스크 밑으로 사라졌다. 잠깐 사이 상황이 뒤바뀌어 버린 것을 간파한 로베르토가 아직 경직되어 있는 론 등을 밀치고 문을 향해 돌진했다. 커크가 주먹을 내질렀지만 로베르토는 간단히 몸을 숙여 피한 뒤 어깨로 그의 가슴을 내지른다. 가슴을 쥐며 풀썩 넘어지는 커크를 보며 마이클이 반사적으로 손을 내민다. 해병대 출신 군인과 하늘과 땅 차이인 마이클의 반사신경은 로베르토의 망토 끝을 겨우 움켜잡아 쪼가리 내어 씻어낸다. 씻어진 망토 조각을 뒤로하고 로베르토는 유유히 엘리베이터에 몸을 신는다.
"제길. 놈을 놓치면 안돼!! 어서 가!!"
정신을 차린 라밍이 진의 팔에 달라붙어 상처를 살펴보려 하자 진이 아픔 반 감정 반이 석인 목소리로 외쳐 됐다. 그 소리에 깨어난 남자들의 무의식이 엘리베이터로 내달린다. 제 2 컨트롤 센터로 올라가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바꾸어 타고 5분전 신이 된 사나이의 뒤를 쫓는다. 승강기는 곳, 그린 라비에 다다르고 남자가 타고 올라간 것을 기다려 거대한 말발굽형 입구로 뛰어 갔다. 이글거리는 태양의 주둥이 속으로 사라지는 그림자를 따라 100m 에 이르는 형광 빛 터널을 단숨에 주파한다. 문 앞에는 아침의 힘찬 태양의 발기 대신에 꺼져 가는 검붉은 광선의 나른함이 주위를 적시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빛의 물결에 초점을 읽어버린 론이 눈을 찌그려 앞을 바라본다. 동공이 작아지면서 사물에 윤곽이 잡혀간다. 그 정면에는 플라스마 소총을 겨냥하고 있는 로베르토와 송곳니를 내놓고 얼굴을 잔뜩 구기며 본 블레이드를 뽑아든 세모형 머리의 레피탄들이 둘러서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 까지요 캡틴."
로베르토의 조금은 가쁘지만 냉랭한 음성이 전해왔다.
"우리를 어쩔 샘이지?"
"이렇게 된 바에야 모두 끌고 마을로 돌아가 광장 앞에서 화형을 시키는 수밖에."
아침 식사에 신문을 찾듯이 태연하게 말하는 그의 말이 론의 귀를 거슬린다.
"뭐라고?"
"너무 구식이라 나를 탓하지는 마시기 바라겠소. 그러나 너무 억울할 것도 없소 당신들 역시 신이란 이름으로 가게 될 테니까. 당신들은 모두 타락한 신, 신의 배신자로 몰려 죽게 되는 거요. 하하하하."
차디찬 신의 웃음소리가 붉게 젓은 황혼을 더욱 붉게 물들였고 전의를 상실한 론의 시야 안은 으르렁거리며 조금씩 거리를 좁혀오는 란과 나머지 레피탄들의 날카로운 황금색 눈 그리고 거칠디 거친 가죽의 청록색 신기루로 서서히 뒤 덮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