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에서 매사냥 기록이 있는 왕인 진평왕과 경명왕은 꽤 흥미로운 임금이다.
국왕이 사냥을 즐겨하는 취미는 꽤나 부정적으로 기술되는 편이지만 결말자체는 서로 다르다.
진평왕의 매사냥 기록은 삼국사기 김후직 열전에서 나온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42871&cid=49628&categoryId=49628
열전의 내용이 길어서 요약하면
●진평왕때 신하인 병부령 김후직은 왕의 사냥을 말렸으나 듣지 않았다.
●병들어 죽게 되자 아들에게 유언으로 사냥터 근처에 무덤을 만들어달라고 한다.
●왕이 사냥터에 갔는데 김후직의 목소리가 들린다.
●김후직의 충정을 알고 왕은 사냥을 그만둔다.
위 전개에서 왕은 사냥에 심취해서 충신이 말려도 듣지 않는다. 그렇지만 목숨으로 막아서자 그제서야 사냥을 그만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명왕의 사례는 어떨까?
경명왕의 사냥 기록은 김후직의 사례보다 짧아서 그대로 인용하도록 하겠다.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은 매사냥을 즐겼다. 일찍이 이 산에 올라가서 매를 놓았다가 잃어버리고는, 신모에게 기도를 하였다.
“만일 매를 찾게 된다면 마땅히 성모께 작위를 봉해드리겠습니다.”
금세 매가 날아와 책상 위에 앉았으므로 성모를 대왕(大王)으로 봉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선도산 성모가 불사를 좋아하다 [仙桃聖母 隨喜佛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경명왕이 나라를 돌보는 시대는 어떤 때인가 생각하면 꽤 우스운 일이다 오래도록 중국에 책봉조차 받을 수 없는 지경이었고, 왕건과 견훤이 영토를 늘려가던 시기였다.
물론 설화이기에 역사적 의미가 적을 수는 있으나 신모의 존재는 박혁거세의 어머니, 즉 시조신에게 기도해서 얻은 소원이 잃어버린 매를 찾는 것이었다 매사냥이 취향이라고 한들 당시 나라상황상 시조신에게 빌어야할건 매를 되찾는게 아니라 신라를 되찾는것이어야 하지 않는가?
아마 간언할 신하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꽤나 대조적인 결말이기에 비교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