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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스필오버 없는 선민은 폐물이다/겔 5:1-17
성경본문 : 에스겔 5:1-17
1. 인자야 너는 날카로운 칼을 취하여 삭도를 삼아 네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저울에 달아 나누었다가
2. 그 성읍을 에워싸는 날이 차거든 너는 터럭 삼분지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삼분지 일은 가지고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삼분지 일은 바람에 흩으라 내가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3. 너는 터럭 중에서 조금을 가져 네 옷자락에 싸고
4. 또 그 가운데서 얼마를 가져 불에 던져 사르라 그 속에서 불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로 나오리라
5.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 두어 열방으로 둘러 있게 하였거늘
6. 그가 내 규례를 거스려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내 율례도 그리함이 그 둘러 있는 열방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였음이니라
7.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요란함이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 보다 더하여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내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도 행치 아니하였느니라
8.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너를 치며 이방인의 목전에서 너의 중에 벌을 내리되
9. 네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내가 전무 후무하게 네게 내릴찌라
10. 그리한즉 너의 중에서 아비가 아들을 먹고 아들이 그 아비를 먹으리라 내가 벌을 네게 내리고 너의 중에 남은 자를 다 사방에 흩으리라
11.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미약하게 하리니
12. 너의 가운데서 삼분지 일은 온역으로 죽으며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요 삼분지 일은 너의 사방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삼분지 일은 내가 사방에 흩고 또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13. 이와 같이 내 노가 다한즉 그들에게 향한 분이 풀려서 내 마음이 시원하리라 내 분이 그들에게 다한즉 나 여호와가 열심으로 말한줄을 그들이 알리라
14. 내가 또 너로 황무케 하고 너를 둘러 있는 이방인 중에서 모든 지나가는 자의 목전에 능욕거리가 되게 하리니
15. 내 노와 분과 중한 책망으로 네게 벌을 내린즉 너를 둘러 있는 이방인에게 네가 수욕과 조롱을 당하고 경계와 괴이한 것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16. 내가 멸망케 하는 기근의 독한 살로 너희를 멸하러 보내되 기근을 더하여 너희의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것이라
17. 내가 기근과 악한 짐승을 너희에게 보내어 외롭게 하고 너희 가운데 온역과 살륙으로 행하게 하고 또 칼이 너희에게 임하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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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드리는 오늘의 번제 오늘은 에스겔서 5장 말씀으로 함께 합니다. 에스겔서 5장 말씀 1절부터 17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1절부터 6절까지만 같이 읽겠습니다.
“1. 너 인자야 너는 날카로운 칼을 가져다가 삭도로 삼아 네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저울로 달아 나누어 두라
2. 그 성읍을 에워싸는 날이 차거든 너는 터럭 삼분의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삼분의 일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으라 내가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3. 너는 터럭 중에서 조금을 네 옷자락에 싸고
4. 또 그 가운데에서 얼마를 불에 던져 사르라 그 속에서 불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로 나오리라
5.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되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에 두어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거늘
6. 그가 내 규례를 거슬러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내 율례도 그리함이 그를 둘러 있는 나라들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오늘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스필오버 없는 선민은 폐물이다》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스필오버 없는 선민은 폐물이다!
스필오버 효과라고 여러분 들어보셨지요? 위성방송에서 그 위성방송 전파를 위성에서 쏘지 않습니까? 지구에서부터 한 36,000km 떨어져 있는 위성에서 전파를 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위성방송의 전파를 쏘는 목표지점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 목표지역을 전파가 넘어서 본래 의도하지 않았던 지역까지 그 전파가 넘쳐나는 것을 스필오버(Spillover Effect)라고 합니다.
이렇게 위성방송에서 타지역이나 주변국가로 전파가 넘쳐나는 것으로 사용했던 이 단어가 이제는 모든 분야에서 다 사용을 하게 됐어요. 전파방송으로는 예를 들면 부산에 내려가면 일본방송이 훨씬 더 잘 잡힙니다. 그렇죠?
이렇게 방송분야 뿐만 아니라 이제는 산업분야에서도 에를 들어 미국에서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가 아주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각광을 받습니다. 그러면 현대자동차만 좋은 게 아니에요. 기아자동차가 그 뒤를 이어서 수출을 하는데 굉장히 좋은 조건을 만들어 줍니다. 한국이라고 하는 이미지가 그 기아라는 브랜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삼성과 엘지가 아주 좋은 제품들을 만들어서 사람들한테 인식이 좋게 여겨지면 한국에서 만들어진 연관된 다른 제품들이 아주 좋은 반응으로 신뢰를 얻고 받아들여집니다. 이게 넘쳐나는 거예요. 본래 의도하지 않았지만 현대자동차가 자기의 브랜드를 살리려고 그럴 때 삼성 브랜드에 영향을 줄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또 거꾸로도 마찬가지고 그랬지만 서로 좋은 효과를 생각지도 않았던 부수적인 효과를 주게 되는 것 이게 바로 Spillover, 흘러넘침의 효과입니다.
선민에게 있어서 이런 Spillover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그러면 그 선택받은 백성은 이름 뿐이지 내용적으로는 폐물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특별한 포퍼먼스가 또 이루어집니다. 예언행위인데 머리를 삭발해갖고 수염을 깎고 그 털들의 무게를 다 정확하게 재어갖고 삼분의 일로 나눕니다. 그래서 그 삼분의 일마다 해당되는 하나님의 심판이 예루살렘에게 임할 것을 예언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이 망하게 되는 이유가 오늘 본문에는 특이한 표현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어요.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를 우리가 주욱 진행하는 동안에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이 예언을 너무너무 반복해서 많이 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에스겔이 전하고 있는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언 얘기 속에는 참 특이한 표현이 나오는데 그게 뭐냐 하면 여러분 우리가 함께 읽으면서 보셨겠지만 5절에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되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에 두어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거늘」
예루살렘을 이방인 가운데 두어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다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거의 같은 표현이 본문 17절까지 여섯 번을 반복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이 이방인 나라들에게 둘러 싸여 있다..
그런데 실지로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 땅으로 이루어지는 가나안 복지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직접적으로 이방나라들에 둘러 싸여 있는 것은 이스라엘 나라가 둘러 싸여 있었던 것이고 예루살렘은 그 이스라엘 나라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말하자면 어느 나라의 어느 수도는 이웃 나라에 둘러 싸여 있지 않은 나라가 있겠습니까? 일본 같은 섬나라를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에 다 둘러 싸여 있는 거지요.
그런데 이렇게 굳이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한 성읍이 이스라엘 나라 한복판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나라들로 둘러 싸여 있게끔 하였다 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이렇게 하시는 데는 에스겔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 표현을 쓰시는 데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예루살렘이 되게 하실 때에 갖고 계셨던 특별한 의도와 기대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바로 Spillover의 효과였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가나안 복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나라의 수도로 정하시고 그 곳에 성전을 두실 때는 그 이유가 무엇이었냐? 예루살렘에서 Spillover Effect가 넘쳐흐름의 효과가 나타나기를 바랬다는 거예요.
넘쳐흐름의 효과는 여러분 우리가 피부에 닿게 또 하나 예를 들어보자면 이 성전과 예루살렘에서 Spillover의 효과를 이해하기 위해서 서울 수도권의 넘쳐흐름입니다.
1960년대부터 서울이 발전하기 시작을 하면서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모든 것에 정보산업의 중심이 됩니다. 그러니까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처럼 서울로 집중하게 됩니다. 그래서 서울이 넘쳐 흐르게 되면서 수도권이라는 게 형성이 됩니다. 신도시가. 그 신도시가 형성되고 경기도가 수도권이 돼버리고 경기도도 모자라서 이젠 전철이라든지 이런 교통의 편의시설이 확충되면서 천안, 춘천 그러니까 충청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까지도 수도권 안으로 흡수되어 버립니다. 이게 바로 넘쳐나는 거거든요.
맨 처음에는 동대문(興仁之門) 서대문(敦義門) 남대문(崇禮門) 북대문(肅靖門) 이 4대문 안이 서울이었는데 4대문에서 넘어가서 서울 인근지역 제가 태어난 연희동, 성산동, 모레네 동대문 넘어서 망우리, 청량리 남대문 넘어서 강남 이쪽으로 다 넘쳐나더니 이제는 분당, 일산, 교문리 이쪽으로 넘쳐나고 수원, 오산, 의정부 이런 쪽으로 막 넘쳐나잖아요.
바로 이러한 Spillover의 효과를 예루살렘에 원하셨기 때문에 그 예루살렘으로부터 넘쳐흐르는 무엇인가가 가 닿을 이방나라들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의식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방나라들이 다 확장된 수도권이 되기를 원하신 거예요. 이방나라들이 분당이 되고 일산이 되고 교문리가 되기를 원하셨던 겁니다. 또 멀리 있는 이방나라들이 천안이 되고 춘천이 되기를 원하셨던 거예요.
그런데 그게 이루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Spillover가 일어나지 않은 이방나라로 둘러 싸여있던 예루살렘에서 일어나야 될 넘쳐흐름의 Effect가 없어지는 그런 결과가 확정되자마자 하나님께서 폐물로 처리해버리시고 예루살렘을 진멸해버리십니다.
예루살렘이 뭐였어요? 여러분?
예루살렘의 성벽이 이렇게 있잖아요. 그 성벽 가운데 성전이 있습니다. 하늘의 36,000km 떨어진 곳에서 쏘는 위성전파가 목표하는 지점의 경계를 넘어서 주변국가로 넘쳐흐르듯이 성전은 뭐하는 곳입니까?
하늘이 낙하하는 지점이었습니다. 하늘의 기운이 터져 흘러나오는 샘물이었습니다.
그 샘물이 예루살렘 성벽이 그릇처럼 되어가지고 그 그릇 안에 차고 넘칠 때 성벽 밖으로 흘러 넘쳐야 됐던 거예요.
위성에서 하늘에서 쏴서 땅에다 보낼 때 그 위성이 땅의 목표지점을 넘어서 넘쳐흐르는 Spillover Effect가 나타나듯이 하늘의 기운이 성전으로 내려올 때 예루살렘 성이라고 하는 이 성벽의 그릇 가득차가지고 위로 넘쳐 넘쳐흘러서 둘러싸고 있는 이방나라들로 Spillover되었어야 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4장에 보면 예루살렘이 포위되는 장면을 상징적으로 예언하잖아요? 그리고 5장은 예루살렘이 파괴되는 장면을 말합니다. 점진법적으로, 발전적으로..
4장에서 포위됐다고 하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이방나라의 기운이 거꾸로 방향을 잡은 겁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하늘의 기운은 성전의 샘물을 통해서 넘치고 넘치고 예루살렘 성벽을 넘어서 성벽 바깥으로 흘러가는 방향을 잡았어야 되는데 성전에서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에서 온 유다로 온 유다에서 이방나라들로 갔어야 되는데 거꾸로 이방나라들의 기운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흘러 들어와서 기어코는 성전 한가운데까지 뚫고 들어와서 그래서 성소를 더럽혔다는 얘기가 본문 5장 11절에 나옵니다. 너희가 성소를 더렵혔다..
왜 성소를 더럽힙니까?
이방 기운들이 들어와가지고 성소 안에까지 침투해버린 거예요. 방향이 바뀌어 버린 것이지요.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했어야 됐던 겁니까?
어떻게 했어야 성전에 떨어진 하늘의 기운이 예루살렘을 차고 넘치고 넘쳐서 Spillover되는 Effect가 나타날 수가 있었습니까?
바로 예루살렘의 거민들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지도층들로부터 제사장과 선지자와 예언자들 모든 백성들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한 하나님의 사랑에 전력질주했어야 됐다는 겁니다.
그러면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성은 성전을 중심으로 살아갈 때에 어떤 모양의 life style이 나타나느냐 하는 것입니다. 둘러싸고 있는 이방나라들의 life style과 완전히 다른 life style이 나타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에요. 그게 선민의 life style이라는 겁니다.
그럼 뭡니까? life style이?
이방인들은 새벽부터 일어나가지고 잠자리에 들 까지 시장에 나가서 뛰고 장사하고 밭을 매고 논을 갈고 씨를 뿌리고 밤새 먹고 사는 일에 씨름을 하게 됩니다.
그럼 선민은 뭐하는 사람들입니까?
새벽부터 저녁까지 주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직업이 다른 거예요.
이방인들의 직업은 먹고 사는 게 직업이고 생계가 직업이고 선민의 직업은 주야로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인데 그 여호와를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뭡니까?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느껴지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냄새도 맡을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합니까?
바로 율법을 뱃속까지 채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창자까지 채우면서 창자까지 채워진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 이게 직업이고 이게 주야로 해야 될 일이었고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나타나셔서 그들의 삶의 밭농사 논농사 사업 장사 학교생활 공부 가정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복으로 채워가시기로 작정되었던 것이 선민의 삶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선민들을 이렇게 볼 때는 완전히 쌩 돌아이들이에요. 도대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없는 자들이 되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상하게 평강 가운데 삶을 유지해가는 것을 보게 되고 보는 사람마다 얼굴이 다 태양과 같이 광채가 나는 평강의 모습들로 살았어야 된다는 것이에요.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을 때에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나무처럼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그렇게 우리의 삶의 환경이 하나님에 의해 에덴이 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로 유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을 그만 둘러 싸여 있는 이방인들의 life style을 보고 배워버린 겁니다. 똑같이 먹고 사는 생계를 위하여 매진하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뱃속에 채워야 될 말씀 대신에 이방인들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말씀들을 채워넣기 시작한 거예요. 돈이 최고다, 성공하자, 형통하자, 비전을 가져라 이런 세상 사람들의 말씀으로 뱃속을 가득 가득 채우기 시작합니다. 이러면서 하늘에서 위성방송처럼 떨어져 내려오는 하나님의 영의 임재하심과 하나님의 섭리의 임재와 하나님의 역사의 임재가 중단되어버리고 맙니다.
왜?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드리지 않으니까. 마음을 드렸어야 그 마음을 드리는 방법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며 제사를 드림을 통하여 사함을 받고 다시 말씀을 채우가 위하여 애를 쓰고 그래서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 걸 다시 성전에 와서 참회하고 회개하고 이렇게 성전을 통하여 삶이 유지가 되었어야 될 것들이 다 변질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흘러넘침의 효과도 끝이나버리고 오히려 흘러넘침이 이방나라의 생활방식과 가치체계가 모든 것들이 다 점령해버리고 만 것이에요.
지금 교회는 어떨까요? 여러분?
지금 우리 교인들이 이방인과는 완전히 구분되는 삶의 방식을 통해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까? 주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전력질주 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구석구석을 직접 손대시면서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까?
그래서 Spillover의 Effect가 나타나면서 세상으로 세상으로 하늘기운이 넘쳐흐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똑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함께 발을 맞추어 호흡을 맞추어 가면서 교회에 와서 그 방식과 그 삶의 경쟁에서 아기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신앙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닙니까?
간혹 여러분 이런 착각을 볼 수 있어요.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많이 끌어들여야 세상 사람들이 거부감없이 자연스럽게 복음을 받아들일거라는 착각을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건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아니 맞아요. 자연스러워요. 자연스럽게 세상나라가 복음의 나라를 점령해들어오는 겁니다. 자살골이에요. 자살골.. 내가 귀신들을 향하여 문을 스스로 열어주는 겁니다.
차이가 나면 날수록 넘쳐흐름의 효과가 제대로 방향을 잡고 나타나는 거예요. 차이가 안 나는데 넘쳐흐름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차이가 나면서 하늘이 넘쳐흘러서 이방나라로 흘러가야 되는 것이에요.
자,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게 하나님 사랑이 끊어진 것이고 하나님 사랑의 표현이 율법을 사랑하고 지키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율법이 안 되었거든요.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일어난 것이에요.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오늘 본문 말씀에 규례와 유례를 어겼다고 얘기하는데 그 규례와 율례의 완성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십자가에서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다 라고 하는 그 고백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는 것이에요.
왜냐?
율법이 뭡니까? 인격을 갖고 계신 하나님의 의견의 표현이에요. 내가 어떻게 살면 좋겠다 라는 내 삶의 방식에 대한 하나님의 의견의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내 의견이 죽지 않으면 하나님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그러므로 근본정신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인격성 앞에서 인격성이라는 건 그분이 생각이 있으시다는 것이에요. 그분이 의견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의견과 생각 앞에서 내가 십자가에서 죽는 것처럼 율법을 완성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겁니다. 내 의견이 죽는 것이고 내 생각이 죽는 것이에요.
왜?
내 생각과 내 의견과 내 충동 속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죄악이 스며들어올 수밖에 없으니까. 죄값이 사함 받은 뒤에도 내 속에서 죄악의 힘은 계속 살아서 내 생각을 지배하고 내 의지를 지배하고 내 소원을 지배하고 내 감정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는 하나님의 의견이 내 삶으로 수렴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율법의 완성이에요.
이렇게 죽을 때에 구약과 다른 것은 구약에서는 율법을 지키면서 율법에 마음이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붙잡으면 어떻게 되느냐?
이 세상에 대해서 죽는 거예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죽고 내 마음이 십자가에 머물러 있지 않고 천국으로 올라가버립니다. 십자가가 천국의 입국 관문이기 때문에 천국으로 올라가버려요. 천국으로 올라갔을 때 성령께서 내 마음에 달라붙어주시면서 하늘나라를 느끼게 해주시고 하늘나라를 흡입하게 해주십니다.
이렇게 내 마음이 성령님을 통하여 천국에 입국한 뒤에 하늘을 흡입하고 보좌에 계신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눌 때에 그 하늘의 평강이 우리의 내 몸이 가는 곳마다 넘쳐흐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내 몸의 껍데기는 예루살렘의 성벽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내 마음이 성전이라고 그러면..
왜?
하나님을 모시는 곳이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니까.
그럴 때 몸이 가는 곳마다 하늘의 기운이 넘쳐나는 Spillover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위성 하늘에서 36,000km 상공에서 쏜 전파가 옆 주변국가로 넘쳐나듯이 하늘이 내가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세상에 대해 죽고 천국 올라갔을 때 천국이 내 마음에 담겨지는 대로 내 몸이 가는 곳마다 하늘의 기운이 넘쳐나는 Spillover의 효과가 나타날 때 진정한 하늘의 백성이요 선민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지요.
[기도]
하나님 아버지!
글휼이 여겨주셔서 주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오늘도 나의 죽음이 되게 해주시고 세상 모든 사람 모든 일에 대한 나의 이 죽음을 통하여 천국에 입국하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해주시며 나의 눈이 되어주시고 나의 귀가 되어주시는 성령님을 통해 보좌에 앉아계신 아버지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므로 하늘의 복을 마음 가득히 채울 수 있는 자들 되게 해주셔서 내 몸이 가는 곳마다 Spillover의 현상이 나타나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펴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