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윤아야. 가수 김윤아. 좋아하는 뮤지션? 그런 건 없어. 시집. 그런 건 안 읽어. 책? 『 고원―정신분열증2』를 몇 쪽 봤을까? 책표지는 기억해. 시인. 빵공장, 마라나. 그런 시를 쓴 시인의 디자인일 거야. 아무튼 내 이름은 윤아야.
까르푸에서 그 시인을 보았어. 내 얼굴은 몰라. 그 사람은 나를 몰라. 그는 파니 프라이스만 생각해. 그 여자는 화가야. 화가 지망생.이탈리아에서 죽었대. 이야기 속의 이야기야. 엑스트라였나 봐. 그런데도 그 여자만 생각해. 하지만 내가 만든 노래야.
사실 내 이름은 파니야. 스페인어 할 줄 아니? 내가 복사했어. 가수 김윤아의 노래. 내 친구 윤아가 감기약을 먹고 누워 잠들었을 때, 나와 함께 가기로 한 스페인 꿈을 꾸고 있을 때 내가 했어. 어떻게 된 거냐구? 물음표를 뒤집어봐. 새우 한 마리. 바다에서 잡혀온 새우 한 마리. 탱고 춤을 출거야.
하지만 잘 생각해! 속으면 안 돼! 내 이름은 윤아야. 가수 김윤아. 정신적인 윤아, 즉물적인 윤아. 하지만 내게는 없어. 인상적인 윤아, 사실적인 윤아, 표현적인 윤아. 대면적(對面的)인 윤아. 침투적인 윤아. 음악은 좀 아니?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사랑이 슬프다고 생각하니? 미니멀하지! 잘 생각해. 내가 복사했어.
미니멀한 것으로 한 곡 들려줄까? 하지만 뒤틀 줄도 알아야 해. 내 비극의 컬러를 모르면 마라톤 경주를 관람할 수 없단다. 본능이라고 생각하진 마! 눈을 감으면 잘 들리니? 귀를 막으면 더 크게 들리지? 그 사람 이야기를 다시 해볼까? 빵공장, 마라나. 그런 시를 쓴 사람 있잖아. 사실은 내 시야. 새우 한 마리. 바다에서 잡혀온 새우 한 마리.
내 이름은 윤아야. 가수 김윤아. 너에게도 써줄까? 아니면 한 곡 들려줄까? 컬러풀한 걸루. 아이덴티티는 너무 20세기적이야. 난 움직여. 움직이고 있다구. 하얗게 밀려오는 밤바다의 파도. 이른 아침 7시 50분에 시청사 정문 앞 도로변에 서보면 다 보여. 현대적으로, 21세기적으로, 그렇지만 능숙하게 르네상스식으로도. 너도 한번 볼래? 하지만 잘 생각해! 속으면 안 돼. 나 말고, 나 말고, 너에게 속으면 안 돼. 사실 내 이름은 꿀벌이야. 레이스가 달린 새하얀 속옷이야. 새우야. 메타피지컬이야. 하얗게 밀려오는 밤바다의 파도. 동사야. 명사야. 알타미라 벽화야. 치솔을 사러 가는 곰인형이야. 변신이야. 장치야.
밤이야. 아침이야. 하늘이야. 땅이야. 새벽이야. 바다야. 33, 44, 66――나야. 나.
[Love Adagio], 민음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