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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벨 (가제)
# 공상미스터리
-- BE 100 --
< 세상에 우연은 있는 것인가? >
산이 줄줄이 늘어선 풍경, 흰눈이 쌓인 겨울인데 그 아래 골짜기로 먼지 같은 눈이 섞인 바람이 [휘이이잉] 불어가는 곳에 인가 수십호가 늘어서 있었다.
'땡땡땡' 길의 신호등이 번쩍이며 경보가 울렸다.
골짜기 초입에서 둔중한 물체가 나타나 다가왔다.
더욱 거칠어지는 눈보라가 와류를 타고 흩날리는 가운데 기차가 멈춰서고 수증기가 '쉬이이익' 무럭무럭 뿜어졌다. 기차에서 내리는 서넛의 여객들 중에 배낭을 멘 산행차림의 남자가 주위를 둘러보며 역사로 향했다.
불어오는 칼바람에 몸을 떨고 안경을 벗어 김을 씻는 사내는 이십대 후반쯤의 새파란 젊은이로 조금 마른 체구였다. 역사를 향해 가다가 출구 근방에 서있는 등산모를 쓴 또래의 사내를 보고는 표정이 밝아졌다.
서있던 등산모의 사내가 손을 들며 시큰둥하게 뱉었다.
"멀더, 8분 지각이다"
"헐, 날국이 넌 어떻게 된 놈이 몇 년 만에 만났는데도 즉각 알아보냐?"
기다리던 풍성한 몸매의 사내가 등산모를 고쳐 쓰며 몸을 돌렸다.
"모든 건 변하기 마련이라지만 백년천년이 지나도 안 변하는 게 있단다.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랄까, 네가 어디에 짱 박혀있던 난 널 천만명중에서도 즉각 찝어낼 거란 말이다"
"그래 너 아주 잘났다. (둘러보며)그런데 은주는?"
"아니 아직. 아예 안 오는 건지..못 오는 건지 몰라도..."
"이것들이 빠져가지고선, 이젠 눈까지 멀었나보네?"
돌연 들리는 소리에 놀란 두 사내가 돌아봤다.
바로 옆에서 또 한 남자가 선그라스 쓰고 나타났는데..역시 산행차림인데 날씬한 체구였다.
"또, 똑순아, 그럼 너도 저차 타고 온 거야?"
"응...두번째 객차."
"헐, 난 3번 객차였는데..진작 알았다면...하긴 봤어도 몰라봤겠다. 차마 남장이라니 설마 그쪽으로 취향이 바뀐 거냐?"
"멀더, 너 똑순이가 요새 한참 떠오르는 별이란 것도 모르냐? 공단바닥은 티브이도 안 보여줘?"
선그라스의 여인이 시큰둥히 말했다.
"뜨긴 뭘 떠. 아직 1센티도 못 떴구만"
"뜨다니? 어디서 공중부양이라도 배우는 거냐?"
"얘가 정말 소식이 깡통이네, 똑순인 요즘 연예계나 가요계서 잔뜩 주목받는 귀한 몸이라고."
놀라는 안경, 다시 안경을 고쳐 썼다.
멀더라 불린 사내가 역 청사를 지나며 말했다.
"그래서 남들이 알아보고 구설수에 휘말릴까봐 변장까지 하고 다닌다는 얘기냐?"
은주라 불린 남장여자를 새삼 돌아보며 감탄하는 윤준서였다.
"하긴 꽃순이 때부터 똑순인 스타였었지. 꿈도 그쪽이었고...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실현해 내다니 과연 똑순이구나"
"글쎄 일 미리도 못 떠서 아직 갈 길이 멀다니깐"
"아니 넌 벌써 학교 때부터 우리 모두의 스타랄까 아이돌이었어.
그래서 날국이도 나도 너를 두고 경쟁인지 신경전을 엄청 한 것인데.."
"멀대야. 몇 년 만에 만났는데 뭔 쓸데없는 소리냐"
"진국이 너야말로 옛날 별명을 그대로 써도 되는 거니? "
"우리끼린데 뭘 어때. 대한민국 최고 중고등 3총사가 30년300년이 가도 삼총사지 어디 가냐"
"삼총사는 무슨 얼어 죽을, 솔직히 한명의 공주를 보좌하는 두 마리 동키호테였지"
"새끼야,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지. 넌 산초판자였잖아"
"그래, 니 팔뚝 참 굵다 새끼야!"
"또또..니들은 어쩜 그리 조금도 안 변했니 진국이 넌 머잖아 의사가 될 거면서"
안경을 돌아보며"그리고 준서 너 정말 명장 칭호딴 것 맞아? "
<사실 우리는 특별히 절친한 사이라곤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왜 하필 그 시간에 그런 곳에서 만나기로 한 것인지...>
일행이 역 밖으로 나오는데 역사 입구에서 남녀 두 명이 키타를 치며 노래 부르고 있었다.
"어라~ 이런 시골에도 저런 애들이 있네?"
"너야말로 소식이 깡통이잖아.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몰라? "
"....크리스마스?...하긴 김정은이 보다 바쁜 이 몸이 그래서 간신히 시간을 낸 거지만"
"정은이가 거기서 왜 나오냐. 차라리 푸틴이라고 하지"
"멀대..너 진짜...하긴 요새 원전도 그렇고 반도체 바닥도 갈등이 많을 거다만. 어때, 노가다 판에 반정부 총파업조짐 같은 건 없냐?"
"새끼가 말을 해도...지금이 구석기 때냐, 그런데 너희 회사 아니 니네 아버지 회사 요새 청문회다 뭐다 골치 아프던데 잠은 잘 오니?"
"나는 나고 울아버진 전혀 다른데 또 그 소리냐? 그리 따지면 니 아버지나 삼촌도 요새 정말 가관이드라만.."
서로 대들려는 걸 중간에서 가로막는 여인이었다.
"또또 니들은 왜 만나기만 하면 서로 못 잡아먹어서 난리야. 십년동안 안 크고 뭐한 거야!"
<이제 와서 생각하면 우연이란 당치않고 만날 필연일 수밖에 없었지만..>
동네를 벗어나 산길로 오르는 일행 앞에 눈보라가 강하게 몰아쳤다.
"이런, 눈이 제법 많이 오잖아"
"야, 이런 눈은 암 것도 아냐, 내가 작년에 히말라야에 갔다는 것 아니냐. 거기선 이런 눈은 쳐주지도 않아"
"그건 동무 말이 맞는데..우리 옌벤에선 기깟 히말라야 눈은 그저 안개밖엔 안 된다우"
"또..쓸데없는 승부욕. 그런데 우리 이번 산행은 그만두는 게 어떨까?"
똑순이라고 불린 여인은 최은주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내일이면 다시 헤어져 얼마 후에 볼지 모르는데 그만두자고?"
"어디 좋은 카페에서 커피 때리며 못다 한 이야기나 나누다가 돌아가면 되는 거지. 눈도 많이 오고 이런 추운 날씨에 힘들게 꼭 산에 올라야 돼?"
"그건 안돼! 등산에도 좋은 점이 많다고, 몸을 혹사해야 정신적인 멍에가 풀리는 것도 있고"
"그건 날국이 말이 맞지. 에미나이들은 이해가 힘들지 몰라도"
은주가 발끈했다.
"야, 거기서 여자가 왜 나와! 이래봬도 학교 다닐 때 일 년에 몇 차례씩 백두대간 종주를 한 나야. 이것들이 몇 년 풀어놔 줬다고 정말 간덩이가 커졌잖아"
"나..사실 지방간 끼가 좀 있어서 정말 운동이 필요하다고.."
정진국의 말에 윤준서가 비웃었다.
"클클클..간뎅이가 부은 건 아니고?"
최은주가 산을 올려다보며 초조하게 말했다.
"실은 그게 아니라 저산 안 좋은 기운이 느껴져"
"안 좋은 기운? 드뎌 똑순이 신끼가 다시 발동했군. 학창시절에도 툭하면 그러더니"
정진국의 비웃음에 윤준서가 반론을 폈다.
"그래도 열에 두어 번은 뜨겁게 맞췄잖아"
"그것도 맞은 거냐? 홀짝 게임처럼 믿거나 말거나지.."
윤준서가 신중히 산을 둘러보고는 차분히 물었다.
"은주야, 안 좋은 기운이라니 정확히 어떤?"
"그, 글쎄 무언가... 엄청난... 무서운...아니 굉장한 것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아..잘못 건드리면 모두가 풍비박산...날거야...잘하면 엄청난 행운...축복이.."
정진국이 이죽거렸다.
"똑순이 비장의 중언비언신공이 또 등장했군. 엄청나고 무섭고 굉장한..풍비박산..행운..도대체 그딴 비몽사몽이 어딨어"
"하긴 내가 말해놓고도 결론이 몽롱하네. 그래 이왕 모처럼 만났으니 올라가보지 뭐.."
하여 다시 산을 오르는 세명의 남녀였다.
<거기서 멈췄다면 우리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산의 능선을 걷는 3인조
다소 숨차하며 오르다 멈춰서 숨을 고르는 일행이었다.
"멀대야. 너도 그만큼 세상 살아봤으면 이제는 알만도 할 텐데..."
"알다니 뭘?"
"돈의 힘이 장난 아니라는 것. 모든 인간은 결국 돈을 위해 뛰어다녀. 잘 먹고 잘사는 수단인 돈이 최종목표잖아. 유태인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도 결국 돈의 힘이고 세상에 돈으로 못할 일이 뭐가 있냐. 이제 현실을 알았음 밤낮 이죽거리지 말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란 말이다"
"여태 못 깨어나고 잠꼬대라니 정말 구제불능한 동포로다. 그러니까 넌 헛똑똑이라는 기야. 돈이 최고 같지만 진짜는.."
은주가 끼어들었다.
"그래 진짜는 뭔데?"
"아는 거지, 참 앎이라고나 할까. 노하우. 진리를 안다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란 하늘땅 차이라고. 미 중앙정보부 현관에도 써있다잖든?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돈은 정말 하찮디 하찮은 거란 말이다"
최은주가 조소의 한숨을 쉬었다.
"멀더..아참 준서 너도 그 순진한 이상주의에서 깨어나야 돼. 돈은 물론이지만 진리도 다 헛된 거야. 진리나 진실도 시간 앞에서, 상황 앞에서 변하기 마련이란 말야. 뭐가 진리니? 세상에 진리라는 것 한 가지만 말해봐. 뭐가 진린데? 하늘이 파랗다는 것?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것?"
"기래서 우리 똑순이 공주가 보는 진짜 진리는 뭡네까?"
"사랑! 사랑만이 참된 가치야"
정과 윤이 마주보며 골치 아픈 한숨을 쉬었다.
"진정한 사랑만이 세상을 바꾸고 움직이게 할 수 있어. 사랑 없는 인생이란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냐고"
"야 사랑도 변하고 영원하지 않더라. 사랑만큼 유치한..휴우 그만두자 그만둬. 전에도 수없이 논쟁했던 건데 질리지도 않냐"
"네가 먼저 긁어놓고 또 도망가냐. 좌우간 타고난 금수저가 허구 헌 날 돈타령이라니 정말 지구상 7대 불가사의라니까"
진국이 손을 저었다.
"쥐뿔도 모르는 것들이 꼭"
은주가 내 뱉었다.
"진짜 개뿔도 모르는 것들이란"
준서가 주위를 둘러보며 표정이 심각해졌다.
"쥐뿔이든 개뿔이든 쇠뿔이든 간에...아무래도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우리 제대로 가는 거 맞아?"
정진국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맞을걸... 어라 폰이 왜 이래, 통화권 이탈은 그렇다 쳐도 내비도 안 켜지고..."
"금으로 만든 핸폰이 아니라서 그런가보지 뭐. 정말 다시 내려갈까 보다..."
"내려가는 길도 만만찮을 것 같은데 어떡해. 기온도 뚝 떨어졌잖아? 그러게 뭔가 예감이 이상하다고 오르지 말자고 했잖아!"
"똑순아 지례 겁먹을 것 없어. 히말라야라면 모를까..우리나라 야산이야. 무조건 내리막길로 가면 산을 내려갈 수 있을 거다"
일동 내려가는데 돌연 높다란 절벽이 일행 앞을 가로막았다.
"어디로 내려가라는 거냐? 이걸 넘어가야 돼? 이제 인정할 것은 해야 돼. 우린 길을 잃었어"
모두 어둡고 혼동되어 갈등하는 표정이 되었다.
"사실 이번 우리 모임은 미리 예정된 것도 아니었고 돌발적인 약속이었어. 티브이 출연 스케쥴도 있었건만 왜 아무 생각 없이 응한 건지 혼란스러워"
은주의 말에 준서가 자신의 머리칼을 마구 헝클었다.
"실은 나도 그래. 중요한 일이 많았는데 왜 니들을 꼭 만나야 된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은 건지..."
진국이 머리를 저었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는 것인데 나도 헷갈려죽겠다.
솔직히 똑순이보다 예쁜 애 내 주변에 한타스도 넘걸랑"
"누구는! 너보다 돈 많고 잘난 앤 내 주변에 사단병력이라고!"
준서가 말렸다.
"왜 이 상황에 쓸데없는 신경질이냐들, 비록 오래전이지만 한때 우린 누구보다도 가까운 친구사이였잖아"
모두 침착해지는 얼굴이지만 여전히 혼란한 얼굴이다.
준서--사흘 전만 해도 이런 강원도 산골에 올 줄은 차마 상상도 못했는데--
은주--도대체 어떤 결과가 기다리기에 씨나리오도 없단 말야. 하지만..점점 그것이 다가온다는 예감이..촉이--
"휴우...시작이야 어쨌든 이제 어쩐다? 어어...저기 길 아냐?"
진국이가 가리키는 곳은 평범한 숲이었다.
"전혀 길 같지 않은데..짐승이 다니는 길인가? 일단 가보자"
그러나 무성한 나무덩굴이 가로막아 일행은 탈진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준서가 안경을 고쳐 올리며 말했다.
"가만가만, 나무가지 뻗은 걸로 볼 때 이쪽이 북쪽이고 남쪽은 저쪽이야, 인가든 절이든 대개 남향이거든"
"아니, 그런 건 십중팔구 계곡을 끼고 있잖아. 저쪽 골짜기를 훑어봐야 할 것 같은데"
"또 예감이냐 신끼냐..그래 일단 골짜기를 훑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어후 추워.."
나무가지들을 헤치며 나아가는데...
"어라? 정말 길 같은걸?"
모퉁이를 돌아서자 시야가 조금 터진 장소가 나왔는데 초입에 '올내펜선'이란 글이 걸레 같은 판자조각에 쓰여 있다. 그것도 한쪽이 내려앉아 바람에 끼걱거리며 글체도 마치 초등생이 쓴 것 같은 졸필이었다. 정진국이 환호했다.
"와탕카! 드디어 찾았어. 이젠 살았다고!"
"우리가 언제 죽을 뻔 했다고 그러냐. 그나저나 참 간판 하고는, 제목이나 필체만 봐도 수준을 딱 알겠는데. 울내를 쓰려고 했나 올래를 쓰려고 한 거야?"
"스페인 투우던가 '오레이'에서 따온 건지도 모르겠는걸"
"정말 어떤 논네가 주인인지 몰라도 얼굴이 궁금해지네"
조금 더 걸어가자, 과연 계곡가에 다 허물어져 가는 움막 같은 집이 보였다.
일행 반색하면서도 실망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허어 과연...팬션인걸.."
"커허험 주인...여기 주인 없소? 주인장~ 주인장!"
"자는 거 아냐? 아님 귀가 먹은 논네든지.."
진국이 크게 소리쳤다.
"어~이 여기 자연인 없소!?"
이때 뒤에서 < 끄르르 >
소리에 은주가 뒤로 나동그라지며 비명을 질렀다. "아악!"
기겁해 놀라 윤은 벌써 손도끼를 빼들었고 정은 피켈로 몸을 방어하는 동작을 했다. 보니 웬 작은 누런 개가 이를 드러내고 있고 그 뒤에 검불로 만든 모자를 쓴 사내가 보였다.
"복실아 시..싯..."
공황의 일행을 돌아보며 사내가 굼뜬 어투로 말했다.
"여그 주인...사장님은 안 기신디...왜 찬는디유? 우리 복실이는 짓기는 잘해두 절대로 안무니께 안심놔유"
<그렇게 그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
"우린 조난..아참 길을 잃어서 하룻밤만 묵어가려고..하는데.."
수염도 더부룩한 산 사나이는 얼핏 30대쯤으로 보였다.
"짜븐밤은 안받고 긴밤은 이만원인디라"
준서가 사내를 요모조모로 뜯어보며 말했다.
낡은 고무신에 넝마 같은 옷을 입었는데 머리도 헝클어진 사내였다.
"이제 보니 젊은 친구잖아. 낼 아침이면 눈도 그치겠지. 하룻밤만 신세지자고, 되겠지?"
"시명이면... 3만원인디오"
마구 뻗친 수염과 삐져나온 코털이 아니라면 정말 이십대 초반쯤의 연식으로 보이는 자연인이었다. 진국의 표정이 밝아졌다.
"줄게! 주면 되잖아!"
사내가 손을 불쑥 내밀자
"뭐? 지금 당장 달라는 거야? 하참, 이런 거지같은..."
"날국아, 돈 안주고 달아나버린 중생도 있을 법 하니 그만둬"
산 사내는 아무래도 좀은 모자라는 말투와 태도였다.
"돈 안내고 가면 나으 얼급에서 물어내야 한다요"
준서가 돈 한장을 건네주었다.
"자, 여기..추우니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고"
돈을 받아들고는 이상해하며 자세히 보고 앞뒤로 뒤집어 보는 사내다.
"왜 위조지폐 같아? 가짜 돈 같냐고?"
"이런 돈은 츰인디..증말 참말 돈 만는다오?"
진국이 실소했다.
"헐! 이 친구 5만 원짜리도 처음 보는가 본데 이런 돈 처음 봐?"
"츰이오. 거슬러 줄 돈두 읎지만 구라돈이면 내거로 까내야 한당게라"
은주가 돈을 몇 장주며 실소했다.
"정말 웃겨, 어디 출신이기에 팔도사투리와 억양이 다 나오는 거람"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산사나이가 한발 물러섰다.
"웜매나!! 놀래라.....여..여시.."
"크크큭 구미호 아니고 확실한 사람이니까 겁먹지 마 이친구야"
준서가 앞장서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사내가 앞을 가로막았다.
"스,스토파요! 전기세는? 그리구 물세는? 그리구 또..."
"뭐 어쩌고 어째? 그건 또 따로 받는다는 거야?"
"전등이랑 음료수 따로 가져오는 사람도 있다 보니, 처음에 분명히 해놔야 낭중에 탈이 안 생기니까로.."
"헐! 그럼 이불세랑 변소세도 있겠네?"
"마,맞당게라. 스레빠쓰려면 그 세두.."
"크크큭 정말 이런 개그는 첨인데, 혹시 공기세까지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만 스토파ㅋㅋㅋ 그래서 모두 얼마라는 거야?"
"곱하기 3하면 치..칠천...칠천...."
"팔천원 주면 충분하겠어? 전기는 그렇다 치고 테레비나 라디오 있어? 그거 보거나 들으려면 또 시청료까지 내야 되는 것은 아니겠지?"
"라디온 고장이구 티리비는 나오다 말다 하는기 있었는디 오래전에 여이도층넌이 말도 안코 가져가번젓어유"
"여의도 청년이란 말야? 머리뿐 아니라 혀까지 문제가 많군. 많아도 아주 많아"
하여 들어간 움막 안은 과연 너저분하고 초라한 생활도구 등이 널려있었다. 진국이 둘러보며 한심한 표정이 되었다.
"정말 쓰레기펜선 맞네. 추워죽겠는데 뭐 먹을 것은 없어? 라면이나.."
"라멘은 떨어졌구..나가 먹던 누룽지 지진게 있는디...이천삼백원은 받아야요오"
"그거라도 덥혀봐. 술은? 산삼 같은 걸로 담근 술 없어?"
"울 펜선에선 술은 절대 몬팔게 되야있는디요. 왠가하면 술만 먹으면 꼭 싸우고 담비피우고 불내고.."
"가지가지하네. (서가같은 시렁에 여러 유리병을 보며) 저건 술 같은데?"
"그건 나가 목마르면 먹으려고 과일을 묵여서 만든거다요"
"과일주? 술 맞구먼..(유리병을 내리며)"
"안판당게요!"
"이딴 산골에 단속 나올 인간이 어딨어. 그놈의 세금인지 뭔지 돈 주면 될 것 아냐, 돈"
마개를 따서 나발을 불다가 기침을 하는 진국이다.
"쿨럭쿨럭...퉤퉤 아으 시어, 이건 식초잖아. 술 맞아?.."
"낸 술이라고 한 적 없다요. 절대루"
"그래 네 똥 굵다. 멀대야. 술 가져왔을 텐데 내놔 봐라"
준서가 배낭에서 종이팩 소주를 몇 개 꺼냈다.
"이건 먹으려고 가져온 게 아니라 비상용인데"
"지금이 비상시지 언제가 비상이라는 거야..나도 한 팩 줘봐"
서로 팩을 들고 마시며. 한숨 돌리는 3인조였다.
진국이 엉거주춤하며 지켜보는 산사나이에게 말했다.
"어이~ 간단한 안주거리 할 만 한 거 뭐 없어?"
"우리 팬선에선 안주도 절대 못팔게..."
"정말 거 되게 까다롭네. 이건 뭐야 곶감인가?"
벽에 늘어진 과일 같은 줄에서 몇개 빼내며 안절부절 하는 사나이를 보고 진국이 신경질을 부렸다.
"돈 주면 될 것 아냐! 돈, 한마디만 더 꿍얼거리면 시청 위생과에 콱 신고할 거니까 징징대지마! 가만, 위생과가 아니라 무허가 숙박업소로 산림과에 고발해야 되나?"
준서가 촌스런 청년에게 말했다.
"그래 이 펜선은 손님이 자는데 종업원이 옆에서 지켜보는 규칙까지 있는 것은 설마 아니겠지?"
진국이 눈을 부라리며 신경질을 부렸다.
"뭐 안 홈쳐갈 거니까 맡겨두고 나가서 볼 일 보라고, 내말 못 알아들어?"
촌닭이 망설이다가 마지못한 기색으로 꾸부정히 밖으로 나갔다.
"휴우 저런 인간한텐 최고의 가치가 뭘까? 아니 그런 개념자체가 있을 리 없지"
< 아아~ 왜 우린 처음부터 그를 무조건 무시했단 말인가. 얼굴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다 >
움막 밖 반지하의 아궁이 앞자락 반평 정도의 공간에 산사나이가 개를 껴안고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참말로 이상혀..이상하당게"
"복실아..사람들은 왜 지 생각만 하고 넘 생각은 하나도 몬하는지 너는 알것니?"
복실이란 개는 크고 초롱한 눈으로 사나이를 바라볼 뿐이다.
"지 할 말만 하고 남말은 들을 생각도 아나. 말이 안통하는 너도 내말은 무조건 들어주는디 말여"
눈을 감고 사나이의 가슴에 기대는 복실이란 개였다.
"허긴 아에 말도 안는 우리 사장님에 비하면...나슬지도.."
다시 움막안 정경. 모두 제법 얼근하여 몸이 얼마간 풀어졌다. 준서가 시계를 보며
"이제 겨우 열한시 넘었잖아. 아침까지 이 긴긴밤을 어떻게 지내야지? 우리 고스톱이라도 칠까? 아니 기계도 없지만 취소다. 해봐야 금수저가 또 몽땅 싹쓸이 할 건데 뭐"
진국이 전자담배를 빨아대었다.
"그러게 명색 크리스마스 이브 날 이게 뭔 생 난리부르스인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벽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누운 은주가 시선을 위로하고 노래를 불렀다.
; City sidewalks, busy sidewalks Dressed in holiday style
In the air there's a feeling of Christmas
Children laughing People passing Meeting smile after smile And on every street corner you'll hear
반색하는 두 사나이 "오예!~~"
"그래..이런 캐럴 정말 몇 년 만에 듣는 건지 모르겠다"
밖의 아궁이에서 듣고 놀라는 산사나이
"세상에...이런...!"
Silver bells, silver bells
"이런 꿈같은 노래가 세상에 있었다니..."
It's Christmas time in the city Ring-a-ling, hear them ring
Soon it will be Christmas day
소리= 거리마다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이 웃으면서 기다리는 크리스마스...노인들도 아이들도 은종을 만들어 거리마다 크게 울리네...
얼이 빠진 산 사나이 "그리스마스...가 뭐지?"
그러다 흠칫 놀랐다.
"너..우는 거냐? 눈병은 아닐 건데 와우냐..? 너도 저 노래 듣고 감동한겨?"
깜짝 "아참, 사장님 아궁이 불 봐줄 시간이잖아!"
개를 내려놓고 일어나며
"복실아. 이내 돌아올거니까 혹시 이사람들이 무엇을 가져가도 짓지말고 내버려둬"
밖으로 나가 사라지며
"그리고 네 몸을 생각해서 절대 무리하지 말고. 알았지? 울지마. 모든 게 잘될겨.."
계속
첫댓글 즐감하고 감니다
아직 윤곽도 안보이는데ㅜ
과거 코로나 직후에 썼던 낙서인데...
전체 4,5부중 1부만 쓰고 중단한 낙서네요.
여유를 둔다해도 2부나 진행될지...
대강 나가다가...웬 5000포냐 실망드리기 쉽지만...엉뚱한 환타지..?..?.?
감사합니다..
제목은 임시방편인 가제입니다 ㅜ
그래도 재밌습니다.
어떤스토리들이. 어떻게 전개될지 무척 궁금합니다. 즐 독~~
즐~~~~감!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