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해방 후 1948까지의 3년 기간
1945년,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이한 날은 일본에게는 패망의 날이요, 한국에게는 새로운 출발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날을 맞이한 선민된 한국은 역사적인 운명을 책임지기 위해서 국가적인 운세를 세계적으로 연결시켜야 합니다.
여기에서 소망을 품은 개인이 출발할 수 있는 기점이 생기고, 소망의 가정·종족·민족·국가가 싹틀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 당시에 잃어버렸던 나라를 찾는 소망이 성사되는 날이 되기도 합니다.
그때 한국은 나라의 형태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나라의 형태를 갖지 못했던 것과 같은 입장입니다.
이때는 외적 기준과 교회가 하나되어 가지고 새로운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때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소망을 이루지 못한 것은 유대교의 불신으로 인하여 유대민족까지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선생님에게는 나라보다도 기독교가 문제 되는 것입니다.
한국은 기독교 국가인 민주세계의 보호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새로운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건국 당시의 요인들과 손을 잡고 최고의 자리에서 출발할 것을 기대했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를 대표한 목사 몇 명이 반대해서 모든 것이 가로막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밝히지 않았던, 말하지 않은 내용을 선생님이 이 시간에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늘편 국가형태가 생겨나야 할 그 자리에서 기독교의 최고 간부 몇 사람이 반대함으로써 전국의 기독교가 반대할 수 있는 길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은 1948년도까지 3년 기간에 이것을 모두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이 기간에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일을 했지만 그 배후에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졌다는 것을 그 누구도 몰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독교가 반대할 수도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원리적으로 안팎을 갖추기 위해 내적으로 수많은 영적 단체를 준비해 왔다는 것을 선생님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내적으로 준비를 했다 하더라도 기독교가 외적인 나라의 형태를 갖추고 반대하는 날에는 예수를 반대하던 유대교와 이스라엘의 입장이 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1945년부터 1948년까지 3년 기간에 기독교와 국가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도리어 반대되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딴 길로 갈라져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봉착하게 됐던 것입니다.
국가적인 힘과 기반을 동원하여 죽도록 반대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예수님의 입장을 탕감해야 하는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여 선민된 이 민족이 선생님과 갈라짐으로 말미암아 국토가 남북으로 갈라지는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북도 역시 1948년에 나라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두 갈래의 싸움의 길이 생겨났습니다. 한편으로는 내적으로 기독교를 중심한 정부와 싸워야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적으로 세계적인 사탄, 즉 공산주의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하나님을 배반한 입장에 섰기 때문에 2천 년 노정을 탕감할 수 있는 20년간에 몰락의 운명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원리적인 견해입니다. (67-247)
1945년 해방되는 날에는 미국을 중심 삼은 전 세계 기반을 끌고 올 수 있었습니다. 그랬으면 한국이 남북으로 갈라졌겠느냐? 오늘날 이 자유세계와 공산세계가 안 갈라졌습니다.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갈라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가 하나님권으로 전환할 수 있는 한 때가 1948년까지의 3년이라는 것입니다. 1948년까지 반도 걸리지 않습니다. (1985.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