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람 곁에서
습도 높은 장마철에 화끈한 아침 시를 읽었다.
하늘을 깨물었더니 –정현종-
‘하늘을 깨물었더니/ 비가 내리더라.//
비를 깨물었더니/ 내가 젖더라.//’
시인의 마음으로 써 봤다.
‘분노를 참았더니/ 약이 되더라.//
웃음을 참았더니/ 독이 되더라.//
외로움을 참았더니/ 우울증이 되더라.//
그리움을 참았더니/ 추억이 되더라..’
홀로 생일 맞은 분의 추억을 쌓기 위해
작은 케이크를 들고 초대한 식당으로 갔다.
촛불 12개를 켜고 축하 송을 불렀다.
귀한 삶을 축복하며 남은 생애 강건하길 기도드렸다.
환한 얼굴에 기쁨과 감사가 묻어났다.
숯불갈비 맛은 절제하기 어려웠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서로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다짐하는 자리였다.
오는 도중 주고받은 옛날이야기는
같은 시대를 살아낸 자로 공감하는 바가 컸다.
교회 나온 지 6개월, 믿음의 싹을 틔운 모습이 아름다웠다.
참한 성품에 심성이 착해 약한 자 섬긴 손길을 타고났다.
감사할 일이기에 믿음의 길 동행하며 든든한 뿌리내리길 바란다.
홀로 사신 내 어머니 건강 위해
매년 건강관리 협회 예약 검진을 받는다.
‘이 나이(91세)에 무슨 검진이냐?’ 하지만 예방 차원에서 모신다.
오후 예약이라 아침 점심을 걸렀다.
휠체어를 본 경비원이 가까운 주차 공간을 내줘 고마웠다.
안내 간호사가 문진 표 작성하며
‘이렇게 고운 옷을 어머니 손수 입으셨어요?’
말 한마디에 입이 귀에 걸릴 정도였다.
환복하고 소변 검사하는데 간호사가 거들었다.
시력과 청력은 아들보다 밝았다.
조영제 마시고 위장 검사받기가 고약스러웠다.
4층까지 오르내리며 치과 검진까지 받았다.
덜 분비는 시간이라 예년보다 수월하게 마쳤다.
배고픔에 식당을 찾았지만 웬만한 곳은 블랙 타임이었다.
집 근처에서 순두부찌개 시켜 허기를 달랠 때
문삼석 시인의 ‘그냥’이 스쳤다.
‘엄만/ 왜 내가 좋아?/ 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 그냥...//’
집으로 모셔다드렸더니 가렵지 않은 염색약을 내밀며 설명하셨다.
1번 바르고 10분, 다시 2번 짜서 바르고 10분 후에 감으란다.
이 나이에 내 머리도 마음대로 못한다.
두피 트러블과 시력 약화로 한동안 염색을 접었다.
아들 흰머리 보기 싫은 탓에 검증해 보고 준 선물이었다.
어머니가 일러준 대로 염색하다 양손 손톱까지 까맣게 물들였다.
두암동 할머니 아들,
엄마가 못 알아본다고 거절한 요양병원을 또 찾았다.
밭에서 푸성귀 뜯어다 이마트 앞 노상에서
판 일이 엊그제 같은데 상당한 세월이 흘렀다.
밤낮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사신 분이
팔다리 움직이지 못하고 외롭게 누워 안타까울 뿐이었다.
6남매 어머니이기에 자식 기다릴 것이고
피붙이인 부산 동생도 보고 싶을 것이다.
아니 어릴 때 먼저 떠난 어머니 생각에 사무처 계신지도 모른다.
누가 이 어머니의 외로운 심정을 알겠는가?
평소 ‘며느리도 지그 일 바쁘다고 안와라!’ 하신 말씀이 귀에 거슬렸다.
사람이 그리워 2층 담벼락에 기대어
지나가는 행인 보는 재미로 사신 어머니의 마음이 애잔하였다.
외롭게 투병 중인 매형 전화를 받았다.
마음대로 통화할 수 없기에 반가웠다.
심근경색, 전립선,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로
항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사는 일상을 들었다.
식사는 누룽지, 토마토, 올리브유 등을 먹고
한참 치유 기도 받으러 다니다 중단한 상태였다.
출입이 귀찮아 방송 설교 듣고 기도하는 삶이었다.
어릴 때 미나리 깡에서 거머리 뜨긴 일,
우리 정미소가 마당으로 변한 일,
친구가 그 동네 집 짓고 지낸 일,
재미있게 살 나이에 얼굴이 반쪽 되어 납골당 마련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는 자와 함께 울라’(롬12:15)는 말씀 따라 조만간 심방할 예정이다.
지난주 권사님께서 ‘황 목사님과 식사 한 끼 하라’고 밥값을 주셨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지나는 길에 황 목사님이 낙지 볶음밥을 사 줬다.
후배 밥 먹고 체면이 구겨졌는데 내 품위 유지비를 주심 같았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황 목사님과 약속 잡고
은퇴 후 외로워하실 김 목사님 내외도 모셨다.
때 지난 칠순을 곁들여 천지유 삼계탕 집에서 만났다.
조촐한 자리지만 지난 30년간 목회 현장에서
희로애락을 나눈 정을 확인했다.
총회 신학 연구원에서 가까이 지낸
정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늦게 접하고 건강 챙길 때라고 입을 모았다.
탕 한 그릇에 사모님이 감동을 먹고
‘내 칠순 잔치에 답하겠다’는 말씀에 웃었다.
식후 커피까지 대접하고 주머니를 비웠다.
가벼운 발걸음이 행복했다.
귀국 중인 선교사님 소식이 궁금해 문자를 보냈다.
‘선교사님, 분주한 시간이지요. 현지에서 언제 출발하는지요.
인천 공항 도착 시간은요. 마중 나갈 분 계세요.
사용할 차량과 광주 방문 계획은요? 순적한 귀국 위해 기도할게요.’
밤중에 답이 왔다.
‘예, 목사님, 중간 경유지에서 기다리네요.
공항버스로 움직이며 차량은 리스 업체에서
렌트할 예정이고 일정은 도착 후 말씀드릴게요.’
버스로 움직인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외롭고 쓸쓸한 귀국 같아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늦은 시간, 친구 무탈한지 궁금하네.
다름 아니라 오만에서 사역 중인 선교사님
지금 중간 기착지에 기다리며 내일 아침 인천 공항에 도착할 것 같네.
아버지 자택이 분당으로 픽업 나올 사람이 없어
일가족 네 명이 버스로 이동할 것 같아 마음 아프네.
친구가 가까운 거리에 사는 것 같아 좋은 방법이 없을까 싶어 문자 보내네.
굿 밤 되길 바라네’
‘귀한 선교사님 사역에 대한 감사와 예우를 도와드리지 못해 미안하네.
마음으로 의지하고 믿음 줘서 고맙네.
좋은 날 되길 바라네.’
2023. 7. 1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