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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스크랩 손자병법 요약
잠실/맥(조문희) 추천 0 조회 292 15.02.23 12: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孫子兵法(손자병법)은 그 자체로 위대한 저작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손자병법 그 자체만을 아무리 꿰뚫는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손자병법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다.

 

孫武(손무)나 그의 손자 孫嬪(손빈)이 활약하던 당시의 시대상과 전쟁양상에 대한 고찰 없이는, 손자병법의 진정한 가치도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손자병법은 당시 변화해가는 전쟁의 모습을 반영하여 기술되어 있으며, 이러한 배경을 모르고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손자병법의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선 그들이 살았든 春秋時代(춘추시대)의 전쟁양상과 그 안에서 손자병법의 가치 등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바로 손자병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春秋時代(춘추시대) 전쟁의 모습...

 

춘추시대의 각 제후국들은 '諸侯(제후) - 卿(경) - 大夫(대부) - 士(사) - 民(민)'의 신분계층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신분은 士(사) 이상으로 한정되었다. 춘추시대에는 전문적인 전쟁에 관한 관직(장군)이 존재하지 않았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왕족이나 경대부에 속하는 귀족 중에서 군주가 임명하였다. 이렇게 춘추시대의 군대는 특권을 가진 귀족 신분을 가진 군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춘추시대의 초기에는 큰 싸움도 전차 700~800승 정도에 병사 수 2만 여명의 규모였고, 춘추시대 후반까지도 3, 4만 여명에서 10만 명 전후에 그치는 정도의 규모였다.

 

또한 이 당시의 전투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전차'라는 무기이다. 이 '전차'란 주로 네 마리의 말에 이끌리고, 마부와 전사가 올라탄 전투 기구를 뜻한다(영화 '벤허'를 연상하면 대충 비슷할 것이다).


이러한 전차의 조종에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고, 유지에도 비용이 많이 든다. 따라서 전차로 전투를 진행하는 것은 당연히 귀족계층으로 한정된 것이다.


그리고 이 당시의 중국 각 나라의 국력은 '千乘之國(천승지국)' 혹은 '萬乘之國(만승지국)'이라는 말처럼 그 나라가 보유한 전차의 수에 따라 표시되었다. 이러한 전차가 수백 승이나 수천 승까지 대열을 이루어 싸우게 되므로, 전쟁터 또한 평탄한 지형이 아니면 안 되다. 따라서 춘추시대의 일반적인 전투는 넓은 평원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전개되는 전차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렇게 군대가 귀족 신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그들을 규율하는 것은 '군율'이 아닌 '전통적인 귀족의 예법'이었다. 따라서 전투도 일정한 양식이 있었다. 이를 살펴보자면 먼저 전투 일시와 장소를 정하는 '請戰(청전)'의 단계를 거치고, 적과 아군이 전차의 대열을 갖추고, 병사들이 적진으로 달려가 도전하는 '致師(치사)'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전투가 시작된 후 한쪽의 전차 대열이 흐트러져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거나, 지휘관이 붙잡히거나, 본진의 깃발을 쓰러뜨리거나, 적에게 등을 보이며 도망치게 되면 승패가 결정 난 것으로 판정한다. 그렇게 이긴 승자는 패자를 추격하거나 하지 않았고, 따라서 패자를 철저히 궤멸시키는 경우는 없었다.

 

늙은 병사는 포로로 잡아도 석방시켰고, 인명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양군에서 대표로 용사 두 명이 나와 결투로 결말을 짓기도 했다. 이렇게 양군의 병사들에 의해 연출된 화려하고 웅장한 전쟁이 바로 당시에 추구하는 전쟁양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양상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宋襄之仁(송양지인)'으로 유명한 그것이다. 기원전 638년에 宋(송)의 군대는 楚(초)의 군대와 홍수 부근에서 싸웠다. 이 때 송나라의 군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고, 초나라 군대는 강 한가운데를 건너고 있었다.

 

신하들은 송의 병력이 열세이므로 이 기회에 공격하자고 진언했으나, 송의 제후인 襄公(양공)은 비열한 전법이라 하여 거절하고 초나라 군대가 기어이 강을 다 건너 전열을 갖추기까지 기다린 다음에 전투를 시작하였다. 결과는 송의 대패로 끝났지만, 이는 '송나라 양공의 어리석은 어짊[宋襄之仁]'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후로도 명분과 형식을 중시하는 儒家(유가)에 의해 칭송까지 받아왔던 것이다.

 

이러한 평원에서의 전차전은 짧은 시간에 승패가 결정 나게 된다. 따라서 한 번의 전투가 전쟁 전체이기도 했고, 전쟁기간도 짧아 보통 2~3일 만에 끝났다. 물론 성을 중심으로 攻城戰(공성전)을 펼치게 되면 오래 끌기도 했지만, 춘추시대에는 성의 규모도 작고 공성병기나 수성병기도 발전하지 못해서 대개 며칠에서 몇 개월 만에 끝났다. 따라서 전쟁은 그 다음 시대인 戰國時代(전국시대)처럼 국가 간의 총력전이나 소모전이라 할 정도의 치열한 양상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렇게 춘추시대의 전쟁은 아주 단순한 양상을 보였다. 따라서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요인은 지휘관이나 병사 개인의 무술이나 용맹성과 같은 기량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전략이나 전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낮았다.


이 당시의 전술은 기껏해야 일부러 후퇴하는 척하다가 복병과 함께 협공하는 식의 전술 정도였다. 이러한 전술의 모습도 전차전이라는 전투의 특성상 방향전환이 어려워 배후나 좌우에서의 공격에 약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전쟁형태의 등장...

 

이러한 중원의 전통적인 전쟁관의 근간을 흔들어 놓은 것은 남쪽의 吳(오)나라였다. 당시 오나라는 같은 남방의 초나라, 월나라와 함께 중원에서 오랑캐 취급을 받던 나라였다. 따라서 오나라는 중원의 다른 나라들과 같은 봉건제를 기반으로 한 신분제도가 확립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병사들의 신분적 제약이 없이, 일반 백성들이 그대로 무장하여 병사가 되었다. 따라서 중원의 한정된 병사에 비하여 동원 병력수가 월등히 높았고, 병력의 손실을 보충하기도 매우 쉬웠다.

 

또한 임시직으로 장군직을 맡게 되는 귀족들이 없어, 대부분 오왕 자신이 진두지휘를 하는 한 편, 중원의 전술 전략에 정통한 사람을 군사 전문가로 초대하는데 별다른 저항도 없었다.


초나라에서 제나라로 망명한 오자서가 참모가 되고, 제나라에서 온 손무가 장군이 된 것도 이러한 사정에 따른 것이었다. 또한 손무가 임명된 '장군'도 중원에서처럼 임시직이 아니라, 군대에 관한 권한을 갖고 있는 전문직이었다. 전국시대에 들어서게 되면 중원의 나라들도 '장군'이라는 전문직을 만들게 되지만, 이 당시에는 오직 오나라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었다.

 

또한 오나라는 다루기 힘들고 유지도 어려운 전차가 아닌, 보병을 군대의 주력으로 삼았다. 중원에서는 전차를 보조하는 수단으로서만 존재하는 보병이었으나, 오나라에서는 오히려 전차가 보병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존재하였다.


이렇게 보병이 군대의 중심이 되면서 전술적인 면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전차에 비하면 보병은 지형의 제약을 훨씬 적게 받고, 그만큼 작전행동이 자유롭게 된다. 예를 들어 전차로는 갈 수 없는 산악이나 숲이나 늪지대 등의 험한 지형도 뚫고 나갈 수 있다. 또한 그러한 지형을 이용해서 군대의 행군 경로를 적에게 들키지 않고 숨길 수가 있다.

 

이러한 이점을 살려, 보병으로 구성된 군대는 복잡한 전술을 세우는 것이 가능해졌다. 병력을 여럿으로 나누어 몰래 진격시켜 미리 약속한 지점을 집중하여 공격하는 '分進合擊(분진합격)', 적은 병력으로 미끼삼아 공격목표를 적에게 노출하지 않고 공격하는 '佯動(양동)', 적의 뒤로 돌아가서 포위하거나 배후를 차단하거나 하는 작전 등이 새롭게 쓰이게 된 것이다.

 

그 결과로 전쟁의 귀족적인 양식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전투 자체가 서로 속고 속이게 되는 새로운 전쟁형태가 생겨나게 되었다. 손무가 '始計(시계)' 편에서 "전쟁이란 속임수다."라고 선언한 것이 바로 이러한 전쟁의 변화양상의 출현을 나타낸 것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병을 중심으로 함으로 인해, 오나라는 원거리 공격과 지구전의 측면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전차를 주력으로 하는 중원의 군대는 험한 지형을 돌파할 수 없고, 행동범위가 좁아 원거리 공격에는 맞지가 않았다.


오나라는 초나라를 공격하여 일거에 초나라 수도인 영까지 공격해 들어가는데, 이는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원거리 공격이었다. 거리가 무려 2,000리(약 800km)에 달하는 거리를 공격해 들어간 것이다. 또한 노나라와 제나라와의 전쟁을 치루기 위해 무려 1,000리 이상의 장거리 전을 치루기도 한다.

 

당시에 이러한 장거리 침공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손무가 이끄는 오나라 군대뿐이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보병을 중심으로 구성된 오나라 군대였다. 전차와는 달리 보병은 지형과 거리에 방해받지 않고 진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오랜 기간에 걸친 지구전에 있어서도 오나라는 새로운 변화를 일으킨다. 오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함에 있어, 손무와 오자서의 작전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것이 기원전 511년이며 계속 진격하여 기원전 506년에 초나라의 수도를 함락시켰다.


그리고 다음해에 秦(진)나라의 참전과 越(월)나라의 공격으로 본국으로 후퇴할 때까지의 기간은 무려 7년이나 된다. 또한 유명한 오나라와 월나라 간의 전쟁은 전 기간이 62년에 달하며, 오왕 합려의 전사로 전쟁이 격화된 시점에서만 계산해도 기원전 472년의 오나라 멸망까지 실로 24년에 걸친 장기전이었다.


전국시대에 있어서는 일반화되게 되는 장기 지구전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다른 나라를 완전히 제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총력전과 소모전의 시대의 막을 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변방의 오랑캐 나라가 혜성처럼 나타나 중원의 覇者(패자)가 되기까지 중원의 충격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충격이야말로 오나라를 갑작스럽게 강대하게 만든 장군 손무의 손자병법인 것이다.

그리고 손자병법...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손자병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손무는 '모공'편에서 "장수가 유능하여 군주가 간섭하지 않으면 승리한다." 라든가, '지형'편에서 "적의 정황을 잘 헤아려 승리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며, 지형이 평탄한지와 길의 멀고 가까움을 계산하는 것이 훌륭한 장수의 임무이다...

 

그러므로 장수는 전선에서 필승의 확신이 서면 군주가 싸우지 말라고 해도 반드시 싸워야 하고, 필승의 확신이 서지 않으면 군주가 싸우라고 해도 반드시 싸우지 않아야 한다..." 라고 하여 전장에서의 장군의 독립된 지휘권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장군을 상임의 전문벼슬로 정한 오나라의 군제와 일치한다.


또 '허실'편에서 "실을 피하여 허를 친다." 라거나, '군쟁'편에서 "적보다 늦게 출동하고도 목적지에 먼저 도착하여 요충지를 점령할 수 있다." 라는 등의 복잡한 전술은 오나라의 보병 중심의 군대에 의해 처음으로 실현가능한 전법이었다.

 

'구지'편에서 '장수가 관례를 깨뜨리는 포상을 하기도 하고, 상식을 뛰어넘는 명령을 내리는 등의 조치를 취해 병사들의 사기를 고무하면, 병사들이 자기의 재산이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싸우는 것은 그들이 모두 재산이나 생명을 싫어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명예를 중시하는 귀족 전사가 아니라 전투의지가 투철하지 않은 일반 백성을 병사로 하는 군대 구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이 또한 앞에서 이야기한 오나라의 군대구성과 일치하는 것이다.

 

따라서 병사 개인의 자질이나 기량이 아닌 집단 전체의 태세나 기세를 중시하게 되었고, 이는 '군형' 편에서 "승리하는 자는 작전을 주도하면서 천길 높은 골짜기에 가둔 물을 한 번에 쏟아내듯 쌓인 힘을 최대한 발휘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승리의 기세인 '군형'이다." 라고 나타나게 된 것이다.

 

또한 '병세'편에서 "용맹함과 비겁함은 기세에 달려 있으며, 강함과 나약함은 상황의 형세에 달려있다", "전쟁에 유능한 자는 '기세'로 승리를 추구하며, 병사 개개인의 전투력을 탓하지 않는다." 라거나 '군쟁'편에서 "어느 군대든 전투가 처음 시작될 때에는 사기가 왕성하지만, 시간이 지나 전투가 이어지면 사기가 느슨해지며, 전투가 끝날 무렵이 되면 사기가 바닥에 떨어져 철수할 생각만 하게 된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점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렇게 손자병법의 저술배경에는 이러한 당시의 전쟁양상, 오나라의 군대구성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손자병법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손자병법은 분명히 위대한 저서이다. 하지만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兵法(병법)'이다. 응용은 둘째 치고, 이해를 위해서라도 저술 당시의 상황이나 배경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내용만 주욱 늘어놓고 기업경영이나 처세술에 대한 이야기를 대충 늘어놓은 '손자병법' 관련 서적들을 보면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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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孫子兵法 始計篇 第一

 

손자병법 제1편 시계(계획)

 

손무는 말하였다.


전쟁이란 국가의 중대사이다. 백성의 삶과 죽음을 판가름하는 마당이며, 나라의 보존과 멸망을 결정짓는 길이니, 깊이 삼가며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다음의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 기본 요소를 핵심으로 분석하고, 계획에 따라 정세를 비교해 보아야 한다. 이 다섯 가지 요소[五事]란..


첫째가 정치이고,

둘째가 기후이고,

셋째가 지리이며,

넷째가 장수이고,

다섯째가 법이다.

 

첫째, 정치란 백성으로 하여금 전쟁에 대하여 군주와 똑같은 의지를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군주와 더불어 살고 죽으며, 나라의 위기에 부딪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둘째, 기후란 밝음과 어두움, 맑음과 흐림, 마름과 축축함 그리고 추위와 더위 등 여러 기상 조건과 계절의 변화를 말한다.

 

셋째, 지리란 길의 멀고 가까움, 지세의 험하고 평탄함, 지역의 넓고 좁음, 지형의 죽을 곳과 살 곳으로 갖가지 지형 조건을 가리킨다.

 

넷째, 장수란 정세를 손에 쥐는 지략[智], 상벌을 공정하게 시행하는 믿음[信], 부하를 아끼고 이끄는 어짊[仁], 작전을 추구하는 결단력[勇], 군기를 엄격하게 유지하는 위엄[嚴]을 갖춘 자를 가리킨다. (1)

 

다섯째, 법이란 군대의 조직과 편제 단위, 지휘 통신의 수단인 깃발과 악기의 운영 규정, 벼슬 및 계급 체계와 직무의 합리적인 배분, 식량 등 군수물자의 조달과 공급에 관한 업무를 말한다.

 

이 다섯 가지 요소는 장수된 자가 반드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를 깊이 이해하고 장악하고 있다면, 어떤 전쟁이든 승리로 이끌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적군과 아군 양쪽을 비교하면서 다음의 일곱 가지[七計]를 기초로 분석해 보아야 그 실제 정세를 파악할 수 있다.

  

첫째, 군주의 정치는 어느 편이 더 나은가?

 둘째, 장수의 지휘는 어느 편이 더 유능한가?

 셋째, 기후와 지리 조건은 어느 편에게 더 유리한가?

 넷째, 법제는 어느 편이 더 엄격하고 공정하게 시행되는가?

 다섯째, 병력과 무기는 어느 편이 더 강한가?

 여섯째, 병사의 훈련은 어느 편이 더 잘 되어 있는가?

 일곱째, 상과 벌은 어느 편이 더 공정하고 분명하게 시행되는가?

 

나는 위의 일곱 가지 기준으로 서로 견주어 보면, 어느 편이 이기고 질 것인지 미리 알 수 있다.

 

만일 이러한 나의 기본 계책을 따라서 군대를 부린다면, 반드시 승리를 거두게 괸다. 따라서 나도 이 나라에 머물 것이다. 그러나 나의 계책을 따르지 않고서 군대를 부린다면 반드시 패배하게 된다. 따라서 나는 이 나라를 떠날 것이다.

(2)

 

이해득실에 대한 기본 조건을 분석한 다음에 유리한 형세를 만들고, 이것이 밖에서 돕는 보조 조건이 되도록 만든다. 여기서 '형세'란 유리한 조건을 잡아서 상황 변화에 따라 주도권을 손에 넣음을 말한다.

 

병법은 속임수이다. 그러므로 적을 공격할 능력이 있지만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공격을 가할 필요가 있지만 공격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며, 가까운 목표를 공격할 계획이지만 멀리 있는 목표를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멀리 돌아갈 계획이지만 가까운 곳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또한 적에게 작은 이익을 미끼로 주어 그들을 유인해 내고, 적을 혼란스럽게 하여 기회를 틈타 깨부수며, 적의 힘이 충실하면 더욱더 든든히 대비하고, 적의 병력이 강대하면 잠깐 결전을 피하여야 하며, 쉽게 분노하는 적은 집요하게 도발하여 스스로 기세가 꺾이게 만들고, 아군을 가볍게 보는 적에게는 오히려 비굴한 몸짓으로 그들의 자만심을 부채질한다. 적이 충분히 쉬어서 안정되어 있으면 계략으로 피로하게 만들고, 적군 내부가 친밀하면 이간질시켜 떼어 놓는다.

 

적이 미처 방어하지 못하는 곳에 공격을 집중해야 하며, 적이 전혀 뜻하지 못한 의표를 찌르며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전쟁에서 승리를 움켜쥐는 길이다. 그러니 이를 함부로 누설해서는 안 된다.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조정에서 전략을 세우면서 승리를 예측하는 자는 그 계획이 주도면밀하고 다양하다. 그러나 전략을 수립하면서 승리를 예측하지 못하는 자는 그 계획이 치밀하거나 충분하지 못하다. 계획이 다양하면 이기고, 계획이 다양하지 못하면 이길 수 없다. 하물며 아예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측면을 살펴보면, 어느 편이 이기고 질 것인지 미리 알 수 있는 것이다.(3)


해석..>

 

(1) 여기에서 손자는 장수의 자질로 '智(지)', '信(신)', '仁(인)', '勇(용)', '嚴(엄)'을 들고 있는데, 이는 흔히 군자의 자질로 회자되는 '仁(인)', '義(의)', '禮(예)', '智(지)', '信(신)' 과도 중첩된다. 다만 예법을 갖춰가며 싸우던 이전의 전쟁에 비하여, '속임수'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전쟁양상에 따라 '禮(예)'가 빠지는 것은 당연하고, 따라서 굳이 '義(의)'를 따질 것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 장수로서의 과감함을 뜻하는 '勇(용)'과 부하들을 규제하기 위한 '嚴(엄)을 추가하고 있다.


'吳子兵法(오자병법)'에서는 장수의 자질에 대하여 조직관리 능력인 '理(이)', 만약의 일에 대한 준비성을 뜻하는 '備(비)', 일을 추진하는 과감성을 뜻하는 '果(과)', 오만하지 않는 조심성인 '戒(계)', 규율을 지키기 쉽고 간략하게 하는 '約(약)'을 들고 있다. 이는 의미는 각각 대응되어 모두 같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나, '孫子兵法(손자병법)' 보다는 '吳子兵法(오자병법)'이 보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규정을 꼽고 있다 할 것이다.

 

2) 孫武(손무)는 齊(제)나라에 내란이 일어나자 吳(오)나라로 망명하여 吳王(오왕) 闔閭(합려)에게 자신의 병법 13편을 바치고 문답을 나눈 뒤 등용되었다. 이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3) 이는 충분히 전략을 세우고, 적과 아군의 힘을 재보고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느 한 가지 요소만 우세하다고 해서 준비를 소홀히 하거나, 책상 위에서 숫자만 비교해서는 이길 수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孫武(손무)의 후손인 손빈도 '손빈병법' '客主人分(객주인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병력이 많다고 해서 모두 승리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주판을 가지고 적과 아군의 머리수만 세면되지, 굳이 전술을 세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기와 보급이 충분하다고 모두 싸움에 이길 수 있는가? 그렇다면 가마니 숫자만 헤아리면 되지, 굳이 싸울 필요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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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孫子兵法 作戰篇 第二

 

손자병법 제2편 작전

 

손무는 말하였다.

나라에서 군대를 동원하여 전쟁을 하려면, 빠르고 가벼운 전투용 전차 천 대와 운반용 수레 천 대 그리고 무장한 병사 10만 명을 출동시켜야 하며, 게다가 천 리 길에 걸쳐서 군량미를 수송하고 물자를 보급해야만 한다.


그러니 이렇게 하려면, 전방과 후방에서 들어가는 경비, 국빈이나 사신과의 외교에 쓰이는 접대, 무기와 장비를 만들거나 고치는데 들어가는 물자, 수레와 갑옷을 수리하고 보충하는 게에 필요한 비용을 합쳐서 하루에 천금에 이르는 막대한 전쟁비용이 들어간다. 이러한 전쟁비용을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국력이 갖추어져야만 비로소 10만 명의 대군을 출동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전쟁을 할 때에는 속전속결로 승리하여야 한다. 싸움을 질질 끌게 되면 병사들이 피로해지고 사기가 꺾이게 되며, 적의 성을 공격하게 되면 병력을 많이 잃게 된다. 그리고 군대를 나라 밖으로 끌고 나가서 오래도록 전쟁하면 나라의 재정이 말라 버리게 된다.

 

장기전으로 병사들이 피로해져 사기를 잃게 되고, 병력 손실이 많아져 재정이 말라 버리면, 이웃의 다른 나라가 그 어려운 틈을 타서치고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제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도 그 뒤를 수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전쟁 준비에 다소 모자란 점이 있더라도 속전속결을 추구하여 승리한 경우는 들어 보았지만, 전쟁준비를 완벽하게 갖추고 장기전을 치르며 승리한 경우는 본 적이 없다.


대개 전쟁을 오래 끌어서 나라에 이로운 경우는 결코 없다. 그러므로 장수가 군대를 움직일 때의 해로운 면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군대를 움직일 때의 이로운 면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1)

 

전쟁을 잘 이끄는 장수는 한 사람을 두 번 거듭해서 징집하지 않고, 식량을 국경 밖으로 여러 차례 실어 나르지 않는다. 처음에는 자기 나라에서 가져다 쓰지만, 모자라는 식량은 적지에서 빼앗아 해결한다. 그렇게 해야 필요한 식량을 넉넉하게 확보할 수 있다.

 

전쟁을 하면서 나라의 재정이 가난해지는 이유는 병사와 보급 물자를 먼 거리로 수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송로가 길어지면 백성의 부담이 커져서 가난해진다. 군대가 주둔한 지역은 물가가 오르고, 물가가 오르면 백성들이 쓸 물자가 모자라게 된다. 나라의 물자가 다 말라 버리면 이를 채워야 할 부역의 부담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군사력이 소모되고 나라의 재정이 말라 버리면, 나라 안은 집집마다 텅 비게 되고, 백성의 재산은 열의 일곱이 소모된다. 게다가 나라의 재정도 부서진 전차와 병들고 시달린 말을 비롯하여 갖가지 전투장비나 무기 그리고 운송 수단의 손실 때문에 그 열의 여섯이 소모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장수는 적지에서 식량을 빼앗으려고 노력한다. 적의 식량 10섬(일종=천되)을 얻으면 본국에서 200섬을 보급 받는 것과 같고, 현지에서 사료 1섬을 얻으면 본국에서 20섬을 보급 받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병사들이 용감하게 적을 무찌르게 하려면 적개심[怒]을 길러 주어야 하며, 적의 물자를 잘 빼앗게 하려면 재물로 상을 주어 권장하여야 한다. 2)

 

전차 전투에서 적의 전차를 10대 넘게 노획했다면, 가장 먼저 빼앗은 자에게 상을 내려 주며, 적 전차의 깃발을 아군의 깃발로 바꾸어 아군 전차와 함께 섞어서 사용한다. 그리고 포로로 잡힌 적에게 잘 대해 주어 아군으로 전향하게 한다. 이른바 '싸워 이길수록 더욱 강해진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다. 3)

 

그러므로 전쟁에 있어서는 속전속결로 이기는 것이 중요하며, 가능한 지구전은 피해야 한다. 이와 같은 전쟁의 본질을 깊이 아는 장수가 바로 백성의 목숨과 운명을 한 손에 쥐고 있고, 나라의 흥망을 어깨에 짊어진 인물이다.

 

해석..>

 

1) 준비가 부족하더라도 속전속결을 주장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始計(시계)'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상반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始計(시계)'편에서는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사전계획을 철저하게 세우라는 것이고, '作戰(작전)'편은 전쟁을 시작한 후의 속전속결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2) '一鐘(일종)'은 1,000되이다. 100되가 1섬이므로, '一鐘(일종)'은 10섬이 된다.

 

3) '포로로 잡힌 적에게 잘 대해주어 아군으로 전향하게 한다.'의 원문은 '卒善而養之(졸선이양지)'이다. 새로 발견된 은작산 죽간본에는 '卒共而養之(졸공이양지)'라고 하여 '적을 아군과 함께 편성한다.'라고 하고 있다. 같은 뜻으로 생각된다..


'적을 아군으로 전향하게 하여', '싸워 이길수록 더욱 강해진다.'는 것은 뒤에 '謀攻(모공)'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싸울 때마다 이기는 것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며, 싸우지 않고도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謀攻(모공)'편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知彼知己 百戰百勝(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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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孫子兵法 謀攻篇 第三

 

손자병법 제3편 모공(전략)

 

손무가 말하였다.

 

전쟁의 법칙에 따르면.......

 

적국[國]을 온전히 두고서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책이며,

전쟁을 일으켜 적국을 깨부수고 굴복시키는 것은 차선책이다.


적의 전군[軍]을 온전히 두고서 항복시키는 것이 최상책이며,

전투를 벌여 전군을 깨부수고 항복시키는 것은 차선책이다.


적의 대대[旅]를 온전히 투항시키는 것이 최상책이며,

적의 대대를 격파하는 것은 차선책이다.


적의 중대[卒]를 온전히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책이며,

적의 중대를 무찌르는 것은 차선책이다.


적의 분대[伍]를 온전히 생포하는 것이 최상책이며,

적의 분대를 베어 죽이는 것은 차선책이다. 1)

그러므로 싸울 때마다 이기는 것[百戰百勝]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며,

싸우지 않고도 적을 완전히 굴복시키는 전술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2)

따라서 전쟁에서 최상책은 계략으로 적을 굴복시켜 승리를 거두는 것이며, 차선책은 외교를 통해서 적의 동맹을 끊어버려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 다음 방법은 병력을 동원하여 야전에서 적군을 격파하여 승리를 거두는 것이며, 가장 나쁜 방법은 적이 지키고 있는 성을 직접 공격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을 공격하는 공성전은 어쩔 수 없을 경우에만 선택해야 한다. 성을 공격하는 데에 필요한 방어용 방패[櫓]와 엄호용 수레인 분온을 제작하고, 공성기구와 장비를 갖추려면 3개월이 들어간다.


또한 성을 관찰하고 공격하기 위한 흙 망루를 쌓는 데도 3개월이나 걸린다. 이와 같이 공성 준비를 하는 동안에 장수는 초조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무리한 공격명령을 내려 휘하의 병력을 개미떼처럼 성벽에 기어오르게 한다. 그 결과 병력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내몰면서도, 적의 성은 무너뜨리지 못한다. 이런 까닭에 함부로 성을 공격하는 재앙을 무릅써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3)

 

그러므로 전쟁을 잘 아는 장수는 싸우지 않고도 적군을 굴복시키며, 적의 성을 공격하지 않고도 무너뜨리며, 장기전을 치르지 않고도 적국을 격파한다.


이렇게 반드시 적국의 모든 것을 온전히 둔 채 천하의 패권을 손아귀에 넣는다. 그러므로 아군의 손실이 없이 완전히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계략으로 승리하는 '謀攻(모공)'의 법칙이다. 4)

 

그러므로 전쟁의 원칙은 병력이 적군의 10배일 때에는 적을 포위하고,

5배일 때에는 공격하며,

2배일 때에는 계략을 써서 적을 분산시키고,

병력이 적과 비슷할 때에는 전력을 다하여 싸워야 하며,

병력이 적군보다 적을 때에는 적과 부딪치지 말고 싸움터에서 벗어나야 하며,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전투를 피하여야 한다.

군사력이 처지면서 수비를 굳게 하고 버티면, 강력한 적의 포로가 될 따름이다.

장수는 나라를 보좌하는 버팀목이다. 그 보좌함이 주도면밀하면 나라는 반드시 강성해지며, 그 보좌함에 틈이 있으면 나라는 반드시 쇠약해진다.

 

그러므로 군주가 군대의 지휘권을 간섭하여 해를 끼치는 다음의 세 가지 상황이 있다.

 

첫째, 군대가 나갈 수 없는 상황인데도 전진 명령을 내리거나, 후퇴해서는 안 되는 상황인데도 후퇴명령을 내리는 경우이다. 이러한 군대를 '재갈 물려진 군대[?軍]이라 한다.

 

둘째, 군주가 군대 전체[三軍]의 내부 사정을 모르면서 현지 군대의 인사나 행정에 간섭하는 경우이다. 이렇게 되면 병사들이 혼동하게 된다.

 

셋째, 군주가 전쟁의 권모술수[權]를 모르면서 지휘에 간섭하는 경우이다. 이렇게 되면 전체 병사들이 자신감을 잃고 의심을 품게 된다.

 

이렇게 군대 안에 갈팡질팡하고 믿지 못하는 마음이 퍼지면 적국이 그 빈틈을 노리고 쳐들어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아군을 혼란시켜 적이 승리하도록 이끌어 준다'는 말이다.

 

전쟁의 승리를 미리 아는 데는 다섯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싸워야 할 때와 싸우지 말아야 할 때를 분명하게 판단할 줄 아는 자는 승리한다.


둘째, 병력이 많을 때와 적을 때에 따라 적절하게 다른 방법으로 지휘할 줄 아는 자는 승리한다.


셋째, 장수와 병사 위아래의 의지가 하나 되어 단결하면 승리한다.


넷째, 언제나 대비[虞]하고 적이 틈을 보이기를 기다릴 줄 아는 자는 승리한다.


다섯째, 장수가 유능하여 군주가 작전에 간섭하지 않으면 승리한다.

이상의 다섯 가지가 승리를 알 수 있는 요건이다.

 

그러므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적을 모르고 나를 알기만 한다면, 이기고 질 확률은 절반이 될 것이며,

적도 모르도 나도 모른다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험에 빠지게 된다고 할 것이다. 5)

 

해석..>

 

1) 고대의 편제에서 '軍(군)'은 12,500 명을 나타내는 단위이다. '旅(여)'는 5백 명의 군사를 나타내고, '卒(졸)'은 1백명 혹은 그 이상을 나타내며, '伍(오)'는 5명에서 100명 사이의 군사를 나타내는 단위이다.

 

2) 여기에서 손무는 '싸울 때마다 이기는 것[百戰百勝]'은 좋은 것이 아니라고 직접 언급하고 있다.

 

3) 공성전을 피해야 한다고 보는 손무의 견해는 '作戰(작전)'편에서 속전속결을 주장한 태도와도 일관된다. 다만 손무의 후손인 손빈의 '손빈병법'에서는 공성전에 대한 상세한 전략이 나와 있는데, 이는 두 사람의 견해차이라기보다는 공성전이 일반화된 전국시대의 전쟁양상으로 인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4) 이렇게 직접 적을 격파하는 것보다는 적국을 외교상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좋다고 한 것은 '作戰(작전)'편에서도 언급했듯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많은 부담을 지게 되어 국력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력을 유지하면서 그 세력의 소모 없이 굴복시키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본 것이다.

 

5) '知彼知己, 百戰不殆(지피지기 백전불태)'라고 하여,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知彼知己, 百戰百勝(지피지기 백전백승)'은 잘못된 말이고, '孫子兵法(손자병법)'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孫武(손무)는 위에서처럼 '싸울 때마다 이기는 것[百戰百勝]'은 좋은 것이 아니라고 직접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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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孫子兵法 軍形篇 第四

 

손자병법 제4편 군형

 

손무는 말하였다.

 

옛날에 전투에 뛰어난 장수는 먼저 적이 아군을 이기지 못할 태세를 갖추고, 적이 허점을 드러내 아군이 승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를 기다렸다. 그러니 적이 승리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조건은 아군에게 달려 있으며, 아군이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은 적군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전쟁에 뛰어난 자라도 적군이 승리하지 못하도록 아군의 태세에 만전을 기할 수는 있어도, 아군이 반드시 적군을 이길 수 있도록 적군의 허점을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승리는 미리 알 수는 있으나, 그것을 원한다고 마음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1)라고 하는 것이다.

 

적이 승리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아군의 수비이며, 아군이 승리를 취할 수 있는 것은 공격이다. 병력이 부족하면 수비를 하고, 병력에 여유가 있으면 공격을 한다.

 

수비를 잘하는 장수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땅 속[九地]에 숨듯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아군의 역량을 깊숙이 은폐시킨다. 공격을 잘하는 장수는 높디높은 하늘[九天] 위에서 행동하듯 어떠한 조건에도 거스름 없이 아군의 역량을 최고도로 발휘한다. 그러므로 아군을 온전하게 보전하면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누가 보아도 어느 쪽이 승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거둔 승리는 최선의 승리가 아니다. 힘껏 싸워서 천하의 마든 사람들로부터 '잘 싸웠다'는 말을 듣는 승리도 최선의 승리가 아니다. 깃털[秋毫]2)을 들어 올린다고 해서 힘이 세다고 하지 않으며, 해와 달을 본다고 해서 눈이 밝다고 하지 않으며, 우레나 벼락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귀가 밝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밖으로 드러난 상황은 누구나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 전쟁을 잘한다고 일컬어졌던 자들은 모두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추어 놓고 적과 싸워 쉽게 승리하였다. 따라서 전쟁을 잘하는 인물이 거둔 승리에는 그의 지략이 뛰어나다는 명성이나 용맹스러운 공적이 돋보이지 않았다. 상황이 겉으로 드러나서 어긋나기 전에 미리 조치를 취함으로써 확실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며, 이는 곧 싸우기 전에 반드시 이길 조건을 갖추어 놓고, 이미 패배할 상황에 처해 있는 적을 상대로 싸워 이긴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언제나 패배하지 않는 '불패'의 자리에 서서, 적이 패배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어 놓고 적과 싸우며,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싸움을 걸어 놓고 승리를 노린다.

 

전쟁을 잘 이끌어 나가는 자는 승리하기 위해서 언제나 정치적으로 충분한 준비[修道]를 하고, 법 제도[保法]를 확고하게 갖춘다. 그렇게 해야만 그가 승패의 결정권을 손에 넣을 수 있다. 3)

 

병법에서 고려해야 할 다섯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지형 판단[度]이고, 둘째는 물질적인 자원[量]이고, 셋째는 양쪽의 병력 숫자[數]이고, 넷째는 양쪽의 전체적인 전투력 비교[稱]이며, 다섯째는 우열과 승패의 상황[勝]이다. 4)

 

국토가 험난한지의 여부와 크기에 따라서 그 지형을 응용하는 계산이 세워지고, 이러한 지형판단을 바탕으로 거기서 나올 경제력이 결정되며, 결정된 경제력에 근거하여 투입 가능한 병력 수가 계산되어 나오고, 양 쪽의 투입 가능한 병력 수에 근거하여 전체적인 전투태세와 전투력을 견주어 볼 수 있으며, 양쪽의 전투력의 비교에 근거하여 작전의 승패를 판단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투력에서 마치 엄청난 무게로 새털처럼 가벼운 무게를 압도하듯 우세한 군대는 승리하며, 그 반대로 절대적인 열세에 빠진 군대는 패배하기 마련이다.

 

승리하는 자는 작전을 주도하면서 천 길 높은 골짜기에 가둬둔 물을 한 번에 쏟아 내듯 쌓여 있는 힘을 최대한 발휘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승리의 기세인 '군형'이다. 5)

 

해석..>

 

1) 孫武(손무)는 '승리란 미리 알 수는 있으나, 그것을 원한다고 마음대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勝可知, 不可爲也]' 라고 하고 있으나, '虛實(허실)'편에서는 '승리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勝可爲也]'라고 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상대편에게 '승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虛實(허실)'편에서는 '적극적으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는 반대되는 내용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승리의 조건에 대하여 다른 맥락으로 이야기 한 것임을 염두에 둘 것.

 

2) '秋毫(추호)'라고 함은 새나 짐승들이 가을에 털갈이를 하여 새로 난 얇은 털을 뜻하는 말이다. 이는 흔히 '아주 미미하고 작음'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3) '始計(시계)'편에서 이야기한 五事(오사 :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다섯가지 기본요소) 중의 첫째인 '정치[道]'와 다섯째인 '법[法]'을 이야기하고 있다.

 

4) '度(도)'란 두 나라의 땅 넓이의 크고 작음이나 넓고 좁음을 계산하는 것이고, '量(량)'이란 두 나라의 물질적인 자원의 크기를 재보는 것이며, '數(수)'란 실제 병력 숫자나 동원 가능한 인적자원의 양을 세어 보는 것이고, '稱(칭)'이란 두 나라의 총체적인 실력을 재보는 것이며, '勝(승)'이란 두 나라의 우열과 승패의 상황을 가려내는 것이다.

 

5) 孫武(손무)는 병사 개인의 자질이나 기량보다도, 집단 전체의 태세나 기세를 중시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또한 명예를 중시하는 귀족으로 구성된 군대가 아닌, 애국심이나 전투의지가 투철하지 않은 일반 백성으로 구성된 군대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일반백성들로 구성한 보병 중심의 吳(오)나라 군대를 기본으로 하고 있음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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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孫子兵法 兵勢篇 第五

 

손자병법 제5편 병세(기세)

 

손무는 말하였다.

 

많은 수의 병력을 적은 수의 병력처럼 다루듯 관리하는 방법은 합리적인 조직과 효율적인 편제[分數]를 갖추는 것이다. 1) 대규모 부대를 소규모 부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는 방법은 명확하고도 신속한 지휘계통에 있다.

 

전체 군대가 어떠한 적의 공격을 받더라도 패배하지 않는 이유는 비정규 전술과 정규 전술[奇正] 2) 을 잘 운영하였기 때문이다. 군대가 어떠한 적을 공격하더라고 바위로 달걀을 깨듯 당해낼 자가 없게 하는 것은 적의 빈틈을 충실한 전력으로 깨는 전술[虛實] 3) 에 있다.

 

일반적으로 작전이란 정규 전술인 정병으로써 적과 맞서며, 비정규 전술인 기병으로써 승리를 결정짓는다. 그러므로 기병의 전술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장수의 전법은 그 변화가 하늘과 땅의 운행처럼 무궁무진하고, 강물의 흐름처럼 끊이지 않는다. 끝날 듯 하다가 다시 시작되는 것이 마치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과 같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마치 사계절이 바뀌는 것과 같다.

 

음악의 음계는 다섯 가지에 지나지 않지만, 그 다섯 소리의 변화는 이루 다 들어볼 수 없을 정도로 끝이 없다. 빛깔은 다섯 가지에 지나지 않지만, 그 다섯 빛깔의 변화는 이루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한이 없다. 음식의 맛은 다섯 가지에 지나지 않지만, 그 다섯 맛의 변화는 이루 다 맛 볼 수 없을 정도로 다함이 없다. 4)

 

이와 마찬가지로 전세는 비정규 전술인 '기병'과 정규 전술인 '정병' 두 가지에 좌우될 뿐이지만, 이 두 전술의 변화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이처럼 '기병'과 '정병'은 서로 잇달아 나오니 마치 둥근 고리가 시작도 끝도 없이 맴도는 것과 같다. 어느 누가 그 순환을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급류의 물살이 빠르고 거세어 바위조차 떠내려가게 하는 것을 가리켜 '기세[勢]'라 한다. 독수리나 매처럼 맹렬한 순발력과 기민한 동작으로 덮쳐서 먹이를 찢어버리는 것을 가리켜 '절호의 순간[節]'이라 한다. 그러므로 작전 지휘에 능숙한 자는 그 기세가 거세며, 작전 거리와 순간은 짧고 맹렬하다. 기세는 시위를 팽팽하게 당긴 쇠뇌와 같아야 하며, 작전 순간은 화살을 쏘아 보내듯 순간적이어야 한다.

 

깃발이 어지럽게 휘날리고, 서로 뒤얽혀 어지러운 혼전 속에서도 아군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전차와 보병들이 뒤섞이고 적과 아군이 뒤섞인 혼돈 상태에 빠졌을 때에는 네 면 여덟 방향의 어느 쪽으로도 적이 뚫고 들어올 수 없도록 둥글게 부대를 배치하여 패배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여야 한다.

 

군대는 경우에 따라 엄정한 질서 속에서도 혼란이 일어나고, 용맹함 속에서도 비겁함이 생겨나며, 굳센 가운데서도 나약함을 보일 수가 있다. 질서와 혼란은 지휘관의 부대 편성 능력에 달려 있으며, 용맹함과 비겁함은 기세[勢]에 달려 있으며, 강함과 나약함은 상황의 형태[形]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유능한 장수는 적이 아군의 뜻대로 움직이도록 조종할 줄 알아야 하며, 그것은 그러한 상황을 만드는 상황의 형태에 달려 있다. 예컨대 작은 이익으로 적을 유인하면, 적은 반드시 유인에 걸려들게 된다. 이처럼 적에게 미끼를 던져 주어 적을 아군의 뜻대로 움직이게 한 다음, 복병을 숨겨 두고 불시에 공격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전쟁에 능한 자는 '기세'로 승리를 추구하며, 병사 개개인의 전투력만을 탓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유능한 인재를 선발하여 유리한 기세를 만들어 그 기세를 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기세를 타게 되면 가파른 계곡에서 나무나 바위를 굴리듯, 병사들을 거침없이 휘몰아 적을 칠 수 있다. 본래 나무나 바위는 평탄한 곳에서는 움직이지 않지만, 비탈진 곳에서는 굴러가기 마련이다. 게다가 모난 것은 멈추고, 둥근 것은 구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지휘를 잘하는 자는 천 길 높은 산골짜기에서 둥근 바위를 굴리듯 세차고 거세게 병사들을 몰아붙인다. 이것이 바로 군대의 '기세'인 것이다. 5)

 

해석..>

 

1) 이 부분에 대해서 '이지'는 " '分(분)'이란 偏(편), 裨(비), 卒(졸), 伍(오)의 조직 편제를 구분하는 것이며, '數(수)'란 십, 백, 천, 만의 병력 수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조직이 저마다 적절한 통제를 받으며 대장이 그 핵심 지휘권을 총괄하는 제도를 일컫는다." 라고 주석하였다.

 

2) '奇正(기정)'은 병법에서 중요시되는 용어로 일반적으로 '奇兵(기병)'과 '正兵(정병)'으로 나타난다. 이에 포함된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부대의 편제에서 경계와 수비의 임무를 담당하는 부대를 '정병'이라 하고, 가벼운 무장으로 기동력을 높인 별동대를 '기병'이라 한다.

 

둘째, 정면에서의 정규공격을 '정병', 측면이나 배후공격 또는 기습공격을 '기병'이라 한다.

 

셋째, 미리 세워진 일반적인 작전 원칙에 따라 치루는 전투를 '정병'이라 하고,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특수한 작전 형태를 '기병'이라 한다.

 

넷째, 군대의 행군이나 주둔할 경우에 경계를 위해 앞 쪽에 배치하는 경계부대를 '기병'이라 하고, 그 뒤에 따르는 주력부대를 '정병'이라 한다. 적이 미처 대비하지 않고 있는 곳을 예측하지 못하는 수단으로 찌르는 전술이 바로 '奇(기)'이다.

 

3) '虛實(허실)' 또한 '奇正(기정)'과 마찬가지로 병법을 이해하는데 공통되는 개념이다. '허실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력이 모여 있는 상태가 '실'이고, 그 반대 상태가 '허'이다.

 

둘째, 대비가 충실히 되어 있는 곳이 '실'이고, 대비가 없는 곳이 '허'이다.

 

중요한 것은 이 허실의 개념이 단순히 그러한 상황을 나타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始計(시계)' 편에서 "적을 공격할 능력이 있지만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공격을 가할 필요가 있지만 공격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보이게 하며, 가까운 목표를 공격할 계획이지만 멀리 있는 목표를 공격할 것처럼 보이게 하고, 멀리 돌아갈 계획이지만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적이 도무지 방어할 생각을 못하는 곳에 공격을 집중하여야 하며, 적이 전혀 뜻하지 못한 의표를 찌르며 출동하여야 한다." 라고 선언한 것처럼, 상반되는 상태로 위장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 '虛虛實實(허허실실)' 이라 하는 것도 이러한 의미이다. 이는 제6편 '虛實(허실)'편에서 자세히 나오게 된다.

 

4) 동양의 기본음계는 宮(궁), 商(상), 角(각), 幟(치), 羽(우)의 五聲(오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색에 관해서는 기본적으로 五行(오행)에 맞추어 赤(적), 黃(황), 靑(청), 白(백), 黑(흑)의 五色(오색)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맛에 관해서는 신 맛[酸(산)], 단 맛[甘(감)], 쓴 맛[苦(고)], 매운 맛[辛(신)], 짠 맛[鹹(함)]의 五味(오미)를 나타낸다.

 

5) 앞의 '軍形(군형)'편에서 "천 길 높은 골짜기에 가둬 둔 물을 한 번에 쏟아 내듯 쌓여 있는 힘을 최대한 발휘하게 한다."고 이야기 했고, 여기에서는 "천 길 높은 골짜기에서 둥근 바위를 굴리듯 세차고 거세게 병사들을 몰아붙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전투의지가 확고하지 않는 군대 전체의 기세'를 중시하는 일관적인 태도이다.


이에 비해 '吳子兵法(오자병법)'에서 吳起(오기)는 평소에 덕치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하는 것을 중요한 요소로 파악하였다. '治兵(치병)'편에서 '父子之兵(부자지병)'이라 하여 '아버지와 자식 사이 같은 군대'를 이상적인 군대로 보고 있다. 孫武(손무)와 吳起(오기)의 시각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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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孫子兵法 虛實篇 第六

 

손자병법 제6편 허실

 

손무는 말하였다.

 

적보다 먼저 전쟁터에 도착하여 적을 기다리는 군대는 편안하고, 적보다 늦게 전쟁터에 도착하여 갑자기 전투에 투입되는 군대는 피로하다. 그러므로 유능한 지휘관은 능동적인 위치에서 적을 끌어들이고, 피동적으로 적에게 끌려가지 않는다.

 

아군의 뜻대로 적을 끌어들이려면 작은 미끼로 적을 유인하여, 적으로 하여금 유리하다고 판단하게 해서 스스로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적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면 해로운 수단을 강구하여, 적의 행동을 저지하여 적이 불리하다고 판단하게 해서 스스로 움직이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적이 쉬고 있으면 적을 피로하게 만들고, 적의 식량이 넉넉하면 적을 굶주림에 빠지게 만들며, 적이 안정되어 있으면 도발해서 동요시켜야 한다.

 

적이 미처 구원하지 못할 곳을 공격해야 하며, 적의 의표를 찔러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진출해야 한다. 천 리 길을 행군하고도 병사가 피로하지 않게 하려면, 적의 대비가 없는 곳으로 진출하여야 한다. 적진을 공격하여 반드시 빼앗으려면, 적이 지키지 않는 곳을 공격하여야 한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아군의 진지를 굳게 지켜내려면, 적이 공격할 수 없는 곳에서 지켜야 한다.

 

그러므로 공격에 능숙한 장수는 적으로 하여금 어디를 어떻게 수비하여야 좋을지 모르게 만들고, 방어에 능숙한 장수는 적으로 하여금 어디를 공격해야 좋을지 모르게 만든다. 방어하는 적에게 공격의 자취를 드러내 보이지 않고도 수비하지 못하고 당황하게 하니, 이 얼마나 미묘한가! 공격하는 적에게 수비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하고도 공격할 방법을 잃게 만드는 것이니, 이 얼마나 신묘한가!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적의 운명을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게 된다.

 

아군이 진격할 때 적이 방어하지 못하는 것은 적의 허점을 찌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군이 후퇴할 때 적이 추격하지 못하는 것은 빠르게 후퇴를 단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군이 싸우고자 하면 적이 아무리 성채를 높이 쌓고 참호를 깊이 파서 굳게 수비만 하려고 해도, 결국에는 아군의 뜻대로 적이 나와서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이는 바로 그 적이 반드시 구원해야 할 지역에 아군이 공격을 가하면 된다. 반대로 아군이 전투를 피하고자 하면 아군이 별다른 수비 태세를 갖추지 않고 땅 위에 선만 그어 놓고 지키더라도, 적이 아군을 공격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는 바로 아군이 적의 공격 목표를 다른 곳으로 바꾸도록 유도하면 된다.

 

그러므로 적의 실상과 의도를 드러내도록 유도하고, 아군의 실상과 의도는 감춘다. 그러면 아군의 병력은 집중할 수 있지만 적의 병력은 분산될 수 밖에 없다. 아군은 하나의 힘으로 병력을 집중하지만 적은 열 개의 힘으로 병력을 분산시킨다면, 아군이 열의 병력으로 하나씩 나눠진 적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게 되며, 이는 곧 많은 수의 아군으로 적은 수의 적을 상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다수의 병력으로 소수의 적을 공격할 수 있으면 아군이 맞서 싸워야 할 병력은 적어지게 된다. 그리고 적은 아군의 공격 목표를 알지 못하게 된다. 아군의 공격 목표를 알지 못하면, 적은 방어해야 할 곳이 많아진다. 그리고 방어해야 할 곳이 많아지면, 적의 병력은 분산되어 아군의 공격을 막아 낼 방어 병력은 더욱 적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앞쪽에 방어력을 집중시키면 뒤쪽의 병력이 약해지게 되며, 뒤쪽에 방어력을 집중시키면 앞쪽의 병력이 약해지게 된다. 왼쪽에 방어력을 집중시키면 오른쪽이 약해지며, 오른쪽에 방어력을 집중시키면 왼쪽이 약해지게 된다. 사방 모두를 빠짐없이 방어하려면, 사방의 병력 모두가 약해지게 된다. 병력이 적어지는 것은 피동적으로 적을 막으려고 하기 때문이고, 병력이 많아지는 것은 능동적으로 적이 아군에 대한 방어에 매달리게 하기 때문이다.

 

전쟁터와 전투할 시간을 미리 알고 있으면, 멀리 천 리 길을 행군해 가더라도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전쟁터와 전투 시간을 미리 알지 못한다면 같은 부대라도 왼쪽이 오른쪽을 구할 수 없고,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며, 뒤쪽이 앞쪽을 구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한 곳에서 싸우는 부대끼리도 이렇게 되니, 하물며 멀리 몇 십리에서 가까이는 몇 리 밖에 떨어져서 싸우는 부대가 다른 부대의 지원을 어찌 지원할 수 있겠는가?

 

내가 보건대 월나라의 병력이 비록 많다고는 하지만, 병력수가 많다는 것만으로 어찌 승패가 결정되겠는가.1) 그러므로 '승리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勝可爲也]'이라고 말하는 것이다.2) 적의 병력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그들로 하여금 싸우지 못하게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적의 정황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적의 의도를 정확히 판단하며[策地], 적을 건드리고 흔들어서 움직이고 멈추는 규칙을 파악하고[作地], 적에게 거짓으로 아군의 형세를 노출하여 적지의 지형과 진지의 장단점을 알아내며[形地], 정찰대를 내보내 적군의 병력과 편제의 허실과 강약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角地].3)

 

따라서 위장이 가장 잘 된 군대는 형세가 아예 드러나지 않는, 무형의 경지에 이른 군대이다. 이와 같이 무형의 태세가 완벽하게 갖추어지면 적의 간첩이 아무리 깊이 침투한다 하더라도[深間] 아군의 허실을 탐지하지 못할 것이며, 적에게 아무리 지혜로운 자가 있다 하더라도 계략을 세우지 못할 것이다.

 

적의 형세에 적절히 다른 조치를 위하여 백성들 앞에서 이겼더라도, 대부분의 백성들은 그 승리의 요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백성들은 아군이 승리하는 형세[勝之形]이기 때문에 승리한 것이라고만 알 뿐, 그와 같이 승리하도록 하는 만드는 형세[制勝之形]가 무엇인지는 모른다.4) 그러므로 한 번 승리를 거둔 방식은 거듭해서 쓰지 말고, 적의 정황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화시켜 대응해야 한다.

 

군대의 형세는 물과 같아야 한다. 물은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 않으니, 높은 곳을 피하고 낮은 곳으로 흐른다. 마찬가지로 군대는 적의 강점을 피하고 약점을 공격해야 한다. 물은 지형에 따라 흐르는 방향이 결정되며, 군대는 적의 정황변화에 따라 싸우는 방법이 조절된다. 그러므로 물에 고정된 형태가 없는 것처럼, 군대에는 고정된 형세가 없다. 적의 정황 변화에 따라 적절히 대응하여 승리를 거두는 자야말로 '용병의 신'이라 할 수 있다.

 

자연 현상에서 만물의 근원인 오행[五行]이 언제나 이기기만 하지 않고 상생상극하고, 사계절이 한 계절에 묶여 있지 않고 순환하며, 해가 길어지고 짧아지며, 달이 차고 기우는 것처럼 용병의 원칙도 또한 고정되어 있어서는 안되고 언제나 변화하여야 한다.

 

해석..>

 

1) 여기에서 孫武(손무)가 越(월)나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孫武(손무)가 吳王(오왕)에게 자신의 병법을 밝히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여기에서 '승리란 인위적인 것이다[勝可爲也(승가위야)]'라는 말은 앞서 '軍形(군형)'편에서, '승리란 미리 알 수는 있으나, 그것을 원한다고 마음대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勝可知, 不可爲也(승가지 불가위야)]'라고 선언한 것과 모순되어 보인다. 그러나 '軍形(군형)'편에서는 주관적인 희망이나 요행만으로 승리를 추구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軍勢(군세)를 철저히 구축해야 한다는 이야기인 반면에, 여기에서는 일정한 조건이 주어진 기반 위에서 戰術(전술)을 사용하여 인위적으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3) '策地(책지)'란 총괄적으로 상황과 정보를 종합하여 계략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作地(작지)'는 소부대를 내보내 적을 살짝 건드리는 도발 작전을 펴서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이다. '形地(형지)'는 거짓으로 아군의 빈틈을 노출하여 적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는 것이다. 그리고 '角地(각지)'는 뿔이 앞에 나와 있듯이 정찰대를 내보내 구체적인 상황에서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이다.

 

4) '勝之形(승지형)'은 전쟁에서 이기게 되는 외적인 표현 또는 현상으로, 누구나 보면 알 수 있는 모습을 뜻한다. '制勝之形(제승지형)'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장수가 사용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승리를 이끌어내는 전략, 전술 등의 요소를 뜻한다.

 

 또한 이는 '軍形(군형)'편에서, "옛날에 전쟁을 잘한다고 일컬어졌던 자들은 모두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추어 놓고 적과 싸워 쉽게 승리하였다. 따라서 전쟁을 잘하는 인물이 거둔 승리에는 그의 지략이 뛰어나다는 명성이나 용맹스러운 공적이 돋보이지 않았다"라고 언급했던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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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孫子兵法 軍爭篇 第七

 

손자병법 제7편 군쟁

  

손무는 말하였다.

 

대저 용병의 원칙은 장수가 군주로부터 출동 명령을 받고, 군사들을 징집하여 군대를 편성한 다음, 이들을 이끌고 출전하여 적과 대치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승리에 유리한 조건을 다투는 '軍爭(군쟁)', 다시 말해 기선을 잡는 일이 가장 어렵다.

 

군쟁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먼 길로 돌아가면서도 지름길로 곧바로 가는 것과 같게 만들고, 작전에 불리한 조건을 오히려 유리하게 바꾸는 일이다. 아군이 길을 멀리 돌아가며 행군하는 것처럼 보여 적을 기만하고, 사소한 이익을 미끼로 적의 움직임을 유인한다면, 적보다 늦게 출동하고서도 목적지에 적보다 먼저 도착하여 요충지를 점령할 수 있다. 이렇게 한다면 '돌아가면서도 바로 가는' 지혜를 안다고 할 것이다. 그렇기에 군쟁이란 유리한 전술이기도 하고, 위험한 전술이기도 하다.

러니 전군의 병력과 장비를 모두 이끌고 요충지를 확보하려고 기선을 다투면, 아군의 기동력이 둔화되어 적보다 늦어져 제 때에 도달하지 못한다. 기동력을 높이려고 장비를 내버리며 적보다 빨리 앞서기에만 급급하면, 장비나 보급품[輜重]을 잃게 된다.

 

러므로 갑옷과 투구를 벗어 던지고 달려나가 밤낮으로 쉬지 않고 보통 행군거리의 몇 배나 되는 백리 길1)을 강행군하여 적과 앞다투어 나간다면, 전군[三軍]2)의 장수들이 모두 적에게 사로잡히게 되고 만다. 이는 체력이 건장한 병사만이 앞서고, 약한 자는 대열에서 처지게 되어 병력의 10분의 1만이 전쟁터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오십리를 강행군하여 적과 앞다투어 나간다면, 선두부대의 장수가 좌절을 맛보게 된다. 이렇게 하면 병력의 절반만이 전쟁터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삼십리를 강행군하여 적과 앞다투어 나간다면, 병력의 3분의 2만이 전장에 도달하여 적과 싸우게 된다. 그러므로 군대란 장비와 보급품을 잃으면 망하고, 식량이 없으면 망하며, 물자의 비축이 없어도 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주변국 제후들의 전략 의도를 알지 못하면 그들과 교류할 수 없다. 산림, 험지, 늪지 등의 지형을 잘 알지 못하면 제대로 행군하지 못한다. 해당 지역을 잘 아는 길잡이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면 지리상의 이점을 얻지 못한다.3)

그러므로 용병이란 기만술로 아군의 의도를 감추고 승리를 쟁취하며, 유리한 상황일 때 움직이며, 병력의 분산과 집중을 끊임없이 바꾸는 전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빠르기가 바람[風]과 같고, 고요하기는 숲[林]과 같다. 치고 앗을 때는 불[火]같이 하고, 움직이지 않을 때는 산[山]처럼 한다. 숨을 때는 어둠[陰] 속에 잠긴 듯 하다가도, 움직일 때는 벼락치듯[雷霆] 적에게 손쓸 틈을 주지 않아야 한다.4)

 

적지에서 노략한 식량과 물자는 병사들이 나누어 가지게 하고, 점령한 적의 땅은 장수들에게 나누어 주고 지키게 하되, 상황의 변화[權]에 따라 적절하게 움직인다. 이렇게 '돌아가면서도 바로 가는' 효과를 거두는 묘수를 먼저 터득하는 자가 기선을 잡아 승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군쟁의 원칙이다.

 

옛 병서인 '軍政(군정)'5)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말을 해도 서로 들리지 않으므로 징과 북을 사용하고, 보려고 해도 서로 보이지 않으므로 깃발을 사용한다."

 

징과 북 그리고 깃발은 군대의 많은 병력을 한 사람처럼 눈과 귀를 통일시키는데 쓰이는 도구이다. 병사들의 행동이 하나로 통일되면, 용감한 자라도 혼자서 뛰어나가지 않고 비겁한 자라도 혼자서 물러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많은 병력을 지휘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야간에 전투할 때에는 횃불과 북소리를 주로 사용하고, 낮에 전투할 때에는 깃발을 주로 사용한다. 이와 같이 밤낮의 신호 방법이 다른 것은 병사들의 눈과 귀의 능력이 변하기 때문이다.

 

적과 싸울 때 적군 전체의 사기를 꺾고, 적장의 판단을 혼란에 빠뜨리는 방법이 있다. 어느 군대든 전투가 처음 시작될 때에는 사기가 왕성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전투가 이어지면 사기가 느슨해지며, 전투가 끝날 무렵이 되면 사기가 바닥에 떨어져 철수할 생각만 하게 된다.6)

 

그러므로 용병술에 능한 장수는 적군의 사기를 살펴서 적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할 때에는 싸우는 것을 피하고, 적군이 지치고 사기가 떨어진 틈을 타서 타격을 가한다. 이것이 바로 적과 아군의 사기를 다스리는 방법[治氣]이다.

 

아군은 엄격하게 질서를 유지하면서 적이 혼란해지기를 기다리고, 고요한 태세로 적이 떠들석하게 흔들리기를 기다린다. 이것이 적과 아군의 심리를 다스리는 방법[治心]이다.

 

아군이 가까운 곳에서 전쟁터에 먼저 도착하여 요충지를 점령한 다음에 적이 먼 거리에서 강행군하여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아군은 넉넉하게 먹고 마신 상태에서 적이 굶주림에 빠지기를 기다린다. 이것이 바로 적과 아군의 전투력을 다스리는 방법[治力]이다.

 

깃발이 정연한 적을 맞아 싸우지 않아야 하며, 진용이 당당한 적을 공격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적과 아군의 변화를 다스리는 방법[治變]이다.7)

 

병사를 움직이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높은 언덕을 점령하고 있는 적을 올려 보면서 공격하지 않는다.

 

언덕을 등지고 있는 적에게 정면 공격을 행하지 않는다.

 

아군을 속이기 위해 거짓 후퇴하는 적은 추격하지 않는다.

 

적의 정예부대는 공격하지 않는다.

 

적이 아군을 유인하기 위해 드리운 미끼를 물지 않는다.

 

자국으로 철수하는 적의 후퇴로를 막지 않는다.

 

적을 포위하였을 때는 한쪽을 터 주어 적에게 도망갈 길을 보여 주어야 한다.

 

막다른 곳에 몰린 적은 너무 압박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용병의 원칙인 것이다.

 

해석..>

 

1) 고대의 교통수단으로는 하루 30리 정도의 행군이 한계였다고 한다. 또한 당시에 도량형에 관해서 당시의 1리는 지금의 2배가 된다는 학설도 있다. 그러니 100리란 무척 긴 거리를 뜻하는 말이 된다.

 

2) 고대의 周(주)나라 때의 군사편제는 천자는 '六軍(육군)'을 거느리고, 제후는 '三軍(삼군)'을 거느리게 되어 있었다. 1군은 12,500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三軍(삼군)'은 '中軍(중군)', '上軍(상군)', '下軍(하군)' 혹은 '中軍(중군)', '左軍(좌군)', '右軍(우군)'으로 이루어졌다. 두 경우 모두 '中軍(중군)'의 장수가 3군을 통솔하였다. 따라서 고전에서 '三軍(삼군)'이라 함은, 곧 '全軍(전군)'이라는 의미이며, '매우 많은 군사'를 뜻하기도 한다.

 

3) 이 문장 전체가 제11편 '九地(구지)'에도 똑같이 반복된다. 학자들에 따르면 明(명)나라 때 '武經七書(무경칠서)'의 편집과정에서 생긴 착간으로 보고 있다. 과거에는 글을 대나무로 된 죽간에 기록해서, 대나무를 연결한 실이 풀어지거나 하면 내용이 섞이거나 소실되는 일도 많았다. '孫子兵法(손자병법)'도 예외는 아니어서 착간된 부분이 존재한다. 물론 소실된 부분도 존재하는지 모른다.

 

4) 이 부분이 일본 전국시대 불패의 장수 '다케다 신겐'의 상징으로 유명한 '風林火山(풍림화산)'의 원문이다. '다케다 신겐'은 '孫子兵法(손자병법)'에 정통하여, 평생 단 한 차례도 패배하지 않았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5) '軍政(군정)'이라는 병서는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병서이다. 이 병서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그 중 유력한 설은 마찬가지로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軍志(군지)'가 바로 '軍政(군정)'이라는 설이다. 지금은 온전한 모습으로 전해지지는 않지만, '左傳(좌전)' 등에 특히 많이 인용되어 있으며, 여기저기 인용된 '軍志(군지)'의 내용을 보면 孫武(손무)의 사상과 같은 부분들이 많이 존재한다. 먼저, 전쟁의 승부를 결정짓는 요인으로 '인간적'인 요소를 중시했고, 둘째 전쟁을 즐기다가 경제를 파탄시켜서는 안된다고 했으며, 마지막으로 항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전술을 무궁무진하게 바꿔가야 한다고 하였다.

 

6) 孫武(손무)는 전쟁 혹은 전투의 과정을 하루에 비유하였다. 그래서 전쟁이 시작되는 초반부를 아침, 중반부를 낮, 후반부를 저녁으로 표현하였다. 따라서 원문 그대로 옮긴다면, "아침에는 사기가 예리하고, 낮에는 나태해지며, 저녁에는 돌아갈 생각만 한다."가 된다.

 

7) 이 부분이 孫武(손무)가 강조한 '四治(사치)'이다. 이는 孫子兵法(손자병법) 전체를 일관하는 '적의 虛(허)를 아군의 實(실)로 친다'는 원칙을 구체적인 전술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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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孫子兵法 九變篇 第八

 

손자병법 제8편 구변(임기응변)

 

손무는 말하였다.

 

대저 용병의 원칙은 장수가 군주로부터 출동 명령을 받아, 군사들을 징집하여 군대를 편성하고 출정하게 될 때에는1) 다음을 아홉가지 변화[九變]에 정통하여야 한다.

 

첫째, 움푹파인 축축한 땅[?地(비지)]에서 머물지 않는다.


둘째, 길이 사방으로 뚫린 땅[衢地(구지)]에서는 먼저 이웃 나라와 교류해 도움을 얻어야 한다.


셋째, 길이 끊어진 땅[絶地(절지)]에서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넷째, 사방이 둘러싸여 쉽게 사로잡히는 지역[圍地(위지)]에 빠지면 지혜로 벗어나야 한다.


다섯째, 전멸당하기 쉬운 막다른 곳[死地(사지)]에 빠졌을 때는 결사적으로 싸워야 한다.2)


여섯째, 도로 중에는 지나서는 안 되는 길이 있다.


일곱째, 적군 중에는 공격해서는 안 되는 부대가 있다.


여덟째, 성 중에는 공격해서는 안 되는 성이 있다.


아홉째, 적지 중에는 빼앗아서는 안 되는 지역이 있다.


열번째, 군주의 명령 중에도 받들어 시행해서는 안 되는 명령이 있다.3)

 

그러므로 장수된 자가 이상의 아홉가지 변화4)에 대한 대응에 정통하다면, 용병술을 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수가 이 아홉 가지 변화에 대한 대응에 정통하지 못하다면, 비록 적의 지형을 파악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지형의 이로움을 활용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장수가 군대를 지휘하면서 이 아홉가지 변화에 대한 대응이 적절하지 못하다면, 비록 다섯가지 유리한 조건[五利]5)을 가지고 있더라도, 병사들의 전투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장수는 반드시 적과 아군의 이로운 조건과 해로운 조건을 함께 고찰한다. 불리한 상황에 빠졌을 때 유리한 조건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면 주어진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 그리고 유리한 상황일수록 위험한 요소를 미리 살펴서 대비하면 뜻밖의 재난을 미리 막을 수 있다.

 

적국을 굴복시키려면 계략으로 적국이 두려워하는 약점을 위협하며, 적국을 괴롭게 부리려면 적국의 백성들이 쉴 새 없이 일하게 만들고, 적국이 협조하게 하려면 이익을 미끼로 유인해야 한다.

 

그러므로 용병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적이 침입하지 않으리라는 예측을 믿을 것이 아니라, 아군이 충분한 대비책을 갖추고 적의 침공을 기다리는 것을 믿어야 한다. 또 적이 공격해 오지 않으리라는 예상을 믿을 것이 아니라, 아군이 적의 공격을 좌절시킬 만한 충분한 대비를 하는 것을 믿어야 한다.

 

장수의 자질에는 다음의 다섯가지 약점[五危]이 있을 수 있다.

 

첫째, 장수가 용맹이 지나쳐 죽기를 다해 싸우기만 한다면, 죽음을 당할 수 있다.


둘째, 반대로 장수가 목숨만 지키려고 한다면, 적에게 사로잡힐 수 있다.


셋째, 장수의 성격이 조급하고 화를 잘 내면, 적의 도발에 넘어갈 수 있다.


넷째, 장수의 결벽증과 명예욕이 지나치면, 계략에 빠져 모욕을 당할 수 있다.


다섯째, 장수가 부하를 지나치게 아끼면, 곤경에 빠질 수 있다.

 

이 다섯 가지는 장수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약점이면서 동시에 용병술에 있어서의 큰 재앙이다. 군대가 전멸 당하고 장수가 죽음을 당하는 원인이 모두 이 다섯 가지의 약점으로부터 일어나므로, 장수된 자는 이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해석..>

 

1) "대저 용병의 원칙은 ~ 출정할 때에는" 은 앞 '軍爭(군쟁)'편의 첫 부분과 중복된다. 이 부분에서도 '錯簡(착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이상의 다섯 가지 지형에 대해서는 제11편 '九地(구지)'에 그대로 중복되어 나온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 또한 명나라 때 '武經七書(무경칠서)'의 편집 과정에서 제7편 '軍爭(군쟁)', 제8편 '九變(구변)', 제11편 '九地(구지)'에 착간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흐름상으로 이 다섯 지형에 관한 언급은 '九地(구지)'편에 들어가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3) 孫武(손무)가 여러 번에 걸쳐 주장한 '군주에 대한 장수의 지휘권 독립'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 '武經七書(무경칠서)' 중의 '司馬法(사마법)'이나 '李衛公問對(이위공문대)'에도 "군대가 출동한 후에는 모든 군사는 장수의 명령만을 따르고 군주의 명령이라도 따르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앞의 다섯 지형에 관한 언급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가지에 대해서는 70년대에 발견된 은작산 죽간본에서 발견된 죽간 중에 '四變(사변)'이라 하는 추가해설이 존재한다. 후에 언급하도록 하겠다.

 

4) 문장대로 하자면 아홉 가지가 아닌 열 가지이다. 이에 대하여 학설이 분분하다.

 

 첫째, 고대에 '九變(구변)'에서 9의 개념은 0의 개념이 없던 시대에 1에서부터 세면 끝수가 되어 '多數(다수)'를 표현한 것이므로, 9변은 아홉가지가 아니라 '다양한 변화'를 뜻한다는 설이다.

 

둘째, 9변은 일곱째 적군을 제외하고 다섯 지형의 기동방법과 네 가지 상황의 대응방법을 가리킨다는 설이다. 혹은 열번째 군주의 명령을 빼기도 한다.

 

셋째, 9변은 '軍爭(군쟁)'편에서의 여덟가지 용병의 원칙과 본편의 '絶地(절지)'를 포함한 개념이라는 설이다.

 

이상의 3가지 중에서 첫번째와 두번째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5) '다섯가지 유리한 조건[五利]'에 대해서 孫武(손무)가 직접 언급하지 않았기에, 이에 대하여도 두가지 학설이 있다.


첫째, 현지의 실정에 따라 행군 경로, 적 부대, 성, 적지, 군주의 명령에 대응하는 앞의 다섯가지 요소에서의 유리함을 뜻한다는 설이다.


둘째, '?地(비지)', '衢地(구지), '絶地(절지)', '圍地(위지)', '死地(사지)'의 다섯 지형에서의 유리한 기동양식을 뜻한다는 설이다.


두 주장 모두 실제적으로 각각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대처한다는 의미에 대해서는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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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子兵法 行軍篇 第九

 

손자병법 제9편 행군

 

손무는 말하였다.

 

용병의 원칙에서 군대가 행군하다가 적과 대치하여 주둔할 때에는 지형을 고려하여야 한다.

 

산악지대를 통과할 때는 물과 풀이 있는 계곡을 따라 행군하고, 주둔할 때는 시계가 탁 트인 고지를 점령하여야 하며, 적이 고지를 먼저 점령하고 있을 경우에는 낮은 곳에서 올려다보면서 공격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산악지대를 행군할 때 취해야 할 요령이다.

 

하천을 건널 때에는 냇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점에 진을 쳐야 한다. 적이 물을 건널 때에는 조급하게 물속에서 적을 쳐부수지 말고, 적의 병력 절만이 건널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다. 강을 건너는 적과 싸워야 할 때에는 아군이 물가에 너무 가까이 붙어서 싸우지 않아야 한다.

 

하천지대에 주둔할 때에도 시계가 탁 트인 높은 지대를 점령하여 진을 쳐야 하며, 적보다 하류에 위치해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적과 싸워서도 안 된다. 이것이 하천지대에서 행군할 때에 취할 요령이다.

 

눅눅한 수렁이나 늪지를 행군할 때에는 가능한 한 머뭇거리지 말고 지나가야 한다. 만약 그러한 늪지 지역에서 적과 싸우게 되었을 경우에는 근처의 풀숲을 이용하거나 우거진 나무를 등지고서, 그것을 장애물로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을 먼저 차지하여야 한다. 이것이 수렁이나 늪지에서 행군할 때에 취할 요령이다.

 

평원지대에서는 평탄하게 뚫려 있는 곳을 점령하며, 주력 부대의 옆쪽과 뒤 쪽은 높은 곳을 의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세는 앞쪽이 낮고 뒤쪽이 높은 것[前死後生]1)이 적의 배후 기습과 정면 공격에 대비하기가 유려하다. 이것이 평원

지대에서 행군할 때 취할 요령이다.

 

이 네 가지는 옛날 황제2)가 사방의 우두머리와 싸워서 승리를 거두었던 방법이다.

 

군대가 주둔할 때에는 마른 고지대가 좋고, 습기 찬 저지대는 좋지 않다.

그리고 방위도 볕드는 남쪽은 좋고, 그림자 지는 북쪽은 피해야 한다.

물과 풀이 풍부한 살아 있는 땅을 확보하여 말과 소에게 먹이고,

병사들의 주둔환경을 쾌적하게 해주면 병이 나지 않고 전투력이 충실해진다. 이를 두고 '반드시 이긴다.'라고 말한다.

 

언덕과 방죽이 있는 지역에 군대를 주둔시킬 때에는 볕드는 쪽을 점령하고, 주력 부대의 옆쪽과 뒤쪽을 언덕이나 방죽에 의지하도록 배치한다. 이것은 병사를 움직이는 데 유리한 위치에서 지형의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강을 건널 때는 상류에 폭우가 내려 강물에 물거품이 떠내려 오고 있는 경우에는 물결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건너야 한다.

대개 행군하는 곳에는 여러 가지 지형이 있다.


앞뒤가 험한 절벽으로 막히고 그 사이로 물이 가로질러 흐르는 시대[絶澗(절간)],


사방이 높은 언덕으로 이루어지고 복판이 푹 꺼져서 계곡 물이 고여 들어 낮은 습지로 이루어진 우물 모양의 지형[天井(천정)],


세 방향만이 험준한 산악으로 둘러쳐 있어서 들어오기는 쉽지만 물러나가기는 어려운 짐승 우리 모양의 지형[天牢(천뢰)],


수풀이나 가시덤불이 우거져서 그물처럼 감싸고 있는 지형[天羅(천라)],


지대가 매우 낮아 비가 오면 쉽게 진흙탕을 이루어 빠지기 쉬운 함정 모양의 지형[天陷(천함)],


좁다란 계곡 사이에 난 긴 도로 모양의 지형[天隙(천극)]이다.

이렇게 불리한 지형과 부딪쳤을 경우에는 곧바로 피해 가야하며 절대로 가까이 가거나 멀리 벗어나고, 적군을 그곳으로 유인해야 한다. 또 아군은 이러한 지형을 앞에서 바라보고, 적군은 그곳을 등지고 서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행군하는 길가에 험하고 막힌 골짜기,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 갈대 우거진 늪지, 나무가 무성한 수풀, 풀이 무성한 지대를 통과하거나 주둔할 때에는 반드시 조심해서 철저하게 수색을 해야 한다. 이러한 지형에는 적이 매복해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아군이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적이 안정되어 있다면, 그들이 지형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이 먼 거리에 있으면서 아군에게 도전하는 것은 아군을 유인하여 끌어내기 위해서이다.


적이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지 않고 평지에 진을 쳤다면, 결전에 유리한 조건을 지녔기 때문이다.


무성한 숲에서 바람이 없는데도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은, 적들이 은밀히 습격해 오는 징후이다.


풀숲 속에 많은 장애물을 설치해 놓는 것은, 적이 아군의 판단을 흐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새들이 갑자기 후드득 날아오르는 것은, 그 아래에 적의 복병이 있는 징후이다.


짐승 무리가 놀라서 달아나는 것은, 적의 대부대가 진격해 오는 징후이다.


먼저 구름이 높고 한줄기로 일어난다면, 적의 전차부대가 진격해 오는 징후이고,


먼저 구름이 나직이 넓게 퍼지면, 적의 보병부대가 진격해 오는 징후이며,


먼저 구름이 흩어져서 일어나면, 적군이 땔감을 구해 끌 고가는 징후이다.


흙먼지가 적게 나고 질서 있게 왔다 갔다 하면, 적이 막사를 설치하고 주둔할 징후이다.


적의 사신이 겸손한 말로 말을 하면서도 전투태세를 풀지 않으면, 곧 아군을 공격하려는 뜻이다.


적의 사신이 강경한 말로 주장을 하면서 금방 공격할 태세를 보이면, 곧 철수하려는 뜻이다.


적의 전차부대가 선두에 서서 부대의 양옆에 자리 잡으면, 이는 부대의 전열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적이 갑자기 강화를 요청하는 것은, 그들이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기 때문이다.


적의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전차가 진형을 갖추면, 이는 적이 결전을 결심했다는 뜻이다.


적이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면, 이는 아군을 꾀어내려 하는 것이다.


적이 병기를 땅에 짚고 서 있다면, 식량이 떨어져 굶주리고 피로하다는 뜻이고,


적이 물을 길어 나르면서 서로 먼저 마시려 다툰다면, 목마름이 심하다는 뜻이다.


적이 유리함을 알면서도 공격하지 않는다면, 피로해 있다는 뜻이다.


적진의 막사 위에 새떼가 모여든다면, 그 적진은 텅 비어있고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한밤중에 적진에서 서로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면, 적이 공포에 싸여 있다는 뜻이다.


적의 막사가 소란스럽고 무질서하다면, 장수의 위엄이 없다는 뜻이다.


적의 막사에 깃발이 질서를 잃고 혼란스럽다면, 적진이 혼란에 빠져 있다는 뜻이다.


적의 지휘관이 조급하게 서두르거나 작은 일에도 화를 잘 내면, 부대가 매우 지쳐있다는 뜻이다.


적이 말을 잡아먹는다면, 식량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적이 걸어 놓은 솥을 버리고 막사로 돌아가지 않으면, 절박하여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는 뜻이다.


적의 병사들이 수군거리는데도 적장이 부드럽게 말한다면, 적장이 통솔력을 잃었다는 뜻이다.


적장이 함부로 상을 내린다면, 지휘권이 약해져 속수무책이 되었다는 뜻이다.


적장이 함부로 벌을 내린다면, 적이 곤경에 처했다는 징후이다.


적장이 병사들을 포악하게 대하면서도 부하들을 두려워한다면, 지혜와 소신이 없다는 뜻이다.


적이 사신을 보내와 겸손의 태도와 감사의 뜻을 보이면, 휴전을 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적이 화가 나 쳐들어와서 오래도록 공격하거나 물러나지도 않는다면, 신중히 관찰하여야 한다.

 

싸움에 있어서 병력이 많은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병력이 상대방보다 우세하다고 해서 무모하게 전진만 해서는 안 된다. 전투력을 최대한 집중시키고 적의 정세를 명확하게 판단하여, 적절한 대응태세를 취해야 한다. 계획성과 판단력이 없이 병력의 숫자만 믿고 적을 가볍게 보는 자는 반드시 적의 포로가 되고 만다.


병사들이 장수와 미처 친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병사들의 작은 잘못을 처벌하면, 병사들은 그 장수에게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으며,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 병사들을 지휘하여 적과 싸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장수와 이미 친숙해진 뒤에 병사들을 처벌하지 않아도, 역시 이들을 이끌고 적과 싸울 수 없다.

그러므로 장수는 부하를 통솔함에 있어서 도리에 맞게 명령을 내리고 위엄으로 다스려야 위아래의 일체감과 엄정한 군기가 확립된다. 이것이 바로 반드시 이기는 군대이다.

 

보통 때에 장수가 명령을 엄격하게 이행하도록 교육시키면, 병사들은 마음으로 복종하게 된다. 보통 때에 장수가 명령을 엄격하게 이행하도록 교육시키지 않으면, 병사들은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다. 보통 때에 장수의 명령이 엄격하게 이행되도록 하는 길은 장수가 병사들과 한마음 한뜻이 되어 병사들의 마음을 얻는 데에 있다.

 

해석..>

 

1) '前死後生(전사후생)'에서의 '死(사)'는 지대가 낮은 것을 뜻하고, '生(생)'은 지대가 높을 곳을 뜻한다.

 

2) '黃帝(황제)'는 고대의 '五帝(오제)' 중의 한 사람으로 '漢族(한족)'의 조상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흔히 '軒轅氏(헌원씨)'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중국신화에 따르면 인류 최초로 음악, 역법 등을 창안하여 중국 문명생활의 기틀을 이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史記(사기)' '五帝本記(오제본기)'에 따르면, '蚩尤(치우)', '炎帝(염제)' 등과 싸웠다는 기록이 있다.

 

중앙의 '黃帝(황제)', 남방의 '赤帝(적제)', 동방의 '靑帝(청제)', 북방의 '黑帝(흑제)', 서방의 '白帝(백제)' 를 가리켜 '五帝(오제)'라 일컫는다(이는 '三黃五帝(삼황오제)'의 오제와는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황제 이외의 나머지 '四濟(사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는 후대에 '五行(오행)'의 사상에 맞춰서 만든 개념으로, 각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인물(혹은 神)을 맞춰 넣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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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子兵法 地形篇 第十

 

손자병법 제10편 지형

 

손무는 말하였다.

 

지형의 종류에는 '通形(통형)', '?形(괘형)', '支形(지형)', '隘形(애형)', '險形(험형)', '遠形(원형)'의 여섯가지가 있다.

 

길이 사방으로 터 있어서 아군이 나갈 수고 있고, 적이 쳐들어올 수도 있는 사통팔달의 지형을 '通形(통형)'이라고 한다. 이러한 지형은 시계가 열려 있는 높은 곳을 점령하고 식량의 보급로를 확보하기 쉬우므로 작전에 유리하다.

 

전진할 수는 있으나 후퇴하기는 곤란한 매달린 듯한 경사지를 '?形(괘형)'이라고 한다. '괘형'지역에서는 적이 대비하지 않을 경우에 기습하여 승리를 거둘 수 있으나, 적이 방비를 철저히 하고 있을 경우에는 공격하여도 이기지 못할 뿐만 아니라 후퇴하기가 어려워 진퇴양난의 불리한 처지에 빠지게 된다.

 

아군이 진출해도 불리하고, 적이 진출해도 불리한 전략 요충지를 '支形(지형)'이라고 한다. '지형'지역에서는 적이 미끼로 유인하더라도 아군은 그곳으로 진출하지 말고 병력을 이끌고 그 지역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적으로 하여금 절반쯤 쫓아오게 만든 다음 반격을 가한다면 유리해진다.

 

두 산 사이에 낀 좁고 길다란 지역을 '隘形(애형)'이라고 한다. '애형'지역을 아군이 먼저 점령하였을 경우에는 좁은 입구에 병력을 배치하여 적을 기다려야 한다. 만약 적이 아군보다 먼저 그 지역을 점령하였을 경우에 적이 입구를 지키고 있으면 공격하지 말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재빠르게 입구를 점령하여야 한다.1)

 

험준한 지형을 '險形(험형)'이라고 한다. '험형'지역을 아군이 먼저 점령하였을 경우에는 탁 트여 잘 보이는 높은 곳을 장악하고 적을 기다리며, 적이 먼저 그런 곳을 점령하였을 경우에는 병력을 이끌고 철수해야지 섣불리 공격해서는 안된다.

 

멀리 있는 곳을 '遠形(원형)'이라고 한다. '원형'의 지역에서는 적과 아군의 형세가 대등할 경우에는 먼저 도발하기 어렵다. 어느 편이든 억지로 싸우려고 달려드는 쪽이 불리해진다.

 

이상의 여섯가지는 지형을 응용하는 법칙으로, 장수의 중요한 임무이니 신중히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전쟁에서 패배하는 데는 '走軍(주군)', 弛軍(이군)', '陷軍(함군)', '崩軍(붕군)', '亂軍(난군)', '北軍(배군)'의 여섯가지 이유가 있다. 이 여섯가지 패배 요인은 자연 재앙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장수의 허물에서 비롯된다.

 

적과 아군 사이의 형세가 서로 대등한데도 1의 병력으로 10의 적을 공격하여,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치게 되는 군대를 '走軍(주군)'이라 한다.2)

 

병사들은 강하고 용감하지만 지휘관이 나약한 경우에, 이런 풀어진 부대를 '弛軍(이군)'이라 한다.

 

지휘관은 강하고 용감하지만 병사들이 나약한 경우에, 이런 무너진 부대를 '陷軍(함군)'이라 한다.

 

장교[大吏]가 불만을 품고 장수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며, 적과 마주치면 제멋대로 튀어나가는데도 장수가 이를 통제하지 못할 경우에, 이런 허물어진 군대를 '崩軍(붕군)'이라 한다.

 

장수의 성격이 나약하고 위엄이 없어서 부대의 관리와 병사의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 지휘관과 병사들이 질서 없이 어지럽게 진을 칠 경우, 이러한 혼란스러운 부대를 '亂軍(난군)'이라 한다.

 

장수가 적의 정황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고, 열세인 상황에서 우세한 적에게 맞서거나 미약한 병력으로 강한 적을 공격하면서 정예부대를 적절히 운용하지 못할 경우, 이러한 패배한 부대를 '北軍(배군)'이라 한다.

 

이상의 여섯가지는 반드시 군대의 패배를 불러오는 요인이며 장수된 자의 큰 책임이다. 그러니 깊이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장수는 전선에서 필승의 확신이 서면, 군주가 싸우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도 반드시 싸워야 한다. 그리고 필승의 확신이 서지 않으면, 군주가 싸우라는 명령을 내려도 반드시 싸우지 않아야 한다.3)

 

그러므로 장수는 승리해도 명예를 추구하지 않으며, 패배하게 되어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오로지 백성의 안전을 도모하고, 나라에 이익이 되는 결과만을 추구할 따름이다. 이 때문에 장수는 나라의 보배라 하는 것이다.

 

장수는 병사를 어린아이처럼 보살펴 준다. 그러므로 병사들이 장수를 따라 깊은 골짜기에 함께 뛰어들게 된다. 장수는 병사들을 사랑스런 자식처럼 돌보아 준다. 그러므로 병사들이 장수와 더불어 기꺼이 죽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장수가 병사들을 후대해 주면서도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사랑해 주고도 명령을 제대로 내리지 못하거나, 병사들이 군기를 어지럽히는데도 이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이러한 병사들은 마치 버릇 없는 자식처럼 전투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아군의 공격능력만을 알고 적의 방어능력을 모른다면, 승리의 가능성은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적의 방어능력만을 알고 아군의 공격능력을 모른다면, 역시 승리의 가능성은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적의 방어 능력과 아군의 공격능력을 안다 하더라도, 지형이 불리하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 역시 승리의 가능성은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4)

 

그러므로 전쟁을 아는 장수가 병사를 출동시키면 목표가 분명하여 헷갈리지 않으며, 싸우더라도 곤경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승리가 위태롭지 않다. 하늘의 기후를 알고 땅의 지형을 알면 승리는 완전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5)

 

해석..>

 

1) '隘形(애형)'은 두 산악 사이에 낀 좁은 골짜기를 가리킨다. 따라서 방어에는 매우 유리하지만 공격하기는 어려운 곳이다. 좁은 골짜기 이므로 대군이라 해도 1~2열로 밖에는 지나가지 못하니 대군의 이점을 제대로 살릴 수 없으며,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적은 수로도 충분히 지켜낼 수 있다.

 

2) 적과 전력이 대등하면서도 전투력을 집중시키지 못하고 분산시켜 공격을 가하라는 명령을 내리면, 실제로 아군이 적군의 숫자에 눌려 도저히 싸우지 못하고 도망치게 된다. 이러한 군대를 '走軍(주군)'이라 하는 것이다.

 

3) 이는 孫子兵法(손자병법) 전체를 통해 孫武(손무)가 꾸준히 주장한 '군주로부터 독립된 장수의 지휘권'에 관한 부분이다. '謀攻(모공)'편에서는 군주가 장수에게 간섭하여 해를 끼치는 세가지 경우를 들고 있고, 전쟁의 승리를 미리 알 수 있는 다섯가지 요인 중에 "장수가 유능하여 군주가 간섭하지 않으면 승리한다"고 하고 있다.

 

4) 이는 앞의 '謀攻(모공)'편에서의 그 유명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적을 모르고 나를 알기만 한다면 이기고 질 확률은 절반이 되고, 적도 모르고 나 자신도 모른다면 싸울 때마다 위험에 빠질 것이다" 라는 선언의 발전형이라 할 수 있다. '謀攻(모공)'편에서 '적[彼]'과 '나[己]'에 대한 통찰을 중시하고 있고, 여기에서는 거기에 더해 '地形(지형)'을 추가하고 있다.

 

5) 위 4)에서와 마찬가지로 '적[彼]'과 '나[己]'에 '기후[天]'와 '지형[地]'을 추가하고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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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子兵法 九地篇 第十一

 

손자병법 제11편 구지

 

손무는 말하였다.

 

전쟁터의 지형에는 '散地(산지)', '輕地(경지)', '爭地(쟁지)', '交地(교지)', '衢地(구지)', '重地(중지)', '?地(비지)', '圍地(위지)', '死地(사지)'의 아홉가지가 있다.1)

자기 나라 영토 안에서 벌어진 전쟁이라 마음이 흐트러진 전쟁터를 '散地(산지)'라 한다.


적지에 깊이 진입하지 않은 국경 근처에 쉽게 흔들리는 지역을 '輕地(경지)'라 한다.


아군이 점령하면 아군에게 유리하고, 적군이 점령하면 적에게 유리해서 서로 다투는 요충지를 '爭地(쟁지)'라 한다.

아군이 진출할 수도 있고 적이 공격해 올 수도 있는 교차 지역을 '交地(교지)'라 한다.


적대하는 두 나라가 제3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으로서 적과 아군 중에 먼저 도착하는 쪽이 제3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접경 지역을 '衢地(구지)'라 한다.


적지에 깊이 침입하여 그 나라의 많은 성을 거쳐서 등 뒤에 강력한 적대 세력을 두게 되는 부담스러운 지역을 '重地(중지)'라 한다.

산악지대, 숲지대, 장애지대, 늪지대 등 행군하기 어려운 지역을 '?地(비지)'라 한다.


진입로는 좁고 험하고 후퇴로는 멀리 돌아가서, 적이 소수 병력으로 다수의 아군을 상대할 수 있게 에워싼 지역을 '圍地(위지)'라 한다.

속전속결로 전 병력이 분투하면 살아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전멸당하는 지역을 '死地(사지)'라 한다.

 

'散地(산지)'에서는 싸움을 하지 않고, '輕地(경지)'에서는 오래 머물지 않으며, '爭地(쟁지)'에서는 공격해서는 안되고, '交地(교지)'에서는 부대사이의 긴밀함을 유지해야 하며, '衢地(구지)'에서는 외교활동을 강화해야 하고, '重地(중지)'에서는 적의 식량과 물자를 노략해야 하며, '?地(비지)'에서는 가능한 빨리 지나가야 하고, '圍地(위지)'에서는 계략으로 그 지역을 벗어나야 하며, '死地(사지)'에서는 전력을 다하여 결사적으로 싸워야 한다.

  

예로부터 작전 지휘에 능통한 장수는 적의 앞뒤 부대가 서로 연결되지 못하게 하고, 주력부대와 소부대가 서로 지원하지 못하게 하며, 지휘관과 병사가 서로 구하지 못하게 하고, 계급이 높은 자와 낮은 자가 서로 돕지 못하게 하였다.

 

또 병사들이 흩어져서 모이지 못하게 하고, 병력이 모여도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게 하여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아군에게 유리한 상황이 되면 곧바로 공격하며, 아군에게 불리한 상황이 되면 곧바로 행동을 중지하고 상황이 호전되기를 기다린다.

 

적이 대병력으로 대비를 갖추고 공격해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경우에는 먼저 적이 중시하는 적의 요충지를 먼저 빼앗아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아군이 적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

 

요컨대 용병은 신속함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적이 대비하지 못한 빈틈을 타서,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적이 경계하지 못한 곳을 집중 공격하는 것이다.

적국에 진입할 때[客]2)는 적진 깊숙이 진입해야 한다. 적지에 깊숙이 진입할수록 아군은 '重地(중지)'에 있는 상태이므로 단결력이 강화되고, 적은 '散地(산지)'에서 싸우는 상황이므로 제대로 막을 수 없게 된다.

 

아군은 물자가 풍부한 지방을 점령하여 군량을 현지에서 조달하고 전군을 넉넉히 먹인다. 그리고 병사들을 적절히 쉬게 하고 힘을 쌓아 사기를 높인다. 그리하여 전투력을 운영하는 데 효율을 높이고 계략을 잘 세워, 적이 아군의 실력과 의도를 헤아리지 못하게 한다.

 

이런 지역에 있으면 아군은 도망치려고 해도 도망칠 데가 없게 되어, 죽음만이 있을 뿐 패배하여 물러날 수 없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열심히 싸우니 이기지 못할 상대가 없으며, 지휘관과 병사가 한마음으로 힘을 다하니 넘어서지 못할 어려움이 없다.

 

병사들은 어떤 막다른 길에 빠지더라도 오히려 두려워하지 않으며, 도망갈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결사항전의 각오가 굳어지기 마련이다. 적지 깊숙이 들어갈수록 장병들의 행동이 하나가 되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결사적으로 싸우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군대는 훈련을 하지 않더라도 병사들 스스로 경계할 줄 알고, 억지로 요구하지 않아도 임무를 완수하며, 서로 약속하지 않아도 긴밀하게 협력할 것이고, 군령이 내려지지 않아도 군기를 지킬 것이다. 병사들 사이에 미신[祥]을 금지하고 유언비어를 막으면, 승리의 확신을 품고 죽음에 이르더라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병사들이 자기의 재산이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싸우는 것은, 그들이 재산이나 생명을 아끼지 않아서가 아니다. 출동 명령이 떨어지게 되면, 그들은 앉은 이는 눈물로 옷깃을 적시고, 누운 이는 얼굴로 눈물 범벅이 된다.3)

 

그러니 병사들은 일단 전진 밖에 없는 전쟁터에 던져지게 되면, 그 옛날 용맹스런 '專諸(전제)'나 '조귀'4)처럼 결사적으로 싸우는 것이다.

 

용병에 능숙한 자는 '솔연'5)처럼 부대를 지휘한다. '솔연'은 상산의 뱀이름이다. 그 뱀은 머리를 치면 꼬리가 달려들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달려들며, 허리를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달려든다.

 

그렇다면 군대도 그 '솔연'처럼 부릴 수 있는가? 물론 가능하다.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서로 철천지원수처럼 미워하지만, 그들이 한 배를 타고[吳越同舟]6) 건너다가 거센 바람을 만났을 때에는, 한 몸에 붙은 왼손과 오른손처럼 서로 도와야 살아날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전투가 시작될 때에 말고삐를 잡아 묶고, 수레바퀴를 떼어 땅속에 묻어가면서[方馬埋輪]7) 진용을 결속시키려 해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병사들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것은 '道(도)'의 이치이다. 병사들 가운데 강약을 막론하고 그들의 힘을 적절히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땅[地]의 이치이다.

 

용병술에 능한 자가 전군의 병력을 한사람처럼 손에 쥐고 마음대로 지휘할 수 있는 것은, 병사들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장수는 군대를 통솔하면서 언제나 침착하고 냉철하며, 엄정하고 조리가 있어야 한다. 병사들의 눈과 귀를 어둡게 하여 제멋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하고, 아군의 작전 계획이나 행동에 대해 알지 못하게[無知]8) 해야 한다.

 

임무를 바꾸거나 계략을 변경할 때에 이를 병사들이 알게 해서는 안 되며, 주둔지를 옮기거나 행군로를 돌아갈 때에도 이를 병사들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 장수가 병사들에게 일단 임무를 부여하면 마치 높은 지붕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워버리듯, 그들이 오로지 그 임무를 다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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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적지에 깊숙이 들어가면, 병사들을 마치 활을 떠난 화살처럼 오로지 전진만 하도록 해야 한다. 강을 건넌 뒤에는 배를 불태워 버리고 솥도 깨뜨려 버려서[焚舟破釜] 장수가 필사의 결의를 보인다.

 

그리고 양떼를 마구 몰듯 병사들을 휘몰아 전진하기도 하고 후퇴하기도 하면서, 병사들은 따르기만 할 뿐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알지 못하게 만든다. 이와 같이 전군을 절대 절명의 궁지에 몰아넣고, 그들로 하여금 결사적으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장수의 임무인 것이다.

 

아홉 가지 지형의 변화와 전진과 후퇴의 판단, 그리고 인간의 심성을 파악하는 일은 장수가 언제나 신중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적국에 진입할 때는 다음 사항을 유의하여야 한다.

 

적지에 깊이 들어갈수록 병사들의 단결심은 더욱 단단해진다. 그러나 적지에 조금밖에 들어가지 않아 국경 가까이 머물면, 병사들의 단결심이 풀어져 도망병이 늘어난다.

 

자기 나라를 떠나 적의 국경을 넘어 들어가 고립된 작전지역을 '絶地(절지)'라 한다.

 

사방으로 교통로가 열려진 지역을 '衢地(구지)'라 한다.

 

적지 깊숙이 진입하여 싸우게 된 지역을 '重地(중지)'라 한다.

 

국경에서 멀지 않은 적지에 들어가 싸우게 된 지역을 '輕地(경지)'라 한다.

 

등 뒤로 험한 산이 막고 있고 앞으로 좁은 통로가 놓인 지역을 '圍地(위지)'라 한다.

 

전진로와 후퇴로가 모두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지역을 '死地(사지)'라 한다.

'

散地(산지)'에서는 병사들의 의지를 하나로 하여 전투에 임해야 한다.


'輕地(경지)'에서는 부대 사이의 연락을 긴밀히 하여 병사들의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爭地(쟁지)'에서는 재빠르게 움직여 적의 배후를 쳐야 한다.


'交地(교지)'에서는 방어 태세를 철저히 갖추어야 한다.


'衢地(구지)'에서는 제3국과의 유대를 단단히 해야 한다.


'重地(중지)'에서는 적의 식량을 빼앗아 군량이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地(비지)'에서는 그 지역을 재빨리 벗어나야 한다.


'圍地(위지)'에서는 탈출구를 스스로 막아 병사들이 도망치지 못하고 결사적으로 싸우게 해야 한다.


'死地(사지)'에서는 죽기를 다하여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병사들의 심리는 포위를 당하게 되면 힘을 합쳐 저항하고, 상황이 절박해져서 어쩔 수 없게 되면 필사적으로 싸우며, 엄청난 위험에 빠지면 장수가 지휘하는 대로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적국의 정책과 의도를 모르면 이웃 나라와 미리 외교를 맺을 수 없다.

산악지대, 삼림지대, 험준한 지대, 늪지대 등의 지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행군하지 못한다.

 

길잡이[鄕導]를 적절하게 부리지 못하면 지형상의 이점을 활용할 수 없다.

'구지[四五]'의 어느 하나라도 알지 못하면 위대한 패왕의 군대[覇王之兵]9)가 될 수 없다. 패왕의 군대가 적국을 공격할 때에는 그 적국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병력을 미처 동원하지 못하게 만들며, 위엄으로 적국이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패왕은 다른 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으려고 외교적으로 다툴 필요도 없고, 자기나라의 세력을 기르려고 군사력을 다툴 필요도 없으며, 자기의 뜻을 펼쳐서 믿음을 얻고 위엄을 보이기만 하면 적국의 성을 빼앗을 수고 있고, 나라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

 

장수는 관례를 깨뜨리는 포상을 하기도 하고, 상식을 뛰어넘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며, 전군을 마치 한 사람처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부하에게 임무를 맡길 때에는 이유를 설명해 주어서는 안 된다. 유리한 점을 들어 격려하되, 위험이나 불리한 점을 미리 알려 주어서는 안 된다.

 

군대란 멸망하는 땅에 던져져야 비로소 보존하는 방법을 깨닫게 되고,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 땅에 빠져서야 비로소 살아남을 방법을 찾게 된다. 군대는 위험에 빠져야만 승부를 생각하게 된다.

 

용병술의 오묘함은 먼저 적의 뜻대로 움직이는 듯이 보이며 적을 기만한 다음, 아군의 힘을 한 곳에 집중시켜 적의 빈틈을 집중 공격하는 데 있다. 이렇게 하면 천 리 밖의 적장을 사로잡거나 죽일 수도 있다. 그야말로 '오묘한 능력으로 큰일을 이룩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국과의 전쟁이 결정되면, 국경의 관문을 막고 통행증을 폐기하여 적의 사절이 오고가지 못하게 한다. 조정에서는 힘을 기울여 전략 전술을 신중히 검토하고 연구하여 계책을 세운다. 그리고 적국이 허점을 드러내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속하게 공격한다. 먼저 적국의 주요 요충지를 기습 점령한 다음, 적의 행동이나 상황에 따라 전술을 바꿔가며 전투를 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는 처녀처럼 조용하고 침착하고 조심하여 적의 경계심을 늦추어 문을 열게 만들고, 전투가 시작되면 마치 덫에서 벗어난 토끼처럼 재빠르게 출동하여, 적이 미처 저항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해석..>

 

1) '散地(산지)'란 적국의 침임을 당하여 자기 나라 영토 안에서 작전하는 경우이다. 그리하여 제후가 직접 전쟁에 참여하게 되고 전투 이외의 부담요소가 많기 때문에 병사들이나 지휘관들이 매우 혼란스럽게 여기는 전쟁터이다.


'輕地(경지)'란 적의 국경 너머 깊숙이 진입하지 않은 지역으로 병사들이 고향 소식에 쉽게 흔들리도 도망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전투력이 집중되지 않는 곳이다.


'爭地(쟁지)'란 전략적 요충지를 뜻한다.


'交地(교지)'란 도로망이 발달하여 교통이 편리한 평지 지역으로 공격이나 수비에 특별히 도움이 될 만한 지형지물이 없는 곳이다. 이런 곳은 보급로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衢地(구지)'란 세 나라 이상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으로 당사국 모두에게 중요한 땅이다. 따라서 이 땅을 확보하면 제3국과 우호를 맺을 수도 있고, 적국과 제3국의 우호를 막을 수도 있으며, 이곳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전투보다는 외교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重地(중지)'란 '경지'와 반대로 적국 깊숙이 침입하여 병사들이 도망치려는 마음은 사라지고, 일치단결하여 전투에 임하게 되는 지역이다. 한편으로 아군의 지원과 구원이 어렵고 의지할 대상이 없으므로 필사의 작전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군대가 살아날 방법은 현지에서 노략질을 하는 수밖에 없다.


'?地(비지)'란 습지, 늪지, 호수 등으로 행군이나 숙영이 불편하고 곤란한 곳을 뜻한다.


'圍地(위지)'란 진입로가 좁고 후퇴로는 멀리 돌아가게 되어 있어서, 적군이 적은 병력으로도 아군을 포위하기 쉬운 지역을 뜻한다.


'死地(사지)'란 도망갈 길이 전혀 없는 곳으로 말 그대로 죽을 곳이다. 목숨을 걸고 신속하게 싸우면 살아날 수 있고, 머뭇거리면 전멸 당하게 되는 지역을 뜻한다.

 

2) 병법 용어에서 흔히 쓰이는 '主客(주객)'은 방어군과 공격군, 아군과 적군 등의 개념으로 쓰인다. '손빈병법'의 '客主人分(객주인분)'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3) 이에 대해서는 적과 결전을 앞둔 병사들의 비장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는 학설과 전투에 참여하고 싶지만 부상으로 앉거나 누워있는 병사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는 학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학설이 문맥상 타당해 보인다.

 

4) '전제'는 춘추시대 吳(오)나라의 협객이다. 오자서의 사주를 받고 오나라 왕 '僚(요)'를 죽이고 죽임을 당하였다. 이 일로 공자 '光(광)'이 오나라의 왕이 되는데, 이이가 바로 '합려'이다.

 '조귀'는 '조말'이라고도 한다. 노나라 '莊公(장공)'이 제나라 '桓公(환공)'에게 연패한 후, 협정을 맺는 자리에 뛰어들어 칼로 제환공을 위협하여 빼앗긴 영토를 반환하게 하였다.

 

5) '솔연'에 대한 신화학적 이야기는 젖혀두고, 간단한 특징만 설명하도록 하겠다. 이 뱀은 매우 거대하고 행동이 재빠르며 난폭했다고 한다. 머리를 치면 꼬리가 달려들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달려들며, 허리를 치면 머리와 꼬리가 달려든다고 한다. '孫武(손무)'는 이를 부대의 '陣法(진법)'에 활용하여 '常山蛇陣(상산사진)'이라는 부대를 창안해 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후대에 손무의 이름을 빌려 만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제갈량의 '便宜十六策(편의십육책)'에도 이진법에 대한 소개가 등장하고 있다.

 

6) '吳越同舟(오월동주)'는 원래는 여기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이가 좋지 않은 두 사람이라도 커다란 위기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와 같은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원래의 의미에 대해서도 알아두도록 하자.

 

7) '方馬埋輪(방마매륜)'은 '말을 가지런하게 묶어 놓고 수레바퀴를 땅 속에 묻는다.'는 뜻으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그곳에서 진지를 다져 싸우겠다는 결의를 뜻하는 말이다.

 

8) 병사를 '無知(무지)'하게 한다는 말은 병사를 기만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작전 의도가 새어 나가는 것을 막아 군사기밀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다.

 

9) '覇王之兵(패왕지병)'은 주석가에 따라 '覇者(패자)'와 '王者(왕자)'의 군대를 뜻한다는 견해와 '覇王[覇主](패왕[패주])'의 군대를 뜻한다는 견해가 있다. 손무는 현실의 권력을 중시한 입장이었으므로 '覇王(패왕)'의 군대로 보는 편이 옳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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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子兵法 火攻篇 第十二

 

손자병법 제12편 화공

  

손무는 말하였다.

 

불로 하는 공격에는 다음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적군의 막사를 불태워 병사와 말을 죽이는 방법이다.

둘째, 적군의 식량창고를 불태우는 방법이다.

셋째, 적의 보급물자[輜]를 불태우는 방법이다.

넷째, 적의 보급창고[庫]를 불태우는 방법이다.1)

다섯째, 적의 운송수단을 불태우거나 보급로를 화공으로 가로막는 방법이다.

 

이상의 다섯 가지 화공술을 실시하려면 반드시 일정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며, 목표에 따라서 적절하게 불붙일 도구와 재료를 확보해 두어야 한다. 또 화공에는 불을 놓는 적절한 때와 불이 일어나는 적절한 날이 있다.

 

화공에서 적절한 때란 메마른 계절을 뜻한다. 화공에 적절한 날이란 '箕(기)', '壁(벽)', '翼(익)', '軫(진)'의 네 별자리 가운데 한 자리를 지나는 날을 가리킨다. 달이 이 네 별자리를 통과할 때에는 큰 바람이 일기 때문이다.2)

 

화공을 실시할 때는 이 다섯 가지 방법을 사용하되,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거기에 맞춰서 임기응변하여야 한다. 적진 안에서 불이 일어나면 빨리 밖에서 병력을 동원하여 호응해야 한다.

 

적진에 불이 일어났는데도 적이 여전히 침착하게 안정을 유지하고 있으면, 밖에서 조급하게 공격하지 말고 상황을 지켜보면서 기다려야 한다. 불길이 가장 치열해졌을 때 공격이 가능한 상황이면 공격을 하고, 공격이 불가능한 상황이면 공격을 포기해야 한다.

 

화공은 적진 밖에서 가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적진 안에서 내통자가 불을 지르기를 기다리지 말고, 화공의 때와 조건이 성숙되면 외부에서 직접 적진에 불을 질러야 한다. 불은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등지고 놓아야 하며[上風], 바람을 안고서 화공을 해서는[下風] 안 된다. 낮 바람은 오래 불고, 밤바람은 짧게 불었다가 그친다.

 

군대가 작전할 때에는 반드시 이 다섯가지 화공법의 변화3)를 잘 알고서 사용하되, 반드시 화공할 수 있는 때와 조건이 갖추어질 때에만 실행해야 한다. 화공으로 공격을 보조하면 그 효과가 매우 분명하다. 수공으로 공격을 보조하면 그 위력이 매우 강하다. 그러나 수공은 적군을 분산시켜 끊어 놓을수는 있지만, 화공처럼 적의 물자와 장비를 태워 버리지는 못한다.

 

전쟁에서 이기고 적의 영토를 쟁취하였더라도, 그 전쟁의 결과가 본래 목적에 어긋났다면 흉한 일이다. 이를 '인명과 재산을 허비하면서 머물러 있다[費留]'고 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군주는 전쟁의 결과를 신중히 검토하며, 훌륭한 장수는 전쟁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라에 유리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을 택하지 않으며, 승리의 확신이 없으면 병사를 움직이지 않으며, 위태롭지 않으면 결코 싸우지 않는다.

 

한 나라의 군주된 자가 한 때의 노여움 때문에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되며, 전군의 장수된 자는 잠깐의 분노 때문에 전투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나라의 이익에 맞으면 행동을 취하고, 나라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진행 중인 전쟁이라도 멈추어야 한다. 노여움은 시간이 흐르면 다시 기쁨으로 바뀔 수 있고, 분노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나라가 멸망하면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밝고 지혜로운 군주는 전쟁에 신중하고, 뛰어난 장수는 싸움에 앞서 깊이 경계한다. 이것이 나라의 안전과 군대의 보전을 기하는 길이다.

 

해석..>

 

1) 두목은 주석에서 "군수품을 수레에 싣고 수송중이면 '輜(치)'라고 하고, 성이나 진영에 쌓아서 보관하면 '庫(고)'라고 한다"고 하였다. 세번째의 '火輜(화치)'와 네번째의 '火庫(화고)'를 구분하는 방법이다.

 

2) 고대 중국의 천문학에서는 28자리의 성좌, 즉 28수의 별자리로 방위의 표준을 삼았다. 그 중에서 '箕星(기성:사수좌)', '壁星(벽성:페가수스좌)', '翼星(익성:바다뱀좌)', '軫星(진성:까마귀좌)'은 바람을 잘 타는 별이라 여겼다. '箕星(기성)'이 '艮位(간위)'에 있고 달이 그 뒤에 위치하는 날 반드시 북동풍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壁星(벽성)'이 '乾位(건위)'에 있고 달이 그 뒤에 위치하는 날은 북서풍, '翼星(익성)'이나 '軫星(진성)'이 '巽位(손위)'에 있고 달이 그 뒤에 위치하는 날은 동남풍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3) 다섯가지 화공의 변화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적진 내부에서 불길이 일어나면 재빠르게 공격하라.

  둘째, 불이 일어나도 적이 흔들리지 않으면 다음 기회를 기다려라.

  셋째, 외부에서 화공이 가능하면 바람에 따라 적절한 시기에 공격하라.

  넷째, 바람을 등지고 공격하고, 바람을 안고 공격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바람이 부는 때를 알고 공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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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子兵法 用間篇 第十三

 

손자병법 제13편 용간

 

손무는 말하였다.

 

10만 명의 병사를 천 리 밖으로 출정시키려면, 백성과 나라가 부담해야 하는 전쟁 비용이 하루에 천금이 들어간다. 그리고 나라 안팎이 소란해지며, 군수물자의 수송에 동원된 백성들이 도로를 메우고, 이 때문에 농사를 짓지 못하는 집이 70만 가구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적대한 두 나라가 몇 년 동안을 서로 버티며 준비하는 것은 오로지 하루아침의 승리를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도 벼슬과 금전이 아까워서 첩자를 쓰지 않고, 이 때문에 적의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다면, 이는 너무나 어리석은 처사이다. 군대의 장수가 이런 사람이라면 훌륭한 장수가 못될 뿐만 아니라 군주를 훌륭하게 보좌하지도 못하며, 싸움에서 승리하지도 못하게 된다.

 

총명한 군주와 유능한 장수는 일단 출병하면 반드시 승리하고, 남보다 뛰어난 공을 세운다. 그 이유는 바로 미리 적의 정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의 정황은 귀신의 도움을 받거나, 장수의 지난 경험에 비추어 보고 추측할 것도 아니며, 더욱이 별자리를 보고 점을 쳐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적의 정황은 오직 정황을 아는 첩자를 통하여서만 얻을 수 있다.

 

첩자에는 '因間(인간)', '內間(내간)', '反間(반간)', '死間(사간)', '生間(생간)'의 다섯 종류가 있다.


이 다섯가지 첩자를 동시에 활용하되, 적이 이에 대해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이를 '신비하여 불가사의한 실마리'라고 부르며 군주에게는 가장 소중한 보물이 된다.

 

'因間(인간)'은 적국의 평범한 주민을 첩자로 이용하는 것이다.

'內間(내간)'은 적국의 벼슬아치를 포섭하여 첩자로 이용하는 것이다.

'反間(반간)'은 적의 간첩을 매수하여 역이용하는 것이다.

'死間(사간)'은 아군 첩자에게 거짓을 꾸며 알리게 하고, 적에게 넘어가 허위정보를 흘리는 것이다.

 

'生間(생간)'은 적국을 정탐한 뒤에 살아 돌아와서 정보를 보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수는 전군 가운데 가장 믿을 수 있는 심복을 첩자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첩자를 누구보다도 후대하여 주고, 첩자의 운용은 무엇보다도 비밀리에 해야 한다. 지혜롭고 뛰어난 재질을 갖추지 않으면 첩자로 쓸 수 없고, 도덕적 의지를 갖추지 않으면 첩자를 믿고 부릴 수 없으며, 세심하고 치밀하지 않으면 첩자로부터 참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첩자란 참으로 미묘하도다! 전쟁에 첩자가 쓰이지 않는 곳은 없다. 그러나 첩자와 보고하기 전에 일이 미리 새어 나가면, 그 첩자는 물론이고 그와 관련된 일을 말한 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해야 한다.

 

적의 부대를 공격하거나, 적의 성을 공략하거나, 적국의 요인을 제거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미리 아군의 첩자를 시켜 대상 지역의 수비장, 보좌관, 시종, 문지기, 호위병의 이름이나 인적 사항을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적으로부터 침투한 간첩은 반드시 색출하여, 후한 재물로 매수하거나 두터운 대접으로 회유하여 전향시킨 다음에 적에게 되돌려 보낸다. 이렇게 해서 아군이 '反間(반간)'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反間(반간)'을 통하여 적국의 상황을 감지할 수 있으므로, 적국에 '鄕間(향간)'과 '內間(내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反間(반간)'을 통하여 아군의 정보가 적에게 전달되므로, '死間(사간)'을 적국에 침투시킨 셈이 되어 허위 정보를 적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되며, '反間(반간)'을 통하여 첩자간의 접선이 가능하므로, '生間(생간)'을 돕게 하여 기일 내에 돌아가도록 할 수 있다.

 

이러한 다섯가지 첩자를 운용하는 일은 군주와 장수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첩자의 운용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反間(반간)'의 활용방법이다. 그러므로 '反間(반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후한 예우를 해주어야 한다.

 

옛날 탕왕이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은나라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라의 신하였던 伊尹(이윤)1)을 중용하였기 때문이다.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은나라의 신하였던 呂牙(여아)2)를 중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총명한 군주와 유능한 장수는 지략이 뛰어난 최고의 인재를 첩자로 활용하여 반드시 위대한 업적을 이룩할 수 있다. 이렇게 첩자의 활용은 용병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이며, 전군의 행동 방침은 바로 첩자가 제공하는 정보에 의지하여 결정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해석..>

 

1) 伊尹(이윤)은 고대 商(상)나라의 신하이다. 이윤의 尹(윤)은 벼슬이름이며, 본명은 伊摯(이지)이다. 노예 출신이었지만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어서 당시 夏(하)나라의 제후였던 湯王(탕왕)의 추천으로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폭군 桀王(걸왕)의 미움을 사서 다섯 차례나 쫓아났다. 후에 탕왕이 걸왕을 멸하고 상나라를 대국으로 일으킬 때, 재상으로 그를 보좌하였다. 후에 3대에 걸쳐 군주를 섬기며 나라의 토대를 다지고, 어리석은 군주인 太甲(태갑)을 폐위시켰다가 그가 반성하자 다시 복위시키는 도량을 보여, 신하로서의 모범을 남긴 인물이다.

 

2) 呂牙(여아)는 흔히 '姜太公(강태공)', '太公望(태공망)'으로 불리는 바로 그 사람이다. 본명은 '呂尙(여상)'이며 상나라의 주왕이 폭정을 일삼자 벼슬을 버리고 위수에서 낚시질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 후 제후 西伯(서백 - 후의 주문왕)에게 천거되어 큰 공을 세운다.


위의 이윤이나 여아 모두 첩자는 아니었지만, 적대국의 벼슬아치로 있었고, 또한 정세와 지리에 밝았다. 그래서 孫武(손무)가 反間(반간)의 예로 활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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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발견된 손자병법.. 1972년 ‘은작산’ ‘죽간본’에 대하여...

위에서 기술한바 있는 현재 전해지고 있는 13편이 과연 孫子兵法(손자병법)의 저자와 내용에 관하여 논란이 있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漢書(한서) 藝文志(예문지)'의 '兵權謀家類(병권모가류)'에는 '吳孫子兵法(오손자병법)' 82권과 그림 9권, '齊孫子兵法(제손자병법)' 89권과 그림 4권의 책 이름과 분량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전해지고 있는 '孫子兵法(손자병법)' 13편이 과연 손무과 손빈 중에 누가 지은 손자병법이며, 내용은 그것으로 전부인가에 관한 논란이 있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1972년 ‘산동성’ ‘임기현의 은작산’에 있는 ‘전한시대’의 무덤에서 엄청난 양의 죽간이 발견되었다. 그 가운데 13편의 '손자병법'에 해당하는 자료 외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손무와 손빈에 관한 다른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 병서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은작산 죽간본'은 학자들에 의해 다음과 같이 분류되었다.


 1. 지금 전하는 '孫子兵法(손자병법)'과 거의 같은 내용의 13편.

 2. 합려와 손무의 대화형식을 띠고 있는 '見吳王(견오왕)', '吳問(오문)'의 2편.

 3. 내용상으로 13편의 '손자병법'과 관련있는 것으로 보이는 '四變(사변)',

   '黃帝伐赤帝(황제벌적제)', '地形二(지형이)'의 3편.

 4. 손빈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한 '擒龐捐(금방연)', '見威王(견위         왕)', '威王問(위왕문)', '陳忌問壘(진기문루)', '强兵(강병)'의 5편.

 5. 손무의 저작인지 손빈의 저작인지 확실치 않지만, 각 편의 앞에

    '孫子曰(손자왈)'로 시작하는 '簒卒(찬졸)', '月戰(월전)' 등 10편.

 

6. 손자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손무나 손빈과 관련 있는지도 확실치       않은 '十陳(십진)'과 '客主人分(객주인분)'등 15편.

중국학계에서는 이 여섯 가지 자료 가운데, 앞의 세 가지를 孫武(손무)와 관련된 '손자병법'으로 판정하고, 뒤의 세 가지를 손빈과 관련된 '손빈병법'으로 보았다.

 

무엇보다 지금 전하는 현재의 '손자병법'과 중복되는 1번의 13편이 발견되어 이것이 손무의 저작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며, 또한 손빈의 저작이 새로이 발견되면서 환상의 병법서였던 '손빈병법'의 존재도 확실히 실증이 되었다.

 

또한 현재 '손자병법'에 없어진 판본이 있으리라는 추측도 끊임없이 재기되었다. '한서 예문지'에는 글 82권과 그림 9권이 있다고 하였고, '신당서 예문지'에 보면 당나라 때에 이미 여러 가지 판본의 '손자병법'이 있음을 알 수 있지만 현재는 13편을 제외하고는 전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은작산 죽간본의 '見吳王(견오왕)', '吳問(오문)', '四變(사변)', '黃帝伐赤帝(황제벌적제)', '地形二(지형이)'의 다섯편은 현재의 손자병법과는 다른 판본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지금의 손자병법 13편을 보충하는 소중한 자료이다.

 

그러나 죽간의 순서에 대해서도 일치된 의견이 없고, 판독이 되지 않는 글자나 파손된 부분이 많아서 전체의 대의가 해석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앞으로 다른 죽간이 더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이에 위에서 이야기한 '孫子兵法(손자병법)'의 보충으로 보이는 다섯 편을 추가로 정리하도록 하겠다. 물론 원본의 훼손이 심한 부분은 '史記(사기)'나 '吳越春秋(오월춘추)'등을 참조하여 메워놓은 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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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吳王(견오왕)

오나라왕을 만나다

 

<‘죽간본’에는 이편의 제목이 나타나 있지 않으나, '韓非子(한비자)'의 '初見秦(초견진)'을 참고로 명명하였다 한다. 내용 자체는 '史記(사기)'의 '孫子吳起列傳(손자오기열전)', '吳越春秋(오월춘추)'등에도 나타나 있다. 그 기록들의 자료로 이용된 기록으로 보여 진다.>

 

오나라왕 합려가 손무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선생의 저서 13편은 대단히 알기 쉽고 내용도 훌륭하군요. 실로 뛰어난 것 같소. 그러니 시험적으로 보여주시지 않겠소?"

 

손무는 말하였다.

"저는 시험적으로 병법에 따라 어떠한 자라도 훈련시켜 군대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군주께서 바라신다면 귀족들로 구성된 군대를 만들 수도 있고, 죄수들로 군대를 만들 수도 있으며, 여성들을 병사로 훈련시킬 수도 있습니다. 남녀를 섞어서 오른쪽을 남자로 왼쪽을 여자로 구성한 군대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합려는 손무에게 부탁하였다.

"외국인부대나 국군, 귀족이나 죄수의 군대 등은 벌써 갖추고 있소."

손무는 말하였다.


"그렇습니까?"

합려는 말하였다.

"나[不穀]1)는 여성으로 만든 군대를 보고 싶소."

 

손무는 말하였다.

"여성은 인내력이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저에게 군주를 대신할 수 있도록 전권을 맡겨 주신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러시면 궁궐의 여자들을 훈련시켜 군대로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합려는 말하였다.

"좋소."

그러자 궁궐의 여자들 가운데서 뽑아서 좌우로 나누어 두 개의 진형을 만들었다. 그 안에서 두 사람을 골라서 지휘관으로 임명하였다.

 

손무는 말하였다.

"궁녀일망정 무기를 손에 들면 한 사람의 병사이니 엄격해야 합니다. 저는 이제부터 나가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만, 아직 진형도 갖춰지지 않았으므로 볼 만한 것이 없습니다. 군주께서는 궁전 위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확실히 진형이 갖춰지게 되면, 명령에 따라 물 속이든 불 속이든 거리낌 없이 돌격하는 부대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오왕이 말하였다.

"좋소."

 

손무는 제나라에서 함께 온 마부를 司馬(사마)에 임명하고, 시종을 司公(사공)에 임명하였다. 그리고 주위에 잘 들리게 마부와 시종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

지금 나는 군주로부터 임명을 받아 이 여성들을 지휘하는 장수가 되었다. 임명된 이상 군주의 대리자로서 전권을 행사한다. 병법에서 형벌은 평등히 집행해야 한다. 신분이 아무리 높은 자라도 거리낌 없이 처형한다면, 군법의 권위는 전군 구석구석까지 널리 확립되게 된다. 지휘관이 엄격한 자세로 임하면, 3만이 넘는 군대에서도, 장군의 신상필벌의 관념이 널리 퍼져, 명령자에 대해서 권위와 외경심도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혹시 명령을 내렸는데도 복종하지 않는 자나, 말하는 것을 따르지 않는 병사가 있다면 목을 베어 군법을 집행한다."

 

손무는 지휘봉을 손에 쥐고 북을 들러올려, 궁녀들에게 크게 말하였다.

"내가 오른쪽이라고 하면, 오른손을 알겠느냐?"

궁녀들이 대답하였다.

"압니다."

"내가 왼쪽이라고 하면, 왼손을 알겠느냐?"

"압니다."

"내가 가슴이라고 하면, 가슴을 알겠느냐?"

"압니다."

"내가 등이라고 하면, 등을 알겠느냐?"2)

"압니다."

"내가 오른쪽이라 말하면, 너희들은 오른손을 주목하라. 내가 왼쪽이라고 말하면 너희들은 왼손을 주목하라. 가슴이라고 말하면 고개를 숙여 가슴을 보아라. 등이라고 말하면 등뒤를 향하라. 나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는 반드시 형벌에 처하여 목을 베겠다. 이 연습은 일곱 번을 거듭하고 쉰다. 이 북을 두드리면 앞으로 나오너라. 꽹과리를 두드리면 제자리에 앉아라."

 

이와 같은 명령을 세 번 거듭해서 알려주고, 최후에 다섯 번 암송시켰다. 그런 다음에 북을 울려서 전진하게 하였으나, 궁녀들은 대열을 흐트러뜨리고 깔깔거렸다. 그래서 꽹과리를 울려서 자리에 앉게 한 다음에 다시 세 번 거듭해서 알려주고 다섯 번 복창시킨 다음에 북을 울려 전진하게 하였지만 궁녀들은 여전히 궁녀들을 조금도 명령을 따를 기색조차 없었다.

 

손무는 사마와 사공을 부르고, 주위에 들리도록 말하였다.

"병법에 이런 말이 있다. 명령이 병사들에게 빈틈없이 들리지 않는다면, 이는 지도자인 군주와 장수의 죄이다. 그러나 명령을 빈틈없이 알려주고 확인시킨 뒤에도 듣지 않고 버티고 있다면, 이는 명령에 대한 반역이다.

 또 병법에 이런 말이 있다. 상을 주어 칭찬하는 것은 신분이 낮은 병졸로부터 시작하며, 형벌을 내리는 것은 신분이 높은 지휘관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지휘관으로 임명한 두 미녀의 목을 베겠다고 하였다. 그 두 사람은 오나라 왕이 가장 사랑하는 후궁들이었다.

 

합려는 손무의 말에 따라 궁전에 오르고 있었지만, 궁전에서 나가지 않고 멀리서 궁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두 미녀가, 막 목이 베일 지경에 처해 있었다. 합려는 깜짝 놀라 아래로 사신을 보내어 말을 전하였다.

"나는 이 여자들이 없으면, 밥을 먹어도 맛이 좋은지 모를 것이오. 제발 부탁이니 목을 베지는 말아주시오."

 

손무가 말하였다.

"저는 군주에게서 정식으로 임명받아 장수가 되었습니다. 장수가 군대에 있거나 전쟁터에 있을 때에는 군주의 명령이라고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는 법입니다. 사신의 명령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 즉시 처형을 집행하여 두 미녀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리고 대신 다른 후궁을 골라서 다시 지휘관에 임명하였다. 이제 다시 북을 올리니, 이번에는 궁녀들이 정확하게 움직였다. 전진시키고 나서 돌아가게 하니, 역시 정확히 회전하였다. 그런 다음에 정면을 향하여 전진시키다가 진로를 꺾게 하니, 역시 정확히 직각으로 꺾어서 진행하였다.


손무가 합려를 내려오게 해, 합려가 시험해 보았다. 손무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두 번 절하고 나서 일어나 말하였다.

 

"이것으로 군사의 기본은 가르쳤습니다. 이미 궁녀들은 병사로서 명령에 따라 훌륭히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훌륭한 군대입니다. 이와 같이 교련하여 뛰어난 사람이 뒤떨어진 사람을 가르치고, 잘 아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르치면, 자연스럽게 전체의 수준이 올라갑니다. 바로 지도자가 언제나 확실하게 원리원칙이 정해진 명령에 주의하면, 자연스럽게 병사들이 교육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교화의 본질이고, 장수의 의무입니다.


백성은 언제나 지도자에게 주목하여, 그 영향에 따라 향상됩니다. 그러니 위엄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위엄이 병사들에게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고, 엄한 군기가 지휘관들에게서 확고하다면, 전군은 그 장수의 위엄을 믿고 적과 싸울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장수는 병사들의 마음을 손에 쥘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나의 병법 13편에 따라 실행한다면, 단지 초나라와 월나라를 이기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손무가 이렇게 얘기하는데도 합려는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장군 오자서가 말하였다.

"부탁이니 손무 장군께서는 군주에게 사죄하여 주십시오."

손무는 말하였다.

"군주께서는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나라의 큰일보다도 두 개의 목이 소중하십니까?"

합려는 말하였다.

"장군은 물러가 계시오."

그로부터 합려는 6일 동안 아무 소식이 없다가, 7일째가 되었을 때 손무를 방문하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전쟁을 좋아하오. 나에게 있어서 전쟁은 여자보다 좋은 것이오. 장군은 전날의 일로 기분이 좋지 않겠지만, 우리 전군을 지휘해주지 않겠소?"

 

손무가 말하였다.

"군주께서는 전쟁을 '좋아한다[好]'고 하셨습니까? 지금 군주께서는 '나에게 있어 전쟁은 여자보다 좋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초나라나 월나라 등이 전쟁을 즐기는 것은 오나라보다도 지독한 점이 있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예리한 칼과 같은 것으로, 잘못 쓰면 큰일이 나게 됩니다. 그저 '좋아해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또한 군대는 '武(무)'3)입니다. 전쟁을 막아서 평화와 안전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놀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군주께서 '좋아하거나[好]' '놀기 위해서[戱]' 쓰일 병법을 물으신다면, 저는 감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자 합려가 말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참된 병법에 대해서 듣지 못했소. 그저 '좋아하거나' '놀기 위해서' 쓰일 병법을 물을 생각은 조금도 없소. 그리고 예리한 칼을 함부로 휘두를 생각도 하지 않겠소. 전날의 일은 장군이 나에게 병법의 진수를 가르쳐 준 것으로 생각하고 있소. 앞으로는 나라를 위해 여자도 멀리할 것이오. 제발 나에게 병법에 대해 가르쳐 줄 수 없겠소?"

 

이렇게 하여 드디어 식사를 끝낼 때까지 하루 종일 병법을 배우고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합려는 손무에게 부탁하였다.

"장군의 병법은 이제 알겠소이다. 청컨대 손무 장군께서는 우리나라의 정치개혁에도 조언을 해주시오."...

 

해석..>

 

1) '不穀(부곡)'은 천자가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이는 천자인 周(주)나라 왕이 제후들에게 대하여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오왕 합려가 천자가 되고자 하는 야심이 드러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2) 이렇게 세세하게 명령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손무가 齊(제)나라에서 온 외국인이었으므로, 자신의 말이 분명히 전해지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또한 이는 군대에 대하여 '명령이 빈틈없이 전해지지 않으면 함부로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3) '武(무)'는 '창 과(戈)'와 '멈출 지(止)'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결국 군대란 전쟁을 일으키는 도구가 아니라, 전쟁을 막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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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文(오문)

 

오나라 왕이 묻다.

 

<이편의 은작산 죽간 뒷면에 '吳問(오문)'이라 쓰여 있어, 그대로 편명으로 사용했다 한다. 13편 외의 내용으로, 이편의 내용은 매우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며

손무의 군사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

 

오왕 합려가 손무에게 물었다.

"晉(진)나라는 范氏(범씨), 智氏(지씨), 中行氏(중항씨), 韓氏(한씨), 魏氏(위씨), 趙氏(조씨)의 여섯 집안의 우두머리가 장군을 겸임하여 땅과 권력을 나눠 갖고 있소. 이 여섯 장군 가운데 누가 먼저 망하고, 누가 살아남겠소?"

손무는 말하였다.

"범씨와 중항씨가 먼저 망합니다."

합려가 말하였다.

"그 다음에 망하는 집안은 어디겠소?"

"지씨가 그 다음에 망합니다."1)

"그러면 그 다음에 망하는 집안은 어디겠소?"

"한씨와 위씨가 그 다음입니다. 조씨는 겸손하여 전통이나 관습을 중요하게 여기고, 군자를 잘 등용하였습니다. 그러니 진나라는 조씨의 정권으로 돌아갑니다."

 

합려는 말하였다.

"그 이유를 더 자세히 듣고 싶소."

손무는 말하였다.

"범씨와 중항씨는 진나라의 관습법을 멋대로 바꿔서,가로폭 80보 세로폭 160보의 땅을 백성들에게 나눠주어, 거기에서 나오는 수확의 반을 사사로운 세금으로 빼앗았습니다. 이렇게 백성들에게 나눠 준 땅이 좁은데도 농사일에 투입되지 않는 사병들을 많이 기르고 있습니다.

 

이 무거운 세금으로 범씨와 중항씨에게는 분에 넘치는 재산이 쌓이고, 그 기세로 많은 수의 사병을 거느렸습니다. 그 군사력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으니 주인된 자는 매우 교만하고, 사병은 사치하고 난폭합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영지를 늘리려고 여기저기 전쟁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니 그 다음에 망할 것입니다.

 

지씨도 진나라의 관습법을 멋대로 바꿔서,가로폭 90보 세로폭 180보의 땅을 백성들에게 나눠주어, 거기에서 나오는 수확의 반을 사사로운 세금으로 빼앗았습니다. 이렇게 백성들에게 나눠 준 땅이 좁은데도 농사일에 투입되지 않는 사병들을 많이 기르고 있습니다.

이 무거운 세금으로 지씨에게는 분에 넘치는 재산이 쌓이고, 그 기세로 많은 수의 사병을 거느렸습니다. 그 군사력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으니 주인된 자는 매우 교만하고, 사병은 사치하고 난폭합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영지를 늘리려고 여기저기 전쟁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니 그 다음에 망할 것입니다.

한씨와 위씨는 가로폭 100보 세로폭 200보의 땅을 백성들에게 나눠주어, 거기에서 나오는 수확의 반을 사사로운 세금으로 빼앗았습니다. 이렇게 백성들에게 나눠 준 땅이 좁은데도 농사일에 투입되지 않는 사병들을 많이 기르고 있습니다.

 

이 무거운 세금으로 한씨와 위씨에게는 분에 넘치는 재산이 쌓이고, 그 기세로 많은 수의 사병을 거느렸습니다. 그 군사력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으니 주인된 자는 매우 교만하고, 사병은 사치하고 난폭합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영지를 늘리려고 여기저기 전쟁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니 그 다음에 망할 것입니다.

조씨는 백성들에게 배당한 땅이 가로폭은 120보이고 세로폭은 240보로, 여섯 집안 가운데 가장 넓습니다. 그리고 이는 진나라의 관습법과 같습니다. 더구나 조씨는 백성으로부터 사사로이 세금을 거두지 않습니다.

 

조씨 가문은 가난하고, 사병의 수도 적은데 그 대부분은 보통 때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인이 검소하다면, 부하들도 신중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여 백성들은 부유해지고, 조씨는 다른 여섯 집안보다도 부유하게 됩니다. 따라서 진나라는 조씨 가문만이 굳게 살아남아, 진나라의 정권을 짊어지게 됩니다."

그러자 오나라왕이 말하였다.

"좋소. 왕도를 걷는 왕의 길이란 백성을 첫째로 생각하고, 백성들에게 널리 사랑을 쏟으며 백성을 존중한다는 것이구려."

 

해석..>

 

1) 춘추시대 말, 晉(진)나라는 孫武(손무)의 말대로 지씨, 위씨, 한씨, 조씨의 네 집안이 남게 된다. 이후 지씨가 횡포를 부려 위씨, 한씨와 함께 조씨를 치려 하나, 오히려 조씨가 위씨와 한씨를 끌어들여 지씨를 멸족시킨다. 그리고 각자가 진나라 땅을 분할하여 위나라, 한나라, 조나라로 독립한다. 이를 '三晉(삼진)의 분열'이라 하며, 이를 戰國時代(전국시대)의 시작으로 본다.


그리고 이후 지씨의 우두머리인 지백의 가신이었던 협객 예양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三十六計(삼십육계)' 제25계 '偸梁換柱(투량환주)'에서 이야기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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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變

네가지 변화

 

<이 편의 이름도 정확히 나와 있지 않아 의견이 분분하다. 본편의 은작산 죽간 가운데 '四變(사변)'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여 편명으로 삼았다. 13편 이외의 편으로 내용상 제8편 '九變(구변)'의 일부를 보충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을 근거로 '九變(구변)'이 '四變(사변)'이라 할 수는 없다.


이 '四變(사변)'을 한 구절씩 끊어 보면, 나머지 '五變(오변)'에 대한 죽간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첫 구절에서 '四變(사변)'에 대하여 셀 때, "군주의 명령이라도 실행할 수 없는 명령"을 한 변으로 세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것을 근거로 숫자를 뽑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손무는 말하였다.

내가 전에 길 가운데 다녀서는 안 될 길이 있고,

적중에도 공격해서는 안 되는 적이 있고,

성에도 공략해서는 안 되는 성이 있으며,

쟁탈해서는 안 되는 거점이 있고,

군주의 명령이라도 실행해서는 안 되는 명령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길 중에서 다녀서는 안 되는 길이란 이런 경우입니다.


적국의 국경을 넘어서 아직 깊이 침입하지 못하였을 때는 사전에 준비한 적국 안의 지형, 교통, 방어 거점 등의 정보가 정확하지 않아 장래의 전개가 미덥지 못한 경우입니다.


또는 국경 너머 깊숙이 침공하여 후방에서 식량과 물자의 보급 수송선이 길어져 잘되지 않고, 적군의 집중적인 유격전 때문에 보급선이 끊어진 경우입니다.


이와 같은 경우에 이동을 시도하면 불리한 조건이 겹쳐서 싸움에 질 가능성이 커지게 됩니다. 장수가 결단하여 멈추지 않으면, 가운데에서 포위되어 전멸 당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통로는 공격로로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적중에서 공격해서는 안 되는 적이 있다는 말은 이런 경우입니다.

적과 아군이 대치하면서 결정적인 전투는 치르지 않고 있을 때, 곧바로 아군의 피해 상황과 전력을 조사한 다음에 다시 결전하여 적을 쳐부수고 적의 장군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판단합니다.


그 때 적군의 정세를 분석합니다. 혹시 적군에게 병법에 뛰어난 장수가 있어서 싸움에 대한 전술이 다양하고, 군대의 움직임이 교묘한 경우에는 주의해야 합니다.


적이 약한 듯이 보이고, 아군에도 충분한 전투력이 있어서, 적장을 죽이고 크게 승리할 것 같이 보여도, 그것이 적의 속임수일 경우를 경계해야 합니다. 이러한 적군은 결전하여 승리할 것 같더라도, 싸우지 않고 후퇴해야 합니다.

성 중에서 빼앗아서는 안 되는 성이 있다고 한 것은 이런 경우입니다.

아군의 전력을 조사할 때 성을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는가를 판단하기 전에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성을 무너뜨린 다음에 전진 기지로 쓸 수 있을지, 그 성을 얻어서 후방에 남겨 보급기지로 쓸 수 있는지 고려해 보았을 때 적군이 총공격을 해오면 지킬 수 없는 경우입니다.


전방에 있어서 모처럼 쉽게 적군의 성이 쉽게 항복하더라도 적이 쳐들어오면 바로 상황이 뒤집히거나, 이로울 것도 없는 후방의 성은 함락시켜도 함락하지 않은 셈이 됩니다. 이러한 성은 아무리 무너뜨리기 쉽더라도 공격하여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빼앗아서는 안 되는 거점이 있다는 것은 이런 경우입니다.

이는 산지, 골짜기, 늪지, 호수의 네 가지 지형으로 안전히 공격하고 후퇴하며 삶을 도모할 수 없는 곳입니다. 이러한 지점은 빼앗아도 아무런 이익이 없고, 그곳을 지키다가 적의 유격전에 휘말려 병력만 소모하게 될 뿐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지점은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군주의 명령이라도 실행할 수 없는 명령이란 이런 경우입니다.

군주의 명령이 전투에 필요한 임기응변의 작전 판단과 상반되는 경우에는 명령대로 실행하기에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군주의 명령이 처음부터 이러한 전장의 장수의 판단을 구속하지 않고, 오히려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작전 실행 단계에서의 임기응변의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명령은 지장 없이 실행됩니다.


이러한 전장에 따른 재량권을 인정하는 군주와 임기응변의 작전에 뛰어난 장군은 함께 지혜롭게 용병술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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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帝伐赤帝

 

황제가 적제를 치다.

 

<이편은 은작산 죽간 뒷면에 '黃帝伐赤帝(황제벌적제)'라고 되어있어, 편명으로 정한 것이다. 13편 이외의 내용으로, '行軍(행군)'의 '黃帝四軍之利(황제사군지리)'를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손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黃帝(황제)가 남쪽으로 赤帝(적제)1)를 정벌할 때에 용야[龍野]까지 침공하여 숭산 기슭의 벌판에서 싸웠다. 그때에 황제는 음모술수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였고 정공법으로 결전에 들어가, 반격을 물리치며 적군을 철저하게 격파하였다.

그리고 7년 동안은 전쟁을 일으키는 일 없이 백성들을 쉬게 하고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는데 힘쓰며, 생산을 회복하여 경제를 안정시키고, 과거 적이었던 자에 대하여 불평등한 대접을 폐하고 포로들을 석방하였다.

 

黃帝(황제)가 동쪽의 靑帝(청제)2)를 정벌할 때에 양평까지 침공하여 평원에서 싸웠다. 황제는 음모술수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였고 정공법으로 결전에 들어가, 반격을 물리치며 적군을 철저하게 격파하였다.

 

그리고 7년 동안은 전쟁을 일으키는 일 없이 백성들을 쉬게 하고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는데 힘쓰며, 생산을 회복하여 경제를 안정시키고, 과거 적이었던 자에 대하여 불평등한 대접을 폐하고 포로들을 석방하였다.

 

黃帝(황제)가 북쪽의 黑帝(흑제)3)를 정벌할 때에는 무수까지 침공하여 연택에서 싸웠다. 황제는 음모술수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였고 정공법으로 결전에 들어가, 반격을 물리치며 적군을 철저하게 격파하였다.

 

그리고 7년 동안은 전쟁을 일으키는 일 없이 백성들을 쉬게 하고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는데 힘쓰며, 생산을 회복하여 경제를 안정시키고, 과거 적이었던 자에 대하여 불평등한 대접을 폐하고 포로들을 석방하였다.

 

黃帝(황제)가 서쪽의 白帝(백제)4)를 정벌할 때에는 무강까지 침공하여 염택에서 싸웠다. 황제는 음모술수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였고 정공법으로 결전에 들어가, 반격을 물리치며 적군을 철저하게 격파하였다.

 

황제는 사방의 제왕들을 무찌르고 천하를 크게 통일하여 안정시켰다. 그래서 천하의 모든 백성은 황제에게 복종하고 그 밑으로 들어갔다.

 

湯王(탕왕)5)은 桀王(걸왕)6)을 토벌할 때에 명조까지 쳐들어가서 박전에서 싸웠다. 걸왕도 음모술수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였고 정공법으로 결전에 들어가, 반격을 물리치며 적군을 철저하게 격파하였다.

 

武王(무왕)7)이 紂王(주왕)8)을 토벌할 때에 흠수까지 쳐들어가서 목야에서 싸웠다. 무왕도 음모술수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였고 정공법으로 결전에 들어가, 반격을 물리치며 적군을 철저하게 격파하였다.

 

천하를 무력으로 평정한 황제와 탕왕과 무왕은 모두 같은 병법을 쓰며 천지의 진리를 잘 이용하여, 백성의 마음을 얻고 천하를 복종시킬 수 있었다.

 

해석..>

 

1) 赤帝(적제)는 남쪽과 여름을 상징하는 고대의 제왕이다. 불의 신으로 상징되어 炎帝(염제)라고도 불린다. 흔히 神農氏(신농씨)로 알려져 있으며 농경, 시장, 약초, 역법 등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2) 靑帝(청제)는 동쪽과 봄을 상징하는 고대의 제왕이다. 흔히 여와(혹은 복희)를 청제라고 한다. 중국신화에 따르면 무너진 하늘을 보수하였고, 생황을 만들었으며, 결혼의 예법을 만들어 형제간의 결혼을 금지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남녀 간의 인연을 이어주는 신으로 중국의 민중들에게 숭배 받고 있다.

 

3) 黑帝(흑제)는 북쪽을 상징하는 고대의 제왕으로, 有尤氏(유우씨)로 알려져 있다.

 

4) 白帝(백제)는 서쪽과 가을을 상징하는 고대의 제왕이다. 흔히 西羌族(서강족)의 인물로 일컬어지며, 지금의 티베트 족을 가리킨다고 한다.

 

5) 湯王(탕왕)은 하나라의 폭군 桀王(걸왕)을 토벌하여 商(상)나라를 세운 인물이다.

 

6) 桀王(걸왕)은 하나라의 마지막 제왕으로, 인심을 얻은 湯(탕)이 그를 공격하여 폐위 당하였다.

 

7) 武王(무왕)은 아버지 文王(문왕)의 의지를 이어 商(상)나라[殷(은)나라]의 폭군 紂王(주왕)을 몰아내고 周(주)나라를 세운 인물이다. 이 과정에 커다란 공훈을 세운 이가 바로 太公望(태공망)이다.

이에 관한 민간의 이야기가 '封神演義(봉신연의)'로 전해져 온다.

또한 湯王(탕왕)과 武王(무왕)은 후에 역성혁명의 대명사로 흔히 쓰이게 된다.

 

8) 紂王(주왕)은 商(상)나라의 마지막 왕으로, 제위 초기에는 영민하고 용맹한 왕이었으나 경국지색으로 유명한 달기를 얻은 이후로 주색에 빠져 결국엔 周(주)나라를 세운 武王(무왕)에게 토벌 당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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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形二

 

지형 두 번째

 

<이 편은 은작산 죽간 중에서도 훼손이 가장 심한 부분이어서 내용이 거의 연결되지 않는다. 단지 판독된 글자로 보아 '行軍(행군)', '地形(지형)', '九地(구지)' 등과 중복되는 듯하다. 아마도 위의 편들을 보충하기 위한 해설부분으로 보인다. 훼손이 심하여 거의 의미가 없는 해석일 수도 있으나, 13편에 없는 새로운 개념도 보이고 하여 시험적으로 정리해 본다.>

 

...지형은 동쪽을 왼쪽으로 하고, 서쪽을 오른쪽으로 하여...

...머리쪽 땅이 평평하면 왼쪽을 사용하고, 군대는...

...땅이다. 교전하는데 물은...

...는 죽기를 각오해야 할 '死地(사지)'이다. 풀이 자라는 곳은...

...땅이 단단한 곳은...하지 말라...

...'天離(천리)', '天井(천정)', '天宛(천완)'1)...

...이것을 '이로움을 무겁게 한다.'고 한다. 전진하여야 하니, 이를 '지키기 싫어한다.'고 한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이를 '天固(천고)'라고 한다. 왼쪽으로 돌아가니, 이를...라고 한다...

...시야가 탁 트인 높은 곳에 진지를 구축하여야 하며...해가...냇가를 왼쪽에 두면 이롭다고 하며, 오른쪽에 두면 쌓인다고 한다...

...5월에는 땅을...헤아려야 하고, 7월에는...

...전군이 출동하게 되면 아침저녁을 가리지 말고, 오른쪽으로 언덕을 등지고, 왼쪽으로 물을 앞에 두어야 한다. 이를 따르는 자는...

...아홉가지 지형의 분류[九地之法]는 사람의 보편적인 이익을 따르는 것이니 삼가 살피지 않을 수 없다...

 

해석..>

 

1) '天井(천정)'이라는 지형은 '行軍(행군)'편에 나오는 개념이다. 하지만 '天離(천리)'와 '天宛(천완)'은 여기에서 처음 나오는 개념이다. 이에 관한 설명이 없어서 다른 문헌이 발견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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