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 가고 새해가 우릴 기다리고 있네요. 기나긴 코로나와 함께하는 여정이 새 해에는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 봅니다.
슈툴른에서의 진순이는 여전합니다. 구조 당시 추정나이로 계산 해 보면 진순이는 완연한 여덟살 입니다. 여덟살 진순.
황혼에 접어든 나이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생기있고, 호기심 많고 어려보이는 외모덕에 진순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여덟살이라는 나이를 듣고 놀라워합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는 엄마와 아빠는 진순이의 나이가 느껴져요.
진순이의 검은 수염은 줄어들고 하얀 수염만 많아졌어요. 세 시간도 거뜬하던 산책에서 이제는 두 시간이 넘어가면 힘든 기색을 보이기 시작 한답니다. 이곳 여름은 한국보다 선선하지만 여름 다운 기온이 되면 걷는 것을 금방 지쳐 합니다. 요실금도 늘었어요. 세탁기가 더 바빠졌죠.
여름엔 앞 다리에 원인 모를 통증이 주기적으로 오는 것 같아요. 다행이 뼈도 관절도 아직 세상 튼튼하다는 진단 결과를 받았지만요.
엄빠의 쓰다듬어주는 손길을 더 원하고, 개와 고양이, 다른 동물들에게 향한 거친 공격성이 한 풀 꺾인 것도 세월이 만든 영향일까요? ㅎㅎ
함께하며 늙어가는 생명은 더 사랑스러워 집니다.
엄빠의 지난 반려동물 한치, 밤치, 붐치, 부가 그러했듯 진순이도요.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약해지고 부드러워 지는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 돌보는 것, 나에게 의지하는 체온을 느끼는 것, 서로의 신뢰를 확인하는 것, 여전한 냄새와 특정한 버릇 같은 나만 아는 너를 하루하루 확인하는 것. 이런것들이 서로의 결속을 더 단단하고 깊게 만드는 것 같아요. 사람도 동물도.
지난 여름 진순이가 원인 모를 다리통증을 보이다가 심지어 다리를 접질러 발목이 땡땡 부어버린 것을 보고 엄빠는 긴급상황이라 난리를 치며 병원 예약 날짜를 당겨 다음날 당장 병원으로 달려갔었죠. ㅎㅎ 그 때 엄빠는 ‘진순이가 나이들어 관절염인가 보다.’ ‘더 많은 곳을 걷게 해 주고 냄새맡게 해 주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겠구나…’ 하고 드라마틱하게 걱정했더랬죠. 다행히 접질러 인대가 늘어난 것 말고는 진순이의 뼈, 관절, 근육 어느 하나 이상소견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동물 병원에 도착했을 때 부들거리며 겨우 걸어나와 혈변을 보고 다시 들어가던 아주 큰 검은 개 한 마리가 있었어요. 진순이의 x-ray 검사와 의사샘의 진단 소견을 듣고 나서 진순이의 마취가 풀릴때 까지 기다렸다 데리고 나올 때, 그 검은 개가 들것에 실려 나오는 것을 보았어요. 우리 또래의 한 커플이 붉어진 눈으로 함께 걸어나오고 있었죠. 젖은 얼굴의 그 커플은 동물병원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그 개를 차에 싣고 주차장을 빠져나갔어요.
여름동안 산책 때 보였던 진순이의 지친 모습, 아픈 다리, 그리고 병원에서 보았던 아주 슬픈 모습, 그런 것들이 진순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남은 시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진순이 다리가 낫고 아빠의 바쁜 일이 어느정도 정리 되자 마자 검은 숲, 슈바르츠발드로 짧은 휴가를 다녀왔어요. 엄빠에게도 2년만의 휴가지만, 안락과 엄빠만 즐길수 있는 ‘으른들의 오락’을 포기하고 최대한 진순이가 자연에서 많이 걷고 냄새맡을 수 있도록 일정, 숙소를 계획했죠.
그런데 정말 엄마는 참 느리게 배우는 답답한 동물이예요. 검은 숲 에서의 첫 날은 너무 오랜 트레킹은 진순이를 피곤하게 했고, 주말 명소는 사람 뿐 아니라 개들도 참 많아서 진순이가 머즐을 해야 하는 시간도 늘어났죠. 진순아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 날 밥도 잘 먹지 않았어요. 심지어 둘째 날 숙소 근처에서 산책을 하다가 목장의 전기 펜스에 쉬를 하려던 진순이가 감전되는 일을 겪기도 했어요. ㅠㅠ 다행이 큰 상처나 장애를 유발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진순이 좋으라고 계획해 먼길 달려 왔는데 그런 일 까지 생기니 너무너무 속상했습니다.ㅠㅠ
그래도 이후에는 평일이라 사람도 개도 별로 없고, 진순이 체력에 맞게 중간중간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다시 나가는 식으로 일정을 바꾸어 진순이가 평화롭고 즐겁게 산책하며 나름 스트레스도 풀고 회복할 수 있어 참 다행이었지만요.
무엇보다 하일라이트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아마도 진순이에게는 길었던- 여행을 마치고 슈툴른의 ‘내 보금자리’에 돌아온 진순이의 안도와 기쁨이었어요.
말못하는 진순이의 몸짓과 표정에서 안도를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마음 훈훈했어요. 함께 한 시간만큼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싶어서.
여전히 호기심 많고 생기있는 진순이지만, 모험보다는 안정을 좋아하는 나이가 되었나봐요.
일년 동안 많은 이야기가 쌓였지만 엄마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몇 개의 일화만 길어졌네요.
진순이는 원래 구강 관리 간식으로 양치를 대신 했지만, 이제는 정말 매일 칫솔질을 한답니다. 여전히 칫솔을 들고 다가오는 엄마나 아빠를 보면 도망가지만, 막상 칫솔질을 하면 그리 반항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대신 칫솔질 후에는 진순이가 날뛰며 좋아하는 구강관리 간식이 기다리고 있으니 까요.
목욕도 한달에 한 번 꼴로 더 자주 합니다. 엄빠는 아주 효율적이 되어 샴푸에서 드라이 까지 시간이 많이 단축 되었고, 목욕을 자주 하니 여름에 많이 생기던 피부 문제도 줄었어요.
다른 개들 앞을 지나갈 때도 훨씬 통제가 쉬워 졌고 몇몇 개는 거의 못본척 하고 지나치기도 한답니다. 다른 개를 마주칠 때 마다 날뛰든 말든 일단 진순이를 부르거나 줄을 당겨 주의를 끌고 진순이가 엄마에게 주의를 주면 무조건 손 명령을 해서 간식 주었는데 이 방법이 먹혔어요. 가끔은 진순이가 펜스 뒤에서 사납게 짓는 개를 갈기를 바짝 세우고도 조용히 지나치고서는 다 지나치면 멈추어 엄마 앞에 앉아 간식을 요구하기도 한답니다 ㅎㅎ
아직 서툴지만 엄빠가 ‘터치’를 요구하는 곳에 앞발을 대는 새 명령어도 익혔고요.
지난 삼월 생일 선물로 받은 어려운 간식 퍼즐도 어려움 없이 능숙하게 한답니다. 원래 퍼즐의 솔루션이 아닌 진순이만의 편법을 쓰기는 하지만요.
일년 동안 찍었던 사진 중 몇을 올리며 연말인사와 진순이 소식 마칠께요.
모두 건강, 행복 하시고 소중한 사람, 댕댕이, 고양이, 기타 반려 동물과 함께하는 시간을 알차고 값지게 보내시는 새 해가 되길 바랍니다!
첫댓글 글에서 진순이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 울컥했습니다
진순이가 가족곁에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머물길 바라겠습니다^^
글 읽으면서 먹먹했습니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의 시간은 왜이리 빨리 지나가는 것인지.. 아직도 아기같기만 한데.. 늙어감이 느껴지니 못해준것만 생각나니 말입니다.ㅠㅠ 진순이가 엄빠사랑 많이 받고 지내서인지 아직도 동안이고, 활달하네요.. 진순아!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하게 지내렴~~!
잔잔한 감동을 주시는 글..매번 감동입니다 가족모두 즐거운 연말, 건강한 새해 맞으시길 빕니다
진순이를 가족처럼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순이가 해맑게 웃을 수 있는 것도 가족들 덕분입니다.
오 진짜 진순이가 살도 오르고 표정도 달라졌어요 얼핏 보고 진순이가 아닌줄 알았네요
편안해 보이고 사랑받는 티가 팍팍 납니다 감사합니다
글읽는데 가슴이먹먹하네요. 진순이는 여전히 한미모하고있군요~ 진순이에대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바랍니다
진순아~ 오랜만이네~반가웡 ^^
진순이 나이가 꽉찬 8살이라니~깜놀~
정말 동안이당ㅎㅎ🤩
엄빠 사랑 듬뿍듬뿍 받으며
행복하개 지내는 게
동안의 비결인 듯..🤗
진순이에 대해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 배려하시는 애정이 글 곳곳에 묻어나서 새삼 저를 뒤돌아보았습니다.
진심으로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요.
나비넥타이 진수이 넘 멋집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진순이와 함께 하시길~~♡
진순이 얼굴에 하얀부분이 늘긴했네요^^ 반려동물과 나이먹어 간다는것이 참 신기하고 소중한 일 같아요 건강하시고 새해 잘 보내세요~
진순이 언제나 건강해💛
아직도 너무 어려 보이네요 ♡♡ 오래 건강해라. 진순아
진순~ 내년에도 어여쁜 모습 보여주세요. 관절안좋은곳에는 적외선처치하면 좋대요
진순아 갈수록 더 이뻐지는구나
이모도 독일물 먹으면 진순이 처럼 더 이뻐질수 있으려나?ㅋㅋㅋ
진순이 보호자님 내년에도 진순이와 더 행복하고 좋은일들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해피 뉴 이어
혹시나하고 진순이 검색해서 들어와서 읽고 혼자 울다 웃다 다 하다가 갑니다. 동물과 함께 나이들어간다는 것, 나보다 조금 더 빠르게 달려가는 세월을 본다는 것은 정말 안 해본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그런 경험이죠. 진순이를 위한 휴가 너무나 멋진 일이었을 것 같아요. 놀랄 일이 있으셨음에도 바로 수정하고 진순이를 위해 더 멋진 휴가를 즐기다 오시는 엄마아빠의 사랑이 대단하세요. 까미에게 미안해지며 슬쩍 눈치를 보게 됩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복 가득하세요. 160도 고개 돌리는 진순이에게 흰수염이 그만 나기를 이모팬이 응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