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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려타곤(懶驢 坤) 36-2
자금성의 지하 한 구석, 황궁보고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석실 앞을 지키고 있는 수십명의 위사들은 두려운 눈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상대해야 할 적은 단 셋뿐이었지만 그들은 너무나 강한 자들이었다. 한결같이 검은 옷에 검은 복면을 하고 있는 세 사람은 수십개의 기관함정을 돌파하고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지만 몸에 상처하나 입지 않은 상태였다.
"비켜라, 너희들의 실력으로는 헛되이 목숨만 잃을 뿐이다."
탁하면서 음산한 목소리가 복면인들 중의 하나에게서 흘러나오자 위사들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목소리 자체만으로도 위사들의 마음속에 공포를 심어주고 있는 자들이었다. 이미 세 복면인의 전후로 수십명의 동료들의 절단 난 시신이 생겨난 상태였고, 위사들은 자신들의 실력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서 있는 장소에서 유일한 출구에 그 세 명의 복면인이 서 있고, 설사 이곳에서 탈출 할 수 있게 된다 할지라도 황궁 보고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들 보인 뿐만이 아니라 가족까지 모두 죽게 될 테니,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황궁 보고를 지키는 것뿐이었다.
"이곳을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죽게 될 것이다!"
위사들 중의 하나가 그렇게 소리치면서 다시 싸움은 시작되었지만, 지하 깊은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 싸움은 밖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욕설과 함성이 뒤섞이고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건만, 아무도 그곳을 찾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서 위사들은 하나씩 죽어가기 시작하고----.
소구는 야명주가 박혀 있는 천장에 바싹 붙어서 밑에서 싸우고 있는 자들을 흥미진진한 얼굴로 구경하기 시작했다.
'흠, 저들도 환혼경을 찾아 이곳에 온 자들인가 보군. 그렇다면 저들은 반드시 죽여야겠는 걸---?'
싸움을 구경하면서 소구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복면이 중의 하나가 머리 위로 시선을 던지고는 훌쩍 싸움터에서 뒤로 물러났다. 그에 따라 다른 두 복면인들 또한 뒤로 물러나면서 위사들과 복면인의 싸움은 소강 상태로 접어들고, 모두의 시선이 천장에 달라붙어 있는 소구에게 쏠렸다.
"계속 싸우라고. 싸움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줄 여유는 있으니까."
약간 졸린 눈을 하고 천장에 등을 붙이고 밑을 내려다보면서 소구는 한 마디를 내뱉었고, 모두가 멍한 얼굴이 되어 그런 그를 올려다보았다.
"너는 누구냐?"
복면인들 중의 하나가 물었고 소구는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너희들은 마교에서 온 거지?"
"헉! 그걸 어떻게?"
"나하고 같은 물건을 노리고 여길 찾아 온 모양이군."
"그렇다면--- 너도 그 물건을 노리고--?"
아직 살아 있는 여섯 명의 위사들은 복면인과 천장에 달라붙어 있는 박쥐같은 인간이 대화를 들으면서 자신들이 지키고 있는 창고 안에 무림인들이 노리는 귀중한 보물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원래 마교의 물건이었다. 마교의 죄인이 그것을 여기 숨겨 있다는 것을 어렵게 알아내고 찾아 온 우리다. 절대로 그것이 외인의 손에 들어가게 할 수는 없다."
복면인 중의 하나가 내뱉는 말을 듣고는 소구는 피식 웃으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 실력으로?"
소구의 말을 들으면서 세 명의 복면인은 머리 속에서 무엇인가가 툭하고 끊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그대로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아직 살아 있는 여섯 명의 위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복면인들이 고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야기로만 전해지는 강기(綱氣)를 펼칠 정도의 고수인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붉고 푸르고 검은 세 줄기의 강기가 천장을 향해 쏘아지고, 천장에는 한순간 찬연한 금광(金光)이 피어올랐다.
"호신강기(護身綱氣)!"
위사들 중의 하나가 놀라 소리쳤다.
폭음 소리 하나 나지 않은 채 소구를 향해 쏟아진 세 줄기의 강기는 소리없이 소멸하고, 세 명의 복면인은 내상을 입었는지 다시 바닥에 서서 입가로 피를 게워내고 있었다.
"저 놈들은 너희들이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여야 된다고, 나한데 덤비지 말고 저 놈들부터 빨리 죽여."
소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그대로 세 명의 복면인들의 복장을 뒤집고 있었다.
"우리가 네 부하냐?! 누구보고 해라 마라야?!"
복면인 중의 하나가 그렇게 소리치면서 다시 소구를 향해 몸을 날리면서 검을 휘두르고, 소구는 귀찮다는 듯 손등으로 칼을 후려쳤다.
"크 아 악!"
복면인 중의 하나는 그대로 비명을 내지르면서 멀리 날아가 벽에 부딪치고 바닥에 떨어지더니 그대로 꼼짝하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진 그자의 몸에서는 피가 계속 흘러나오고---.
거기 모여 있는 모두가 공포가 담긴 눈을 하고 천장에 달라붙어 있는 소구를 바라보았다. 모두의 시선의 받고 있는 소구는 활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어이 어이, 너무 겁 먹지들 말라고. 아프지 않게 죽여 줄 테니까."
그 다음에 소구는 작은 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귀찮게 됐구만---, 시꺼먼 놈들이 하얀 놈들 다 죽일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그 소리를 들은 시꺼먼 놈들(마교의 암흑천사들)과 하얀 놈들(황궁의 위사들)은 공포라는 감정 위에 또 다른 감정이 생겨나고 있었다. 가만히 꼼짝 안하고 눈치만 살피고 있던 황궁 위사들이 먼저 분통을 터트리며 소구를 향해 들고 있던 검을 휘두르며 덤벼들고, 잔뜩 열 받은 마교의 복면인들 또한 소구를 향해 검과 채찍을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우리는 장기판의 졸이 아니다!"
복면인들 중의 하나가 칼을 휘두르며 그들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을 터트리고 있었지만, 소구는 그들의 공격을 천장에 달라붙은 채 피하면서 그들의 신경을 긁어대는 말을 계속 내뱉고 있었다.
"검은 놈들은 마교의 졸병이고, 하얀 놈들은 황궁의 졸병이니--, 졸(卒) 맞는 것 같은데---."
이를 악물고 휘둘러대는 그들의 무기는 계속 헛되이 허공만을 가르고, 소구는 이리 저리 몸을 피하면서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들고, 그에게 공격을 가하고 있는 이들의 신경을 긁어대는 말을 계속 내뱉고 있었다.
"천하를 장기판이라고 치면, 누군가의 밑에서 움직이고 있는 이들은 장기판의 졸이 아닐 수도 있는 걸까? 그렇군. 마(馬)나 상(像)이 될 수도 있겠군. 아니야,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는 자들이니 졸(卒)이 아니라 포(包)가 되는 건가?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
중얼거리면서 이리 저리 몸을 움직이는 동안 소구의 몸을 검과 도와 채찍이 수도 없이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공격에는 신경도 안 쓰고 제멋대로 중얼거리는 소구의 말은 공격을 가하고 있는 여덟 명을 너무 열 받게 하고 있었다. 미친 듯이 무기를 휘둘러대는 여덟은 나중에는 동귀어진의 수법을 사용해 같이 죽자는 식의 공격까지 퍼부어 댔지만, 소구의 몸에 옷자락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기 시작했다.
반 시진이 지난 뒤에 여덟 명은 완전히 지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바닥에 주저앉아서, 분노에 찬 시선으로 소구를 노려보았다. 죽이려면 깨끗이 죽일 것이지 사람을 이렇게 열 받게 하고 갖고 노는 악랄한 인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그들이었다.
"재미없게 왜들 그래? 이봐 움직여 움직이라고. 모름지기 진정한 무인이라면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눈앞에 적이 보이면 끝까지 싸워야지."
너무 지쳐서 손 끝 하나 움직일 힘이 안 남은 상태로 만들어 놓고는, 소구가 그들 중의 한 명의 옆으로 다가가 툭툭 발로 엉덩이를 걷어차며 하는 말이었다.
"크 아 악!"
그래도 그 중 가장 고수인 마교의 암흑 천사 중의 하나가 괴성을 내지르며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 검을 크게 휘둘렀다.
"베었다!"
그가 환성을 터트리며 소리치고, 그 광경을 보던 다른 일곱이 서로 싸우던 적이라는 것도 잊고 서로를 얼싸 안으면서 환성을 터트렸다.
확실히 그가 불시에 휘두른 칼에 소구의 몸이 잘려지는 것이 모두의 눈에 보이기는 했지만, 천장에 박쥐처럼 붙어 있는 소구는 한심하다는 듯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봐, 이봐, 너희들은 적이야. 왜 서로 껴안고 난리야? 설마 너희들 모두 남색을 즐기는 변태들이냐?"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들 여덟은 천장 위로 시선을 던지고,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깨달은 마교의 인물은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이형환위(移形換位)----, 젠장 내가 잔상을 베고 좋아했다니----?"
절정고수라 부르기에 추호의 부족함이 없는 마교의 암흑천사들이었다. 그들은 허무한 얼굴로 천장에 달라붙어 있는 괴물을 바라보았다. 그들 셋이면 설사 마교의 교주라 할지라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고 알려진 자들이었고, 또 스스로의 강함을 믿는 자들이었다. 아직 서 있는 두 복면인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자의 뜻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아무래도 우리가 스스로 죽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죽이고자 하면 언제든지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자입니다. 우리가 자살 할 때까지 저자는 우리를 계속 갖고 놀 생각인 모양입니다.'
'젠장!'
'대장님, 우리가 살아 있는 시간이 길수록 치욕을 당할 시간은 길어질 겁니다. 어쩌시겠습니까?'
'은근히 저자는 우리가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다. 그러니까 도망도 못치고---, 이곳에서 알아서 죽어달란 말이겠지?'
천장에 발만 붙인 채 거꾸로 서 있는 소구는 입을 다물고, 전음을 나누고 있는 듯한 두 무리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다.
자금성의 지하를 지키는 여섯 명의 위사들 또한 결코 낮은 실력을 지닌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 또한 고수라 불릴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기에 이곳을 지키는 중책을 맡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오늘 이곳을 찾아온 자들이 너무 강한 자들이었기에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 또한 전음을 사용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 역시 전음으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 상태였다.
'저자의 뜻은 분명하다. 우리가 치욕에 몸부림치다 스스로 죽을 때까지 저자는 우리를 계속 놀려댈 것이다.'
'저 놈도 무인이야?!'
'억울하면 너도 고수가 되면 되지. 그러나 우리에게 고수가 될 시간은 없을 것 같군.'
'으--, 먼저 죽은 동료들이 부러워지는 이유가 뭐지?'
'최소한 그들은 무사로서 무사답게 죽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나도 부럽다.'
소구는 움직이지 않고 전음으로 떠들어대는 두 무리의 인간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황궁의 보물창고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돌로 양각된 황궁보고라는 글자가 새겨진 석문(石門)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고 있을 그 때,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던 여섯 명의 위사와 두 명의 복면인은 원한에 찬 눈으로 소구를 노려보다 동시에 자신들의 머리 위 천령개를 향해 스스로 수도(手刀)를 내려쳤다.
한꺼번에 여덟 명이 숨이 끊어져 땅에 쓰러지고, 천장에서 바닥으로 내려선 소구는 석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엉금엉금 기어서 바깥으로 탈출하려고 하던 한 명의 복면인이 소구의 눈에 들어왔다.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고만 있는 소구의 모습을 보면서 마교의 제자는 그 눈빛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알아서 죽어.'
맨 처음 소구를 공격했다 의식을 잃었던 복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바닥에 누운 상태에서 동료들이 어떤 일을 경험했는지 보고들은 상태였다. 죽을 때 죽더라도 그런 일을 경험하면서 죽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그였다. 마지막 살아 있던 마교의 제자도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원한에 찬 눈으로 소구를 노려보다, 이빨 사이에 숨겨 놓은 독단을 깨물었다.
"딱!"
입안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그의 몸은 흰 연기를 뿜어내며 녹기 시작하고, 그 광경을 보면서 소구는 걸음을 옮기면서 중얼거렸다.
"누가 죽으라고 했나? 다들 알아서 죽네?"
그 한마디를 끝으로 석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는 소구는 원한에 찬 눈으로 쓰러져 있는 시신들 사이를 지나치며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들의 몸에 난 손 하나 댄 적이 없어. 당신들은 스스로 죽은 거지, 결코 내가 죽인 게 아니라구. 근데 왜 다들 날 노려보면서 죽는 걸까?'
소구는 속으로 그런 소리를 주절거리면서 황궁보고 라는 글자가 새겨진 석문 앞에 서서 기관장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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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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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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