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사도신경
사도신경(使徒信經)이란 사도들이 믿었던 신앙고백, 신조를 뜻한다고 붙인 이름인데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사도신경의 유래를 잘 모르고 있고 심지어는 사도신경을 집회 때 암송하지 않으면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사도신경이 어디서부터 전래되었으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를 정확히 고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①사도신경은 사도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도신조(Symboum Apostolorum)라고 부르는 옛 이름은 390년 교황 시리우스에 의한 밀라노 종교회의의 한 문서 속에서 발견되었다. 같은 시대(404년)에 루피누스(Rufinus)는 그의 사도신조 해석에서 각 조항의 사도적 기원에 관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12항목으로 나열했다. 캐니스 레토래트 기독교사에서는 사도신경이 서기 6세기경에 완성되었을 것이라고 하며 기본골자는 훨씬 더 일찍부터 유래했을 것이라고 하나 십중팔구는 로마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서기 360년에 아리안 고백에서 처음으로 `음부에 내려가사`가 첨가되었고 750년에 정식으로 삽입되었으며(현재는 없지만), 카톨릭교회를 뜻하는 거룩한 공회는 650년에 삽입되었다고 한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는 650년 이후에 삽입되었다. 사도신경이란 명칭이 처음 발견된 것은 서기 390년경이며 오늘날의 사도신경보다는 더 짧았고 또는 긴 것도 있었으나 공식적인 사도신경은 650년에서 850년경까지 손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고 거룩한 교회와 거룩한 카톨릭교회라는 용어를 가지고 루터파에서는 계속 논쟁하고 있다 한다.
②사도신경은 로마 카톨릭이 만들었다. 사도신경은 천주교 신자가 고백하는 신앙의 핵심이며 이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천주교 신자라는 표시가 되는 것이다. 또한 개신교 신자들이 카톨릭으로 개종할 때 정통 카톨릭의 신앙을 고백하는 뜻으로 이 신경을 외운다. 이러한 사도신경이 생기기 까지는 많은 신학자들의 논란도 있었으며 더욱이 이단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이 곧 이 사도신경으로 되어왔다. 사도신경의 필요는 세례를 위해 필요하고 또한 미사 때 감사기도로도 하며 히포리투스(Hippolytus)의 사도전승(Tradito Apostolica)에 나타난 신경은 고대 로마신경이라 불리우며 사도신경의 주체였다고 한다. 사도신경 중 거룩한 공회(Holy Catholic Church)가 나오는데 사실상 공회(公會)란 로마 카톨릭을 뜻하기 때문에 오늘날 모든 개신교에서 교회당에서 암송하는 사도신경은 모르는 사이에 카톨릭을 공인하는 암송이란 논리가 된다.
③사도신경에 대한 정리 사도신경의 작성은 사도들이 썼거나 만든 것이 아니며 성경 어디에도 암송하라는 구절이 없다. 사도신경의 초기 원문은 `로마신조(Roman Symbol)`에서 유래하였고 로마 카톨릭에서는 절대적으로 사도신경을 미사 때와 세례식 때 고백하고 있으므로 진실한 그리스도인들과는 그 유래가 관련이 없는 것이다. 거룩한 공회에서 공회는 카톨릭(Catholic)을 의미하는데 카톨릭이란 캣(Cat)과 홀릭(Holic)을 합쳐서 만든 합성어이다. 그리고 근본 의미는 `여신 세미라미스에게 바치다`란 뜻이 들어있는 용어이기에 사도신경에 넣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원칙적으로 사도신경을 암송해야 할 성경적 근거가 없다. 다만 사람의 전통 유전일 뿐이다. 때문에 사도신경을 전부 부인해도 이단적 요소가 있고 전부 시인해도 이단적 요소가 있다. 다만 암송할 필요가 없어 하지 않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정죄할 수 없다는 것이다.
Ⅱ.주기도문
「주기도문」을 모든 집회 때나 또는 비정기적 집회 때에 습관처럼 암송을 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또한 그리스도인들도 형식적인 암송을 해야 하는가를 성경을 조명삼아 명확하게 정립이 되지 못한 까닭에 오늘날 교계에서는 모든 교회 집회 행사 때마다 중언부언식의 암송을 하는가 하면 또는 주기도문을 암송하지 않는다고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일까지 있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시고 주님께서는 왜 주기도문을 가르치셨으며 오늘날 교회들에게 향하신 성령의 뜻은 주기도문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신가를 살펴 보겠다.
①주기도문에 대한 배경 마태복음 6장에서 주님의 기도문은 기도문을 암송하라는 뜻으로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모형으로 주셨는데 6장 앞 부분에 과거 율법주의 유대인들인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제사장, 서기관들을 책망하시고 기도문제를 언급하시면서 기도의 본질과 참 의미를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기도를 `외식하는 기도`라고 책망하시면서 그러한 기도에 대조되는 기도 모형으로 주신 것이 바로 주기도문인 것이다. 오히려 형식화된 죽은 의문(儀文)을 암송해서 기도를 끝냈다고 하는 외식적 종교의식으로 고질화 되어있는 유대 종교인들을 책망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참된 기도의 본을 가르쳐 주셨던 것이지 주기도문을 암송하라고 하신 뜻이 절대 아니다. 따라서 형식적이고 죽은 의문(儀文)인 짜여진 기도문을 암송하는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기도를 따르지 말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 주기도문인데 그것을 아무 의미없이 반복적으로 암송한다면 주님의 가르치셨던 본래의 뜻을 오히려 대항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②의문(儀文)의 기도는 죽은 기도 기도란 하나님과의 영적 호흡이며 대화이다. 타인에 의하여 짜여진 기도문을 암송하는 것은 죽은 형식에 불과한 것이다. 때문에 정작 주기도문을 배웠던 사도들은 사도행전부터 계시록까지 단 한번도 주기도문을 암송한 기록이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4:24)`. 신령(in spirit)과 진정(in truth)이란 말의 뜻은 정성을 다한다는 뜻이 아니라 성령을 받은 즉 구원받은 사람이 진리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체가 예배하는 생활이다. 그것이 산제사, 산예배(롬12:1)가 되는 것이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로 심령 안에서 주님과 대화하는 것이 바로 기도인 것이다.
③구체적 의미
ⅰ)`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6:9) 먼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자는 거듭난 사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게 하는 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들의 죄가 영원히 사함 받았다는 것을 믿고 구원받는 것이다.
ⅱ)`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40)`. 하나님의 가장 큰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전 인류가 죄사함을 통한 영혼구원(벧전1:9, 요3:15-16)인 것이다. 그러므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예수님의 피로 죄를 속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그리고 그 뜻을 예수님께서 이루셨다는 사실이다.
ⅲ)`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6:11) 이 말씀은 특히 당시 제자들을 위한 매일매일의 양식을 달라고 가르치신 기도였는데 제자들은 부르심을 받을 때나 사역하는 동안은 절대로 양식도, 지팡이도, 두벌 옷도 가지면 안되게 되었고 매일매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살도록 되어 있었다. 때문에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마4:4에서처럼 말씀이 우리에게 양식이 된다. 항상 말씀을 간구하고 바라는 모습이 필요하다.
ⅳ)`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6:12)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는 기도를 오해하면 안된다. 요13:1-11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는 모습이 나온다. 이미 목욕한 자는 구원받은 자를 얘기하고, 발 씻는다는 것은 이미 구원받은 자가 생활 속에 짓는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는 구원받은 후의 생활 속에 짓는 죄에 대한 자백(부분적인 회개)인 것이다.
ⅴ)`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6:13) 여기서 시험은 모든 성도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사실이나 주기도문이 제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졌기에 예수님이 고난 받으실 때 제자들이 당하게 될 시험을 염두해 두시고 가르치신 말씀이다.
④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주기도문은 문자 그대로 외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기도의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 이제 우리는 주기도문을 주문처럼 중언부언식으로 암송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셨던 참 뜻의 진리를 욕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틀에 박힌 의문(儀文)은 죽은 것이다.
첫댓글 좋은 글입니다
옳은 말씀.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은 다 인간이 만든 것으로 장로들의 유전에 불과하다. 계시록에 "하나님말씀 이외에 더하거나 제하면 재앙과 거룩한 성(천국)에 참여함을 제한다"(계22:18.19)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말씀에 더한 것이지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전통입니다. 이걸 가지고 이단이라 하는 분 들 보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