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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6세와는 다르잖아.”
“다르지. 루이 16세는 병력을 불러오려는 시도를 잠깐 했고, 망명 가려던 것이 걸려서 처형당한 것이고. 진짜로 자신의 백성에게 총을 쏜 니콜라이랑은 다르지.”
레닌은 그렇게 말하며 트로츠키가 정리한 루이 16세의 재판 문서를 다시 들춰보았다. 루이 16세의 사형은 프랑스 국민공회에서 1표 차로 과반을 넘겼기에 가결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소비에트 러시아에서는 니콜라이 2세에게 우호적인 정당이 단 하나도 없었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전향한 트루도비키조차 2월 혁명으로 집권한 공화주의 세력이었고, 가장 왼쪽에 있는 아나키스트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공산당, 사회민주노동당, 사회혁명당 3대 정당 또한 니콜라이 2세를 변호하지 않았다. 그 할아버지에게 폭탄을 던져 죽여버린 사회혁명당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1905년 혁명과 2월 혁명을 이끌었던 사회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의 입장이었다.
“부하린 그 녀석은 공개 총살형을 하자고 했다니깐.”
보그다노프는 실실 웃으며 체스판의 말을 옮겼다. 별생각 없이 자신의 차례에 나이트를 옮기려던 레닌은 어리둥절해 체스판을 살폈다.
“아니 잠깐.”
레닌은 한참 자신의 체스판을 보며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우리 말빨 좋은 브론시테인은 아직도 떠들고 있나 봐?”
보그다노프는 재판장이 된 창밖 멀리 있는 겨울궁전을 흘긋 바라보았다. 그 사이 레닌은 고심해서 말을 옮기고는 허리를 폈다.
“멘셰비키인 비신스키 그 친구가 재판을 어떻게 끝낼 때까지 전부 다 짜 놨어. 그리고는 특별사면 안이 중앙위원회에 회부되게 하고, 그 결과까지 다 정해놨지 뭐야.”
“음, 어떤 식으로?”
보그다노프가 한 번 더 말을 옮기자 레닌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루 만에 논의가 끝나고 기각되고 수정되고 하는 것이지. 새벽이 지나기 전에 형이 집행되는 것이고. 이번 회기의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처리해 놔야, 후일 사면되는 일이 없을 거라던데. 이건 이츠하크 스테인베르크가 귀띔해주었다던가…. 트로츠키가 최종 정리를 했지.”
“역시 브론시테인은 발이 넓다니깐. 자기 서 있는 곳도 지키면 참 좋으련만. 자. 울리야노프. 7월 혁명이다.”
“아니, 이놈이? 체스에선 킹 잡는 것 아니야. 체크라고 안 해?”
“하지만 이건 사회주의 체스잖아. 인민이 킹을 잡아야지!”
“뭐가 어째?”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모든 게 바뀌어야 한다더니 체스 룰은 안 바뀌나 보지? 양심이 머리털만큼 있네.”
“개소리 집어치워!”
*
공산당의 1인자와 과거의 2인자가 옆 건물에서 체스를 두다 싸움판을 벌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니콜라이 2세의 재판장에서는 1905년 혁명 당시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부주석이었던 트로츠키가 출석해 발언 중이었다.
“우리는 그 일요일 날에 니콜라이와 블라디미르가 무고한 인민들에게 총을 쏘라고 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때 수천만 명이 죽었지요. 네. 저는 그 현장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오히려 더 끔찍했습니다. 왜냐? 자신에게 자비를 구하던 농민들마저 쏴 죽인 니콜라이는 그걸로 모자라 그 해부터 다음 해인 1906년 초까지 파업하고 태업하는 노동자와 농민 1만 5천 명을 사형시켰습니다. 2만 명이 다쳤고 4만 5천 명이 유배되었지요.
러시아의 군주는 전통적으로 표트르 시대 이후로 전러시아의 황제이자 독재관이라는 호칭을 썼습니다. 인민의 아버지로서, 인민의 그늘로써, 무고한 인민을 보듬어야 할 니콜라이는 그 점에서 악랄했습니다. 무능한 게 아닙니다. 무능했다면 우리는 니콜라이를 일반 인민으로 만들어 노동자의 처지를 느끼게 했습니다. 하지만 니콜라이가 한 모든 일은 자신이 전제정에 맞게 보듬었어야 할 인민을 학살한 것뿐입니다!”
정치적 수사와 혁명적 발언을 하기 좋아하는 트로츠키였지만, 그가 아직 멘셰비키였던 시절 직접 발로 뛰며 겪었던 1905년의 상황을 얘기하는 모습에선 쉬이 보기 힘든 진심이 느껴졌다. 당시를 아는 극소수의 국내파 고참 혁명가들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의 사태를 겪은 농민과 노동자들이 바로 사회주의자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단 한마디를 중얼거리고 다녔을 뿐입니다. ‘이제는 차르가 없다.’ 인민들이 군주를 받아들여야 할 모든 이유를 군주가 스스로 파괴한 것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이라던 러시아인들이 인민주권을 깨닫게 된 이유는, 차르가 그걸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국가와 신민에게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고, 그것에 반발하면 쏴 죽여버리겠다.’ 러시아가 일찍이 만나지 못한 성군 아닙니까?”
재판은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변호사로 자청한 무라비요프는 인신공격이나 절차적 문제가 있을 때만 항의를 하는 수준이었고, 실제 혐의에 대해 검사인 비신스키나 증인들이 열변을 토하면 경청하는 듯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포승줄에 묶인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는 이미 일이 어떻게 될지 짐작했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비신스키는 이미 몰래 두 명에게 ‘차르 부부를 제외한 모든 황족을 망명시키는 대가로 죄를 인정하라’라는 사법거래를 제안한 뒤였고, 차르 부부는 그 거래를 받아들였다.
“들으셨습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이곳에 모인 동무 여러분. 과거 프랑스에서 루이 16세가 사형될 때, 당시의 혁명가들 대다수가 특별히 프랑스 인민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던 루이 16세를 사형에 처하게 하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도 자코뱅당과 프랑스의 혁명가들은 루이 16세를 사형했습니다. 인민의 국가, 지배계급의 억압이 없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선 그 지배계급의 상징인 군주를 일개 인민으로서 법에 따라 처벌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루이 16세는 외국으로 망명해 자신이 다스리던 국가의 인민을 탄압할 군대를 모으려 했습니다.
바로 이곳에 있는 니콜라이가 했던 일과 똑같습니다. 선하고 인자하다는 호평을 받았으며, 인민을 탄압하려는 시도는 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던 루이 16세조차도 ‘배반’으로 인한 죄는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권한 그 날부터 퇴임하는 그 날까지 곳곳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어떠한 개혁도 제대로 진행하지 않으며, 인민을 벌레 죽이듯 죽여댄 니콜라이에게는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이건 신기한 형태의 재판이군.’ 단순한 공개재판이 아니었다. 비신스키의 발언을 듣던 일리야는 그런 단어를 떠올렸다. 특히 비신스키는 일리야도 혀를 내두르게 만든 냉혹한 사람이었다. 일리야는 아직도 증인들의 발언을 제외하고 이 재판이 ‘리허설을 거친 연기’라는걸 믿을 수가 없었다. 비신스키, 퍄타코프, 니콜라이 2세, 알렉산드라 황후 모두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연기 말이었다.
말 그대로 ‘우리가 니콜라이 2세를 죽인다’라는 선언을 하기 위한 알려주기용 재판이었다. ‘전시재판’이라는 용어도 적합했다. 일리야는 이 전시재판이 불쾌했지만, 한편으로 이게 굉장히 강력한 무기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이러한 것들을 그가 한때 그렇게도 배격했다는 건 이미 잊은 뒤였다.
*
“발표하겠습니다.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는 1920년 1월 22일 오전 11시에 이사크 스테인베르크 법무인민위원 및 법무인민위원회를 통해 접수된 두 가지의 특별사면 및 특별감형 안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법질서의 수호와 인민대중의 의지에 따라 본 중앙집행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의결하였다. 첫 번째.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로마노프의 사형 판결에 대한 사면, 혹은 감형은 불가하다. 두 번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로마노바에 대한 사형 판결에 대한 사면은 불가하나, 제국 시대의 학정 및 폭정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 대상이 아닌바 감형은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로마노바의 사형 판결은 무기징역으로 특별감형한다. 이상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 주석 야코프 스베르들로프.”
스베르들로프가 자신과 중앙집행위 비서 세레브랴코프가 서명한 문서를 읽어내려갔다. 10시에 판결이 나고, 11시에 접수되고, 12시부터 3시까지 ‘토론’이 진행된 뒤였다. 외신 기자들까지 초청해놓고, 일부러 중앙집행위 사무실 안쪽에서 고성이 오가도록 연출까지 한 비신스키와 트로츠키의 치밀함에 일리야는 혀를 내둘렀다.
물론 외신 기자들은 유례없는 신속한 일 처리와 미리 준비한 듯 딱딱 맞춰 진행된 재판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고 곳곳에서 탐문을 하러 다녔다. 하지만 모든 정파와 고위 지도층부터 무지렁이 농민까지 모두가 싫어하는 차르의 재판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기껏해야 ‘어차피 사형일 테니 좀 더 일정을 넉넉히 잡았어도 되지 않느냐’ 정도가 가장 큰 비판이었다. 러시아의 지도부는 프랑스처럼 ‘입법부의 투표로’ 사형 판결이 나는 것보단 체계가 잡혔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알렉산드라 황후가 솔로베츠키 수도원으로 유배 및 수용되기로 결정되어 기차를 타고 페트로그라드를 떠난 뒤, 저녁 6시 니콜라이 2세는 독일제 전등이 환하게 켜진 겨울궁전 앞에 세워졌다. 겨울이었기에 해가 지고 있었고, 1km 바깥에 쳐진 차단선이 니콜라이 2세의 사형을 공개 아닌 공개로 만들었다.
사형 방식으로는 총살형이 결정되었고, 니콜라이 2세가 군복을 입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피의 일요일에 대한 복수’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사복을 입히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표도로프 자동소총을 든 사형집행인들은 상관들의 묵인하에 처형대 위에 서 있던 니콜라이 2세와 대화를 나누었다.
“위대하신 황제 폐하. 저는 세르게이 비탈리예비치 므라치콥스키입니다. 토볼스크에서 만났었지요.”
토볼스크 점령을 이끌었던 므라치콥스키 중령은 누가 봐도 사적인 감정이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실실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저는 폐하의 은혜로 감옥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바로 폐하께서 머물던 토볼스크 옆 수르구트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은혜롭고 감격스럽습니까, 감옥에서 태어나다니.”
니콜라이 2세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후로도 몇 명의 집행인들이 떠들었지만,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군 대령의 정복을 입고 최고의 훈장이라 할 수 있는 성 게오르기우스 3등 훈장을 패용하고 나타난 솔제니친을 보자 니콜라이 2세도 눈에 띄게 동요하였다.
“자네는…. 이반 데니소비치 솔제니친 대령이군.”
모든 성 게오르기우스 훈장 수훈자들을 모아 파티까지 열었던 니콜라이 2세에게 장군이 아닌 수훈자들은 특별히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그도 알고 솔제니친과 소비에트 러시아의 지도부도 아는 사실로, 성 게오르기우스 3등 훈장을 받고도 붉은 군대에 자발적으로 가담한 것은 솔제니친이 유일했다.
“폐하. 저는 오늘 타넨베르크에서, 나로흐에서, 동부전선에서 죽어간 백만 명이 넘는 장병들을 대신해 나왔습니다. 당신이 이곳에서 1905년 러시아 인민을 버린 뒤에도, 조국을 지키겠다고 나섰던 그 장병들을 대신해서입니다.”
노골적으로 니콜라이 2세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던 다른 집행인들과 다르게 솔제니친은 매우 진중한 표정이었다. 일종의 사명감과 의무감 같은 것이 그의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폐하께서 모길레프의 야전사령부에 숨어 페트로그라드의 인민과 최전방의 장병들 모두 외면하는 동안, 저는 제 부대가 전멸하는 것을 다섯 번을 겪었으며 상관이 죽는 것을 세 번, 부관이 죽는 것을 일곱 번 겪었습니다. 제가 눈앞에서 지키지 못한 장병들은 수백 명에 달하고, 나아가 제 몸에도 총알 자국이 있습니다. 이게 모두 총사령관 직위에 직접 취임한 폐하의 은혜였겠지요.”
“나는 직접 지휘하지 않았네.”
“예, 저도 총참모장 미하일 알렉세예프 보병상장이 지휘한 것은 압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폐하? 폐하는 차르였을 때도 차르로서의 일을 하지 않으셨고, 총사령관이었을 때도 총사령관으로서의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참 답답했습니다. 전제 권력이 있다면 그걸로 뭔가를 해야 했습니다. 부패하고 사치를 즐기든, 정적을 모두 죽이며 절대 권력을 휘두르든, 러시아를 뛰어난 제국으로 탈바꿈하든, 무언가를 했어야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폐하. 폐하께서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고 인민을 탄압하는 데에만 몰두했습니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신부에게 고해성사할 수는 없겠나?”
니콜라이 2세가 묻자 솔제니친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저승이 있다면, 거기 먼저 가 있는 게오르기 가폰 신부에게 사후 고해성사나 받으시죠.”
*
연속적인 총성이 울리는 것을 들으며 일리야는 잠깐 눈을 감았다. 니콜라이 2세의 사형을 마지막으로 소비에트 러시아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사형이 폐지될 예정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총소리는 새 시대를 알리는 종소리와 같은 것이었다. 이윽고 눈을 뜬 일리야는 결국 소식을 전달했다.
“표트르.”
“왜, 형.”
“가서 시신을 치우도록 해. 트로츠키 동무의 지시야.”
표트르는 그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떴지만, 이내 주먹을 꽉 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리야는 표트르가 자신을 지나가면서 중얼거리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난 틀리지 않았어….”
*
1만 5천명 사형, 2만명 부상, 4만명 유배는 실제 통계입니다.
비신스키는 실제로 지노비에프, 카메네프, 부하린, 라데크 등을 사형시킨 전시재판의 재판장이었습니다. 멘셰비키 출신인데도요. 자기도 숙청 안 당했습니다.
사실은 썼다 지운 내용이 좀 많습니다. 이제는 로그 따라 가는 것도 좀 그렇고, 중국이라는 대 이벤트를 두고 꼭 정리해야 하는 내용들을 추려내느라요. 더군다나 연말이라고 무지하게 바쁘네요. 어휴..
첫댓글 드디어 제가 활약할 시점으로 넘어가는군요...!
국민혁명이 다가옵니다..!
국민혁명은 또 어떻게 다르게 전개될 지가 기대되네요. ㅋㅋㅋ
그때 장작림이 미쳐서 대만주제국 황제를 선포하고 난리가 났었는데 그 뇌절(…)이 그대로 나올지도 궁금하군요.. ㅌㅋㅋㅋㅋ
히틀러가 롤란트 프라이슬러한테 “이 자가 우리의 비신스키다!” 할 때 그 비신스키군요. ㅋㅋㅋ
네 맞습니다. 정말 기이한 인물..
차르만 죽이는건 너무 관대한데...
라스푸틴을 중용하고 신뢰하는데 황후나 아이들도 관여된지라.
역사적으로 많은 구소련계 사형제폐지 국가는 감옥에서 의문사가 '매우' 많습니다. 러시아와 투르크메니스탄등이 그렇죠.
@렌지파일 너무 곱게 죽이는 느낌이라
표트르의 대사가 의미심장하네요. 이게 '지금까지 해온 행적'이 틀리지 않았다고 되새기면서 인간성을 잃어버린 백정의 길을 걷는건지, '나는 틀리지 않았다'로 혁명에 마지막이란 없다고 생각하는건지 알기 어렵네요.. 아니 어쩌다 단순 전사캐가 입체적이 된거지;(..)
과연 괴물을 인간으로 바꾸려다 본인이 반인반괴가 되어가는 일리야의 행보는 어떻게 바뀌는건가..
단순 전사캐는 살아남지 못하니까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