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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려타곤(懶驢 坤) 36-3
"없다!"
황궁보고라는 자금성의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밀실 안에서 한 마디의 고함이 터졌지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곳을 지키던 자들은 모두 죽은 상태였고, 다른 이들이 있는 지상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장소였다.
온 몸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소구는 허탈한 얼굴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창고 안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있을 줄 알았는데----, 내 삶이 바뀐 것처럼 다른 사람의 삶도 바뀌었을 테고--. 내가 알고 있던 일들 또한 바뀌어 있을 것이라는 걸 생각해야 했었는데----."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리면서 소구는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검으로 모습을 바꾼 극악봉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어떻게 하지?"
난감한 얼굴로 밖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그는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거울을 깨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렇게 되면---, 묘강(苗岡)으로 가서 마교를 멸망시켜야 하는 걸까? 아니 그놈이라면 어쩌면 거울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몰라. 그래도 제 집인데---, 자기 집에 있는 물건이 어디에 가 있는지 알지도 몰라."
그대로 자금성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던 소구는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고,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한 장소를 향해 몸을 날렸다.
밀실 안에서 울고 있던 소년은 울음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허공에 둥둥 떠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귀---귀신---."
벌벌 떨면서 소년이 한 마디를 내뱉고, 듣는 귀신은 화가 난 표정으로 소년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누구보고 귀신이라고 하는 거냐?!"
소리치는 순간 소구의 발과 주먹은 소년의 온 몸을 골고루 두들겨 패고 있었다.
'이놈은 그 때도 열 받게 하더니, 이번에도 열 받게 하는 군. 살아 있는 나를 귀신이라고 하다니---?'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소구는 연신 소년을 두들겨 패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맞아 본 적이 없는 소년은 갑자기 쏟아지는 구타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짐은 화--황--제-- 꽤 액!"
소년은 자신이 황제임을 내세워 매를 피해보려고도 했지만, 그 순간에도 소구의 주먹은 쉬지 않고 소년의 몸을 골고루 어루만지고 있었다. 결국 소년의 입에서는 연신 돼지 멱따는 소리가 튀어나오고---.
소구는 기절해서 쓰러져 있는 소년 황제를 내려다보다, 황제인 현엽이 앉아 있던 의자에 대신 앉아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놈이 그것의 행방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설마 자기 집 창고에 있던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는 않겠지? 모른다고 하면 또 두들겨 패야지. 그래도 신분이 황제인데---, 두들겨 패면 부하들을 시켜서라도 알아오겠지?'
의자에 앉아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바닥에 쓰러져 있던 소년은 의식을 차리고 두려운 눈으로 자신의 의자에 앉아 있는 심술궂게 생긴 남자를 올려보았다.
"깨어났으면 거기 무릎 꿇고 손들고 있어."
낮고 잔잔한 음성이었지만 듣는 소년에게는 악마가 속삭이는 소리 같았다. 소년은 황급히 몸을 일으켜 시키는 데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하늘을 받치는 자세를 하고, 자신만의 비밀스런 공간에 난입한 괴인을 바라보았다. 단둘만 있는 이곳에서 소년의 황제라는 신분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누구세요?"
현엽은 괴인이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자금성에 지하에 숨겨진 하나의 거울을 찾으러 온 사람이지."
"거울? 거울은 저자거리에 나가면 어디서나 살 수 있을 텐데요?"
"그 거울은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거울이지. 뒷면에는 검은 색으로 아수라의 그림이 새겨져 있고, 앞면은 붉지. 그리고 그 거울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어떤 것도 비추지 않는 다는 것이지. 혹시 이런 거울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느냐?"
현엽은 소구의 말을 가만히 듣더니 한 마디를 내뱉었다.
"호심경(護心鏡)---?"
"?"
소구는 무슨 소리냐는 듯 소년을 바라보았다.
"호심경이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냐? 내가 말한 것은 마교(魔敎)의 인물이 자금성의 지하에 감춰둔 환혼경이라 불리는 마물이다."
소년은 슬그머니 손을 아래로 내리고 일어서면서 입을 열었다.
"제가 알기로 당신이 말한 그런 거울은 자금성에 호심경만이 있을 뿐이고---, 그것은 지금 보정대신(輔政大臣) 오배(鰲拜)가 갖고 있지요."
그렇게 말하면서 소년의 머리는 아주 빠른 속도록 돌아가고 있었다.
'누군지 몰라도 이자는 강호의 기인이사라 불리는 자일 것이다. 상황을 보니 이자는 날 해칠 생각이 전혀 없는 자이고, 바라는 것은 호심경이라 불리는 거울인 것 같고---. 기회다! 그것은 무도한 오배가 가지고 있고--, 이자는 그것을 바라고 있으니 이자를 이용하면 오배를 처치할 수도 있다!'
머리 속에 계산은 끝났고, 소년 황제는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괴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거울을 가지려면 반드시 오배를 처치해야 할 것이오. 그자는 무공이 높고 세력이 커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니, 그자의 손에서 당신이 말한 그 거울을 뺏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오."
자신의 앞에서 뒷짐을 진 채 떠들어대는 소년을 보면서 소구의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애 늙은이---. 이놈이 오배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난 놈이란 것은 알고 있지만 심하군.'
머리 속에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서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전혀 일지 않고 있는 소구였지만, 하여튼 그는 거울이 필요했고 소년은 오배가 조정에서 사라지기를 원하고 있었다.
"정말 네가 말한 호심경이 내가 말한 환혼경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확실합니다. 제 아버님이 부하들과 함께 자금성에 입성하고 나서 창고에 있는 보물을 부하들에게 나눠주게 되었는데, 그 때 장군이었던 오배에게 그 거울에 호심경이란 이름을 붙여서 하사했다고 들었습니다."
"꽤 오래 전의 이야기인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지?"
"모습을 비추지 않는 데다, 그 무엇으로도 흠집하나 나지 않는 신기한 거울에 대한 이야기는 궁내에서 꾀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으로 가슴을 보호하고 계속 싸우라고---, 당시 장수였던 오배에게 제 아버지가 그 거울을 하사한 이야기는 꽤 유명하거든요."
"그래?"
"거기다 조정을 장악한 오배를 암살하려고 하는 자들도 꽤나 생겨났지만, 그 거울 때문에 그자를 죽이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몇 번들었고---."
소구는 침묵한 채 생각에 잠겼다.
'그 거울을 그렇게도 쓸 수 있겠군. 그것을 깰 수 있는 물건은 아무 것도 없으니--, 확실히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은 그것을 가슴보호대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군.'
현엽은 침묵하고 자신만의 생각에 잠겨 있는 소구를 바라보며,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각자의 생각에 빠져들면서 자금성의 지하 밀실에는 잠시 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소구였다.
"넌 오배라는 자를 미워하는가 보군."
"그자는 신하이면서 황제인 나를 무시하는 데다, 붕당을 결성해 조정의 일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합니다. 그자로 인해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충신이 죽임을 당하는 일도 있으니, 어찌 그자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게다가 신하이면서 황제인 저를 위협하는 일도 서슴치 않는 자입니다."
"난 거울을 필요로 하고, 넌 거울을 가진 오배라는 자가 죽기를 바라고 있다."
"거래하죠? 당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당신이 오배를 잡는 일을 도와준다면 나 또한 당신이 그 거울을 찾는 일을 돕도록 하지요."
소구는 맞아서 부은 얼굴을 하고 있는 소년 황제를 새삼스런 눈으로 바라보며 질문했다.
"넌 나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느냐?"
소구의 질문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 있었고, 소년은 그 질문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야만 했다.
'원한이 있다고 하면 여기서 날 죽이려는 것일까? 아무리 힘없는 황제라도 내가 황제는 황제이니--,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겠지? 저자는 비록 관부의 힘을 벗어나서 제 마음대로 살 능력이 있을지 몰라도, 저자와 관계 있는 다른 자들까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을 리는 만무할 테고--. 그렇다고 여기서 내가 그렇게 두들겨 맞고 원한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이자가 모를 리 없을 텐데--. 무슨 대답을 원하는 것이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엽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이 순간의 대답에 따라 자신의 생사(生死)가 걸려 있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었다.
소구 역시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에는 삼촌과 조카라는 신분으로 만난 사이였지만 지금은 아무 관계도 없는 사이였다.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는 황제였다. 이대로 자금성을 떠난다면 온 가족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이니, 대답에 따라 소년 황제를 죽이고 자신이 이곳에 왔다는 흔적을 완전히 지워야 했다.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대답을 못하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고 소구의 손은 주먹을 쥐고 있는 상태였다.
"저는 왕자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매란 것을 맞아보고 산 적이 없었습니다. 황제가 된 이후로는 더더욱 제게 누군가 손찌검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었지요."
"그래서?"
"갑자기 저만의 공간에 당신이 찾아왔고--, 불문곡직하고 절 두들겨 팼는데 아무런 원한이 없다면 거짓말일겁니다."
"그래서---어?"
소구는 눈을 부릅뜨고 다시 물었다. 기죽은 얼굴로 변한 소년 황제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그렇다는 거지요. 누가 뭐래요? 절 도와주기만 하면 당신에 대한 어떤 일도 머리 속에 담아두지 않겠습니다."
"흐흠, 그렇단 말이지?"
슬며시 주먹을 풀면서 대답한 소구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네 녀석이 살아 있는 날보고 귀신이라고 하니까 그랬잖아? 살아 있는 사람에게 귀신이라고 해봐라, 백이며 백 모두가 화낼 걸?"
"하지만---, 아무도 없는 이곳에 허공에 둥둥 떠서 다가오는 사람을 보고 누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현엽의 입에서 억울하다는 듯 한 마디가 튀어나오고, 소구는 슬며시 말을 돌렸다.
"그건 그럼 넘어가자고, 그 오배라는 자를 잡을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그리고 한명의 어른과 한명의 소년은 머리를 맞대고, 자금성의 지하 깊숙한 밀실에서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오배라는 자를 잡을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그자는 항상 가슴에 그 거울을 차고 있을 겁니다. 여기서 바로 제 알현실로 통하는 문이 있습니다. 제가 그자를 알현실로 불러들이면, 나오셔서 그자의 무공을 제거하고 거울을 가지고 자금성을 떠나세요."
"그렇게 하지. 만약 날 추적하는 자가 생긴다면 자금성 전체가 피로 물들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소구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그자와 같은 편에 서 있는 자들을 떨어트려 놓지 않으면,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군권(軍權)을 장악하고 있는 그자의 동생과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다른 대신들---, 그자를 제거하기 전에 먼저 조치를 취할 일들이 많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소구는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렇게 하지. 난 그 거울만 가지고 가면 돼. 아까도 말했다시피 네가 호심경이라 부르는 그것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가두는 사악한 마물이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그 거울을 이 세상에서 소멸시키기 위해 온 것이고---."
두들겨 맞으면서 나름대로 소구에 대한 원망이 가슴속에 쌓이고, 보물을 노리고 온 악당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던 현엽이었다. 그러나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위험을 무릅쓰고 자금성에 잠입한 괴인이 선인(善人)이라는 것을 알게 된 현엽은 기분이 좋았다. 이와 같은 자가 한번 내 뱉은 말을 번복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도와준다고 했으니 확실히 도와 줄 것이다. 자신이 배신하는 일이 없는 한 끝까지 도와 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현엽이었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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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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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