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계 위위구조(圍魏救趙)...
위위구조(圍魏救趙)란 말 그대로 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한다는 뜻으로 <사기>의 손자오자열전에 그 출전이 있다.
원래 위, 한과 더불어 삼진의 하나인 조나라는 일찌감치 북방 기마민족의 풍습을 받아들여 기병을 운용함으로써 전국시대 진秦과 유일하게 필적할 수 있는 군사력을 보유한 강국으로 손꼽히고 있었다. 그래서 전에 위나라를 공격해 크게 무찌른 바 있었는데, 위나라에서 방연이라는 유능한 대장을 등용하여 쳐들어오자 그만 거꾸로 수도인 한단을 포위당하는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 당장 오늘내일하는 위급한 상황에 조나라 조정에서는 동맹관계에 있던 제나라에 구원을 청하게 되었는데, 그때 제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있던 것이 ‘전기’, 그의 참모로 따라나선 것이 손빈병법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손빈이었다.
원래 손빈은 방연과는 어려서부터 동문수학한 사이로, 방연이 위나라에 등용된 뒤 방연의 초청을 받아들여 위나라를 찾았다가 방연의 음모로 인해 무릎을 잘리는 빈형을 당하고 이름을 빈으로 바꾼 처지였다. 그만큼 방연에 대한 원한이 깊었는데, 방연에 의해 무릎이 잘리고 밑바닥을 전전하던 그를 구해준 것이 제나라의 장군인 전기였기에 전기의 손님으로서 곁에 머물다가 전기가 제나라 왕의 명을 받아 조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군을 이끌고 출진하자 참모의 자격으로 따라 나서게 되었던 것이었다.
아무튼 전기는 조나라의 수도 한단이 위험하다는 소리를 듣고는 일단 군대를 몰아 그리로 향하려 했었다. 당연한 것이 조나라의 수도 한단이 포위되었다면 한단으로 가서 포위하고 있는 위나라 군대를 몰아내는 것이 정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손빈이 반대하고 나섰다.
"지금 방연이 급히 한단을 공격하여 오늘내일에 당장 함락 당할지도 모릅니다. 한단이 함락당하고 나면 구원군을 이끌고 가도 소용이 없으니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현재 방연은 공을 세우고자 위나라의 정예를 모두 이끌고 조나라로 가 있어 위나라는 텅텅 비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만일 위(魏)의 수도 ‘대량’을 우리 군으로 공격하면 방연이 이를 구원하러 오지 않을 수 없으니, 첫째 조나라의 한단을 포위하고 있는 것을 풀 수 있고, 둘째 먼 길을 급히 달려오느라 지친 위나라 군대를 기습하여 무찌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방연도 어지간한 장수는 아니었던 터라 제나라 군대가 위나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군대를 돌려 제나라 군대를 맞아 싸우려 했었다. 그러나 손빈은 일부러 능력이 떨어지는 제성과 고당 두 장수로 하여금 위의 요충지인 양릉을 공격케 함으로써 방연을 방심하게 만들었고, 제성과 고당 두 장수가 손빈이 의도한 그래도 크게 패하여 흩어지자 방연은 군을 되돌리려던 것을 멈추고 조나라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손빈은 전기에게 진언하여 제나라 군대로 하여금 위의 수도 대량을 포위하도록 하니, 방연은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다급히 조나라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군대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앞서 여유를 두고 제나라 군대를 맞아 싸우기 위해 회군하려던 때와는 달리 본국의 위급함에 대오도 갖추지 못하고 보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다급히 돌아오던 방연의 군대는 결국 계릉에서 제나라의 복병을 만나 크게 패하여 겨우 일부의 병력만을 수습하여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저 이름도 유명한 "계릉의 싸움"이다.
이후 방연과 손빈은 한 차례 더 맞붙게 되는데,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이 퇴각하면서 솥의 수를 늘리더라."라는 내용이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손빈은 마치 자신의 군대가 비세에 놓인 것처럼 모래를 군량미처럼 쌓아 놓아 방연을 속이고는, 바로 퇴각하면서 아궁이의 수를 줄임으로써 병사들이 흩어지는 것처럼 위장했었다. 그러자 방연은 기회라고 여기고 손빈의 뒤를 뒤쫓게 되었으니, 마릉에서 다시 한 번 매복을 당해 쏟아지는 화살에 고슴도치가 되어 죽고 만다. 동문수학한 친구에게 속아 누명을 쓰고 무릎을 잘리고 얼굴에 문신을 새기게 되었던 원한을 비로소 갚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역사상 나타난 위위구조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50년 9월 15일 한국전쟁이 한창 치열하던 당시 맥아더 원수에 의해 결행된 인천상륙작전일 것이다. 당시 전황이 급하기로는 낙동강 전선이 더 급했다. 이미 초반의 기습남침으로 인한 충격도 어느 정도 가시게 되었고, 부산항을 통해 미국을 비롯 유엔군의 지원이 속속 도착하게 되면서 전력의 열세 또한 상당부분 극복되었지만, 그래도 북한군의 주력 대부분이 집결해 있었고, 그 공세 또한 더할 수 없이 치열했기에 상당히 위태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맥아더는 낙동강 전선으로 바로 병력을 투입하기보다는 한참 후방인 인천에 병력을 상륙시킴으로써 북한군의 보급로 및 퇴로를 차단하여 거대한 포위망을 형성하는 대담한 작전을 구사한다. 그리고 그렇지 않아도 전쟁의 장기화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북한군은 인천에 상륙한 연합군이 서울까지 탈환하여 경부축선(京釜軸線)을 완전히 차단하게 되자 결국 지리멸렬, 중공군이 개입하기까지 멀고도 긴 패주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 말하자면 낙동강 전선이 포위되어 있는 조나라이고, 서울이 적의 본거지인 위나라인 셈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배틀 오브 브리튼’에서의 영국군의 독일군 본토 폭격도 위위구조의 한 예라 할 수 있었다. 당시 독일 공군은 치밀한 작전계획에 따라 영국의 공항 및 군수시설을 집중공격하고 있었는데, 독일군 폭격기의 일부가 실수로 영국 런던에 폭탄을 떨어뜨리자 영국 공군도 이에 질새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으로 폭격기를 보내 며칠간 보복폭격을 했었다. 물론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대전 말기와 같은 대규모 폭격기 편대를 구성할 여력이 당시 영국에는 없었으니까. 말하자면 상징적인 수준의 보복폭격이었는데, 이것이 히틀러와 괴링을 자극해 버렸다. "영국 폭격기가 베를린에 폭탄을 한 발이라도 떨어뜨리면 나를 바보라 불러도 좋다."라고까지 말했던 괴링은 더욱 도발되어 결국 독일군 폭격기의 공격목표를 군사시설이 아닌 런던의 민간도시로 바꾸어 버린다. 그야말로 구사일생의 위기에서 영국공군이 숨을 돌리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마 영국이었고 처칠이었다면 베를린에 폭탄이 몇 발 떨어지는 것으로 작전목표를 바꾸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만한 지지와 신뢰를 받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당시 독일을 지배하고 있던 히틀러와 나치는 오로지 독일 국민의 헛된 복수심과 미망에 기대어 그 지지를 낚아 권력의 자리에 오른 무리들이었다. 거짓과 선동으로 정권을 쥐게 된 그들이었으니 그만큼 자신들의 거짓과 선동이 들통 나지 않도록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자면 헛된 것일지언정 그들이 꿈속을 노닐 수 있도록 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대전기간에도 독일군은 독일 국민들로 하여금 헛된 꿈속을 계속 노닐 수 있도록 소비재의 생산에 많은 자원과 노력을 쏟아 붓고 있었는데, 그만큼 정통성 없는 뿌리 없는 정권의 한계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영국 공군의 베를린 폭격은 바로 그러한 약점을 바로 때려버렸다. 용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니 히틀러와 괴링은 자신들의 정권을 위해서라도, 자신들의 정권을 지탱하는 거짓과 선동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도 군사시설이 아닌 영국의 민간시설에 보복 폭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술적이거나 전략적이거나 정치적인 어떠한 의도도 없이 순전히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은 결국 초반 승승장구하던 독일공군이 영국 상공에서 결정적으로 그 날개를 꺾이는 계기가 되었다. 위나라를 포위하여(베를린을 폭격하여) 조나라를 구한(영국 공군을 기사회생시킨) 것이다.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 제 6군을 포위해 섬멸해 버린 당시 소련군 원수 주코프의 전략도 위위구조의 한 예일 것이다. 당시 소련의 전황은 결코 좋지 않았다. 독일군의 주력은 모스크바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고 레닌그라드를 비롯 스탈린그라드 또한 독일군의 공격에 함락위기에 놓여 있었으며, 독일군의 일부는 코카서스로 진격하여 소련의 유전지대를 노리고 있었다. 연전연패하며 후퇴를 거듭하던 소련군에게 그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떼 주코프 원수는 당장 소련의 요지를 노리고 공격해 오는 독일군과 전면에서 승부하기보다는 대담하게도 독일군과 동맹군 사이의 허술한 연결고리를 노려 스탈린그라드를 공격중인 독일의 제 6군을 포위하려는 전략을 세우게 된다. 이 경우 자칫 스탈린그라드의 독일군이 붕괴되어 버리면 코카서스 방면으로 들어가 있던 A집단군마저 고립될 수 있었는데, 그렇게 된다면 남부집단군 전체를 섬멸하는 대전과를 올릴 수도 있었다. 독일군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파울루스의 고지식함이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현지고수를 선택함으로써 코카서스의 A집단군까지 섬멸하는데는 실패했지만 이로써 승승장구하던 독일군은 그 기세가 크게 꺾이게 되었고, 소련군은 반격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으니, 이 스탈린그라드로 말미암아 독소전의 양상이 크게 바뀌었다 할 수 있겠다.
이밖에도 베트남 전쟁 당시 압도적인 물량과 화력을 보유한 미군에 대해 미국 내에서의 반전여론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끝내 미국 정부로 하여금 전쟁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던 북베트남 정부 역시 위위구조의 한 예라 할 것이다. 당장 맞서 싸우는 것이야 화력과 물량에서 압도적인 미군이지만, 그 미군에 명령을 내리는 것은 미국 정부이고, 그 미국 정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미국의 민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던 것이다. 4차 중동전 당시에도 이집트의 대통령 사다트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전술로서 이스라엘군을 초반 크게 괴롭힌 것 외에도 유엔에서 반(反)이스라엘 여론을 조성하여 이스라엘을 크게 압박함으로써 싸움에서 이긴 것 이상의 양보를 이끌어내고 있기도 하다. 싸워서 이기는 것도 이기는 것이지만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이익과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파악하여 이용한 결과인 것이다.
병자호란 당시에도 의주부사로 있던 임경업 장군이 바로 이 위위구조를 시도하려 한 바 있었다. 당시 청의 황제 홍타이치는 사실상 청의 주력을 거의 이끌고 조선을 공격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압록강 너머 청의 심양 일대는 거의 전력의 공백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상당수 병력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산해관에도 여전히 명군이 다수 주둔중에 있으니 임경업과 북변의 단련된 정병이 공격하고 이에 명군이 함께 호응하여 공격해 간다면 홍타이치로서도 어쩔 수 없이 병력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임경업의 상관인 김자점이 임경업이 공을 세우는 것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았기에 그러한 생각은 그저 생각만으로 끝나고 한 번 제대로 시도되어 보지도 못했으니, 과연 그때 임경업의 뜻대로 되었다면 병자호란과 그 이후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아깝기 이를 데 없는 역사의 한 장면이라 하겠다. 역사에 가정이란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이상에서와 같이 위위구조의 요체는 한 마디로 '고르디아스의 매듭'이라고 할 수 있다. 소아시아의 골디온이라는 도시의 신전에는 이것을 푸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는 왕이 된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지는 매듭이 있었는데, 그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그것을 풀고자 도전했어도 누구도 성공한 이가 없었다. 그러다가 다리우스의 페르시아 군대를 무찌르고 소아시아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 알렉산더가 골디온에 와서 그 소리를 듣고는 칼을 뽑아 단칼에 그 매듭을 베어 버렸다는 이야기다. 비슷한 말로 "장수를 잡으려면 말을 쏘라."는 말이 있을 텐데, 여기서 장수를 잡는 것이 조나라의 수도를 구하는 것일 테고, 말을 잡는 것이 위의 수도 대량을 공격하는 것일 것이다. 예전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나오던 대사인데, 여자를 유혹하다가 실패할 경우 여자에 대해 강력한 발언력을 갖고 있던 부모나 형제, 친구들을 공략하여 그로써 여자를 압박하는 장면에서 흔히 나오곤 했었다. 요즘 그랬다가는 비(非)호감으로 온통 그 주위에 찍혀 근처에도 얼씬도 못 하겠지만 그때는 그런 게 통했다.
아무튼 위위구조의 전제조건은 첫째 상대보다 내가 느리고, 둘째 상대보다 내가 약하다고 하는 것이다. 앞서 위위구조의 유래에서도 손빈이 굳이 군대를 돌려 위를 공격하자 한 것은 지금 조나라의 수도 한단으로 가봐야 이미 늦었기 쉽고, 또한 먼 길을 가서 기다리고 있는 적과 싸우는 위험부담을 고려한 때문이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조나라의 한단을 구원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고, 위의 주력을 단번에 격파할 충분한 실력이 있다면 굳이 위의 대량을 공격하여 위군으로 하여금 포위망을 풀고 돌아오도록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그러지 못했고 그래서 상황을 일거에 뒤바꿀 묘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위위구조의 계책이었던 것이고.
전장(戰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주도권(主導權)이다. 고르디아스의 매듭에서도, 사실 매듭을 묶는 자체는 별로 큰 일이 아니다. 대충 묶어도 그것을 푸는 데에는 묶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물며 그것을 풀지 못하도록 깊이 고려하여 묶게 된다면 그것을 푸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전장에서의 주도권이라는 것이 그와 같다. 내가 원하는 때,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상대로 하여금 싸움을 하도록 강요하게 되면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싸움을 이끌고 갈 수 있다. 이기게 된다면 한 번의 싸움으로 모든 싸움을 끝낼 수 있게 되고 설사 지게 되더라도 최소한의 피해로서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된다. 싸움을 잘 한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스스로 주도권을 쥐고 상대에게 주도권을 허락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피치못하게 상대가 나보다 한 발 앞서 주도권을 쥐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앞서의 예에서처럼 위의 군대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공격해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였다든지, 프랑스까지 석권하고 승승장구하는 독일공군의 공습으로 영국 공군이 괴멸될 위기에 놓였다든지, 자국 영토로 깊숙이 들어온 독일군에 의해 대부분의 병력을 잃고 중요한 도시들마저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던 소련군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그렇다고 그처럼 주도권이 상대에게 있는 상황에 상대와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것은 무모하다. 압도적인 전력상의 우위에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못하다면 상대의 기세에 밀려 도리어 더 큰 위험에 빠지기 쉽다. 그러한 때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이 위위구조의 계책이다.
손빈의 말처럼 먼저 위의 수도 대량을 공격하게 되면 위는 군대를 돌려 제나라 군대가 먼저 진치고 있는 위나라로 돌아와야 한다. 즉 제나라 군대가 조의 수도 한단으로 가야 하는 것이 거꾸로 위의 군대가 위의 수도 대량으로 오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 먼저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을 적을 찾아가 싸워야 했을 상황이 오히려 이쪽이 먼저 준비를 마치고서 상대를 기다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당연히 그로써 주도권은 이쪽에게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실제 전기와 전기가 이끄는 제나라 군대는 계릉에서 위군을 기다렸다가 복병으로서 크게 격파하고 있다. 주도권이 완전히 역전되어 버린 것이다. 이처럼 바로 그를 위해 상대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핵심을 공격하여 상대가 스스로 주도권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조나라의 한단을 구하기 위해 위나라의 대량을 공격한다고 하는 요체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전장에서만 쓰이는 계략은 아니다.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쓰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계약을 맺는데 상대가 담당직원과 잘 이야기해서 계약이 성사단계에 와 있다, 그러면 그 윗선을 통함으로써 얼마든지 그 계약을 뒤집을 수 있다. 상대가 그 윗선과 통하려 하면 더 윗선이로, 더 윗선과 통하려 하면, 그 윗선의 영향력 있는 친인에게로, 그래도 안 되면 사법기관이나 매스미디어를 동원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이제껏 쌓아 온 우위를 원점으로 되돌리고, 나아가 상대와 나와의 차이를 오히려 역전시키는 것, 그를 위한 수단이야 얼마든지 많고, 그것이 또 살아가는 요령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에서도 현 대통령은 바로 이 위위구조의 전략을 아주 적절히 구사했는데, 아다시피 작년 대선을 맞아 터져나온 각종 의혹이며 비리들은 과연 이 사람이 대통령으로 적합한가 의문이 들 정도로 그 양이나 질에서 하나같이 경악스런 수준이었다. 그러나 현 대통령은 당시 그런 의혹이나 문제들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다. 적당히 사과도 하고 해명도 하고 부정도 하면서 이미 "경제살리기"라고 하는 핵심 아젠다를 선점한 것을 십분 살려 상대의 의혹제기에 대해 철저히 네거티브로 치부해 버림으로써, 공정선거와 정책선거라고 하는 새로운 전장에서 자신의 약점을 도리어 상대의 약점으로 바꾸어 역공을 취했었다. 자칫 각종 비리며 불법이며 의혹제기로 위기에 빠질 수 있는 것을 선거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거꾸로 상대에게 네거티브를 일삼는다고 "네거 정(鄭)"이라는 별로 명예롭지 못한 별명을 붙여 놓았으니 그야말로 현 집권당의 선거 전략의 승리라 하겠다. 물론 그렇게 되는 데에는 상대의 전략이 너무 뻔했다는 점도 없지는 않지만, 아무튼 이 또한 위위구조의 응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주도권을 쥐는 것이다. 상대가 주도권을 쥐고 있거든 그 주도권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끌고 가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먼저 상대를 알아야 하고 자신을 알아야 하고 전장의 상황을 알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주도권을 놓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핵심을 파악하고 그것을 능동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위위구조, 병법삼십육계의 두 번 째, 상대가 주도권을 쥐고 있을 때 그것을 뒤집어 내가 주도권을 쥐는 계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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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잎 클로버 원문보기 글쓴이: 네잎 클로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