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지방출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 때문에 떠나는 여행의 열 중 아홉은
[ 차라리 안 가고 뒷일이 없었으면... ] 하는 마음이 들게끔 뒷마무리가 고달퍼
흔쾌한 마음으로 떠나기가 쉽지 않지요...
그러나 이번 남도 숲 탐방이 게시판에 올라온 것을 보는 순간
저는 앞뒤 생각할 겨를 없이 단박 마음을 먹고 말았습니다.
초순께여서 일도 좀 한갓질 때라 시기도 알맞고, 회사 일처럼 성가신 숙제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니 아주 홀가분하게 다녀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 목말라 하면서도 실망과 체념 끝에 더 심한 갈증만
남는 것으로 결론이 났듯이 - 이번에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느닷없이 열 가지쯤 생겨서는 제 뒷덜미를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회사 일이 지지부진 늦어지며 도저히 빠질 수 없는 형편이었고,
무엇보다 늘 말썽부리던 허리가 도지더니 통증이 다리로 타고 내려가
대여섯 시간씩 버스에 앉아 갈 일이 너무나 까마득했거든요...
한번 떨치고 나서는 일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울 수가 있나 싶어 짜증도 나고
공연히 서럽기도 하여 며칠을 끙끙댔는데 불현듯, 이번에 못 가고 주저앉으면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제 뒷덜미를 움켜쥔 이 고약한 손길에서
영영 놓여나지 못하리란 생각이 들더군요.
떠나기 전 날 야근까지 해가며 제 몫의 일을 대충 마무리 해두고
동료에게는 일을 미루고 떠나는 것에 용서를 구하는 장문의 사과편지를 쓰고,
제일 큰 보시기에 김치 소복 썰어 담아두고
닭 두 마리 잡아다 곰솥 가득 푹 고아놓은 후에야 겨우 가방을 쌀 수 있었습니다.
모처럼의 나들이, 게다가 아직은 겨울 외투를 입고 있는 서울에서 벗어나
남도의 봄을 한 발 먼저 맞으러 갈 수 있는 여행이라니...
5년 전인가 꼭 이맘 때, 광주 출장길에 용감무쌍히 연가를 하루 덧붙여
땅끝 마을과 보길도를 거쳐 목포까지 홀홀단신 다녀왔던 추억이 새삼
가슴 밑바닥부터 사물사물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며 적잖이 마음 설레었습니다.
꽉 짜인 일상에서 놓여나는 [ 떠남 ] 그 자체가 행복하기도 했거니와
동행들의 들뜬 얼굴에서도 왠지 모를 공범(?)의 기운을 느끼며 강한 동지애마저
전에 없이 불끈 솟아나기도 하였지요. ^^
저리다 못해 마비되어오는 다리를 폈다 오므렸다 하며 도착한 고천암호.
차 안에서 내다보는 따스한 봄 풍경과 달리 빽빽한 키다리 갈대 숲을 누비는
매운 바닷바람이 목덜미를 후벼팠지만 그래도 모두들 희희낙락,
청둥오리며 흰죽지·물닭·뿔논병아리 등 미사리나 중랑천에서 심심찮게 보던 녀석들인데도
어쩌면 더 그렇게 반갑던지...
위도상 우리나라의 가장 아래쪽에 위치해 있고, [ 남도의 금강산 ] 이라 불린다는
수려한 달마산 자락을 차분히 깔고 앉은 1,200년 고찰 미황사(美黃寺)에서의 저녁 공양은
나무새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더없이 만족스러웠습니다.
포만감에 젖고 나서야 붉은 눈물 같은 꽃송이를 발치에 뚝뚝 흘린 채 초연히 서있는
동백의 고혹적인 자태도 눈에 들어오고, 붉가시니 생달이니 사스레피니 하는
다소 낯선 남도의 나무들과도 겨우 눈을 맞출 수 있더군요.
또 해질녘 절집 마당에서 마주 보이는 노을을 온몸으로 받고 서서
미황사의 美黃이 전설과 달리 어쩌면 바로 그 황금빛 노을을 가리킨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문득 상념에 젖어보기도 하였습니다.
씩씩한 목소리의 젊은 스님이 [ 이 방은 보살님들, 건넌방은 처사님들 ] 이
쓰시라고 정해주었지만,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겁이 없어진 보살과 처사들은
처사님들의 널찍한 방에 둥그렇게 모여 앉았습니다.
이번 남도 숲 탐방을 주선하고 도착해서부터 현지에서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기꺼이 자원한 광주 지역의 숲해설가들과 후원회원들과 이야기 마당이 벌어졌지만
저는 다리의 통증이 점점 극심해져 도저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공양간에 딸린 [ 보살님들 ] 방으로 돌아와 드러누워 버린 바람에
남도의 상록활엽수처럼 싱싱하고 화기애애했을 대화의 내용은
그저 제 짧은 머리로 짐작할밖에요. .
늦은 밤, 일을 마친 홍농의 젊은 우체부 지수아빠가 찾아왔습니다.
손수 담가 대접하겠노라 장담했던 산국주가 아직 익지 않았다며 전화로 끌탕을 하더니
제가 다시 처사님들 방으로 들어갔을 땐 우격다짐으로 익혀 들고 왔다는
달랑 두 병이 이미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비워진 후였고, 어린 시절 양조장 친구네서 맛보았던
막걸리 술지개미처럼 걸쭉한 진국(?)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몇몇 처사님들은 못내 아쉬운 듯 입맛만 다시다가
사하촌(寺下村)으로 내려가네 마네 설왕설래 끝에 경건한 도량임을 감안,
더 이상은 곡주 냄새를 풍기지 않기로 합의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수아빠와 저, 오누이는 기어이 사하촌의 모처(?)에 다녀왔는데
모두들 이 부분을 몹시 궁금해하므로 이번 남도행의 수수께끼로 남겨 두겠습니다. ^^
고즈넉한 산사의 밤 속으로 처사와 보살들은 고단한 몸을 망설임 없이 내던졌지만
새벽 4시의 예불시간은 지친 나그네들의 노독은 아랑곳 않고 찾아왔으니
부처님의 자비심도 이때만큼은 잠시 접어두셨나 봅니다.
변변치 못한 허리 때문에 생전 처음 새벽 예불을 참관할 기회는 놓쳤지만
그 안타까움도 아침 공양을 향한 일편단심을 상쇄시키진 못했습니다.
표고로 맛을 낸 미역국과 메생이 무침 등 바다 냄새 물씬한 아침 공양 후
달마산이 품고 있다는 금샘을 찾아나섰지요.
서울 등 중부지방과는 전혀 다른 숲이 나그네들을 반가이 맞아주더군요.
계절을 착각하기에 충분할 만큼 나무들은 초록잎들을 무성히 달고 있었고
어느 지점에 도달하자 숲은 금을 그은 듯 앙상한 낙엽수들로 변신해버려
자연의 불가사의한 힘에 다시 한번 감탄하고 겸허해졌습니다.
몇 번이나 넘어지며 도달한 금샘에서 남녘의 아침 햇살 듬뿍 섞인
달디단 24K 샘물 한 바가지로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하산했습니다.
아름다운 달마산과 미황사에 아쉬운 이별을 고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면적이 넓다는
완도수목원에서 남도의 상록활엽수들과 이틀 연속 상견례를 치렀지만
무디어빠진 제 눈은 여전히 동백과 나머지 상록활엽수의 두 종류로만 구분하더군요.
안내자의 설명을 꼼꼼히 받아 적는 틈틈이 도감까지 들여다보며 확인하는
대부분의 모범생들 속에서, 저는 그저 어슬렁어슬렁 축축하고 향긋한 흙냄새, 훈풍에 묻어오는
풋풋한 나무내음이나 킁킁대며 햇빛을 수천 수만으로 조각 내는 동백잎만 감상했고...
솔직히 고백하거니와, 너무 일찍 아침을 먹은 탓인지 11시도 되기 전부터
저는 극도의 허기에 시달려 점심엔 어떤 맛난 반찬이 나올지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이번 남도행에선 동백과 함께 슬픈 전설을 간직한 동박새를 기필코 만나보리라 하였는데
달마산에서 바닷가의 도요새도 볼 수 있는 양x모(양경x?) 선생님의 내공에는
턱없이 모자람인지, 동백 숲이 그처럼 울울했건만 동박새의 자취는 찾을 길 없었고
결국 단념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완도수목원의 꽃밭에서 미황사의 밤하늘에 총총하던 별처럼 반짝이는
노오란 복수초와 조우했을 때의 그 기쁨은 정말이지 컸답니다.
수목원을 나와 직행한 식당에는 저의 기대에 부응하고도 남을 만큼 남도의 넉넉한 인심 그대로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으므로, 주린 배를 움켜쥔 저는 너무나 행복하였습네다~
일정의 마지막인 완도 정도리 숲과, 장구한 세월 동안 파도와 바람에 닳을 대로 닳아
동글동글 매끈매끈해진 몽돌로만 이루어진 구계등 해변.
구계등은 파도에 씻긴 몽돌층이 아홉 개의 계단을 이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지만
지금은 세 개의 계단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모난 저도 몽돌만큼 오래 살 수 있다면 세월의 손길 아래 저렇게 둥글어져
맺힌 데 없이 유순한 모습으로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을 수 있을는지요...
구계등 해변과 맞닿은 정도리 숲 자연관찰로에서 일단의 모범생들이
저는 듣도 보도 못한 새우나무를 두고 어째서 [ 새우 ] 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설전을 벌이는 동안
해변에 널어놓은 쌉싸름한 파래(?)만 열심히 주워 먹으면서도 한편, 그들의 뜨거운 학구열은
평생 따르지 못할 것이라는 좌절감이 구계등 해변의 몽돌처럼 제 마음 속을 이리저리
정처없이 굴러다녔습니다.
마침내 남는 자와 떠나는 자들이 마주보며 아쉬움을 달래던 석별의 시간도 지나고
끈끈한 인연의 끈을 끝내 놓지 못한 채 버스는 한양을 향한 장도에 올랐습니다.
이번 숲 탐방에서 제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아마도 정(情)일 것입니다.
오래오래 곰삭아 맛깔스런 남도의 젓갈처럼 깊고 진하게 우러나오던 정.
수선스럽지 않으면서도 따스함과 배려가 그대로 전해졌던 그들의 환대는
처음 만난 생소한 이름의 상록활엽수들 보다 훨씬 소중한 경험이었지요.
가식 없는 진심을 받아들이는 느낌은 사람마다 비슷한지
상경길 버스 안에서 나눈 소감의 공통점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첫댓글 김경녀 선생님 너무 멋쪄요..멋찌다는 말밖엔 표현할 방법이 없네요..건강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