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논의의 허와 실 (안경환)

[Keny]

	로스쿨 논의의 허와 실 (안경환) 새 정부 들어서자마자 요란스럽게 시작한 ‘로스쿨’ 논의가 지지부진이다. 대통령의 권고로 대법원에 사법개혁위원회가 구성되어 여러 가지 개혁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이 ‘로스쿨’ 도입에 관한 문제이다. 정부와 여당도 기회 있을 때마다 이 문제를 들고 나온다. 로스쿨의 도입은 당위이자 기정사실인 것처럼 내세우곤 한다. 마치 로스쿨이 이 땅의 사법 민주화의 핵심적 내용인 것처럼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도입하고자 하는 로스쿨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합의된 내용이 없다. < 법은 어른의 영역이다 > 이제라도 문제의 본질을 바로 알고 가부간의 판단을 내릴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한마디로 로스쿨은 ‘대중민주주의’와는 이념적으로 정면으로 배치되는, 철저한 엘리트 양성제도이다. 흔히 미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대학원 과정의 법학대학원을 지칭하는 로스쿨은 문자 그대로 법률(Law) 전문가를 키워내는 전문학교(school)라는 뜻이다. 학사과정에서 다양한 전공과정을 수련한 사람을 대상으로 법학교육을 실시하여 법률 전문가로 키워내는 제도이다. 이 제도의 이념적 배경은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째, 법은 어른의 영역이고 둘째 법학은 서비스이자 종합학문이라는 것이다. 법은 천재의 영역이 아니라 어른의 영역이다. 법학은 세상사에 대한 판단력을 배양하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갓 고등학교를 마친 애송이가 수련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믿음이다. 현대사회에서 법이 담당해야 하는 역할은 지극히 넓고도 깊다. 법학은 여러 학문 중의 하나가 아니라 여타 모든 학문의 성과를 종합하는 지적 체계이다. 그래서 미국 법학자는 선망과 질시의 대상이 되지만 전문가로서의 흔들리지 않는 권위를 누린다. 자기 분야에서 다산 정약용 정도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 즐비하다.  무엇보다도 로스쿨 출신만이 법률가가 될 수 있다. 마치 의과대학 졸업생만이 의사가 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전문가는 독학이나 사설학원에서 탄생할 수 없다. 미국의 로스쿨이 성공할 수 있었던 여건은 엘리트주의에 대한 신념 때문이다. 로스쿨은 대학본부로부터 독립된 자율적 기관이다. 전국 법과대학협의회(ALSA)와 변호사협회(ABA)의 공인 제도를 통해 끊임없는 질적 통제를 받지만 대학본부의 규제를 받지 아니한다. 독자적인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교육원가도 엄청나게 높다. 따라서 등록금도 비싸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선하나 원칙적으로 무상이 아니라 대여해 준다. 교수의 봉급은 인문, 사회, 예체능계의 몇 배나 높다. 엄청난 재원은 동창생과 사회 각계각층의 기여금으로 충당된다. 유능한 법률전문가의 요구는 국내보다 국제사회에서 더욱 거세다. < 법률가 질적 제고 겨냥해야 > 과연 우리가 이런 엘리트 법률 전문가를 양성하는 제도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학사과정의 법학과 대학원 과정의 법학은 차원이 다르다. 로스쿨을 지향한다는 국내의 어느 대학에서도 대학원과정으로서의 법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심도 있는 연구가 없다. 로스쿨 논의에 참여한 그 누구도, 얼마만큼 재원이 들며, 그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거론하지 않는다. 이런 여건 아래서 학제만 바꾼다고 법학의 질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정부와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로스쿨’의 도입 논의의 배경에 법률가의 질적 제고 이외에 다른 뜻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로스쿨은 대중 민주주의를 버리는 것이지, 지키는 것이 아니다. 정부나 국민대중이나 법학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해야 한다. 행여나 독학으로 법률가의 꿈을 이루어 종국에는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된 한 사람의 신화를 믿고 있는 한, 로스쿨 논의는 본질에 접근할 수 없다.   글쓴이 / 안경환 • 서울대 법대 교수 • 한국 헌법학회장 • 前 서울대 법대 학장 • 저  서 <미국법의 이론적 조명>            <그래도 희망은 버릴 수 없다>            <반대의 자유> <양심적 병역거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