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오디세이]
골프의 치명적 중독성은 어디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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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운동량으로 따지면 골프는 축구 배구 같은 구기종목이나 마라톤이나 장거리달리기 같은 육상 종목과 비교되지 않는다. 쾌감 또한 사격 야구 승마 등에서 얻는 것보다 진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역동성이나 관객의 열광 면에서도 밀린다. 마치 안 해도 그다지 아쉬울 것 없는 느슨한 취미활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치명적 골프의 중독성은 바로 조금씩 모자란 듯한 것들의 절묘한 조합에서 잉태되는 것은 아닐까.
육상이나 구기종목, 격투기, 등산처럼 많은 칼로리를 요구하는 운동도 아니면서 슛, 스파이크, 펀치, 배팅처럼 강렬함도 약하다. 프로골퍼를 제외하곤 관중으로부터 주시의 대상이 되지도 못한다.
제각각의 스윙, 그다지 빠르지 않은 걷기, 충분히 짊어질 수 있는 골프백과 제각각의 장비,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경기규칙 등 얼핏 보면 골프는 이렇다 할 특색이나 역동성이 없는 스포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골프가 치명적 중독성으로 사람들을 유인하는 것은 왜일까.
대결구도의 모호성, 땀과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 결과의 의외성, 두 번 다시 같은 샷을 날릴 수 없는 일회성, 그리고 끝없는 탐험에도 불구하고 골프의 진수를 알았다고 큰소리 칠 수 없는 불가사의성 등이 아닐까 싶다.
골프가 안고 있는 여성성(女性性) 또한 남성들로 하여금 골프에 몰입케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골프는 여러모로 여성을 닮았다. 최종 목표가 그린에 뚫린 홀에 볼을 집어넣는다는 것의 상징성은 물론 여체를 연상케 하는 골프코스, 잠시라도 한눈을 팔고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떠나 버리는 골프의 감각 등 골프에서 발견하는 여성성은 부지기수다. 특히 티샷에서부터 홀 아웃에 이르기까지 펼치는 온갖 전략은 사랑하고픈 여성을 대할 때와 매우 흡사하다.
이런 골프가 한때는 금녀의 성역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처음부터 여성의 골프장 출입이 금지되었던 것은 아니다. 남정네들에 비해 골프에 대한 열기가 덜 했던 것은 사실이나 골프장 출입이 금지되지는 않았다.
남녀 모두에게 개방되었던 골프가 불행히도 골프를 지독히 좋아했던 한 여인으로 인해 금여의 철옹성으로 변했다. 바로 최초의 여성골퍼인 스코틀랜드의 매리 여왕 때문이다.
지독한 골프광인 매리 여왕은 부군인 당리 경(卿)이 암살당한 지 3일도 안 돼 젊은 무장(武將)인 보스월 백작과 골프를 즐겼다. 이를 두고 의회가 들끓었고 ‘여왕이 백작과 공모해서 남편을 죽였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결국 그녀는 1587년 골프 역사상 가장 무거운 벌타를 받았다. 남편이 암살된 지 3일 만에 젊은 백작과 친 골프가 화근이 되어 기어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것이다. 그녀의 비참한 운명은 여성골퍼의 불행을 예고한 것으로, 이후 200년간 여성은 골프장에 얼씬도 할 수 없게 됐다. 당시 골프코스가 ‘금녀(禁女)의 낙원’ 즉 ‘이브리스 패러다이스(Eveless Paradise)’로 불린 까닭이다.
어찌 보면 골프는 그 자체가 항상 새로운 것들과의 조우(遭遇)다. 그것도 계절, 날씨, 골프장, 골프장비, 파트너, 캐디 등이 엮어내는 수많은 조합과의 조우다.
그래서 한 번도 같은 느낌은 없다. 수많이 날리는 샷도 두 번 다시 되풀이할 수 없다. 샷 하나하나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늘 신천지를 탐험하는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다.
조우 즉 만남은 접촉이다. 접촉은 어떤 형태로든 느낌을 준다. 스포츠의 궁극적 쾌감도 승패가 아닌 접촉의 느낌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작열하는 펀치로부터 전해지는 짜릿한 쾌감, 가벼운 터치의 상쾌함, 셔틀콕이 네트에서 튕겨나가는 느낌, 발등을 떠난 공이 골네트를 가르는 순간의 쾌감, 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는 순간의 느낌 등은 성적인 쾌감과 마찬가지로 촉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골프야말로 철저한 ‘촉감의 게임(haptic game)’이다.
골프는 달리 보면 손과 골프채, 볼, 그리고 지면과의 접촉에서 쾌감을 얻는 스포츠다. 골프채가 아가위나무나 감나무에서 철, 티타늄, 카본 같은 복합소재 등으로 발전하는 것도, 골프공의 소재가 끊임없이 개발되는 것도 보다 나은 촉감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 골프와 관련된 모든 공학은 결국 촉감과의 싸움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골퍼들은 곧잘 잊는다. 완벽한 촉감은 도구가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대상에 쏟아 붓는 사랑에 비례하며 주인공과 대상과의 완전한 ‘하나 됨’이 이뤄졌을 때 절정에 이른다는 것을.
내 도구에 대한 각별한 사랑으로 도구와 하나가 되었을 때 좋은 촉감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엔 부단한 연습은 가장 기본이다.
그런데 문제는 골프를 하면서 ‘하나 됨’을 이뤄야 할 대상이 너무 많다는데 있다. 골프클럽은 ‘하나 됨’의 가장 일차적인 대상이다. 클럽과 내 손과 팔이 얼마나 친숙하고 익숙하느냐에 따라 골프의 행로가 달라진다. 그 다음 쯤은 육체와 클럽과 스윙의 ‘하나 됨’일 것이다.
기능적인 차원만 이 정도인데 조금 시야를 넓이면 하나가 되어야 할 대상은 부지기수다. 잔디, 러프, 모래 등의 코스, 변화무쌍한 기상조건, 그리고 팀원 등과도 모래알 같은 이질감 없이 일체화가 이뤄졌을 때 비로소 골프의 무애 무변한 세계를 맛볼 수 있다.
골프를 관통하는 철학인 ‘하나 됨’은 필경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Far & Sure)’라는 화두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이 화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골퍼는 없다.
화두의 기원은 15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훨씬 전부터 골퍼들의 가슴 속에 이 화두가 자리 잡았겠지만 명문화한 것은 이 때다.
제임스 6세의 뒤를 이어 아들인 찰스 2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었다. 내기골프를 즐겼던 왕은 잉글랜드의 귀족 2명과 골프의 발상지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서로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골프의 발상지라고 주장해 논쟁은 끝날 줄 몰랐다.
그러자 잉글랜드의 귀족이 왕에게 제안했다.
“좋습니다. 골프내기로 결론을 매듭지읍시다.”
이렇게 해서 잉글랜드의 귀족 2명 대 왕과 스코틀랜드인 1명이 골프솜씨를 겨루게 되었다.
왕은 신하들을 시켜 스코틀랜드 최고의 골퍼를 찾도록 했다. 왕의 파트너로 추천된 골퍼는 다름 아닌 존 패더슨이란 구둣방 주인이었다. 그는 천한 신분이었지만 골프에는 뛰어났다. 그는 천한 신분을 이유로 극구 사양했으나 왕이 간청하는 바람에 골프장으로 나갔다.
골프의 발상지를 걸고 벌인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시합은 길게 가지 않았다. 패더슨의 기량이 워낙 뛰어나 18홀이 끝나기 전에 승패가 결정되었다. 왕의 팀은 승리를 거두었고 왕은 내기에 걸린 거금 중 절반을 패더슨에게 주며 의미 있는 상패를 만들어주었다.
패더슨 가의 문장에 골프클럽을 새긴 뒤 그 밑에 왕이 직접 글귀를 써넣었다. ‘Far & Sure’라고.
세 단어로 된 이 짧은 명구는 이때부터 모든 골퍼들의 영원한 화두로 자리 잡았다. 찰스 2세 역시 이 명구 때문에 골프역사에 남게 되었다.
이후 수많은 골퍼들이 이 화두를 좇았지만 벤 호건만큼 근접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1950년대 미국 골프계의 거성인 그는 US오픈 4승, 브리티시오픈 1승, 마스터스 2승, PGA선수권 2승 등 생애통산 62승의 대기록을 수립했다.
동시대의 골프 거두 샘 스니드는 “내가 골프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세 가지다. 번개와 내리막 퍼팅, 그리고 벤 호건이다.”라고 말했다. 진 사라젠은 “최고의 골퍼는 벤 호건 단 한사람밖에 없다.”고 극찬했다.
11세 때 가난 때문에 동네 골프장에서 캐디를 하면서 골프와 인연을 맺은 호건은 철저하게 자신의 스윙을 분석하고 연구해 근대스윙의 이론을 정립한 ‘모던골프’라는 골프 바이블을 내놓기도 했다.
1948년 US오픈에서 우승하는 날, 호건은 기자회견도 마다하고 연습장으로 향했다. 친구가 “이 사람아 지금 막 챔피언이 됐는데 기자회견을 해야지?”라고 말하자 “아닐세, 나는 지금 오늘 극복해야 할 문제점을 세 개나 발견했네.”라며 만류를 뿌리치고 연습 볼을 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호건이 남긴 “하루 연습을 안 하면 내가 알고, 이틀을 쉬면 캐디가 안다. 사흘을 쉬면 갤러리가 다 안다.”는 명언은 바로 완벽한 ‘하나 됨’을 추구하는 진정한 골퍼의 자세를 보여준다.
오늘도 지구촌의 수많은 골퍼들이 골프코스나 연습장을 찾는 것은 이 같은 골프의 불가사의한 요소들이 만들어낸 마력을 뿌리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창간된 '스크린골프다이제스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