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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기도순례단, 9월 19일 비구니 대표도량 청도 운문사 순례
학인스님 교육관 견학…비로전·작압전 석조여래좌상 등 참배
다라니 108독·관세음보살보문품 독송 기도…방생법회도 봉행
33기도순례단은 9월 19일 청도 운문사에서 정진을 이어갔다.
“하늘이 운문을 열고 땅이 신령을 기르니/ 그 가운데 산수가 자연스레 맑아라./ 지팡이 짚고 나막신으로 소요하며 진경을 찾으니/ 무이의 굽이굽이에 노래하여 화답하네.”
소요당 박하담(1479~1560)이 1536년 운문산 일대에 운문구곡을 설정하고, 주자의 ‘무이도가’에 차운해서 지은 시다. 여기에 조선 중기 문인 곽진 또한 안개와 노을에 싸인 운문사를 추억하며 “지금 자주 기억하노라니, 그윽한 계곡물 꿈속에도 졸졸 흐르네(如今頻記憶 幽澗夢潺湲)”라고 노래했듯,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깊은 골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는 산문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씻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운문사 전경.
법보신문 후원으로 매월 세 번째 토요일에 전국 기도성지를 찾아 정진하는 33기도순례단이 9월 19일 청도 호거산 운문사를 찾았다. 영남알프스 북단에 우뚝 솟은 운문산은 예부터 호랑이가 웅크린 형세라 하여 호거산이라 불린 산역을 품고 있다. 하여 지금도 운문사는 ‘호거산 운문사’라는 옛 산명을 간직한다. 운문사를 에워싼 호거대와 범봉 등에는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지명이 곳곳에 남아 있어 천년고찰을 감싸 안은 산세의 유래를 짐작하게 하고 있다.
운문사 신행의 중심지인 동서삼층석탑과 비로전. 오백전 모습.
한국 비구니 수행과 교육을 대표하는 도량으로 성장한 운문사는 1400여 년 역사를 간직한 천년고찰이자, 신라 원광법사의 수행과 세속오계, 고려 보양국사와 원응국사의 법맥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수행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량이다.
운문사 전경.
운문사 창건 역사는 신라 진흥왕 때로 올라간다. 557년 한 신승이 이곳에 수행처를 마련하고 560년경 절을 세워 대작갑사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중국 수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원광법사가 600년경 머물며 사찰을 중창했다. 원광법사가 인근 가슬갑사에서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오계’를 전했기에, 운문사 일대가 신라불교와 화랑정신이 만나는 역사적 공간으로 꼽히고 있기도 하다.
운문사는 이후 고려시대 보양국사가 중창한 이래 고려 태조 왕건이 보양국사의 공덕을 기려 ‘운문선사’라는 이름을 내렸고 이후 운문사라는 이름이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려 인종 때 왕사에 오른 원응국사 학일 스님도 만년에 운문사에 머물며 사찰을 크게 중창했기에 경내에 원응국사비가 남아 있다.
운문사 승가대학 학인 스님들 신발이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1400년 역사를 간직한 고찰 운문사에 들어서자 지도법사 정수 스님의 도반인 운문사 승가대학 교수 송운 스님이 순례단을 반갑게 맞았다. 송운 스님 안내에 따라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된 승가대학 1학년부터 4학년까지 학인 스님들의 수업 및 생활이 이뤄지는 전각을 견학한 순례단은 지도법사 정수 스님과 함께 도량 참배에 나섰다.
운문사 오백전.
운문사 비로전.
비로전 비로자나부처님.
작압전 석조여래좌상.
작압전 석조여래좌상과 석조사천왕상.
현재의 대웅보전을 짓기 전 대웅보전의 이름으로 운문사 신행의 중심지였던 비로전(편액은 대웅보전 그대로 유지, 보물 835호) 비로자나부처님 앞에서 순례의 시작을 고한 순례단은 이어 오백 나한을 봉안한 오백전, 보물로 지정된 동·서 삼층석탑, 작압전, 관음전 등을 차례로 참배했다. 특히 한 평 남짓한 크기의 작압전에서는 석조여래좌상(보물 317호)과 네 구의 석조사천왕상(보물 318호)을 직접 친견하며 통일신라에서 고려 전기로 이어지는 불상 양식의 변화를 확인하고 신라 가람과 석조미술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운문사의 또다른 상징인 처진 소나무.
이어 운문사를 상징하는 천연기념물 ‘처진소나무’가 순례객의 발길을 멈춰 세웠다. 수령 400~500년으로 추정되는 처진소나무는 고승이 시든 나뭇가지를 꺾어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오랜 세월 수행공동체와 한자리를 지켜온 소나무는 천년고찰 운문사의 또 다른 상징이다.
순례단은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도량을 참배하고 대웅보전 부처님 앞에 손모아 엎드렸다. 그리고 “내가 부처님이고, 옆의 도반이 부처님입니다. 모두가 부처님임을 잊지 말고 부처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발원하며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에 임하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한 지도법사 정수 스님의 지도에 따라 기도를 시작했다.
순례단은 각자의 원을 세워 기도에 임했다.
순례단은 ‘천수경’과 ‘다라니 108독’으로 시작해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독송했다.
“선남자여, 만약 무량백천만억 중생들이 여러 가지 고뇌를 당할 때에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듣고 일심으로 그 명호를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곧 그 음성을 관하고 모두 고뇌에서 해탈케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약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받드는 자는 설사 큰 불 속에 들어가는 일이 있더라도 불이 그를 태우지 못하나니 이는 관세음보살의 위신력 때문이니라.…”
‘관세음보살 보문품’ 독송에 이어 스님의 축원까지 1시간 30분 가량 기도가 이어지는 동안 기도에 동참하는 일반 참배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기도에 일심으로 참여한 불자들은 밝은 미소와 함께 대웅보전 뒤편에서 방생법회를 봉행했다.
순례단은 방생법회를 봉행하며 모든 중생들이 보리심을 일으킬것을 발원했다.
“미물들아 들어라. 이제 바야흐로 너희들을 풀어주노니 오늘 맺은 불종자를 마음속 깊이 새겨 다시는 질곡에 걸리지 말고, 이 목숨 마친 뒤에는 극락세계 아미타불 곁에 상품상생하여지라”라고 축원한 순례단은 “오늘 이 자리에서 선근인연을 맺은 생명과 삼계에 함께 거주하는 모든 중생들이 보리심을 일으켜 다시는 악업의 굴레에 빠져들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시고 구경에는 일체종지를 이루게 하여주소서”라고 발원했다.
김영희 불자가 순례 참가 33회를 맞으며 반가사유상을 선물로 받았다.
한편 운문사 순례에서는 김영희 불자가 33회의 순례에 참여해 그동안 자신이 순례에 참여했던 33곳의 도량 이름이 새겨진 자신만의 108염주와 반가사유상을 선물로 받았다.
박하담이 “구곡이라 산이 다하고 물은 맑게 빛나니/ 물고기 활발하게 평평한 시내에서 뛰노네/ 고깃배는 이날도 무릉도원을 찾지만/ 따로 운문에 한 별천지가 있도다”라고 읊은 것처럼, 일체 세속의 찌든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맑고 청명한 기운이 가득한 별천지 운문사 순례를 마친 순례단은 10월 17일 대구 동화사와 파계사 순례를 기약하며 호랑이가 웅크린 형상을 한 호거산 운문사 산문을 넘어 일상으로 돌아갔다.
심정섭 선임기자 sjs88@beopbo.com
순례단은 동화사 순례를 기약하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1843호 / 2026년 10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