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려면 장사해야 하니
오늘 중으로 나갈 수 있느냐
박상률
인간의 이성이 불합리하기 짝이 없다는 걸 ‘부정변증법’에 정리해 놓은 철학자 아도르노, 그는 말했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라고 나치의 광기를 일컫는 말이지만, 광주의 오월도 이성을 잃은 무리들에 의해 저질러지기는 마찬가지⸳⸳⸳.
아도르노 말투로 하자면 광주 오월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 광주 오월을 일으킨 자들도 광기를 지니고 야만스러웠던 것은 마찬가지⸳⸳⸳ 그러나 그런데도, 그러기에 더욱 서정시를 써야 한다.
김완 시인의 ‘바닷속에는 별들이 산다(천년의 시작 펴냄)’를 읽었다. 그는 의사 시인이지만 그의 직업인 의업과 관련된 시편보다는 오월을 더 많이 다룬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랐고 지금도 광주에서 의사 일을 보며 시를 쓰고 살기 때문에.
오월은 산의 채도가 올라가는 계절
직선으로 달려온 숨 가쁜 세월도
물기에 의해 꺽이며 둥근 오솔길이 된다
잔잔한 오솔길, 차츰 경사를 높인다
(⸳⸳⸳)
토하지 못한 말들의 어지러운 그림자여
다시 오는 오월, 환하게 밝힐 수 있으리라
-‘다시 오월’에 부분
그의 ‘오월 시’는 시간의 무게를 이기기에 충분하다. 단순히 비분강개하지만 않기에⸳⸳⸳. 광주에 살기에 그는 광주의 모든 대상과 일상의 모든 삶에서 ‘오월’을 느낀다.
오월이 오면 빛고을 광주에 이팝꽃 핀다
거리를 하얗게 장식하는 이팝꽃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쌀밥처럼
(⸳⸳⸳)
5⸳18 국립 망월 묘역 가는 길
눈처럼 하얀 이팝꽃 손 흔든다
(⸳⸳⸳)
부서지고 막막하던 사월이 가고
먹먹하고 미안한 오월이 다시 오면
길가에 서 있는 나무들 하얀 슬픔 꽃 핀다
(⸳⸳⸳)
-‘이팝꽃 피는 오월’부분
나는 5⸳18을 겪은 뒤 광주의 햇살이며 바람, 거리와 풍경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광주를 빠져나와 서울로 왔다. 하지만 그는 여태껏 광주를 견디고(?)있다.
광주를 견디는 그이기에, 더더구나 의사이기에 그의 눈엔 농민 백남기 사망 등에 더욱 눈길이 간다. 물대포를 맞고 죽은 백남기 농민의 죽을을 두고 외인사가 아니고 병사라고 우긴 모 대학병원의 백모 교수의 비양심적인 처사를 꾸짖는다(‘시월’)
뿐만 아니라 그는 세상사의 모든 불합리한 것에 대해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시인의 촉수로 어김없이 더듬는다. 그래서 ‘나라가 지랄염병을 해도/거리마다 가을이 가득하다’는 시가 나올 수 있으리라.
그의 본업인 의업을 할 때도 시인의 촉수는 팽팽하게 살아 있다. 그러기에 ‘환자의 말 속에는 뭔가가 있다’고 노래한다.
(⸳⸳⸳)환자에게 ‘술과 담배는 반드시 끊어야 한다’라고 말하니 환자는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지 않는다. 오히려 ‘먹고 살려면 장사해야하니 오늘 중으로 나갈 수 있느냐’라고 되묻는다. 오늘도 죽음과 삶을 경험한 환자에게서 문밖 세상의 절절한 고통을 배운다.
-‘죽었다 살아난 남자’ 부분
먹고 사는 보통 사람의 절박한 심사를 아는 의사 시인, 그가 시인이 아니었으면 ‘문밖 세상의 절절한 고통’에 대해 그러련 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내 주변에 전남대 의대 출신의 의사 시인은 세 명 있다. 선배인 나해철 시인은 ‘5월시’ 동인 활동을 하며 시는 이렇게 쓰는구나를 일깨워주었고, 김연종 시인은 어떤 종합문예지 편집위원 노릇을 할 때 그가 투고한 작품을 읽고 ‘극락강역’이라는 시집이 간행되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다. 김완 시인은 이번 시집 전에 펴낸 시집 ‘너덜겅 편지(푸른사상 펴냄)’ 때부터 읽었다. 그는 같은 또래이지만(나보다 한 살 위!) 최근 몇 년 사이에야 그이 존재를 알았다. 아버지가 숨을 거두어 장례를 치른 ‘광주보훈병원’이 그의 직장이라는게 억지로 꿰맞춘 인연이라면 인연.
-박상률의 책이야기 박상룰 지음 『책을 읽다』, p253-257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