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은행나무어린이 도서관이 이사를 했다. 어린이집으로 사용했던 장소여서 더 넓은 공간이 허락되어졌다.
그간 새 공간을 찾아다니느라 동분서주하며 애쓴 함박웃음 회원들 모습이 떠오른다.
이사하면서 아쉬웠던게 한두가지랴..학교가 끝나면 제집 오듯 오는 아이들을 반길수 없으니 그게 첫째요.
마당이 있는 도서관에서 하던 '흙이랑 놀자' 프로그램을 못하는구나 그게 둘째.
우리집에서 멀어지는게 셋째 였다. 물론 더 많은 아쉬움의 이유들은 넘쳐 나지만..가장 큰 아쉬움은
'모내기하며 부침개도 해 먹던 시절은 이제 끝이구나' 였다.
그런데 새로 이사 온 도서관 입구 옆으로 마당이 보인다.
어린이집으로 운영될 때는 아이들과 텃밭을 가꾸고 놀이 공간으로 활용되었던 곳이란다.
은행나무 어린이 도서관에서 식물과 가장 친한 간장님의 손길이 닿는 순간 마당이 변신을 하기 시작한다.
무성하게 자란 풀도 과감없이 정리해주고 살려야 할 식물은 새 화분으로 옮기는 작업들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혼자서 몇시간 삽질을 하셨다.기운도 좋다. 날도 더운데..
우리집 식물들은 주인을 잘못 만나 겨우겨우 생을 연명하는데 간장님의 손끝엔 뭐가 있어서 식물들이 저리도 새색시 마냥 화사할까 궁금하다가
<나무를 심는 사람>이 떠올랐다.
대게 첫인상이 결정되어지는 시간이 8초 정도란다. 고작 8초만에 첫인상이 결정된다니 나처럼 꾸밈없는 사람은 좀 손해보는 입장이라 어처구니가 없다.
그러나 장 지오노는 어떤 사람이 보기 드문 인격을 가진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선 아주 길고 오랜 시간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 할수있는 행운이 있어야 한다고했다.
해발 1200-1300미터의 오래된 산악지대,헐벗고 단조로운 황무지에 야생 라벤더 외에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그곳에 마을은 뼈대만 있고 샘은 말라 있다.
짐승처럼 으르렁 거리는 세찬 바람만이 불고 있는 그곳에서 장 지오노는 양치기를 우연히 만난다.
한때 평야 지대에서 농장을 가지고 살아왔다던 양치기.하나뿐인 아들 을 잃고 잇따라 아내마저 잃고는
그 뒤론 양치기 생활을 하며 나무가 없어 죽어가는 이 곳을 바꾸어 보기로 했단다.
이미 10만개의 도토리를 심고 그중 2만개가 싹을 텄으나 날짐승들의 먹이로 절반은 잃게 되었다고 담담히 말하는 그.
가족을 잃은 슬픔, 절망과도 싸워가며 매일 매일을 도토리를 심는 양치기를 상상해 보라..몸에서 사리 백개쯤은 거뜬히 나오겠구나 싶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장 지오노는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되는 제대 수당과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은 열망으로 다시 길을 떠난다.
그리고 다시 만난 양치기.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나무를 심어왔던 탓에 높이 자라고 있는 10살 된 떡갈나무들, 어깨까지 오는 너도밤나무들,
젊은이들처럼 부드럽고 튼튼하게 서 있는 자작나무들을 보게된다. 양치기는 그저 자신이 할 일을 꾸준히 해 나갈 뿐이었다.그것도 매일 매일 묵묵하게.
처음 마주했던 황폐하던 마을이 개울이 흐르고 버드나무와 갈대, 풀밭과 기름진 땅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이 파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하나님만큼 유능할 수 있다고 깨닫는다.
죽어가는 세상을 생명이 살아갈 수있는 곳으로 바꾸고 싶었던 열망에는 어떤 개인적인 이익이나 사심은 조금도 없어 보인다.
그저 이 땅에 생명이 들어서게 하고 싶었을 뿐.
매일 도토리를 골라내고 심고 보살피며 나무가 자라게하면 그 일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듯 싶다.
그 신념에는 조금도 의심이 없고 반드시 이룬다는 고집이 나무를 매일 자라게 했고 숲을 이뤘으며 샘물을 다시 솟게 한게 아닐까.
1차대전,2차대전이 지나가는 세월동안에도 그는 매일매일 똑같이 나무를 심었다.
죽어있던 땅이 생명의 땅으로 거듭났고 살고 싶은 곳이 되어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고 새로운 삶을 계획했다
오랫만에 양치기를 다시 찾았을 땐 샘에 물이 흐르는 소리,새 소리,아이들 소리가 들려왔고 만명도 넘는 사람들이 알제아르 부티에 노인(양치기)
덕분에 행복하게 살고 있는모습을 보게된다.
고집스럽고 흔들림 없이 꾸준히 실천했던 매일이 나를 바꾸고 마을을 바꾸며 세상을 바꾸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오랜세월에 걸친 자신의 노력에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 일을 계속 했다는것도 그렇고 대지가 변해가는 것을 느끼며 만족해 하고 행복했다면 양치기는 성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고독한 삶 속에서도 내가 먼저가 아니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했으니 말이다.
마당 있는 도서관에서 우리가 이사 오기전 목단나무 먼저 다른 곳으로 이사 보내고 자잘한 식물들과 다육이들도 조금씩 정리를 했다
잘 기르지도 못하면서 식물 욕심은 많아가지고 다육이 한 개를 가져왔었다. 새로 이사온 자리에 마당이 있으니 다육이는 다시 도서관으로 옮겨주었다.
간장샘의 손끝 사랑도 받고 더 넓은 곳에 햇볕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라 말해주면서.
선한 일을 선택하고 그것을 묵묵히 실천해나가는 성실함이, 묵묵함이, 그 고집스러움이 손끝에 담긴 사랑일거라 생각하면서.
은행나무어린이 도서관 활동가 24기 박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