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尹 놓고... 엘리트들 궤변 허언 곡학아세...
전교 1등이 파시스트, 계엄보다 더 충격적”
한국의 교육원리가 반민주적, 교사는 정치적 금치산자,
그런환경속에서 성숙한 민주주의가 길러지는것은 불가능
법률 개정을 통한 대책이 필요하다.
[인터뷰 요약]
대한민국은 21C초유상황을 현제 진행형으로 겪고 있다
국가존립의 최후의 보루인 법원습격사건
민주시민교육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않는 우리 교육에서 찾는다.
한국에서 12년간 교육을 받으면 성숙한 민주주의자가 될까?
잠재적인 파시스트자가 될까? 하는 이물음에 그 해법을 독일에서 찾는다.
한국의 교육은 민주주의를 기르기 힘들다. 전세계에서 경쟁률이 가장 심한 국가
독일은 1970년에 교육개혁.
핵심은 경쟁교육은 야만이다. 일체의 우열을 금하고 있다.
이유는 1968년부터 과거청산교육을 시작
히틀러를 가능하게한 정신적 뿌리를 뽑는것
방법은 히틀러의 세계관은 무한경쟁이 펼처지는 정글로 보았다.
히틀러의 사상은 우월한 자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적자생존, 약육강식, 자연도생을 적용
따라서 우월한 게르만족이 열등한 유태인을 지배하고 학대하는 것을 정당화함
여기에는 파시즘의 3가지 원리가 들어 있다
세계를 문한 경쟁의 세계로 보는 점과
끊임없이 우열을 나눈다
우월한 자간 열등한 자를 지배하는 지배와 복종관계가 인간의 자연스런 관계이다.
민주주의자는 이세계는 자유스럽고 평등한 개인들이 다양성을 갖고 지내고 있다
즉 세계는 우월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이 존재하며,
그리고 지배와 복종관계가 아니라 모두가 평등속에 있다
12년간 한국 교육을 받으면 민주주의가 될까?: 파시스트가 될까?
우리는 내재적으로 그런 교육 환경에서 자라왔다
교사들의 정치적 시민권을 복원 ,
그들이 성숙한 민주주의가 되야 아이들도 성숙한 민주주의로 기를 수 있다.
그 경우 일부교사들의 파시스트 경향을 우려 할 수있지만 독일처럼 선동가 판별교육이 중요하다
즉선동가를 판별하는 교육을 정치교육의 가장 중요한 교육으로 지키고 있다
(즉 교사가 선동을 하려하면 학생이 지적할 수 있는 교육)
내 주장이 맞고 그것이 선이고 나머지는 모두 악이야 하는 우리사회의 병폐를 해결하는 문제.
우리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해 주지 않는 이유가
교실에서 부터 내가 친구들을 누르고 올라가야해!
내가 이겨야해, 이긴사람만 선이고, 이긴사람만 승리자야
우린 이런교육만 받아왔기 때문이다.
탄핵사태이후 우리 정치엘리트들중에는 민주주의 자들이 없다.
전교 1등일 수록, 한국정신의 교육을 완전히 체화해서 완벽한 파시스트들이 되어있다.
이것이 충격이다.
이제 이것을 바꿀때가 되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의해 알고리즘의 영향이 이를 더욱 부체질 하고 있다.
https://youtu.be/iJWDfCu9UnI?si=s_K_kTUMPYdjbLBi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김누리 칼럼] 등록 2025-01-21 16:50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평생 언어를 다루는 문학 선생을 했지만, 요즘처럼 언어에 절망한 적은 없다. 도대체 어떤 말로도 이 불가사의한 인간을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을 보며 언어의 한계를 절감한다. 이리도 비겁하고 비열하고 비루한 인간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극렬 지지자를 선동하고, 휘하의 부하들을 위험으로 내몰고,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어기고,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일삼고, 온갖 핑계로 법 집행을 피해 다니는 이 괴물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3비(비겁-비열-비루)형 인간’이 벌이는 행태가 참으로 점입가경이다. 최근엔 극우 시위대를 선동해 법원을 공격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초래했다. 군대를 동원해 입법부를 침탈한 것도 모자라, 이제 지지자를 선동해 사법부를 습격한 것이다. 개과천선이 불가능한 이런 인간은 법정 최고형으로 다스리는 것 이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헌정 질서를 파괴한 내란범을 이번에도 준엄하게 단죄하지 못한다면, 거듭된 쿠데타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없다.
그러나 윤석열 내란 사태는 그에 대한 탄핵과 엄단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윤석열을 만들고, 기르고, 권좌에 앉힌 우리 사회의 오래된 구조를 개혁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윤석열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윤석열로 상징되는 우리의 낡은 관행과 의식, 규범과 제도가 문제다. 이것은 윤석열이 사라진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계속 살아남아 우리 사회를 좀먹고, 흔들고, 결국 무너뜨릴 악습들이다.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내란 수괴를 비호하는 정당이 여론조사에서 제1당에 오르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은 한국 민주주의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1970년대에 박정희가 만들어낸 지역주의가 핵심 문제다. 정치적 이성보다 지역적 감성에 좌우되는 정치 행태가 내란 동조 정당을 제1당으로 등극시키는 기괴한 현상을 낳은 것이다. 지역주의 정치 지형을 극복할 선거법 개정 등 근본적인 처방이 없는 한 우리는 성숙한 민주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문제는 윤석열 개인이 아니다. 윤석열은 한국 사회에서 예외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보편적 현상에 가깝다. 특히 한국 사회의 지배 엘리트는 대다수가 ‘또 다른 윤석열’이다. 윤석열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그들이 보인 행태를 보라. 법치주의를 뒤흔드는 법 기술자들, 민주주의를 조롱하는 정치인들, 곡학아세를 일삼는 어용학자들 – 이들의 언행은 정상적인 민주국가에서는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다. 이처럼 미성숙한 지배 엘리트들의 존재가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인간 윤석열이 아니다. 요컨대, 윤석열은 이 나라의 모든 부정적 특성의 앙상블이다. 그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폐단인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능을 극단까지 행사했고, 한국 경제의 치명적인 병폐인 신자유주의적 착취 구조를 더욱 악화시켰으며, 한국 사회 불행의 근원인 사회적 양극화를 가속화했고, 시나브로 사라져 가던 권위주의 문화를 재생시켰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 영역에서 ‘윤석열’을 만들고, 정당화하고, 유지시켜준 잘못된 구질서, 이 앙시앵레짐을 청산하지 않는 한 윤석열은 또 다른 이름으로 부활할 것이다.
윤석열 내란 사태가 보여준 것은 또한 우리 사회에 수치심의 한계선이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윤석열은 말할 것도 없고, 국무총리와 장관, 정치인과 법조인들의 궤변과 곡학아세의 언설을 매일같이 듣는 일이 너무나 괴롭다. 이 나라가 언제부터 최소한의 수치심도 없는 파렴치한 인간들이 지배하는 곳이 되었단 말인가.
근원으로 거슬러가면, 윤석열을 키운 것은 극단적인 능력주의 경쟁교육이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교실’이 괴물 윤석열을 잉태한 모태다. 한국의 교실, 이 ‘사활을 건 전쟁터’에서 승자는 자신이 누리는 모든 부와 권력을 자신이 쟁취한 ‘전리품’이라고 여긴다. 그러기에 여기서 이리도 미성숙하고, 오만한 엘리트들이 자라 나오는 것이다.
윤석열 내란 사태를 보며 우리 교육의 미래를 걱정한다. 거짓말과 약속 파기를 밥 먹듯이 하는 대통령, 궤변과 허언을 일삼는 정치인들, 기회주의적이고 무책임한 장관들 – 이런 파렴치한 엘리트들을 보며 우리 아이들은 과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전교 1등을 하면, 저런 인간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칠 것인가. 윤석열 사태는 한국 교육의 환부를 쓰라리게 드러내면서, 교육혁명의 절박성을 일깨우고 있다.
출처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79070.html
다른기사 읽기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18394
첫댓글 본질은 이것이다 이 본질을 깨닫지 못하면 한국 사회를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획일 교육
권위주의 교육
승자 독식주의
성적 지상주의의 폐해
서울대가우월하다고 모든 분야에 지배하는게 문제
성적만 좋아 공감능력 없이
기득권에 편입되면 비상계엄같은 행동을 돌출 할수 있다.
전인 교육, 성숙한 민주 시민으로 성장할수 있는 교육이 절실하다.
시험 성적외에는 지향 하는 삶의 목표, 자신이 뭘 원하고 좋아하는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육 당하는 현상
경쟁없이 개개인이 존중받고 다양성이 공존하고 화합하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한 교육개혁 정말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