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언제 지나가고 겨울은 또 언제 왔는가?
평소 일어나는 그 시간대로 일어났는데도 아직 깜깜한 밤이다.
세수를 하니 손도 시리고, 맨발로 다니니 발도 시리고, 어깨도 자꾸 움츠려 들고,
더위도 무섭지만 추위는 더욱 더 무서워서 목도리에 장갑, 재킷까지 입고 집을 나왔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묻는다. 오늘은 또 어디로 행차하시느냐고?
문경새재에서 사과축제가 열린다고 하여 바람도 쐴 겸 문경사과축제 구경하러 갑니다.
울산을 경유하여 문경 신흥시장에 들렀다가 축제가 열리는 문경새재로 넘어 가려고요.

(문경 신흥시장)
오늘은 제대로 날을 잘 맞춰 온 것 같다. 마침 장날이다.
장꾼들도 제법 북적거리고 여기저기 농산물 전도 죽 펼쳐져 있다.
꼭 사야할 물건도 없지만 오늘은 멀리 안 나가고 주차장 주변만 둘러볼 예정이다.
오미자축제 때 들렀다가 시장본다고 어디까지 나갔다가 길을 잃어 혼이 났기 때문이다.

올해는 마늘 값이 좋다고 하던데 마늘 한 접에 얼마나 하는고?
사는 사람도 없고, 사지도 않으면서 가격만 물어볼 수도 없고,
쳐다보고 서 있으면 손님인줄 알고 안에서 뛰어나올까봐 오래 서 있지도 못하겠고,

싱싱한 오이도 있고, 버섯도 있고, 마늘쫑도 있고, 번데기도 있고, 청초, 홍초, 땡초도 있고,

(게장 1kg 15,000원)
문경에 게장도 유명한가?
게장을 보니 갑자기 구수한 밥 냄새가 나서 가다말고 우뚝 서서 쳐다보고 있으니,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부산에서 왔다고 하니 고향사람 만나서 반갑다며 좀 사 가란다.
어떡해 미안해서? 나는 그냥 구경만 하는 사람인데.
다행히 나와 같이 구경하고 있던 노부부가 간장게장 1통하고 양념게장 1통 사가지고 갔다.

배추다.
반찬걱정 없이 살 때는 이런 배추도 그냥 힐끔 보고 지나쳤는데 요즘은 다르다.
김치 담가 주고 반찬 만들어 주는 사람이 없으니 배추만 보면 김치가 생각나고,

요건 까서 말려서 쇠고기국에 넣어 먹으면 맛있는 토란대구나.
가져갈 힘만 있으면 몽땅 사가지고 가서 머리 복잡할 때 껍질 짝짝 벗기면 좀 시원한데,
토란대 사가지고 가면서 택시대절 할 수도 없고, 부전시장에 가면 더 좋은 토란대도 많고,

여기는 또 꽃전이네.
많이도 보아오던 꽃이건만 확실하게 이름을 아는 건 국화뿐이다.
다른 건 몰라도 노란 저 국화는 나의 침실에 갖다 놓고 보았으면 좋겠다.

여기는 아 낳고 몸보신 하는 전이다. 잉어, 송어, 가물치, 메기.
아 낳는다고 고생했다고 방구만한 호박 사다가 잉어 고고 가물치 달이고 하더마는,
내손으로 해먹으면 모를까, 누가 저 기운 펄펄 살아나는 가물치 한 마리 고아주겠노.

(구운김 3봉지 5,000원. 1봉지에 11장입)
고소한 기름 냄새가 온 시장에 등천(진동을 한다. 퍼진다)을 한다.
가볍기도 하고, 하루는 반찬 걱정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3봉지 샀다.

(고추 한 소쿠리 2,000원)
고추가 싱싱하고 인물이 참 좋다. 그래서 한 소쿠리 샀다.
집에 가면 또 무슨 여자가 고추를 그렇게 좋아하느냐고 놀려대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고추만큼 확실하게 입을 개운하게 해주는 음식이 어디 있다고.

여기는 잡화상이다.
빗자루, 걸레, 자리, 키, 얼기미, 밥상보, 바늘, 실, 양말, 버선, 좀약 등 오만 떼만 게 다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어묵이고 특별한 어묵이라고 어묵 좀 사가라고 난리다.
어묵하면 부산어묵이고, 어묵으로 유명한 부산에서 왔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모르면 몰라도 알고는 그리하지 못한다. 어묵만은 부산 가서 사 먹기로 하고,

(수제비 2팩 5,000원)
도대체 이것이 뭐기에 이리 예쁘냐며 어묵 밑의 진열대에 있는 물건에 관심이 있다.
요리보고 조리보고, 색색가지 밀가루 반죽 뜯어 놓은 이건 뭐냐고 물었더니 '수제비'란다.
백년초즙하고 무슨즙 무슨즙을 내어서 만든 것으로 이 수제비도 아주 특별한 수제비란다.
뭐 팔아먹으려면 무슨 말을 못하겠는가마는, 아주머니 장사 참 쫀득쫀득하게 잘한다.

수제비 한 팩하고 칼국수 한 팩하고 두 팩에 5,000원 주고 샀다.
멸치다시에 알록달록한 수제비와 새파란 호박나물 고명에 맛있는 칼국수를 상상하면서.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수제비도 칼국수도 모두 한 덩어리의 밀가루 덩이로 변해 있다.
바로 냉장 또는 냉동실에 보관해야 되는데 그 넘을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다녔으니...
장장 4시간을 그넘을 뜨뜻한 등에 붙이고 돌아다녔으니까 안 엉겨붙고 말겠나?
색깔별로 골라서 뜯어내어 다시 수제비를 뜨고 칼국수를 밀어야 되나?
그냥 몽땅 한 덩어리로 뭉쳐서 몇 날 며칠 수제비를 끓여 먹어 없애야 되나?
괜히 사가지고 냉장고만 복잡하고, 그렇다고 먼데까지 가서 사온 음식을 버릴 수는 없고,
아이구 참말로, 일도 쳐내지 못하면서 일거리만 만들어가지고는 골치가 아파 죽겠다.

그렇게 문경 재래시장 시장구경은 계획대로 먼데까지 안 나가고 잘 했다.
집에 가서 구수한 쌀밥에다 고소한 김하고, 풋고추 썰어 넣고 보글보글 찌진 된장하고,
알록달록 수제비에 칼국수까지 맛있게 먹을 것을 생각하면서 문경 사과축제장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