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감자 캐던 날
강영은
여름철 연두텃밭 옆에 부쩍 키가 크면서 올라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가을이 오는 문턱에 키가 훌쩍 큰 해바라기처럼 노오란 얼굴로 웃음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 이게 뭐지? 들국화 같기도 하고, 작은 해바라기 같기도 하고…” 밭 옆에 출현한 그것은 몸에 좋다고 큰 언니가 심은 돼지감자, 일명 “뚱딴지” 꽃이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키도 훌쩍 큰데다가 꽃도 노랗고 잎사귀가 비슷해 해바라기로 착각하기 쉬운 예쁜 돼지감자 꽃…
어느덧 돼지감자를 캐는 날이 되었습니다. “어, 이게 뭐야?” 노랗고 예쁜 꽃과는 달리 땅속에서 줄줄이 나오는 돼지코처럼 울퉁불퉁 못생긴 뿌리를 보고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놀란 내 앞에서 언니는 “이게 얼마나 몸에 좋다구? 이눌린이 많이 들어있어 당뇨에 좋고, 또 변비와 비만에도 좋고, 항암제도 된대!” 하며 돼지감자의 멋진(?) 몸매를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뚱딴지라고 불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꽃과 줄기는 예쁜데 뿌리는 뚱딴지같이 못생겨서… 돼지감자를 처음으로 캐던 날, 매듭이 툭툭 튀어나온, 보기 싫은 생강 같기도 하고 흙이 묻어 있어 몸통이 큰 시커먼 벌레 같기도 한 돼지감자를 씻어 아삭아삭 씹어먹으며 생각에 잠겨보았습니다. “흠…예쁜 꽃에 보기 싫은 뿌리라…”
너무 아름답고 예쁜 것만 좋아하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너무 아름다운 면만 보고 싶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너무 매끈하고 멋진 모습만 기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한 번의 하찮은 실수나, 주님의 섭리로 드러나게 된 큰 약점이나, 불쑥 저지른 형제의 잘못을 보면 그렇게 놀라고 실망하는지 모릅니다.
예쁜 꽃과 줄기에 딸려 나온 보기 흉한 돼지감자에 놀라듯이…
기대를 저버린 보기 싫은 모습이 남에게 보일 때,
받아들이기 싫을 만큼 실망시키는 행동이 남에게 나타날 때,
아니, 혀를 미처 제어하지 못한 내 입에서 뾰족한 말이 나왔을 때,
미처 다스리지 못한 마음에서 쓴소리가 나왔을 때,
그래서
자신도 몰랐던 보기 싫은 뿌리가 깊이 파묻혀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깊숙이 숨기고 싶던 보기 싫은 뿌리가 드러났을 때,
어김없이 드러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리고 숨김없이 드러난 남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서로 놀라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더 익혀야 했음에도 미처 익지 않은 말이 공중을 타고 올라
서로의 마음을 벌집 쑤시듯 헤집어 놓았을 때
더 성숙시켜야 했음에도 아직 숙성되지 않은 생각이 행동으로 나타나
서로의 사이를 엉망으로 벌려놓았을 때
우리는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은 우리가
손질 받아야 할 것이 많은 어린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아직은 우리가
전정 받아야 할 잎을 너무 많이 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아직은 우리가
변화시키시는 주님의 손길을 더 많이 타야 함을 알게 되었기에…
간혹 겉모습과는 달리 돼지감자 뿌리처럼 울퉁불퉁한 것이 올라와
그것 때문에 우리가 더 겸손해지고 고개 숙일 수 있게 되기에…
그리고
아직 주님의 향기로운 중보의 기도가 우리를 감싸는 때에
드러날 것이 다 드러나 회개하게 하시는 섭리가 너무 고맙기에…
사각사각 입속에 씹히는 돼지감자는 달달했습니다.
밉지만 몸에 좋은 돼지감자를 먹으며 그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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