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기(三神記)에 이르기를 치우은 균화천에 있고 왕검은 안덕천에 있다 하였다. 상고하건대 삼신설에 이르기를 삼신은 천일(天一)이요, 지일(地一)이요, 태일(太一)이니, 일(一)은 삼(三)으로 작용한다 했으니(표훈천사) 치우는 태일이 주관하는 치화의 임무를 수행하셨다. 고대 중원에서 오래도록 무신으로 받들어서 태일주체(太一主體)로 추앙하였다. 후세에 남긴 병법으로는 치우이편 태일병법일편 천일병법 삼십오편 천일 음도 이십사편권이 있다. 이것은 후일에 중원의 춘추 전국 시절 강태공의 통치 군사지침서가 되고 오나라 부차왕을 도와 강한 월나라를 정복한 손자병법의 기초 자료가 되고 후한의 유비를 도와 천하를 삼분한 제갈량의 팔진법이 모두 여기서 전수된 것이라 한다. 치우천왕의 삼신 사상은 후세 중원에 널리 퍼져 삼신 일체 사상의 태일제사는 제나라에서 시작되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팔신장은 강태공 이래의 행사라 하여 제나라가 나라에 제사를 하였다고 하며 언제 시작하여 언제 그치는지 알 수 없다 하였고 팔신은
일. 왈(曰) 천주(天主)이시니 하늘에 제사하고,
이. 왈(曰) 지주(地主)이시니 태산에 제사하고,
삼. 왈(曰) 병주(兵主)이시니 서경에 제사하고
사. 왈(曰) 음주(陰主)이시니 삼신에 제사하고 - 중략 -
치우를 제사하며 치우는 동녘 평육 감향이니 제나라의 서쪽 경계 너머이고, 사. 왈(曰) 음주이시니 삼산에 제사하고, 오. 왈 양주이시니 지부에서 제사하고, 육. 왈 월주이시니 내산에서 제사하고 모두 제나라 북쪽 발해이고(발해는 고대 조선족의 내해이다.강태공의 활동무대인 제나라의 위치 북쪽인 바이칼호이다. 바이칼호 주변의 원주민들 대부분이 몽골로이드 계열이다), 칠 왈 일주이니 성산에서 제사하고 성산은 바다로 들어가는 제나라의 동북쪽이며 해뜨는 곳이다. 팔. 왈 사기주이시니 낭야에서 제사하고 제나라 동쪽이며 서해가 시작되는 곳이다.
太一之祀 典始於齊以 天祭也 其祀絶莫知起始 八神 一曰 天主 祠天齊 二曰 地主 祠泰山 三曰 兵主 祠蚩尤在東平陸監鄕 齊之西境也 四曰 陰主 祠三山 五曰 陽主 祠芝部 六曰 月主 祠之萊山皆在 齊北?渤海 七曰 日主 祠成山 成山斗入海最居在東北隅以迎日出云 八曰 四時主 祠琅邪在 齊東方盖歲之歲之所始 (秦封禪書)라고 하였다.
치우천왕은 헌원과의 십년 전쟁에서 칠십삼회 대전에서 백전백승하니 하늘에서 나타난 천제의 아들이라 하여 천하 만민이 경복하고 수 천년을 무신으로 추존된 치우천왕은 중원의 미개한 여러 야만 종족들의 분쟁을 종식시키고 하늘을 존경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신앙 정신을 일깨워 고대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왔다. BC 2490년 인류 사회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파란 많은 생을 수도 청구에서 생을 마감하시니 비단 동이족뿐만 아니라 대륙의 모든 종족 민초가 슬퍼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능은 상동성 동평군 예장현 궐나성중에 있으며 능의 높이는 칠십 척에 이른다고 하였다. 진나라(秦)와 한나라(漢)에 이르도록 시월이면 백성들이 제사를 지내며 반드시 붉은 기운이 나와서 치우의 깃발이 나부끼듯하여 그 영혼이 여상스럽게 천년을 지나도 사라지지 아니 하야 헌원도 그의 도읍지에 영혼이 머물음에 영원히 따랐다고 한다.
其陵在山山東東平郡裔張縣闕?城中高七十尺秦漢之際往民猶韋以十月祭之必有靑氣出如絳謂之蚩尤旗其靈魂雄魄自與凡人향異歷千歲而猶不泯者服軒轅以是索然楡岡亦從以永隊矣 「鑑易」 (漢書地理志)
또 이르되 치우천왕의 위엄이 떨쳐 후세에도 이어서 수산 통로(중원에서 배달 나라로 조공하는 길) 지방은 항상 두려워하였다.
강태공서에 치우천왕의 활약상을 동화(童話)에 비유하여 왜곡한 후세 사가의 행위는 심한 짓이라 하였다. 치우천왕은 고대 조선 중원에서 무위와 지용과 인덕이 세상을 덮어 중원 풍패 지방에는 치우천왕의 사당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산동성 편현 서안에 있는 구성의 서북 물가에 있다고 하였다.
蚩尤祠 在西北濟上有埇城今山 東平縣西南 (漢書地理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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