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쌀쌀함을 느끼지만 전형적인 봄날씨임을 부인할 수 없다.
오늘은 청주박물관에서 기획전시하는 "사찰 꽃살문 사진전"을.
관람하기위해 길을 나선다.
꽃살문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그곳에 깃든 우리 민족의 소박하고 따스한 정감을 느껴보며
한국불교의 독특한 예술성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는길목과 오는길목에서 몇몇의 문화재도 들러볼 심사다.
경부고속국도를 달려 청주나들목을 나오면
하늘을 가리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터널을 이룬다.
T.G에서 복대동까지 약5Km에 이르는 가로수 길은 여름에는 시원함을,
가을에는 황금빛 풍요로움을, 겨울에는 백설의 순결함을 선사하지만...
초봄인 오늘은 기대했던 것보다 실망을 하며 지나야 했다.
직지(直指)의 고장 청주.
고려우왕 3년(1377) 이곳 흥덕사에서 찍어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인쇄본 '직지(直指)'는
독일의 쿠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앞선 것이며
우리민족이 최초로 금속활자를 사용하였음을 입증한 것으로
2001.9.4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무심천이 흐르는 청주대교를 지나
청주시내의 중심지에 있는 청주군청에 주차를하니 편리하다.
도심속을 걸으며 이곳 어딘가에 있을 철당간을 찾으려니
또다른 답사의 즐거움을 느낀다.
골목골목을 누비며 마치 미로찾기 하듯 도심 골목을 돌아
빌딩사이로 높이 솟은 철당간을 바라보는 기쁨이란 남다른 맛이 있다.
국보 제41호인 용두사지 철당간은 청주에서는 유일한 국보로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 청주백화점 뒤에 자리하고 있다.
20개로 조성된 당간의 철통은 두개의 화강암 지주에 고정되어 하늘을 찌를듯 솟아 있다.
고려 광종 13년(962)에 조성되었다는 철당간은
금당이 자리했을 용두사의 규모 및 창건 연대 등은 알 수 없으나
그래도 그모습을 잃지않고 도심속 한복판에 이렇듯 웅장하게 서있기에 고맙다.
<국보 제41호 용두사지 철당간>
철통이 20개인 지금도 저리 위용있는 것을..
본래의 모습대로 30개의 철통이 하늘을 가른다면 얼마나 장관일까.
당(幢)은 불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나타내는 장엄용(莊嚴用) 깃발로,
중생을 지휘하고 마군(魔軍)을 굴복시키는 힘을 상징한다.
절에서는 기도나 법회 등 의식(儀式)이 있을 때, 절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 두는데,
당을 다는 높은 기둥이 곧 당간으로, 만든 재료에 따라
철당간,석당간,목당간으로 불리며, 간두의 모양에 따라
용머리 모양을 취한 것을 용두당, 여의주를 장식하면 여의당 또는 마니당,
사람의 머리 모양을 하면 인두당이라고 하였다.
이곳 용두사지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청주는 마치 배가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으로 큰 비가 내리면 떠내려 갈 수 있으니
돛대가 배의 균형을 잡아주듯이, 청주가 기울어지지 않도록 돛대를 세워야 한다는
부처님의 현시를 받은 혜원스님은
용두사 경내의 지주를 모아 김예종에게 철당간을 세우도록 하였다한다.
현재 전국에는 청주의 용두사지 철당간, 공주 갑사 철당간,
안성 칠장사 철당간, 나주 동문 밖 석당간, 담양 읍내리의 석당간 등이
남아 있으나,
이 철당간만은 3번째 마디에 조성연대가 명확하게 기록되어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상당공원에서 5분거리에는 성공회성당(聖公會聖堂)이 있다.
와우산 초입 작은 둔덕에 자리하고 있는 이 성당은
충청북도 도청소재지인 청주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있어
전망도 좋다.
특이한 양식에 작고 아담한 건물, 깔끔하게 정돈된 분위기에서
어렸을적 마을 앞산에 있었던 작은 교회를 떠올려 친근감이 간다.
<청주 성공회 성당>
초기 성공회 신부들의 토착화 의지를 잘 담아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성당은
겉으로 보기에 성당이라는 인상이 들지 않는 한식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내부는 성당의 기능과 용도에 맞게 변형된 것을 알 수 있기에
초창기 불교와 토착신앙에 젖어있던 민초들을 성당으로 이끌기 위한 노력이 여실히 드러나
그 힘들었을 고단함을 짐작할 수 있다.
성당은 낮은 기단위에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대들보와 종보위에 사다리꼴의 대공이 종다리를 받치고 있는
목조 한옥으로 팔작지붕에 한식기와를 얹은 것이 특징이며
강화도 성당과 함께 한.양식 절충형태를 띠고 있어 이채롭다.
성당으로 들어서니 친근감 있는 밖의 모습과는 달리
장엄하게 설치한 기둥의 분위기에 압도당해 절로 머리가 조아려진다.
성당의 내부는 중앙에 2열로 10개의 높은 나무 기둥을 세우고
이 나무기둥 앞쪽에 퇴보를 걸어 측량이 생기도록 해 3량식의 내부를
구성하고 있다. 이것은 여러개의 기둥을 통해
자연스럽게 회중석과 측량을 구분하고 있다.
또한 장방형의 동쪽 끝에는 후진을 두고 있는데 이는
강화도 성당과 마찬가지로 바실리카풍 양식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창문의 상부를 아치형으로 꾸민 것을 비롯
출입문의 윗쪽부분을 교창살로 만든 것 등에서
한식과 양식을 자연스럽게 조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는 안정감을 준다.
텅빈공간 한켠에서 한분의 여신도가 기도중이다.
무엇을 저리 염원하는지.. 머리를 숙이고 두손모아 몰두하는 정숙함에서
그의 뒷 모습은 아름답기만 하다.
청주에서 성공회가 선교활동을 시작한 것은 1920년.
그후 12년이 지난 1932년경 청주에 성직자가 상주하게 되자 이듬해
영국 버밍햄의 성 그레고리 교회의 지원을 받아
구세실(Cecil Cooper)주교가 1935년 6월 32간 규모로 현재의 성당을 건축하였는데
한옥의 구조를 갖추면서 서구 건축양식이 가미된 독특한 형태로 지어진 성당이기에 그 가치가 있다.
와우산을 넘어 외각도로를 달리면 청주박물관이 있다.
조용하다고 해야할까, 썰렁하다고 해야할까. 청주박물관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넓게 들어앉은 박물관엔 아내와 나뿐, 사람구경을 할 수 없다.
홀로 지키던 관리 아쩌씨는 꽤나 심심했던듯
우리를 보더니 반갑게 맞이한다. 사람이 얼마나 없었으면...
유원지나 관광지에 비해 너무나 썰렁한 청주박물관,
열악한 사람들의 생각은 언제쯤이나 바뀌어 질른지...
"사찰꽃살문 사진전"은 박물관 계단을 올라서면
좌측의 별관에 전시하였는데 예상했던대로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전시회에는 부산 범어사 관조 스님의 작품 72점이 출품되어 있는데
스님은 70년대 후반부터 20여년동안 한국사찰의 모습을 렌즈에 담아온
승려 사진작가이다.
문은 이쪽과 저쪽, 안과 밖, 벽과 벽을 연결하는 고리다.
법당의 문은
중생이 이승의 티끌을 털고 부처의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경계이기에
불교에서 최상의 장엄을 표현하는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지극한 환희가 넘치는 경계인만큼
불가에서 최상의 법과 진리를 상징하는 꽃을 장식의 소재로 삼았다.
그렇기에 사찰의 문은 "꽃살문"이라 불린다.
석가모니부처가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것도 꽃이고
최고 경전인 법화경과 화엄종의 명칭에서도 꽃을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불교에서 꽃은 법이요 부처의 진리이며 극락이다.
<용문사 윤장대> 솟을국화꽃살문
솟을꽃살문은 솟을살의 교차되는 부분에 모란,국화,연화 등의 꽃들을 도드라지게 새긴 문살로 격자살과 빗살을 주로 하여 여러가지 살을 혼용한 것인데, 일명 격자빗살문 이라고도 한다.
저, 아름답게 피어난 국화꽃을 바라보니
진정 그 자태가 아름답구나.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울었는가..
화려한것 같으나 소박하고,
복잡한것 같지만 단순하며,
긴장이 필요없이,
따뜻한 정감이 서린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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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의 문인 꽃살문은 대부분의 재질이 춘양목으로
만드는 재료부터 함부로 고르지 않는다.
100년에서 300년 정도 묵은 춘양목을 고르되, 북쪽을 보고 자란 부위만을
택해 문살을 만든다.
춘양목은 소나무로 재질이 단단하고 결이 부드러우며 붉은 빛을 내고
오래가도 썪지않고 뒤틀리지 않기에
예로부터 궁궐, 사찰을 비롯하여 큰 양반 가옥은 모두 이를
재료로 삼았으며 가구재에도 많이 사용되었다.
꽃살문의 나무결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것을 오랫동안 보관하기란 쉽지않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단청이다.
단청은 비바람으로부터 부식을 방지하여 내구성을 높이고
신성한 사찰 건축물의 장엄을 표현하는 방법이 된다.
사찰에 따라서는 아예 꽃살문에 단청을 하지 않거나
단청한지 오래돼 색이 거의 벗겨진 경우도 있다.
오히려 이런 문들에서는 춘양목 본래의 색과 나이테가 드러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꽃살문은 민초들의 삶과 애환이
담겨져 있기에 소박하고 단순해 따뜻한 정감이 느껴진다.
<송광사 하사당> 날살문과 띠살문
여명의 시간,
어두운방 한켠에서 문 밖을 바라보니, 창호의 그 은은함이 한껏 배인다.
모든것을 배재한 아름다움..
단순하게 세로로 살을 지른 2개의 창문.
그리고 중앙에 길게 날살을 지르고, 날살에 간격을 두고 띠를 둘렀다.
어떤 문양도 장식도 없다.
그러나 그 모습은 더없이 정숙하며 소박하고 단아하다.
주위는 숨막힐듯 적막하고 모든것은 죽은듯 고요하다.
창밖의 여명에 눈이 부시다.
이런 날..
초봄, 청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릴 쯤이면
어디선가 창살을 타고 한줄기 봄바람이 노크할 것만 같다.
봄이 어느 날 갑자기 왔다.
그리고 벌써 떠나 가려고 한다.
오는 사람 붙잡을 수 없고, 가는 사람 잡을 수 없는데..
봄향기 차향기 사람향기에 맘껏 취하고 싶다.
매화 향이 가득할 저곳 송.광.사.
그곳에서 청매화 한 송이를 띄운 녹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
청매화가 봄눈(春雪)처럼 흩날리는 시간에,
맑고 향기로운 매화 향이 성급한 날씨 속에 떠나기 전에,
가슴가득 매화 향기를 담으러 길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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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전시한 사찰꽃살문은 그동안 답사를 통하여 익히 눈에 익었던 것들도 있었으나
새로 접하는 꽃살문도 많았다.
만(卍)·아(亞)·용(用)·귀(貴) 등의 글자를 본뜬 문자 꽃살문,
널판에 모란·연꽃·새·자라·물고기 등을 투각한 통판투조꽃살문,
문틀 안에 세로로 살을 지른 날살문, 날살에 가로로 띠를 두른 띠살문,
날살과 띠살을 같은 간격으로 짠 격자살문,
사각형의 빗살을 상하좌우로 잇댄 숫대살문,
격자살과 빗살에 모란·연화·국화 등 문양을 더한 솟을 꽃살문 등
전통 문 양식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좋았다.
또한 사진 외에도 꽃살문의 재료가 되는 춘양목(春陽木),
꽃살문의 제작 과정, 꽃살문에 입힌 단청, 창호지 등
꽃살문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곁들여 놓았기에 더욱 좋았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것을 알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라고 미국의 역사학자 미첼 스티븐스는 갈파했다.
어떻게 보면 사찰꽃살문 사진전은
다른 사진보다 다루기가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한자리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사찰들의 꽃살문을 한꺼번에
접할 수 있으니
나는 그저 감격하며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기왕 박물관에 왔으니 다른 전시관의 유물들도 둘러본다.
청주박물관은 약 2만평의 대지에 4개의 상설전시관을 갖추고
충북지역에서 출토된 선사시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물 2,3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구석기시대 동굴유적을 비롯 백제,고구려,신라의 유적 그리고
통일신라시대 중원경과 서원경,
고려시대의 불교문화와 조선시대 유교문화가 꽃 피웠던 곳으로
중원문화의 옛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나오는길에 단아한 사찰꽃살문 사진집이 있어 들쳐보니
그 아름다움에 무던히 애착이간다.
한가지 아쉽다면 사진밑에 부연 설명이 없다는 것..
뒷장을 넘겨보니 뜨악..!! 값이 무료 삼만오천원, 너무 비싼 가격에 만지작 거리다 그냥 나왔다.
칠천원짜리 청주박물관 안내책자만 사들고...
좀더 저렴하게 어록을 만들어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읽혀졌으면
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박물관을 나오니 화창한 봄날씨가 너무나 좋다.
눈부시도록 따스한 햇살.. 산들산들 봄바람이 얼굴을 간지른다.
박물관 위에 있는 우암 어린이 회관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상당고개(343M)를 넘어서는 길은 제법 가파르다.
높진 않지만 S자로 굽이진 길을 쉴새없이 올라야한다.
고갯길을 올라 내리막길이 끝날즈음이면 주차장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진입하면 좌측 둔덕위로 상당산성이 길게 뻗어 장중한데
중앙으론 상당산성의 남문이 그 웅장함을 드러낸다.
<상당산성(上黨山城)-남문>
오르는 길엔 넓은 잔디밭이 있어 광활한 잔디위를 아이들이 뛰어놀고
우측의 계단길은 구불구불 아름답다.
삼국시대 백제의 상당현에서 유래된 이름인 상당산성은
둘레가 4.2㎞, 높이 3~4m, 면적 54,700평의 거대한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임진왜란 중인 선조 29년(1596)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1716)에서 45년 까지 충청병사 유성추의 감독으로
대대적인 서역개축이 이루어졌다.
산성은 동문, 서문, 남문의 3개문과 동암문 남암문의 2대 암문,
치성 3개소, 수구 3개소가 있고,
동장대가 재건되었으며 서장대의 위치가 확인되었다.
남문에 올라 성곽을 바라보니 지네처럼 이어진 산성이 든실하다.
상당공원엔 아이들이 즐겁고 이곳을향해 올라오는 발걸음은 많기도 많다.
남문을 지나 둔덕위에 서서 동쪽성곽을 바라보면
안쪽에 한옥마을과 저수지가 아담하게 자리한다.
전체 32가구가 모여사는 한옥마을은 그중 27집이 음식점을 경영, 성업을 이루는데
음식점마다 가족들이 직접 음식을 다루기에
음식맛이나 술맛이 집마다 다른것이 이곳의 특색이다.
마을 입구의 저수지엔 또 하나의 마을이 드리워져 있다.
저수지는 멋이 있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흙길을 걸을수 있어 정감이 간다.
한옥마을은 순천의 낙안읍성이나 진도의 남도석성의 민가처럼 소박함은 없으나
청주시에 인접해 있어 사람들로 붐비는데
민속주 대추술이 나그네를 유혹하고 길가의 민속요리는 입맛을 돋군다.
식당의 초입은 사람들로 붐비지만
조금 들어서니 한적한 식당이 발길을 붙잡는데 손님없는 식당인지라
깍듯한 대우를 받아가며 따뜻한 방까지 안내를 받으니
산채비빔밥으로 때우기에 그저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어찌 하랴.
메뉴는 토종닭과 오골계 그리고 꿩요리 등이 전부인것을...
길을 나서니 오후의 나른함이 온몸을 감싼다.
봄향기 묻어나는 꽃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햇살 좋은 성곽 한쪽엔 도란도란 모여선 사람들의 눈망울이 평화롭다.
이제 서둘러 집으로 가야한다.
가는길에는 보살사와 안심사를 들러 봐야 하기에..
상당산을 넘어서 명암약수로 목을 축이고 청주박물관을 지나 좌측으로 난
외각도로를 타고 명암저수지를 지나 7km정도 진입하면
좌측으로 보살사로 들어가는 이정표를 볼 수 있다.
보살사는 사바세계에서 고뇌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세워진 절로서
청주 근교에 남아 있는 사찰 중 가장 오래된 고찰이다.
마을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니 가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곳을 들른다고
묻지않는 말을 귀뜸한다. 이유인 즉슨
대통령 임기를 마친다음 백담사에서 근신할 때 그곳에 계셨던 스님이
이곳에 머물기 때문이라고...
<보살사 전경>
보살사(菩薩寺)는 작은 절집이다.
멋이 있거나 볼 거리도 많지 않다.
극락보전이 본전이고 좌측 뒤에는 명부전이, 그리고 극락보전 앞에는
오층석탑이,
그 좌우로는 요사채가 자리하며
이곳에는 보물 제1258호로 지정된 영산화괘불탱이 있다.
극락보전은 불교에서 서방의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불(阿彌陀佛)를 봉안하는 법당이다.
이곳 극락보전(極樂寶殿)은 조선중기의 목조건물로
신라 진흥왕 28년(567년)에 법주사를 창건한 의신조사가 창건하였으며,
세월이 흐르면서 중창과 중수를 거듭하여
조선 숙종 9년(1683)에 중건된 후 다시 수차례 중수되어 오늘에 이른다.
정면 3간, 측면 2간의 다포식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측면에는 풍벽을 달았으나 여늬절과는 다르게 옆문이 없어 특이하다.
마음에 양식이 없음일까,
조선시대의 각종 지리지에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는 유서 깊은 이 절집이
왠지 이 중생에게는 마음에 와 닿지 않으니....
이제 청원 안심사(安心寺)를 찾아가자.
안심사는 몇번을 헤멘 후에야 찾을 수 있었다.
제기럴, 입이 천리라 했는데.. 사람을 볼 수가 있어야 물어보지..
청원IC에서 우회전하여 3KM쯤 진입하면 청주가는 갈래길에서 좌측으로
안심사 들어가는 표지판이 보이는데 이곳을 진입하여
척북리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곧장 들어가면 된다.
들어서는길은 외길이며 길기도 길다.
볏단을 잔뜩 실은 딸딸이(경운기)를 앞에두고, 한참을 굼벵이 기듯
기어 가야 했다.
어쩌다 넓은 곳이 나와도 딸딸이는 비켜줄 생각을 않는다.
참다못해 크렉션을 눌러봐도 듣는지 못듣는지 제갈길만 간다.
샛길이 나와도 무슨 얄궂은 운명처럼 우리가 갈 방향으로만 간다.
우, 제기럴..
딸딸이는 안심사를 다 와서야 우측으로 들어섰다.
안심사는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사동리 구룡산(九龍山)에 있는 절로서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영산전,산신각,충혼각,요사채 2동이 있다.
안심사는 신라 혜공왕 11년(775) 진표율사가 절을 지은 뒤
수십 명의 제자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에서 안심사라 이름하였다 한다.
사찰에 들어서니 정면에 영산전이 있고
좌측으로 돌아서면 대웅전이 있다. 넓지않은 가람,
화려하거나 요란하지않은 대웅전, 여늬절집보다 깨끗한 요사채가 특유의 멋을 풍긴다.
<안심사대웅전>
다포계 맞배집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남향인 대웅전은
순조 16년(1816년)에 중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3단의 자연석을 이용한 허튼층 쌓기로 소담한 석조기단 위에 세운 건물로
기둥은 모두 민흘림을 가진 원주인데
부분적으로 자연적인 것을 그대로 사용하여 소박한 멋이있다.
측면에는 풍벽(風壁)을 달았고, 건물내부 천장에는 화려한 닫집이 있어
아름답다.
안심사 대웅전은 전북 완주군의 화암사 극락전(花巖寺極樂殿:보물 663)과 더불어
한국 고건축사에 중요한 자료라 한다.
하지만, 건물전체의 구조에서 지붕과 그 아래부분이 왠지 조화롭지 못해
뭔가 원형을 잃은듯한 형식 그리고 뛰어나지 않은 양식에서
보물 제664호로 지정되어 있음에 고개가 갸우뚱 거린다.
좌측에는 안심사 세존사리탑인 석종형부도가 있다.
세존사리탑은 진표율사가 창건 당시 석가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사리탑이다.
인적없는 부도밭엔 봄바람만이 살랑인다.
이곳엔 국보 제297호 영산회괘불탱이 있다.
한때 비로전이라 이름했던 영산전에는 불단 앞에 마련된 괘불함이 있는데
그곳에 1652년(효종 3)에 제작한 괘불을 보관한다.
언제나, 어느 사찰이나 그렇듯 괘불은 특별한 날에만 볼 수 있다.
대웅전 우측으로 높이 솟은 괘불대.
중생은 거대한 괘불대를 보며 괘불의 크기만을 짐작해볼 뿐..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2003. 3. 30
(사진중 일부는 다른 곳에서 도용 하였음)
첫댓글 사진이 올라가니..훨씬 좋습니다...글이야 원래 작가나 다름없지만...고맙습니다..청주 한번 가야겠네요..
사무실에서 쪼매만 가믄 되는데 게을러서 그런지 자주 안가게 되네요ㅡㅡ; 이번 일욜날 일끝나고 실실 가볼라구요^^;
꼬마대장님,주인장님,히메님.. 답글 감사합니다. 아직 초보자라 여러가지로 부족한점이 많습니다. 특히 사진은 더욱 그렇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꾸며 보았는데... 부끄럽군요. 부족한 글 읽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충주답사시 꼭 베토벤 아저씨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천재적인 음악인..닮은 분들은 느낌도 비슷한과 봅니다.
냉동님께서는 답글도 잘 달아 주시는군요. 넉넉한 그 씀씀이가 부럽습니다. 모놀 식구들의 글을 읽어 보니 각굴도 충분히 주신다고요..?? ^^* 충주 중원고구려비 앞에서 처음뵙고 님과 손을 잡았을때 그 손맛의 느낌은.. 오랜 옛 친구를 만난듯 부드러웠지요. 그 손맛을 또 느껴보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