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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도[芿島]
넙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읍에 딸린 섬.
동경 126°31′, 북위 34°25′에 위치하며 면적 4.11km2, 해안선 길이 12.5km, 최고점 160m(수용산), 인구는 451가구 900명(2010년)이다. 노화도 서쪽 2.8km 떨어진 해상에 있는 섬이다.
지명은 약 160여 년 전에 김씨가 보길도 우두에 묘를 쓰고 풍수지리로 보아 이 섬이 소의 먹이에 해당된다 하여 ‘풀섬’이라 칭했다 전하며 지형이 게를 닮아 ‘넙게’로 칭하다가 ‘넙도’로 하였다는 유래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보길도 정자 마을 산위에 공알바위가 흔들리면 방축리 처녀들이 바람난다는 전설에 넙도 방축리 처녀들이 공알바위가 흔들리지 않게 돌로 괴었다는 전설이 있다.
동서 3개의 부락 모두 소득이 높은 부자 섬이다. 넙도란 이름을 들어보면 넓은 바다에 솟아올라 있는 섬으로 연상되는 이름이다. 넙도는 주위에 널따란 황금 바다가 있다. 온갖 값비싼 해산물이 나오고 국민 건강에 이바지 하는 웰빙 식품인 김·전복·미역·다시마·톳·삼치·도미 등이 대량으로 생산되기 때문이다.
넙도에 사는 주민들은 예로부터 주위의 크고 작은 무인도에 대한 해초 채취권을 독차지할 정도로 억세고 강인한 기질을 지녔다. 물론 대부분 농어업을 겸하고 있다. 청정 해역에서 양식되는 김과 톳으로 높은 소득을 올린다. 주요 수산물은 갈치·삼치·도미·농어 등이다. 인근 해역에 풍부한 어족 자원이 많아 가을이면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다.
섬의 역사와 유래를 살펴보면 넙도는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동안 영암군에 속하였으며,
-1870년에는 삼도진(노화도, 보길도, 넙도)을 설치함에 따라 그 관할 하에 있었다.
-1896년 완도군 넙도면이 되었다가
-1916년 노화면으로 통합되었고, 그간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1964년 넙도 행정 출장소를 개설하였다.
1600년경에 공씨가 처음 들어왔다고 하는 넙도는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서 해안에는 암석 해안도 발달하였으나 사질 해안이 많고, 남쪽과 동쪽 연안에는 간석지가 펼쳐져 있다. 넙도는 완도군 노화읍 내리, 방축리, 서리 세 마을을 이룬다. 마을은 섬 남쪽의 이곳 방축리 마을과 동쪽 해안의 내리 마을에 집중되어 있다. 이 중에서도 내리, 방축리는 넙도에 있고, 서리는 서넙도로 나뉘어 있다. 후장구도와 마안도는 내리에 속한다.
광해군 때 김해 사람 김경현이 사화를 피하기 위하여 입주하였으며 그 후 경주 사람 이창래, 밀양 사람 박득린이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하는데 ‘방축리’라는 마을 이름은 마을 가운데 연못이 있어서(방죽지) ‘방죽리’라 불리다가 방죽으로 바닷물이 들어와서 피해를 입으므로 그곳을 축조하여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방축리’라 하였다 한다.
350여 년 전에 곡탁 공씨가 들어왔으나, 생활하기가 어려워서 해남으로 이주하고 그 후 김씨, 용씨가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는 내리 마을은 마을 지형이 양쪽에 능선이 있고, 따스하다 하여 ‘내리’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내리 마을에는 바위섬의 전설이 있는데 3년마다 이 바위섬 부근을 지나가는 선박이 섬의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나므로 이 마을에서 매년 정초 당산제를 지낸 후 이 바위섬 부근에 소머리를 바쳐 사고를 예방한다는 전설이다.
매년 정월 초하룻날에는 풍어와 주민들의 무사를 기원하는 당제를 지낸다. 예전에는 제물로 소를 구입하여 방목으로 길렀는데 소가 농작물을 먹어도 몰아내지 않고 일을 부리지 않는 등 신성하게 키워서 제사에 쓸 정도로 토속 신앙이 강했던 곳이다. 이곳은 말바위 설화가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다.
넙도의 크기는 바로 옆 보길도의 8분의 1, 노화도의 6분의 1 정도로 작다. 하지만 넙도라는 이름이 나타내듯 넓은 바다를 끼고 있다. 더구나 그 바다가 대부분 물살이 세고, 바다가 잔잔하여 김 양식에 적합하다. 또한 주위 바다가 적당한 수심인 10~20m와 넓은 뻘이 형성되어 있어 풍부한 각종 무기질을 함유하고 있는 질 좋은 김 양식을 하기에 적합하여 예로부터 완도 김 중에서는 상급으로 쳐 왔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김은 빛깔이 검고 윤기가 돌며 맛이 깊다. 생산되는 김이 가공된 것으로만 10만 속(한 속, 10장*100개), 연 5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섬에는 물이 부족하여 겨울 가뭄에 시달리는 곳이 많은데 이곳은 지하수가 풍부하여 34개의 공장에서 쉴 새 없이 마른 김 완성품을 만들어 낸다. 하루 24,000L, 식수도 부족한 섬이 많은데 조그만 섬에서 이만한 지하수가 솟는다고 한다.
넙도는 김 생산지에 걸맞게 매년 ‘넙도 김 축제’를 연다. 특히 물김 위판 행사에서는 물김을 가득 실은 배들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매일 많은 양의 물김이 생산 가공된다. 축제에서 많은 관심을 받는 행사는 ‘장보고 김밥’이라고 이름 붙여진 80m짜리 김밥 만들기다. ‘장보고 김밥’을 80m로 한 것은 1922년 완도군에 해태 조합이 설립되면서 시작된 김 양식이 80년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작은 섬에서 이만한 김밥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 것은 천혜의 자연 조건으로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청정 해역에서 양식되는 김과 톳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며 최근 전복 양식으로 전업을 하는 어가가 늘고 있다. 전복의 사료인 미역과 다시마 양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완도가 전국 전복 생산량의 70% 정도를 생산한다. 김이 그러하듯 전복 역시 넙도의 주산물이고 김과 함께 생산되는 파래도 운반에 편리하게끔 규격화하여 생산되고 있는 한겨울 넙도의 주 소득원이다. 남해안과 서해안이 만나는 지정학적 위치와 더불어 바다의 암반층이 맥반석층이라서 김이나 전복·미역·다시마·파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하게 맛이 다른 특징이 있다. 그래서 이 조그만 섬에는 BMW 등 고급차가 다닌다. 그 만큼 김과 전복 양식이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는 지나가는 개도 전복을 물고 다닌다고 한다.
넙도를 가려면 완도 화흥포항에서 노화 이목항에 왔다가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고, 해남 땅끝에서는 단번에 넙도에 들어갈 수 있다. 완도에서 노화도까지나, 해남 땅끝에서 넙도까지는 다니는 배 이름이 ‘장보고호’이다. 장보고호의 위용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이다. 바다의 왕자처럼 아니 1,200년 전의 신라 해상의 신(神) 장보고 장군이 돌아와 이 배를 타고 남해 바다를 호령하고 있는 듯하다.
넙도의 관문인 내리 항구에 내리면 내리 항구의 오른쪽이 보길도이고 그 사이에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빨간색의 보길대교가 아름답게 보인다. 내리 여객선 출입항은 커다란 물양장을 만들어 대규모로 생산된 수산물과 차량과 배들이 접안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북 방파제로 이어지는 그 입구에 2층 규모의 해양 경찰서 내리출장소가 있다. 그 맞은편에 대합실이 있으나 지금은 대합실은 다 안쪽으로 옮겼다. 이곳에 ‘넙도 내리 마을’이라는 마을 표지석이 있다. 방축 마을과는 대조적으로 아담한 크기로 대리석으로 세워 두었다. 2002년에 주민 일동이 세웠다고 한다. 그 옆에 넙도초등학교(노화중학교 넙도분교)가 2km지점에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도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맞은편 큰 섬이 바로 주섬인 노화도이다.
항구에서 왼쪽 길을 따라서 걸어가면 내리 마을이 나온다. 마을 앞에는 파도를 막아 주며 배들이 안전하게 설수 있도록 기다란 방파제가 있다. 방파제는 T자형을 이루고 있다. 오른쪽은 짧은데 비해 왼쪽 방파제가 참 길다. 이 방파제 끝으로 가서 마을을 바라본다. 마을이 길게 이어졌다. 역시 마을은 폭이 좁다. 여기서 바라보면 마을 뒤 능선이 겨우 건물 3층 높이도 되지 않는 높이다. 2층 높이 건물 끝자락과 거의 엇비슷하다.
‘넙도길 106번’에 들어선 마을 회관 앞을 지나 해안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면 완도우체국 넙도출장소가 있다. 계속 걸어가면 담수화 시설이 있고 그 옆으로 난 시멘트 길을 따라 내리막길을 걸어가면 마을이다. 길이 제법 길게 이어져 있다. 이곳은 방축 마을과는 달리 마을이 조금 높은 지점까지 이어져 있다. 산 능선이 온통 황토색이다. 능선 좌우로 마을이다.
마을로 들어서면 길은 좌우로 갈린다. 직진 방향에는 내리 경로당이 외롭게 떨어져 있다. 이 지역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경로당으로 들어서면 단층짜리 건물이, 마당에 나무 한 그루가 있을 뿐이다. 옥상에 올라가 보면 전망대가 따로 없다. 좌우 마을 전경이 다 보인다. 왼쪽은 계곡 속 산촌 마을이고 오른쪽은 선착장이 인접한 어촌 마을인 듯싶다. 능선 상에는 집들은 없고 교회 건물 한 채만이 덩그러니 있다. 이 교회가 넙도 교회로 그 뒤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다. 넙도 교회는 1980년대에 도서 선교회의 지원으로 설립되었다고 한다.
내리 마을 안동네. 길의 폭이 좁아 차가 다닐 때는 조심해야 할 듯하다. 조금 더 올라가면 매점이 나온다. 이어 내리막길로 들어서면 이 골목길이 바로 ‘넙도길 108번’이다. 차들이 다니는 길이 아닌 샛길이다. 길 끝으로 들어서면 바로 해안길. 포구의 정자 쉼터가 반긴다. 바로 앞에 방파제가 있고 길은 좌우로 이어진다. 오른쪽으로는 방축 마을로 이어지는 해안길이고 왼쪽으로는 철부선이 닿는 선착장으로 가는 길이다.
방축리 마을을 향하여 1km 정도 걸어가면 내리와 방축리 중간 지역에 학교가 있다.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면 정면에 2층짜리 건물이 있다. 아주 깨끗한 건물이다. ‘넙도길 294-31’에 위치한 이 학교 교문 기둥 3개에는 각기 명패가 붙어있다. 오른쪽부터 노화중학교 넙도분교와 넙도초등학교 그리고 넙도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현재 넙도분교에는 각 학년별로 한 학급씩 3학급에 총 25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초등학교는 3명의 교사가 총 25명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병설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이곳 넙도는 젊은이들이 많아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섬이다. 그러나 섬 내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분교 외에는 교육·문화 시설과 공간이 없다.
교직 생활을 오래 한 분들도 섬 학교에 지원 온다. 예전에는 교장으로 진급을 하려면 섬으로 부임해야 점수를 많이 따는데 지금은 조금 완화된 모양이다.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섬 점수가 필요해서 서로 섬으로 들어가려고 하던 때가 있었다.
학교 옆에는 보건지소가 있다. 학교 마을에서 방축리 마을에 들어서니 방축 교회 옆으로 해안 도로가 나란히 길게 이어진다. 위쪽 큰 포장도로를 따라 산 쪽으로 가면 북쪽으로 길이 이어지는데 그 끝자락은 저수지다. 이 마을 항구는 비록 어장 관리선 수준이지만 배들이 많이 정박해 있다. 물론 크레인 선들도 있다. 방파제 중간에 부교가 있어 배들을 타고 내릴 수 있는 시설을 해 두었다.
방파제 끝에 조그마한 무인도가 보이는데 이 섬 이름 역시 ‘송도’란다. 그 흔한 이름 송도. 이 섬에만도 송도라는 섬이 방축리와 내리 마을에 각각 하나씩 두 개나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골목길은 경사진 길이다. 집들은 거의 오래 되었다. 이 골목을 나오면 바로 해안이다. 그 앞은 연결된 무인도 섬인 송도로 그다지 크지 않은 섬인데 매립으로 연결되었다. 그 앞에는 간이 오수 처리 시설이 있다. 왼쪽은 선착장. 이곳 포구 역시 선착장은 두 개로 나누어진다. 안쪽은 비교적 작은 배들이 바깥쪽은 제법 큰 배들이 정박해 있다.
해안은 남북으로 이어진다. 끝으로 계속 가면 해안. 끝자락에 서면 오른쪽으로 무인도인 멍섬이 보이고 왼쪽으로 큰 섬이 바로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의 유적이 있는 섬, 보길도다. 보길도가 무척이나 가깝다. 길은 해안을 따라 구불구불하다.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서 해안에는 암석 해안도 발달하여 있으나 사질 해안이 많고, 남쪽과 동쪽 연안에는 간석지가 펼쳐져 있다.
송도 옆에는 방파제가 있다. 방파제에서는 마을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이곳은 바로 선착장 앞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그다지 높지 않은 구릉지다. 마을 뒤로 높은 산이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서넙도. 그리고 오른쪽으로 길이 계속 이어진다. 오른쪽 끝자락에 모래밭과 함께 그 뒤로 또 다른 마을이 보인다. 넙도초등학교가 있는 곳이다.
마을은 빈 공간 없이 오밀조밀 집들이 모여 있다. 그 사이에 공장도 몇 개 있다. 하얀색의 건물이 보이는데 방축리 마을 회관이다. 그 근처에 방축리 노인정이 있다. 번지수로 ‘넙도길 390-1’이다. 그 앞은 선착장 북 방파제로 폭이 제법 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