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버님 米壽, 88세 생신을 축하합니다
요즈음 인생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누구나 다 장수하는 것은 아니지요.
지금까지 부부 함께 偕老한다는 것은 아무나 누리는 복일 수 없지요.
6·25전쟁으로 아버님과 형님을 잃고 열네 살 어린 나이로 열 살 동생을 데리고
마흔한 살 어머니와 함께 피난지 경상도 아포 낯선 땅에서의 고생은 얼마나 자심했을까요?
늘 철없는 동생을 달래며 궂은일을 마다치 않고 묵묵히 감내했을 어린 시절의 아주버님을 상상해 봅니다.
다행히 그곳 면장 어른이 마련해준 방 한 칸에서 어머님과 함께 고생하시며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에서 교감 선생님으로 계시던 백부님의 연락을 받고 가족이 모두 상경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고학으로 형제가 공부해야 했던 그 시절 얼마나 고단했을까 짐작도 못 하겠습니다.
세월은 쉼 없이 흘러 형님께서 결혼하시고 삼 년 후 동생도 결혼하게 되니 때는 1970년도 12월,
청주 시골 농부의 딸인 제가 장수 이씨 가문으로 시집와서 보니 어머님께서는 그해 봄에 이미 회갑을 지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형제는 각각 가정생활을 영위하면서 어머님을 극진히 모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언제나 어머님 앞에서는 환한 얼굴로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것처럼 편안한 표정을 유지하시던 형제와 형님,
팔십 구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지극정성을 다하시던 기억은 저를 늘 부끄럽게 했습니다.
형님 내외분과 文村은 대한민국 제일의 효자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어머님의 자식사랑 또한 손자사랑 지극하셨으므로 우리는 순간순간 어머님을 그리워하곤 하지요.
어머님 가신 지 벌써 사반세기가 훌쩍 넘어섰네요.
그리고 보니 우리들도 팔봉산을 넘어서서 허연 머리로 구봉산을 바라보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필연인가, 우연인가? 동두천 큰댁, 개봉동 작은댁에서 건강치 못한 형님과 문촌이 매주 3회씩
병원에서 신장투석을 받아야 하니 본인들의 고통은 얼마나 자심하겠습니까?
고통도 똑같이 나누는 형제입니다. 옛날 의좋은 형제 이야기가 생각나게 하는 아주버님과 문촌입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화로 안부를 묻고 답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활하는 아낙입니다.
효(孝)는 백행(百行)의 근본(根本)이라는 말과 형제 우애하라는 이 뜻깊은 우리 형제의 생활 습관이
대대로 영속되었으면 합니다. 동지섣달 추위도 녹이는 따뜻한 형제애 오래도록 타의 모범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추운 겨울 잘 지내시고 따뜻한 봄날 어머님 산소에 건강한 몸으로 다시 우리 다 함께 찾아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부디 형님 내외분 더욱 건강 잘 유지하시기를 비옵니다.
2024년 12월 15일 소정 민문자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