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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전스님과 도기박 (Doggy bag)
바람따라 물따라 우연히 만나지는게 인연이라지만, 청전스님과의 연줄은 어찌 특별하게 느껴진다.
오년 전 유럽 여행중에 프랑스에 들리신 스님을 우연히 친구집에서 뵈었다. 안경넘어로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때 스님은 내게 오색빛으로 빛나는 예쁜 돌염주를 하나 건네주셨다.
« 그림을 그리신다니까 특별히 예쁜걸 드리는겁니다. »
나는 그 염주를 무심코 받아 들었고 스님과 몇 마디를 나누었다. 하이데거와 불교와의 만남에 대해서 짧은 대화가 오고 가기도 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을까, 친구 마들렌이 약장을 정리하는 중인데 필요한 약이 있으면 가져가라며 전화를 해왔다. 그 순간 떠오르는 청전 스님의 여행가방…, 친구집 거실 한쪽 구석에 자리한 유난히 부피가 컸던 가방이었다. 친구가 말했었다. 스님의 가방속에는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인도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약품이 들어있다고. 여행중에도 약들을 모아서 가방속에 일일히 챙겨가지고 다니셨다.
마들렌의 약장에서 나온 진통제와 감기약을 모아 스님께 보내드렸다.
스님은 손수 편지로 감사함을 표시하셨고 전화까지 주셨다.
그 후로 자연스럽게 스님과의 교신이 오고갔고 벌써 오년 째 계속되고 있다.
올해 다시 유럽 순례여행을 계획하신 스님이 우리 집에서 이틀을 묶으셨다. 기차역에서 비구니 차림을 하신 스님이 모습이 나타나자 나는 마치 군대갔다 휴가나온 큰 오빠를 만나는 여동생처럼 기뻐했다.
사람과의 만남이 늘 이렇게 순수한 기쁨으로 채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프랑스인 남편과 프랑스에서 태어나 우리나라 문화를 별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딸 아이는 처음 만나는 한국스님 앞에서 신기함과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스님은 딸 아이보다 더 신기한게 많으신지, 보는 것마다 « 예쁘다 »를 연발하셨다.
« 아니, 나무가 왜 이렇게 예쁩니까 ? »
« 와, 예쁜 꽃 ! »
내가 사는 오베르뉴 지방은 산골이라서 들판에 우거진게 나무고, 집집마다 허들어진게 꽃이다. 뭐가 그렇게 경이롭고 아름다울까 ? 딸아이는 그런 스님을 아주 재미있어 했다.
« 스님이 꼭 어린아이 같아. »
남편이 자동차 안에서 스님과 함께 피자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피자는 반드시 콜라와 함께 먹어야 제 맛을 발휘한다는 스님의 피자론에 딸아이와 남편은 박장대소를 하였다. 유쾌한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맛소문이 자자한 피자집은 벌써 만원이었다. 소박한 장식이지만 반드시 사전 예약이 필요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전식으로 염소치즈 튀김을 곁들인 살라드와 본식으로는 피자세개, 그리고 이탈리아 라비올리를 시켰다. 물론 콜라 주문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피자가 의외로 크고 푸짐해서 반절이 고스란히 접시에 남게 되었다.
스님은 음식을 남기는게 예의는 아니지만 너무 배가 부르니 남은 피자를 싸가지고 집에 갖고가서 나중에 먹자고 하셨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경우 도기박 doggy bag (영어로 개에게 줄 음식을 싸갖고 간다는 의미) 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남는 음식을 싸달라고 부탁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 식도락의 천국에 사는 프랑스 사람들은 도기박을 부탁하는 문화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그때 남편이 반색을 하며 스님께 말했다.
« 스님, 반갑습니다. 제 아내와 딸은 제가 도기박을 싸달라고 하면 창피하다며 핀잔을 줍니다. »
스님의 검은 눈동자가 커다랗게 부풀었다.
« 그럼 제가 부탁하겠습니다. »
« 예 ? »
«세상에 배고픈 사람이 많습니다. 남은 음식을 이렇게 버리고 가면 안되지요. »
나와 딸아이가 겪었을 민망스러움에 대해서는 언급이 무용하리라.
우리는 피자가 푸짐하게 담긴 도기박을 들고 집에 들어왔다.
냉동실에 얼려 두었던 피자는 나중에 스님이 떠나신 후에 꺼내서 데워 먹었다 - 사실 데워먹는 음식은 더 감칠맛이 난다.
경제난이 심하다고는 하지만 레스토랑에 가보면 연일 만원이다. 그 중에 도기박을 부탁해서 남은 음식을 싸들고 가는 사람은 일퍼센트도 안된다. 나도 스님이 아니었으면 도기박을 들고 피자집을 나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각자 일인분에 이삽십 유로하는 메뉴도 거뜬히 지불하고 가는 걸보면 아직도 프랑스는 풍요롭게 살고있다.
한 텔레비젼 방송에서 내란분쟁으로 인한 죽음을 피하려고 사막을 건너다가 배고픔과 목마름에 지쳐서 쓰러진채 죽어간 수단 여인의 주검을 본 적이 있다. 뜨거운 모래밭에 반쯤 파묻힌 그녀의 메마른 몸, 굶주림으로 시달린 앙상한 다리을 보고 받은 충격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여인이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운 일이지만, 매일 반복되는 편안한 일상이 편안함인지 조차 모르고 살다보면, 지구상의 어느 곳에 배고픈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쉽게 잊어버린다. 각자 자기 행복에 안주하다보면 주변의 현실에는 장님이 되는 것이다.
나는 접시에 남겨진 피자와 수단 여인의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감에 적쟎은 충격을 받았다.
평소에 의식하지 못했던 자기모순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몇 일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부끄러움 보다는 놀라움이 더 컸다.
일상생활 속에는 이러한 모순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는데,대부분은 안락이라는 방속에 갖혀서 우리의 의식을 잠재운다.
전환점은 어느 한 순간에 불현듯 찾아오기도 한다.
청전스님과 도기박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수니아 쁠란 Sounya Planes, 2012년 6월 25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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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많이 생각하고 반성하고 갑니다. 사랑합니다.....()()()
청전스님 책도 읽어 보았는데...많이 배우고 실천해야 할것이 많은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