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04년을 맞아 서울 성북구의 정릉감리교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이했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저는 지금까지 정릉교회의 창립연도를
1909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1908년 경부터 시작된 벙커와 김우권 전도사의
서울 동북부 선교사업을 통해 용두동, 왕십리를 비롯한
벌리(지금의 장한평 지역 같습니다), 손가정(孫哥場, 지금의 정릉(貞陵)),
미아리에 이어 '소귀'(牛耳, 지금의 우이동)에
새로운 감리교회들이 설립되었다는 사실이
벙커 선교사의 보고서 (Official Minutes of the Korea Annual
Conference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1909. p.45)에
나와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동대문교회 100년사를 저술하신 윤춘병 감독님께서도
그 저술에서 손가정교회를 일러 (Son Ka Chung Church, 현 정릉교회)라고
기록하고 계십니다.(동대문교회 100년사 p.118)
또한 1909년 당시 교인수는 학습인 3명, 원입인 13명, 세례인 장년 2명 도합
18명의 성도들이 있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덕주 교수님께서 1994년에 저술하셨던 우이교회 85년사를 참고해 보면,
이 교회가 정릉교회와 비슷한 교회사적 배경을 갖고 있음 또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교회 모두 다 6.25 동란 직후 수복된 서울에서 새롭게 형성된 교인들로부터
재건된 천막교회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가 알기론 이덕주 교수(감신대)께서도
처음엔 우이교회의 40년사를 쓰는 것을 의뢰받으셨다가 자료를 검색하시고
연구하시는 와중에 소귀(牛耳)교회의 설립에 관련된 선교사 문서를 통해
우이교회의 창립 연원이 1909년임을 알게 되었고 이에 교회의 역사를 85년사로
앞당겨 서술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동대문교회 100년사를 참고해 보아도 정릉교회는 이미
1908년부터 진행된 동대문교회의 서울 동북부 선교의 가장 대표적인 결실로서
문헌에 남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제가 인터넷을 통해 정릉교회의 홈페이지를 방문했을 때,
아직 정릉교회에서는 본교회의 역사가 1900년대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알지 못한 듯 올해를 50주년으로 잡고 기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의문이 생기게 된 이유가, 우이교회도 일제시대의 교회 탄압과
6.25 전쟁이라는 역사적 전기를 통해 교회의 역사가 망각 혹은 단절된
비슷한 사례로서 1954년 전후의 천막교회로 시작된 정릉교회도
이전의 교회역사 자료의 부재나 공동체의 와해를 통해 단절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 때문이었습니다.
분명 선교사 문서에 드러나 있듯,
정릉교회도 왕십리, 용두리, 미아리, 우이교회등과 함께
초기 벙커선교사와 김우권, 노병선, 이경직, 현석칠 등의 전도인들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초기의 동대문교회의 성도들의 헌신적인 전도로 인해
뿌리내린 초기의 신앙공동체인 것만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엔 정릉교회는 초기의 신앙공동체가 후에 어떠한 이유로든
그 역사가 단절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덕주 교수님께서도 우이교회 85년사를 통해 교회역사의 연속성이 확증되려면
① 교인의 연속성
② 교회명칭의 연속성
③ 감리교 공교회적(公敎會的) 연속성이 확인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사 단절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점에 대해선
외부적 억압과 영향에 의한 역사적 단절은 그 고난의 시간 밑으로 흐르는
신앙 수호의 흔적이 오히려 발견된다면 이를 교회 역사의 계승과 연속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심을 확인했습니다.
솔직히 1909년 당시 동대문교회를 통해 개척된 손가정교회가
지금의 정릉교회의 역사적 연원으로 삼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많을 것 같습니다.
사료의 부족과 기존 교회의 토착 원로성도들의 예기치 않은 반발도
예상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보다 확실히 규명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통해
정릉교회의 교회사적 자산과 신앙유산이 더욱 풍성해질수 있지 않을까하는
작은 기대 또한 갖게 되어집니다.
저의 보잘것 없는 호기심으로 장문의 글을 드렸습니다.
이덕주 선생님께서 쓰신 '우이교회 85년사'를 재밌게 읽으면서
이런 의문이 생긴것이니 선생님께서 조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