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8:1]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모든 명령 -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전율법, 곧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가리킨다. 이에는 십계명 뿐 아니라 모든 도덕법과 의식법 시민법, 제사 제도 등이 다 포함된다. 지켜 행하라 -이어 거듭 반복되고 있는 권면이다. 이는 모세가 출애굽 제 40년, 모압 평지에서 행한 3편의 설교를 통해 백성들에게 주지시키려고
한 본서 전체의 주제인데, 실로 이스라엘의 생존과 번영 그리고 언약 성취에 있어서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기도 하다.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 이같은 사실은 이스라엘의 구세대가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 광야 40년 동안의 유리 방황 끝에 모두 죽고 만 점(민 14:26 - 35)에 의해서도 충분히 입증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그 사실은 단순히 복과 화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한편,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유념해야 할 사실은 어떠한 보상을 바라고서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행위는 기복신앙으로 흐르기 쉽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어떤 보상을 바래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며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심정에서 섬기는 것을 기뻐하신다.
따라서 지극히 계산적인 자세에서 섬기는 것은 결코 원치 않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하여 사람의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행 17:25), 도리어 인간에게 경배를 명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렘 20:14]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미가 나를 생산하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 여기서 예레미야의 갈등과 고뇌가 극한에 치닫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레미야는 자기 어머니가 자기를 낳아준 것에 대해 탄식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지는 않고 자기 자신을 저주하였을 뿐이다. 하나님이나 자기 부모를 저주하는 것은 이스라엘에서는 대단히 심각한 범법 행위였다.
본절에서 선지자는 비록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저주와 원망은 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소명받은 사실과 그가 출생하기 전에 그를 부르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편, 소망과 믿음의 고백에 이어 곧바로 이처럼 침울하고 절망적인 탄식이 토로되는 것에 대해 학자들의 견해가 분분하다.
혹자는 구문의 위치 변경이 가해졌다고 보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본절 이하가 바스훌의 말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견해들은 지나친 추측에 근거하였을 뿐이다. 우리는 당시 예레미야가 직면했던 심리적 갈등과 불안을 고려할 때, 이처럼 갑작스런 심리 상태의 전환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렘 29:6]
아내를 취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너희 아들로 아내를 취하며 너희 딸로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생산케 하여 너희로 거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
거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 - 예레미야의 이 같은 당부의 말은 포로로 잡혀 간 곳에서 그들이 이제 오랫동안 체재할 것이므로 그에 대해 준비를 갖추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일상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 땅에서 번성하여 강한 민족이 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비교적 자유가 보장된 포로 생활이었지만 이에 대한 예외도 있었다. 예컨대 여호야긴은 갇혀서 지내야 했었다. 그가 감옥에서 풀려난 것은 에윌므로닥의 즉위 때, 곧 B.C. 562년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